소설리스트

11. 심망 心忘.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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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녀 (妖女) - 11. 무 협 

11. 심망 心忘. 

그 소동이 있은 지 한참 지나 점심때가 다 되었을 때였다. 

“저...요화궁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멀리서 보니 요화궁주도 같이 온 듯 

합니다만...” 

“......!” 

갑자기 ‘금마궁’의 ‘접객담당관’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차를 한주전자나 마셔대며 씩씩! 아까의 화를 삭이던 ‘생사판관이’ 무언가 

염두를 굴리며 툭 말을 던졌다. 

“결국...올 것이 온 건가...그건 그렇고...요화궁주가 이틀 만에 정신을 

차렸다...허어! 그 ‘불마전주’...무공 실력이 대단하구만...헌데...이를 어쩐다 

서문선생! 본좌가 맞으러 가봐야 하겠소“ 

  

'만량‘의 눈길은 ‘심유(深幽)’한 눈빛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서문선생’을 

향했다. 

“...소인이 가 보겠습니다...우리 악령종에서 ‘금마궁주’는 그 위치의 무게가 

‘구만 구천관(九萬 九千貫)’ 이라고 전해오는 만큼 함부로 움직이시면 아니 

됩니다...“ 

“부탁하오! 서문선생...그 골칫덩이 여자를 어떻게 빨리 치워달라고 해 

주시오...”   

생사판관...말은 그렇게 했지만 생사 판관의 목소리에는 ‘불마전주’ 려화의 

문제가 좋게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미운정이라도 든 것일까... 

전대의 금마궁주가 물러나고 아직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륜이 그리 

길지 않는 ‘생사판관’ ‘만량’을 대신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무난히 처리해 

온 마도의 노 고수인 ‘서문선생’이 그 것을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서문선생’...그는 두 서동들을 불러 몇 가지 지시를 마친 뒤 총총 걸음을 

옮겼다. 

후루룩!...생사판관은 두 서동이 정리해 올린 서류에 눈길을 주며 새로 끓인 

차를 따라 요란스레 들이켰다. 

  끼익, 끼익...바닥이 낡았는지 아니면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는지 살짝만 

내 디뎌도 난리를 치는 복도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구조...미로처럼 얽기 설기 이루어 진 데다 몇 종류의 

‘진법’이 가미되어 있는 터라 미궁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구나, 간간이 들리는 신음소리와 멀리서 비명마저 들려오고 있었다. 

움찔...태연한척 했지만 요화궁주를 따라나선 시녀들이 꽤나 질린 눈치였다. 

하긴...‘금마궁’은 실로 악령종 내에서도 악명이 높은 곳으로 연륜이 높은 

마두들마저 꺼려하는 곳이다. 

다만 요화궁주와 그녀를 호위하는 금화단 무사들은 그래도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요화궁주의 시선이 주위를 슬쩍 둘러보다가 자신의 몇 걸음 앞에서 안내를 

해 주고 있는 ‘서문선생’의 뒷모습을 향했다. 

작은 키에 얼핏 볼품이 없어 보였지만 슬쩍슬쩍 내 비치는 기세는 그녀조차 

만만치 않게 느껴질 정도다. 

더구나 느릿한 듯 했지만 일정한 보폭으로 걷는 그의 걸음은 어찌된 일인지 

삐걱거리는 바닥의 소음이 전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새삼 요화궁주는 ‘금마궁’과 ‘서문선생’에 대해 속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모퉁이를 지나 걸었을까...갑자기 넓은 광장 같은 곳이 나타났다. 

큰 기둥이 몇 개 줄지어 있는 가운데에 등불이 수 없이 밝게 타 오르고 

있었고, 기둥 마다 날렵한 모습의 ‘금마궁’ 여 고수들이  몇 명씩 서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서문선생...그의 발걸음이 문득 멈추어 섰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 요화궁주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다 왔습니다...이 곳에서 저 기둥 너머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 

요화궁주...간단한 차림새에 긴 장옷만 걸친 그녀가 안력을 돋워 멀리 불빛 

너머를 살펴보았다. 

희미하지만 분명 굴곡진 몸매의 꿇어앉은 인영 하나가 보였다. 

     

“안내해 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딱딱한...간단한 치하의 말을 하고 요화궁주가 막 걸음을 내디디려 할 

때였다. 

“죄송하오나...혼자 가셔야 합니다...” 

“......!” 

스윽! 요화궁주의 앞을 서문 선생이 가로막았다. 

깜짝 놀라는 요화궁주와 일행들...같이 따라나서려던 시녀들이나 호위무사 

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어지는 ‘서문선생’의 목소리는 느릿하면 서도 단호했다. 

“마도의 ‘철혈율법’은 지엄합니다...‘하극상’은 중죄 중에 중죄...원칙대로 

하자면 서로의 지위와 모든 것을 걸고 ‘생사투(生死鬪)’를 하거나 마종께 

아뢴 후, ‘세력전’을 해야 합니다만...스스로 죄를 시인했을 경우 ‘금마궁’의 

옛 대전인 이곳에 와서 머리를 풀고 자신의 죄를 청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무례를 범함 바로 그 당사자에게 말입니다...불마전주는 저 앞에서 

궁주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관례에 따라  스스로 몸의 혈도를 점혈한 

후, 내공을 운행할 수 없게 하는 ‘반강금쇄(反崗禁鎖)’를 손발에 차고 말입 

니다...“ 

“......!” 

요화궁주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사실 그녀도 이런 관례가 있는지는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순수한 무공 실력으로 보자면 불마전주가 자신보다 조금 위인 것은 

드러난 사실 아니던가...그렇다면 차라리 생사투를 하면 될 것을...왜... 

살짝 고개를 들어 의아해하는 요화궁주의 안색을 살핀 ‘서문선생’이 말을 

이었다. 

“저 곳에서 죄를 청하고 있는 ‘불마전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인 

요화궁주님의 몫입니다...살리시던...죽이시던 말이지요...죄가 인정되신다면 

그대로 불마전주의 머리를 내려치시면 됩니다...허나, 용서 하신다면... 

불마전주를 금제하고 있는 ‘반강금쇄’를 끊고 목에 걸린 나무패를 벗겨 

주십시오...선택은 모두 궁주님 뜻에 달린 것이겠지요...“ 

“......” 

왠일인지...대범하기로 소문난 요화궁주가 머뭇거렸다. 

수군수군...소리를 죽여 가며 요화궁 시녀들이 귓속말을 나누었다. 

내공이 있고 ‘전음술’을 펼칠 능력이 되는 상급 시녀들이나 금화단 무사들 

사이에선 빗발치듯 전음이 오고 갔다. 

어떤 결과가 나던지 한참동안의 화젯거리가 될 것이다. 

악령마종에서도 잊혀진 케케묵은 관례...도대체 려화는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관례는 우리 악령마종의 ‘조사(祖師)’때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허나, 실제로 이렇게 스스로의 죄를 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아시겠지만 마도의 ‘철혈율법’ 외에 우리를 지탱하는 ‘강자지존’의 법칙 

때문이기도 했습니다만...“ 

서문 선생은 말을 마친 후, 물러서서 한쪽에 마련된 탁자로 걸어가 앉았다. 

그는 품속에서 커다란 서책을 꺼내더니 탁자에 마련되어 있는 벼루에 

연적의 물을 붇고 정성스레 먹을 갈기 시작했다.     

(우리 악령종의 역사...‘혈세록 血世錄’...이렇듯 드문 일을 내 손으로 기록 

하게 될 줄이야...) 

담담한 표정으로 먹을 가는 서문선생의 눈빛이 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 

요화궁주...그녀는 한참이나 석상처럼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표정은 차가워졌다 무표정해졌다 

찌푸렸다...여러 번 반복하고 있었다. 

때때로 느릿하게 그녀의 몸 주위로 노을빛이 퍼지며 지지직! 손에 전류가 

맺혔다 풀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서문선생...그는 먹을 다 갈아놓고 단정히 앉아 ‘혈세록’의 빈 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요화궁주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사실이 기록되게 될 

것이다... 

“...끼익...끽!...꽈득!” 

마침내...요화궁주가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이전, 이곳에 들어올 때만해도 서문선생처럼 발소리 하나 내지 않던 그녀의 

걸음에 바닥이 아우성치며 비명을 지르다가 마침내 콰지직! 움푹! 패이며 

부서졌다. 

그녀의 몸 주위로 노을빛 광채가 번지고 양 손에는 자연스레 지지직! 

푸른 번개가 타 올랐다. 

(으음...대단한 내공이로다...가히 절정이라 할 정도로...) 

서문 선생...그의 눈 가에 한줄기 놀람과 안타까운 빛이 번져갔다. 

천천히 그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어쨋거나 제발...잘 해결되기를...) 

나직하게...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불마전주나 요화궁주나 ‘악령마세’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차분하고 신중한 그로서는 둘 중 어느 누구도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서문선생은 착잡한 마음을 떨치려는 듯 앞에 놓인 붓을 들어 듬뿍 먹물을 

찍었다. 

납시셨사옵니까...“ 

“......” 

철그럭...사슬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천천히 불마전주 려화가 머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지지직! 요화궁주가 양 손을 쳐들었다. 

푸른 전광이 서리서리 번지는 손...더구나, 시퍼렇게 날이 선 칼 한 자루를 

보는 듯 살기마저 내 비치는 상황이다. 

그러나, ‘려화’는 추호도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담담했다.   

“......”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듯한 단아한 태도...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려화는 추호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비록 면사를 쓰고 있어 그 얼굴 표정을 보지는 못하지만 왠지 저 면사 

안의 얼굴 표정이 물처럼 고요하리라는 것을 손에 잡히듯 느낄 수 있었다. 

“건방진...!” 

나직이 이를 갈며 요화궁주가 으르렁 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얄미웠다. 

지지직! 타오르는 손이 높이...높이 쳐들려졌다. 

마침내 하늘로 향한 양 손...노을빛과 푸르게 타오르는 번개...‘벽력 난화수’ 

의 수법에 따라 높이 솟구쳤던 손은 우아하게 곡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퍼석!” 

묵직한 소리와 함께...불마전주...려화의 양 손목을 묶고 있는 족쇄가 

끊어졌다. 

마치 썩은 새끼줄이 끊어지듯...‘반강금쇄(反崗禁鎖)’가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퍽! 퍼석!” 

연이어 소리가 들렸다. 

그 때마다 손과 발목에 감겨있는 족쇄와 사슬이 토막 나 흩어졌다. 

마지막으로...요화궁주의 손아귀에 려화의 목에 걸린 작은 나무판이 쥐어 

졌다. 

 “......!” 

툭! 목에 걸린 나무판이 당겨지고 줄이 끊어졌다. 

...‘대죄(大罪)’라고 미려한 필체로 쓰인 나무판이 소리 없이 요화궁주의 

손아귀에서 재가 되어 바스라지며 흩어졌다.     

그리고, 몇 줄기인가 지풍이 튕겨져 려화의 몸을 때렸다. 

막혔던 혈도가 정확히 풀리며 충격에 의해 려화의 몸이 휘청였다. 

“흥!” 

요화궁주는 몸을 돌렸다. 

 “천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정말...감사합니다...” 

파들거리는 려화의 몸...이틀인가 불편한 상태로 방치되었던 터라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대한 힘을 다해 극상의 예를 표했다. 

그러나... 

“짜악!” 

려화의 몸이 휘청 였다. 

과당...거칠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얀 면사에 핏방울이 살짝 비쳤다. 

씨익...씩!...요화궁주의 어깨가 들썩였다. 

분해서일까...요화궁주의 눈에는 찰랑거리며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너 같은 건...너 같은 건, 진작에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살기 띈 푸른 눈빛을 빛내며 쿵쾅쾅! 요화궁주가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달려 나갔다. 

“......” 

려화...그녀는 고개를 들어 요화궁주의 뒷모습을 향해있었다. 

점차...입 부근의 면사로 핏물이 넓게 번져갔다. 

“저...전주님!” 

“전주님...으아앙!” 

“......” 

부들부들 꾹꾹 터져 나오는 비명과 울음을 억눌러 참으며 숨어 지켜보던 

두 명의 어린 시녀들이 려화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의 품속을 파고드는 두 시녀들을 살며시 다독이며...려화는 말없이 

그렇게 있었다. 

만약 려화가 잘못될 경우 두 시녀들이 그녀의 유해를 치웠으리라... 

악령종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연이어 터진 흥미로운 사건...그 중심에는 새로이 부각되고 있는 ‘불마전’과 

아미파 출신으로 악령마종의 여자가 된 불마요미 려화가 자리해 있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려화에 대한 평판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더구나, 보수적인 원로고수들이나 장로들이 이번에 보인 ‘려화’의 행동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반해 요화궁 쪽은 상당히 침체된 분위기였다. 

요화궁의 평판과 명성이 많이 떨어진 것은 차지하고라도 요화궁주가 상당히 

저기압이라 측근들이 대단히 조심해야 했다. 

“딸깍...” 

“......!” 

움찔...요화궁주가 가볍게 빈 찻잔을 놓는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로 

시녀들은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이번의 사단이 벌어지게 된 원인은 상당히 복합적 이었지만, 결정적으로 

몇몇 시녀들의 과잉충성 때문에 벌어진 일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잘 마셨다...향이 좋구나...” 

“가...감사하옵니다...그럼 내 가겠습니다...” 

“그래...” 

허둥대는 시녀들에 비해 오히려 요화궁주가 태연한 듯 보였다. 

“......” 

시녀들이 나가고...나직이 숨을 내쉬며 요화궁주는 긴 의자에 털썩 몸을 

던졌다. 

몸은 평안했지만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곤했다. 

더구나,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자신이 한 행동...스스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불마전주 려화의 어찌 보면 무모하다 할 정도의 대범함...그리고, 그 때 

자신이 보인 행동...왜 려화를 내려치지 못했던 것일까... 

아무리 려화가 불마공을 높은 수준으로 익혔다지만 그녀의 힘이라면 단 

한번에 머리를 부숴버릴 수 있었을 것이고 나중이야 어찌되었든 오히려 

속은 후련해 졌을지도 모른다. 

후우우...이것저것 생각을 하며 긴 숨을 내쉬었지만 가슴의 답답함은 

가시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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