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저급한 유혹(4)
아까도 들었던 귀엽다는 단어가 사뭇 다르게 들리는 건 아마 기분 탓이겠지. 희진이가 날 놀라게 하는 거야 자주 겪었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대비도 못 하니까 완전히 방심했다. 거기다 녀석이 이상한 짓거리를 해대는 바람에 더욱이….
"근데 뭐 하고 있었어? 누구랑 대화해?"
쉽게 넘어가 주는 일 없이 대화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니까 황급히 감추고 말았다. 이래서야 더욱 수상해지는 터라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내심 찔려선 고스란히 눈치를….
"어, 엄마한테 점심 먹으면서 영화 봤다고…말했어."
점점 수습할 수 없는 사태에 얼떨결에 거짓말을 해버렸다.
"음-…마마보이."
단지 그건데, 숨기려고 했던 사실이 탐탁지 않았는지 재미없게 영- 싱겁다는 표정.
"읏-!?"
콤플렉스를 지적당한 양 넘겨지는 거 같아 얼굴은 찡그리고 있어도 속으론 안도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많이 삭막해져서 어색함을 풀기엔 재치 없는 성격. 마땅히 떠오르는 발상이 없었기에 그저 하하 웃으려다 희진이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더니, 녀석이 그랬던 것처럼 희진이도 소파에 올라와 빠르게 내 위를 차지한다. 하나 녀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전혀 피할 이유가 없다는 것.
"우쮸쮸. 괜찮아 괜찮아. 어머님도 오빠가 귀여워서 그러는 거야."
혹시 희진이도 풍만한 앞태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싶은 기대가 곧 칭얼대는 어린애를 달래는 목소리로 잠잠해져서 금방 야릇한 상상을 지울 수 있었다.
"흣-!? 으헤헿…."
연하의 포용심이라곤 생각하기 어렵게끔 자신에게로 잡아당기는 능숙한 안아 듦에 포근함과 안정감이 안면으로 닿아 살결에 느껴지는 극상의 행복. 당황스러움도 어쩔 수 없는 미소로 바뀌어서 내가 뭐에 화내고 변명했었는지조차 까먹게 한다.
"미안해 오빠, 혼자 토라지고는 오빠만 두고 가버려서…손님이 왔는데, 언니가 저렇게까지 제멋대로인 줄은 몰랐어."
희진이가 화를 내고 가버린 원인은 녀석이지만, 대충 저런 성격임을 알았음에도 같이 있게 한 자신을 탓하는 마음씨가 천사나 다름없는 상냥함.
"그러니까, 오빠…."
그러나 다정함 속의 눈망울은, 어째선지 무척 아쉬운 빛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 하루 여기까지란 말을 하려는 거 같아서 헤- 거리던 얼굴도 평정심을 되찾곤. 하려던 말이 남은 희진이에게 가만히 끄덕이며…알겠다는 의사를 표출했다.
구름 없는 하늘이라 그런지 산소의 온도엔 자비가 없어서 살랑거리는 바람의 싱그러움이 너그러이 반겨줬을 때가 그립게 지금은 숨만 쉬어도 여름이란 뜨거운 계절의 기분을 되새기게끔. 일상이 후덥지근해서 공기 중의 뜨뜻함이 입천장부터 목구멍을 지나 폐 속까지 건드려가며 생색을 내는데, 그게 좋을 리가 없기에 오로지 불쾌함만을 가져다주었다.
"아야, 아프네."
찬 바람을 실컷 쐬던 실내에서 바깥으로 나오니까 이마에 땀이 흐르려는 중임에도 버릇처럼 볼을 꼬집어 빨개졌을 뺨의 아픔이 가라앉도록 어루만졌다. 녀석의 방해에 분위기를 망쳐 일찍 헤어졌다곤 하나 영화 보고 맛있는 걸 먹은 뒤 딱히 할 게 없는 현실. 그래도 마무리로 희진이가 껴안아 준 것이 좋디좋고 좋았기에 불만은 없었다.
"해달라는 거 해주기. 했고. 적극적으로 표현해주기…했나?"
따로 적어뒀거나 하진 않았지만, 머리로는 주의해야 할 점이나 하면 좋은 것들을 되새기며 하는 반성. 거기다가 사귄 지는 이제 겨우 한 달이 막 지나고 있는 참이고, 모솔인 내게 있어 이 이상의 주제는 인터넷에서 배운 포괄적이고 신빙성 없는 내용 말곤 없었다. 그런데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건 순전히 내가 서투르니까.
"집에 도착하면 오늘 좋았단 토-크 하고…다음 약속은 내가 잡아야지. 언제가 좋을까?"
뻔한 패턴을 보자면 영화관 식사 모텔 이런 순서라는데, 영화관이랑 식사는 그렇다 쳐도 모텔은 어려웠다. 둘이서 놀만 한 곳이라면 오락실이나 코노가 괜찮았지만, 나만 즐거울 거란 생각에 시도조차 안 한 일. 인터넷 사례나 썰에선 이랬다저랬다 하는 내용이라 배우면 배울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하물며 생각했던 것이 불발된다던가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 오늘도 그렇게 외웠는데 잊은 것도 있었으니 더욱 그런 걸지도 몰랐다.
"아! 칭찬해주기를 안 했구나."
녀석 때문에 일찍 헤어진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복습에 예습하며 걷다 신호가 걸려 서자마자 들리는 코 토-크 소리.
엄마? 아빠? 아니면 희진이?
누구에게서 왔나 궁금해 누군지 짐작하며 확인한다.
[안 와?]_오후 2:44
애써 장난이라 치부하고 싶던 녀석의 진심 어린 듯한 물음.
"으-음…."
아까의 그건 역시 진심이었던 걸까? 몰카 같은 서프라이즈 치곤 집요하다.
1_오후 2:44_[내가 왜?]
구겨진 인상 수습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사납게. 냉정히 생각했을 때 대놓고 덫을 파고서 어서 오세요 하면, 어서 갈 거 같을까? 특히나 친하지도 않은데 섹드립이나 치는 이성에게…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으니까 바로 알람이 울렸다.
대답은 빠르네.
by특별공수
[동정이라 불쌍해서]
[걸레인 희진이한테 경험 없다고 비웃음당하기 전에 내가 떼주려고]_오후 2:45
걸레? 희진이가? 연애 경험이 없으리라고는 생각되진 않지만, 표현이 친동생에게 하는 것 치고는 불쾌하고 역겨웠다.
1_[아무리 언니라지만 동생한테 질투하는 건 많이 그렇네]
1_오후 2:45_[말도 너무 함부로 하고 말이야]
보낸 것처럼 단순한 질투라고 생각되진 않아도.
오후 2:45_[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안 좋게 보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훈계 할 입장이 아니란 건 알지만, 이건 도가 지나쳤다. 녀석은 정말 희진이의 친언니가 맞긴 한 걸까?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희진이와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였다.
by특별공수
[싫은데?]_오후 2:46
이 토-크를 보고 깨달은 게, 녀석은 단지 날 열 받게 하려는 거뿐이란 사실. 여기서 화를 내는 쪽이 지는 거다.
[엿 먹어] ◎ ▶
"…후-."
생각은 진다고 했어도 손끝은 이미 전송을 누르기 직전.
참자, 충분히 호흡하고.
[ ] ◎ #
순간적으로 적었던 욕설을 지우고 어떻게 대답할지를 고민했다.
[동정 자지 걸레 보지한테 먹히고 비웃음당하며 차이기 전에 상대해준다니까 싫다고 하네?]_오후 2:47
"익-!!!"
[조까고 지랄하지마 걸레는 너니까 다시는 그딴 소리 함부로 지껄이지 말고 자기 처신이나 잘해] ◎ ▶
그새를 못 참고 끓어오르는 빡침에 전송하려다 간신히 멈추는 손. 그 대신 하고 싶은 말은 적힌 채였다.
"아."
몹시 찡그려지는 미간 사이.
"이런…."
토-크에 신경이 쏠려있느라 그만 신호를 놓쳐버렸다.
그냥 차단할까…?
사실 그러는 편이 현명했다. 괜히 일일이 받아주면 끝도 없을 거 같기에 여기서 무시하는 편이 신상에 이롭겠지.
[희진이가 실망하기 전에 나랑 하는 건 어때?]
[연습한다 치고]
[좋은 생각 아니야?]_오후 2:48
"…미친."
아무리 정도가 없다 해도 이렇게나 분별력 없을지는 몰랐다. 사회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던 지금까지의 태도. 희진이가 괜히 염려한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
오후 2:48_[됐으니까 차단할게]
말하는 동시에 차단하니까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았는지 답장이 왔어도 무시하고 신호를 기다렸다. 무슨 내용인지 조금 궁금했지만, 호기심보다 더 꺼려지는 기분 탓에 확인도 하지 않고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넣자 바뀌는 신호. 녀석이 내게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단순하게 받아들여 악취미라고 단정 지으면 될 거다. 세상엔 마땅한 이유 없이 그냥이란 형편 좋을 단어가 존재했으니까….
"하-…!"
정말 자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성격. 어쩌면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골이 깊게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닐까? 발육에 따른 몸매는 논외로 치고, 자매니까 닮은 점이라고는 역시 외모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고양이상처럼 매혹적으로 보이면서도 누구에게나 친근한 모습을 보면 그저 도도하다고만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 미모도 확실히 예쁘다고 말할 수 있어서 정말 나 같은 놈이랑 사귀는 것이 현실적으로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라 우울함을 비추면 마음도 예쁜 희진이는 이런 나를 보고도 괜찮다며 쓰다듬어 주는데, 난 또 거기에 응석을 부린다. 정말 나 연상이 맡긴 한 걸까?
"후-우."
그러니까 이렇게 얕보이고 괴롭혔던 거겠지. 우스워서.
"젠장…."
꼭 녀석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어수룩한 성격을 생각하면 화만 난다. 얼른 집에 가서 샤워부터 해야지. 그래야, 이 끝 없는 자기혐오를 떨쳐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기대할게 오빠ㅎ]_오후 10:37
희진이의 승낙을 받아내고서 차오르는 만족감. 어제오늘 만난 주제에 바로 약속을 잡고 또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이 식상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막상 부딪혀보니 괜찮아서 괜히 지레 겁을 먹었나 싶었다.
오후 10:37_[응ㅎ]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라는 것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을지도. 그렇게 고민하던 'ㅎ'도 써보니까 지금까지 쓸까 말까 고민했던 게 거짓말처럼 쉽게 붙여졌다.
"헤헤헤."
희진♥
[공포영화로]_오후 10:38
"윽!"
오후 10:38_[....진짜?]
그렇게 편안했던 분위기가 급변하여 심장이 놀라 덜컹거리는 기분.
희진♥
[농담이야 오빠]
[귀엽다니까 진짜]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_오후 10:38
오후 10:38_[그렇지..? ㅎㅎㅎㅎ;;]
장난인 걸 알아도 무서운 것을 생각하면 매번 놀란다. 겨우 공포영화란 단어에 반응해서 드는 수치심 또한 어쩔 수 없이.
희진♥
[응!]
[공포영화는 우리 둘만 있을 때 보장]_오후 10:39
"으…."
결국, 보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구나.
오후 10:39_[응.....알았어]
체념하고는 마지못해 수긍했다.
희진♥
[집에 올때 떡볶이 사가지고 오면 봐줄지도?]_오후 10:40
오후 10:40_[사 갈게]
어제 나눴던 대화와 비슷해지는 양상에 순간적으로 발휘한 기지…라기는 그렇고, 살기 위한 대답.
오후 10:40_[추가로 원하는 거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
[오늘 떡볶이 부족하지 않았어?]
[다음에 더 사 갈게]
오후 10:41_[2인분이면 되지?]
생각이 바뀌기 전에 내지른 행동은 오로지 공포영화만은 안 된다며 움직이고 있었다.
희진♥
[ㅋㅋㅋㅋ너무 열정적인거아니야 오빠?]_오후 10:41
정작 나를 멈춘 건 이런 희진이의 반응이었지만.
오후 10:41_[ㅎㅎㅎㅎ..;;]
내가 봐도 꼴불견답게 엄살이 심하긴 했다.
"…쩝."
한심하기 짝이 없어도 공포영화만은….
희진♥
[졸리다..]_오후 10:41
…어제보다 일찍 자네?
오후 10:42_[이만 잘까?]
어차피 더 이어나갈 화제는 떨어졌으니 옳거니 하고 받아치는 대답.
희진♥
[응..그래야겠어]_오후 10:42
뜻밖의 행동에 의아했지만, 잔다는 것에 이견은 없었다. 평소라면 한두 시간은 더 대화했을 텐데 말이지. 오늘은 고작 삼십 분 남짓했다.
[이만 잘게]
[오빠도 잘자]_오후 10:42
여기까지 보니까 진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깨닫는 내 차례.
[잘자 ] ◎ ▶
그리고.
오후 10:42_[잘자 사랑해]
하루의 마무리로 항상 주고받는 애정표현이지만, 대부분 받기만 했으니 오늘은 드디어 줄 수 있었다.
희진♥
[ㅎㅎㅎㅎ나둉♥♥♥♥]_오후 10:42
만족스러운 대답에 화면을 닫아 눕고는 일과의 끝으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는 작업.
"아아-, 아파…!"
아프지만, 헤벌쭉하고 칠칠치 못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는 어쩔 수 없었다.
"…."
하지만, 이렇게 만끽하는 것도 잠시. 스멀스멀 몰려오는 자괴감에 희진이가 나 같은 놈을 정말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가 또 의심스러워졌다. 그렇게 인기도 많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몸매도 좋은 애가…그러자 떠오르는 생각은 녀석과 나눴던 대화로 걸레라는 노골적인 단어가 생각나 괴로워지는 머리.
희진이는 진짜 걸레일까…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그딴 헛소리에 놀아나지 말자.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처녀가 아닐지는 몰라도 걸레는 아니야. 그런 애는 아니야.
"끟-…."
상념이 많아졌다. 이게 다 녀석이 시답잖은 개소리를 보낸 탓. 그런 헛소리를 믿을 리가 없는데…머리로는 아니라고 해도 손은 이미 녀석과의 대화창을 보려고 움직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