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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3 72. 어쭈? 지금 나랑 막가자고? - 누나가 먼저 잡았거든? (73/116)

00073  72. 어쭈? 지금 나랑 막가자고? - 누나가 먼저 잡았거든?  =========================================================================

정수가 안명수에게로 건너갔다. 안명수는 침대에 누워서 전화중이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TV 를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촛점을 잃은 눈이다. 

그의 머리 속은 다른 생각으로 복잡하다. 이번 연말에는 경애누나와 같이 포항 외가에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뮤지컬이나 뮤직쇼로 시간이 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경애누나 혼자 내려가있다.  방금 그녀는 전화로 외할머님께서 기력이 너무 약해지시고 또 치매가 시작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외롭게 혼자 사시는 외할머니는 정수를 어려서부터 예뻐해 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까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경애는 마음 약해지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다. 

안명수가 침실 밖으로 나온다. 그녀는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 있는데, 길이가 원피스만큼이나 길다. 그래도 허어연 허벅지가 거의 다 드러나있어서 너무 아슬아슬하다. 틀림없이 저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냉장고에서 캔맥주 두 개를 꺼내와서 탁자에 놓는다. 그리고 정수 옆에 앉아서 백허그를 한다. 정수의 등으로 안명수의 가슴이 눌려왔다. 안명수의 차가운 손이 정수의 윗옷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가서 정수의 배를 쓰다듬는다.

"앗!  차가워요, 누나."

"TV만 볼꺼야?"

"왜요? 심심해요?"

"너랑 있는데 왜 심심해? 그런데 치킨이 왜 안오는거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벨소리가 났다. 안명수는 정수의 손에 지갑을 쥐어주고 정수를 떠밀었다. 그가 문을 열고 치킨을 받아온다. 

두 사람은 배가 고팠기 때문인지 치킨 먹기에 열중한다. 입술이 번들거린다. 한참 후에 안명수가 맥주를 마시면서 정수를 부른다.

"정수야."

"예?"

"지난 번에 PD 님께서 널더러 나한테 프로포즈 하라고 하신 말씀 생각나니?" 

"하하하. 그런 말도 안되는 .."

"뭐가 말이 안돼?"

"에이. 내가 감히 어떻게 누나랑 결혼을 해요?"

"못할 것은 또 뭐야? 내가 네 마음에 안 들어?"

"내 말은 그게 아니라 .."

"시끄러워!"

안명수가 쩌렁 하고 쏘아붙이는 말이 허공을 가른다.  둘 사이에 또 침묵이 흐른다. 정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치킨에 몰입하고, 안명수는 그러는 정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런데 마음 속에는 천불이 난다.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 엄마 오신대."

안명수는 그에게서 무슨 말이 있기를 기다렸지만 정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야아아.  우리 엄마가 너 보러 오신대."

"예? 나를요?"

그제서야 그가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시큰둥한 것이 별로인 듯. 안명수는 한마디 더 한다.

"우리 엄마가 사윗감 보러 오신다니까!"

"사위? 그럼 누나 남편?"

"야아아아! .. 정수 네가 우리 엄마 사윗감이라고!"

"에이이. 그게 말이 돼요? 갑자기 내가 왜 그 사윗감 자리에 껴들어요?"

"토요일 하루만 하는 거야. 알았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얘기해봐요.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엄마가 날더러 시집가라고 성화거든. 선 볼 자리 여러 개를 내가 펑크 냈단 말이야. 이번에 또 난리를 부리시는데, 나는 너랑 사귀는 중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 그랬더니 당장 이번 주 토요일에 오신대." 

"토요일, 일요일에는 주말 공연이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점심밥 한 그릇 같이 먹을 시간도 없냐?"

"누나, 주말에는 오후 공연이 있잖아요."

"그럼 어떻하지?"

"죄송한데, 혹시 부탁할만한 다른 남자분 없으세요?"

언명수는 이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짓는다.

"봄에 오시라고 하든지. 2월 말이면 끝나요."

"아냐, 그거 연장전 할꺼래."

"아직 그런 말이 없던데?"

"PD님이랑 김익환 감독 사이에 벌써 말이 있었어."

"연장 공연은 하더라도 주중에는 안하고 주말에만 하지 않나?"  

안명수는 이제 막 두곽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있다. 그녀는 뜨고 있는 별인 것이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결혼을 한다는 말은 이 바닥에서 종적을 감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그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그녀가 생각해 낸 거짓말이 정수였다. 정수 정도라면 한 동안은 엄마를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계산착오가 일어난 것 같다. 

"하루만 어떻게 안될까?"

"그럼 .. 연말연시만 지나가면 주말 공연이 없으니까 나중에 오시라고 하면 안돼요?"

"그래?"

"구리고, .. 누나, 딱 하루만이야? 확실하죠?"

"그래. 밥 한 그릇만 같이 먹으면 돼. 그러다가 네가 우리 엄마 마음에 들면 혹시 알아?"

"혹시? 무슨 혹시?"

"후훗. 진짜 사위가 될 수도 있잖아?"

"엉? .. 누나 혹시 여동생이라도 있어?" 

"요게, 까불구 있어. 에잇!"

짝!

"아얏!"

안명수는 손바닥으로 그의 등짝을 소리나게 친다. 짝 하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정수의 엄살이 시작된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안명수의 마음을 흔든다. 안명수는 고개짓을 하며 마음을 독하게 먹으려고 한다.

"누나 손은 갈수록 매워져. 때리는 실력이 점점 고수가 되나봐."

"그럼 맞는 실력도 따라서 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안명수에게 정수의 등짝이 넓고, 듬직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안명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손바닥으로 때려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짝 하는 소리가 크게 나면 날수록 그녀는 쾌감을 더 느낀다. 물론 정수는 그럴수록 아파한다. 쾌감이 그녀의 온몸을 휩싸는 것은 잠시이다. 그가 한동안 아파하는 표정을 보면, 비록 그것이 엄살인 줄 알고는 있지만, 그녀의 마음은 흔들린디. 이건 뭐란 말인가?  

사태는 마무리 되고 두 사람은 다시 치킨에 덤벼든다. 캔이 비었다. 정수가 일어나서 냉장고로 간다. 그런데 냉장고에 캔은 없다. 안명수가 와서 와인을 꺼낸다.

이제는 맥주 대신 와인이다. 요염한 안명수가 요염할 정도로 빨간 액체를 유리잔에 반쯤 채운다. 

"정수 너는 내년에는 어땠으면 좋겠어?" 

"대박 앨범 딱 두 장만 냈으면 하는데 .. 아직은 꿈이죠. .. 누나는요?"

"난 PD 질이나 해야 할까봐."

"왜 그래? 이번에 보니까 MC도 완전 체질 같더만."

"아냐. 막상 해보니까 MC는 내 체질에 맞지 않아. 재미 없어.  난 연예인도 아니고, . .."

"그건 누나 생각이야. 처음 하는 게 그 정도면, 1월부터 하는 뮤직방송은 정말 대박 날것 같은데?" 

"방송이 대박 난다고 내 인생이 대박 나냐? 그거 하려면, 이사람 저 사람 엄청 많이 상대해야 하는데, 이 바닥에는 도대체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것 같아. 하나같이 다들 이상해. 물론 그러니까 그 분야의 천재들이겠지만.  그런 사람들 상대하는 것도 짜증나고. 재미도 없고."

"누나가 많이 힘들었구나."

"천재가 아닌 사람이 천재들이랑 같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 모르지? 보통 사람이 천재랑 결혼하면 얼마 안 가서 깨지잖아?"

"천재는 무슨? 약간 특이하게 한두 가지를 잘하는 거겠지."

"답답해 미치겠어. 윤희 일도 그래. 얘 얘기? 들어보면 딱한 것은 맞아. 도울 수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지. 그런데 이 바닥에 그런 애들이 하나둘이냐? 내가 내 일도 바쁜데, 그런 애들까지 뒤치닥거리를 해야 하는데 ..  보름 정도 만에 저런 쇼 하나 만들어내려면, 사람이 뭐가 되는 줄 아니? 여기에 일에 치이도록 매달린 PD, AD 만 전부 50명이 넘어. 지긋지긋해. 거기다가 윤희를 떡 풀어놓으면 난 어쩌라고? PD 님도 이번에 나한테 너무 하셨거든."

"듣고 보니까 거기다가 나까지도 누나한테는 짐이었네."

"정수야. 누나 말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줘. 나도 사람이야. 나도 여자라고."

"이해해요. 누나가 하는 일이 힘드는 일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어요."

"하루에 네다섯 시간 자고 일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줄 너는 모를 거야. 배경화면 편집하다가 졸고, 컴퓨터 앞에서 커피잔을 쏟아서 메인 컴퓨터 한대 말아먹고, 전화로 한참 얘기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랑 통화하고 있고, 방송 진행 시나리오를 프로그램에 넘겨줘야 하는데 서로 엉망으로 뒤바뀌고.  .. 다른 PD나  AD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번 일 도저히 불가능했었어. 그래도 우리 PD 님한테는 매일매일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거야. 매일같이 새로운 일거리를 계속 물어오고. .. 물론 그분 아이디어 때문에 이번 일이 가능해지기는 했지만."

"내년에 방송인 대상에 누나도 후보로 올라간다는데요?"

"그건 순수한 내 실력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야. 내가 잘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PD 님을 잘 받쳐드린다고 하는 거지."

"그것도 누나의 실력이 아닐까요?"

"내가 너랑 잠자리 하는 것도 그래. 내가 이 나이에, 이 미모에, 이 실력에, 도대체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찾아서 연애질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네가 이해할 수 있겠니? 정수 네가 이 여자 저 여자랑 자고 다니는 속물이라는 것, 나도 다 알아. 그런데 내가 막상 하고 싶을 때, 내 옆에 있는 것이 정수 너였어. 너라면 어쩌겠니? 내가 나쁘지. 내가 정수 너를 섹스파트너로 이용해먹는다고 나를 욕해도, 나는 할 말이 없어." 

"나는 누나한테 욕 하지 않아요. 나도 똑같은 입장이거든요. 무대에 서는 것은 15분 30분 이지만, 머리가 나빠서인지 그 곡들을 소화하려면 시간이 엄청 들어가요. 또 요새는 윤희 곡도 써야 하고, 계 연습도 봐줘야 하고. 나도 누구를 사귀고 이럴 정신이 없어요.  이런 내 옆에 누나가 있어요. 누군가가 누나를 욕하려면 나는 아예 죽여 없애야죠. 내 주제에 감히 누나한테 덤볐으니까요." 

"그래. .. 우리는 처음에는 사랑이 아닌 그냥 단순하게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나 막연한 관심으로 섹스를 시작했으니까.  .. 그런데 갈수록 이상해져."

"정말이야? 누나도 그래? 나는 나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이거 .. 난 잘 모르겠는데..  이거 만일 사랑이면 .. 우리 어떻게 해야 해?"

"누나, 그럼 진짜 큰일이죠.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너무 무서워요." 

이 연하남.

진짜 어이없다.

박PD 가 정수를 보고 안명수에게 프로포즈 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부터 안명수에게는 정수에게서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매일 그를 바라볼 때마다 기대하는 눈길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채워질 리가 없다. 사실 자신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안명수도 모른다. 이 막연한 기대감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오늘은 처음부터 안명수가 정수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엄마에게 일일 사위를 하라는 말도, 알고 보면 <일일 사위 말고 평생 사위는 하면 안되냐?> 라고 농담삼아서라도 한번쯤 물어봐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안명수 혼자만의 기대일 뿐 정수는 아예 꿈도 꾸지않는 것 같다.

안명수는 정신 없이 바쁜 나날을 힘겹게 보내면서도 정수를 관리하는 일 만큼은 빈틈없이 해냈다. 박PD는 거기에 윤희라는 짐을 하나 더 얹어준다. 그래도 안명수는 윤희가 이사하는 문제라든가, 왕언니 사건 까지도 말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안명수는 자기가 열정을 쏟아 부어서 제작하는 무대의 한 쪽을 윤희와 정수에게 할애했다. 그들이 딛고 일어서서 첫걸음을 할 수 있는 무대도 마련해 준 것이다. 그러면서 정수가 자기에게 향하는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기를 안명수는 개대해 온다. 그런데 그것도 안명수 혼자 걸어본 기대일 뿐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정수를 향한 자기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고 있음을 명백하게 밝혔다. 물론 그것은 무드를 잡고 한 사랑의 고백은 아니다. 그렇지만 안명수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접혀서 숨겨져있던 사랑이라는 하아얀 손수건을 꺼내서 펼쳤다. 거기에 어떤 장면을 둘이서 같이 한땀 한땀 예쁘게 수놓을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그런데 이 연하남의 대답은?

그런 말 하지 말란다.

무섭단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는데. ..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해?

안명수는 정수의 목을 팔로 감아서 당겼다. 정수의 등으로 그녀의 가슴이 눌리면서 뭉클한다. 정수의 등줄기가 짜릿해온다. 정수가 몸들 돌리며 안명수의 허리에 팔을 두른다. 그녀의  한 손은 정수의 남성을 잡는다. 

"하아~ 얘는 왜 이렇게 화가 나있어?"

정수의 손도 안명수의 허벅지로 간다. 그녀의 티셔츠는 위로 말려 올라가서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그녀만의 비밀스러운 것들이 거의 다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손은 그리로 향한다. 얄미운 손이다.

"어쭈? 지금 나랑 막가자고?"

"누나가 먼저 잡았거든?"

"좋았어. 너 어디까지 가나 함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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