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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의 짐꾼-154화 (154/236)

〈 154화 〉 [용사] 꿈과 현실의 경계

“이렇게 금방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촌장의 집에서 에아는 일어나 우리를 환영했다.

그녀들은 돌아간 것 아니었던가?

왜 이 마을에 정착해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을 품은 우리에게 에아는 그 사이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뭐… 정리하면 일이 잘 풀렸다는 거죠. 이 마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저희도 생활권을 확장시킬 생각이에요. 이미 서로 이야기는 다 마쳤고,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닐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익숙해지겠죠.”

그들이 계획하던 대로 왕이라거나 그런 높은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다 마친 것 같았다.

마족에 대한 반감이 무척이나 강한 게 귀족들인데,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몰라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기는 했어도, 아무튼 잘된 일이었다.

이제 그들이 바라던 인간과 마족이 함께 생활하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일까?

“네, 이제 남은 건 시간뿐이에요.”

에아는 그렇다고 확신했다.

시간이 지나면 마족들도 인간 사회에 녹아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로 이렇게 전쟁을 할 일도 없어지겠지.

“사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죠. 같이 생활한다고는 해도 인간형이 아닌 마족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할 테고….”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짚는 에아는 상당히 골치가 아파보였지만, 그래도 그 표정은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말이 길었네요. 아무튼 덕분에 일이 잘 풀렸으니 여러분 덕분이기도 하겠죠. 쉬었다가 가세요.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죠.”

그녀의 호의를 받아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 머물렀다 가기로 했다.

***

“와아, 와…! 정말이죠? 정말 여기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는 거죠?”

미리는 폴짝폴짝 뛰면서 해맑게 웃었다.

나는 유니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는데, 미리는 유니의 은근한 압박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내 옆에 달라붙어 과도한 호감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차마 대놓고 쫓아낼 수가 없었던 유니는 뚱한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아 그녀를 계속 노려봤다.

“아참… 그, 그럼 혹시 저희의 꿈이 필요하시….”

“우리 모두 안 받기로 했어.”

에아는 우리에게 음마들을 시켜 원하는 꿈을 꾸게 만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모두가 거절했다.

그 사실을 전하자 미리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지만 금세 기운을 되찾고 벌떡 일어나 말했다.

“알았어요! 꿈에 의지하지 말고 직접…!”

“하아….”

유니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뭐라 해줄 말이 없어 어색하게 웃어주기만 했다.

“저기, 미리….”

“네?”

나는 결국 유니를 위해 직접 행동하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그… 나는 지금 연인이 있거든….”

“…네?”

미리의 시선이 그제야 처음으로 유니에게 향했다.

“앗.”

“그러니까, 그… 미안.”

내가 어색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유니가 슬쩍 내 팔짱을 꼈다.

그러자 미리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그, 그렇군요… 그렇죠…! 저, 저는 고작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우, 우읏….”

똘망똘망한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오르자 우리 둘 다 당황했다.

이, 이렇게 갑자기 울어버리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잖아…!

“죄, 죄송해요… 제, 제가 방해를… 흐아앙!”

“미, 미리!”

우리는 어떻게든 그녀를 달래려고 애썼지만 결국 미리는 울먹이며 나가버렸다.

“에릭 씨, 저렇게 순진한 아이를….”

“아니, 이건….”

아린이 옆 테이블에서 키득거리며 우리를 바라봤다.

그들은 방도 우리 옆방으로 잡고 지금도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아있었는데, 세리아와 아린이 재밌다는 듯 즐거운 미소를 띠는 것과 반대로 제렌은 그녀가 나간 숙소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볼일 좀 보고 오지.”

그는 세리아와 아린의 동행을 거절하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아린 네가 쓸데없는 관심을 보이니까 화나셨잖아.”

“아니, 세리아도 재밌게 봤으면서….”

둘만 남자 그녀들은 누가 잘못한 것인지 서로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에릭, 신경 쓸 필요 없어.”

내 시선이 자꾸 그녀들을 향해 돌아가자, 유니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내 손을 포개며 말했다.

“저 둘도… 그 아이 일도….”

그러게 말하며 유니는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살짝 긁었다.

“중요한 건, 그 여자들이 아니잖아?”

“…그렇지.”

어차피 나에게 중요한 건 유니뿐.

이제는 유니밖에 없다.

“응, 그거면 돼.”

“응….”

나는 살포시 웃는 유니에게 머리를 기댔다.

그래, 미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차피 내가 그녀의 마음을 받아줄 일은 없을 테니 이렇게 확실하게 말해두는 게 그녀에게도 좋으리라.

나는 그렇게 믿으며 먼저 유니와 방에 올라갔다.

“흐읏… 흐으… 에릭….”

“유니….”

우리는 자기 전 또 몸을 섞었다.

며칠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유니의 제대로 된 신음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가끔씩 한숨과도 같은 약간의 신음만을 흘릴 뿐, 유니는 한 번도 만족스럽게 교성을 내지른 적이 없었다.

정말 그녀는 내 기술에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자꾸만 불안감이 내 마음을 잠식한다.

“오늘도 좋았어, 에릭… 갈수록 잘하는 것 같아.”

“으, 응….”

내가 그 날 약간의 불안을 토로한 뒤로 그녀는 이렇게 나보고 한두 마디씩 칭찬을 덧붙이고는 했는데, 왠지 너무 작위적인 것 같아 묘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냥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아니, 그건 그것 나름대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래, 아무튼 내가 잘하면 되는 것이다.

내일은 다른 자세로 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하필이면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잠들어서인지, 꿈도 참 이상한 꿈을 꿨다.

***

꿈에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왕을 물리친 우리들은 아무도 모르는 시골로 내려가 단 둘이서 조용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수도에서 명예롭게 호사를 누리며 살 수도 있지만, 그곳에는 세리아와 아린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유니가 시골로 내려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와 함께 약간의 보상금만을 받고 인적 드문 마을에 정착했다.

우리는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외곽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가끔씩 살아남은 마물들의 잔당이나 마을의 힘쓰는 일을 도맡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이웃집의 보수 작업을 도울 예정이었지만, 집 주인의 실수로 아직 필요한 자재가 도착하지 않아 생각보다 일찍 귀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찍 돌아왔으니 유니도 깜짝 놀라겠지.

싱글벙글 웃으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유니를 닮은 어린 아이가 집 밖에서 혼자 바닥에 누워 흙으로 장난을 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딸, 왜 혼자 나와 있어?”

누구더라?

아, 그렇지.

나와 유니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이다.

나보다는 유니를 더 많이 닮은 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유니와 쏙 빼닮은 점이 귀엽기 그지없다.

가끔 좀 지나친 장난을 치긴 하지만 그건 어린 아이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한 탓이리라.

“엄마가 손님 왔으니 잠깐 나가있으라고 해서….”

“응?”

손님?

그녀는 별로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아 딱히 찾아올만한 사람이 없다.

아니, 그보다 손님이 온다고 굳이 딸을 내보낼 필요가 있는가?

나는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손님이 누구였는데?”

“으음… 가끔 오는 아저씨였는데, 이름은 몰라요!”

“가끔…?”

그런 손님이… 있었나?

“아, 이거 엄마가 말하지 말랬는데.”

“뭐?”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내 가슴은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니, 아닐 거야.

“아빠, 왜 그래?”

“아, 아냐… 아빠는 잠시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 먼저 가볼게….”

나는 이유 모를 불안함을 느끼며 집을 향해 뛰어갔다.

뛰면서 자꾸만 머릿속에 옛날 일이 생각났다.

세리아를 누군가에게 빼앗긴 일.

아린도 누군가에게 빼앗겨버린 일.

그러나 유니만큼은 지켜서 무사히 마왕을 토벌했던 일….

그런데 정말 지켰던가?

아니, 그보다 그 누군가가 누구였지…?

“허억… 허억….”

순식간에 뛰어온 나는 집 앞에서 무심코 왼팔을 바라보았다.

왼팔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마왕을 죽이면서 내 팔의 문양도 전부 지워졌지만, 그건 아마도 용사로서의 내 역할이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겠지?

조심스레 문을 연 나는 낯선 구두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성용 구두.

당연히 내 것은 아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하며 집 안으로 발을 들이자 멀리서 유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벌써 …커져….”

침실에서 나는 소리다.

나와 유니가 쓰는 침실인데, 그녀는 손님을 맞이하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침실에 있지?

“…들키지 않게 …얼른 끝마치고….”

그녀는 누군가를 향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대체 누구랑?

“하읏♥ 남편과는 완전….”

그녀의 입에서 들어본 적 없는 신음소리가 나온 순간, 나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열어야 하나?

혹시 이게 내 착각은 아닐까?

“하앙♥ 흣… 하읏, 더… 더 세게….”

파앙파앙!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나는, 침실 위에서 몸을 섞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을…….

“하악, 하응…♥ 흐읏….”

…봤던 것 같다.

눈을 뜨니 나는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이쪽이 현실이다.

아직 마왕도 토벌하지 못했고, 유니와 함께 시골로 내려가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긴 적도 없는 현실.

그래, 그건 전부… 꿈이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꿈을 꿔도 이런 꿈을 꾼단 말인가.

나는 너무나도 불쾌한 느낌에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폈다.

유니.

그래, 유니는 내 곁에 있다.

그녀는 한 팔로 내 허리를 감은 채 꼭 달라붙어있었다.

악몽은 그저 악몽일 뿐.

현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읏, 흣… 자, 잠시….”

옆방에서부터 불쾌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확인해볼 것도 없다.

우리 옆방에 굳이 방을 잡아 이런 소리를 들려줄 사람이 또 있을 리가 없으니.

“제렌….”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찌푸렸다.

대체 이런 밤늦게까지 안 자고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이상한 악몽을 꾼 것도 전부 저 누군지 모를 여자의 신음소리 탓이 분명하다.

…잠깐, 그런데 저 상대는 누구지?

얼핏 듣기로는 세리아나 아린은 아닌 것 같다.

설마 다른 여자를 침실로 끌어들인 것일까?

“하윽… 기, 기다려… 크흡….”

내가 둘의 목소리를 구분 못 할리는 없다.

그렇지만 이건… 분명 세리아도 아린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다른 여자를 데려온 경우 밖에 없다.

그녀들로도 만족을 못하는 건가?

아무튼 상대의 반응을 보니 그녀도 그리 싫어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기에 나는 무시하고 다시 잠이나 청하려고 했다.

“…하앙, 흐읍, 하악…!”

왠지 모르게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유니의 모습을 확인했다.

모르는 목소리.

분명 모르는 목소리다.

그래, 유니는 여기 있잖아.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털어버리고 다시 누우려고 했다.

“흐이익♥ 흐윽…!”

…역시, 조금은 닮은 것 같다.

이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살짝 하반신에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악… 처, 천천히….”

그녀와 비슷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어본 적 없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읏, 크읏….”

나는 어느새 바지를 내리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시선은 유니를 향한 채로, 그러나 귀는 다른 곳을 향해 열려있었다.

“하아, 하아… 아, 아직도…?”

신음, 신음….

“히이익…! 하윽, 학…!”

그 누군지 모를 신음소리를 나는 유니의 모습과 겹쳐서 상상하고 있었다.

유니가 교성을 내며 몸을 섞고 있다.

지금까지처럼 미적지근한 소리가 아니라, 정말 쾌락을 견디다 못해 소리치는 그런 비명을.

나는 그런 유니를 보며 바로 옆에서 자위를….

아니, 아니지.

유니의 상대가 나 말고 또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유니와 몸을 섞으며 그녀의 교성을….

안 된다.

상상 속에서도 내가 상대면 유니에게서 이런 교성이 나오지 않는다.

“햐아악♥ 햐윽….”

나는 유니의 교성을 상상하며 열심히 자위했다.

찍! 찌익!

“후읏, 후우….”

한 번 사정하고 나니 갑자기 한심함이 밀려들어온다.

대체 이 새벽에 뭐하는 짓이람….

“하극♥ 흑….”

옆에서는 아직도 정사가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을 수 있지?

나는, 나는 조금만 해도….

“후우….”

생각하지 말자.

그래, 유니의 말대로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속도가 있으니까.

나는 대충 뒷정리를 하고 다시 유니 곁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유니를 닮은, 그 신음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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