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2화 〉 푸드트럭 (2)
* * *
푸드트럭에 가 주문한 걸 정 씨 자매랑 나눠 들었다.
“딸. 너도 하나 들고 가.”
강예린이 말했다. 강성연이 고개 돌려 눈을 크게 뜨고 강예린을 쳐다봤다.
“응?”
“컵스테이크 하나 더 있잖아, 그거 네 거니까 같이 가서 먹어. 얘기도 나누고.”
“아니, 알겠어...”
강성연이 냉장고를 열고 콜라를 오른손에 들고 내려와서 왼손으로 컵스테이크를 들었다. 두 손에 볶음밥이 담긴 컵을 하나씩 든 정시은이 생글생글 웃으며 강성연의 옆으로 갔다.
“언니 이름 뭐예요.”
“강성연.”
“내가 이름 이미 말해줬잖아.”
내가 말했다. 정시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성은 안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름은 직접 듣는 게 맞는 것 같구.”
“으응.”
수아가 있는 쪽으로 다 같이 돌아갔다. 정시은이 강성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는 온유 오빠랑 같은 반이에요?”
“응... 근데 여기 오는 건 내 생각 아니었어.”
강성연이 변명하듯 말했다. 정시은이 눈을 크게 떴다.
“어 그래요? 그럼 뭐 어떻게 된 거예요?”
“아니 그냥...”
강성연이 말을 흐렸다. 정시은이 입이 근질근질한 듯 보였다. 그래도 참는 걸 보면 배려심을 발휘할 만큼의 인내심은 있는 듯했다. 그게 아니면 밥 먹으면서 대화할 시간이 있으니 일단은 넘어가고 기회를 볼 요량일 수도 있을 거였다.
“오빠, 언니. 여기.”
수아가 아까 다 같이 앉아있던 벤치 근처에 있는 탁자에서 우리를 불렀다. 편의점에서 샀던 음료수들이 탁자에 올려져 미리 다 혼자 옮겨놓은 모양이었다.
“오케이.”
정서아가 즐거운 듯 앞장서 걸어갔다.
“혼자 다 옮긴 거야? 고마워.”
수아가 미소 지어 화답했다. 정서아가 수아 옆에 앉아버려서 내가 앉을 곳이 모호해졌다. 일단 내가 들고 있던 볶음밥을 두 개를 탁자에 내려놓고 수아를 마주 보는 데에 가 의자를 손으로 턴 다음 앉았다.
정시은은 정서아 옆에 앉고 강성연은 내 옆으로 와 살짝 거리를 둔 채 앉았다. 각자 자기가 시킨 음식이랑 음료수를 앞에 놓았다. 다들 수저를 들어서 먹기 시작했다. 정서아가 음, 소리를 냈다.
“맛있다.”
정시은이랑 수아도 한 입씩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진짜 맛있어요.”
정시은이 말했다. 강성연이 멋쩍은 듯 웃었다.
“언니도 요리 잘해요?”
“아냐 난 잘 못 해... 애초에 별로 해본 적도 없어, 엄마가 해주는 거 먹기만 했지.”
“으음, 어머니가 셰프시죠?”
“응.”
“헉, 그럼 맨날 맛있는 거 먹겠네요?”
“맨날까지는 아닌데, 거의 그렇지?”
“아, 부럽다.”
강성연이 또 수줍게 웃었다. 진짜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엄청 낯가리는 성격이었다.
강성연이 젓가락만 손에 쥐고는 자기 몫인 컵스테이크랑 500ml 콜라를 난감한 듯 보다가 나를 쳐다봤다.
“콜라 네가 준 거 다른 사람 줘도 돼?”
“마음대로 해.”
“말 나온 김에 걍 네가 먹을래?”
피식 웃었다.
“아냐. 나 콜라 다 안 마신 것도 있는데. 근데 너 너무 거리 두는 거 아냐?”
“아니 너 부담될까 봐...”
“너 그렇게 멀리 있는 게 나는 더 그런데?”
강성연이 엉덩이를 떼 살짝 옆으로 와 앉았다.
“이 정도면 괜찮지.”
“몰라. 너 편한 대로 해.”
이수아가 치, 하고 혀를 찼다. 언뜻 봐도 언짢아하는 표정이었다. 정시은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오빠 삐쳤어요?”
“아니?”
“근데 지금 표정 분석하면 99.999퍼센트는 삐침 이렇게 나올 거 같은데요?”
“아냐. 삐칠 게 뭐 있다고. 얘가 내 여자친구인 것도 아닌데.”
“썸이면 가능할 수도 있잖아요.”
“썸일 때? 그건 거의 사귀기 직전일 때만 되는 거 아냐? 아님 되게 징그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뭔데 지가 막 연인 행세하냐고.”
고개 돌려 강성연을 봤다.
“그렇지 않아?”
“뭐... 난 모솔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걍 내가 너한테 끼 부린다 생각해봐.”
강성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잘 상상이 안 되는데.”
“표정 보면 이미 상상하셨는데요.”
“왜? 내 표정이 어떻길래?”
“걍 찌그러졌는데.”
“씨, 뒤질래?”
픽 웃었다.
“오빠 밥 안 먹어?”
수아가 쏘아붙였다.
“먹어야지.”
숟가락을 들고 볶음밥을 입에 넣었다. 별생각 없이 집어넣었는데 절로 눈이 뜨이는 맛이었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맛있다.”
“그쵸. 오빠가 언니한테 자주 와달라고 해주시면 안 돼요?”
정시은이 말했다.
“어머니가 바쁘셔서 안 될걸.”
정시은이 아쉬운 듯 아, 하고 소리 냈다.
“요즘 이슬 누나는 뭐 해?”
“오디션 프로 쭉 촬영해요. 아마 이번 달 중순에 첫방영할걸요.”
“그럼 얼마 안 남았네.”
“네.”
“오빠 밥 좀 먹어. 다 식어서 먹으면 그것도 음식해 준 사람한테 실례야.”
수아가 말했다.
“알겠어.”
“수아가 누나 바이브인데...?”
강성연이 소심하게 말했다. 이렇게 움츠러들 필요가 없는데.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지금 웃거나 하면 강성연이 다음부터는 아예 아무 말도 안 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맞장구를 쳐줘야 할 거였다.
“어, 맞아. 그런 느낌 조금 있어.”
“오빠가 너무 유치해서 그러는 거잖아.”
“난 내 나이에 맞게 구는 거 같은데. 오히려 네가 너무 성숙한 거 아닐까?”
“아니거든.”
수아가 딱 잘라 말했다. 성난 듯 바로바로 받아치는 게 귀여웠다. 내가 강성연이랑 좀 대화하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알겠어. 안 유치해져 볼게.”
수아가 대답은 하지 않고 빨대를 입에 물어 콜라를 빨아들였다. 정서아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아랑 나를 번갈아 봤다.
“지금 좀 스윗 농도 치사량인데.”
“응?”
“아니 너 너무 만화 속 오빠 같아.”
“다 이미지 메이킹 하는 거예요. 언니들 앞에 있다고.”
수아가 말했다. 뭐라 답하기 곤란했는데 다행이었다.
“원래는 어떤데?”
정시은이 물었다.
“원래는 저한테 막 욕도 했어요.”
“헐. 거짓말. 진짜?”
수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들이 나한테 몰렸다. 지금은 뭐라고 말해야 되지? 난처했다.
“심한 욕은 안 했지...?”
정서아가 물었다.
“운 적도 있어요. 오빠한테 욕 듣고.”
“어떡해...”
정서아가 말을 못 이었다. 말이 많던 정시은도 입을 다물고 그냥 수아의 등을 쓸었다.
나는 나대로 수아한테 욕을 지껄였던 과거가 떠올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강성연이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다가 내 왼팔을 밀 듯이 찔렀다.
“미친 새끼가 여동생한테 욕을 하고 그러냐. 제대로 사과는 했어?”
“사과는 했어요. 넙죽 엎드리면서.”
수아가 말했다. 다들 더 말을 붙이지 못했다. 이 흐름에서는 내가 대체 어떤 말을 했길래 그렇게까지 사죄를 하느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아가 콜라를 한 입 마시고 입을 열었다.
“근데 정색하면서 한 건 아니고, 서로 편해져서 말도 놓게 된 다음에 오빠가 한번 미친년이라고 했을 때 놀라서 울었던 거예요. 화내고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상처는 됐겠다...”
정서아가 안쓰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지금은 괜찮아요. 오히려 그때 절하면서 사과한 다음부터 저한테 찍소리도 못하고 잘해줘서 그때 울길 잘했다 이런 느낌도 있어요.”
“으응...”
정서아가 떨떠름하게 수긍했다. 수아가 더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는 듯 히죽였다.
“분위기 잡고 무뚝뚝하게 말해서 그렇지 진짜 심각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목소리가 쾌활했다.
“오빠 얼굴 봤어요?”
수아가 나를 쳐다봤다. 눈꼬리가 휘어진 게 지금 상황이 퍽 즐거워 보였다.
“이 얘기만 하면 오빠가 저한테 미안해가지고 안절부절못하거든요. 그때 표정 보면 되게 귀여워요.”
“...”
다들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그럼 괜찮은 거지 수아야...?”
정서아가 물었다.
“네. 다 푼 지 오래됐는데, 오빠가 혼자 죄책감 못 버려서 가끔 이렇게 놀리는 거예요.”
“으응...”
정서아가 고개를 숙였다가 탁자 밑에서 소리 없이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렌즈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뭐지 싶었다. 생각해보니 아까 녹음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혹시 지금 촬영하는 거야?”
내가 물었다. 정서아가 카메라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이거 촬영해서 뭐해...”
“얼굴 되게 발그레하고 귀여워서...”
“그래도 어디 쓸 수가 없잖아...”
“혹시 몰라 가지고...”
“지워...”
정서아가 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럼 개인 소장할게.”
“그러면 아무 용도가 없잖아.”
“아냐. 캐릭터 만들 때 참고용으로 쓸게. 쓰게 해주라, 제발.”
꽤 간절해 보였다. 과연 그럴 만큼의 가치가 있는 동영상인지는 모르겠는데. 안 된다고 할 것도 없었다.
“알겠어.”
“응. 고마워.”
정서아가 흐뭇한 듯 미소 지었다. 정서아도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정 씨 자매 중 한 명이라기에는 특이하리만치 평범한 성격이라 느꼈었는데, 정서아 역시도 독특한 면이 있는 거였다. 지금은 어디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랑은 다른 건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정서아가 당장은 감추고 있어서 그렇지 정 씨 자매 중에서 가장 독특한 면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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