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1화 〉 푸드트럭 (1)
* * *
주문하는 줄이 꾸준히 줄어들었다. 앞으로 가니 푸드트럭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보였다. 강성연은 밀려드는 사람들에게 짧게 인사하고 고개 숙여 주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고개를 한 번씩 들 때 나를 발견할 법도 한데 도무지 여유가 없는지 나를 보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강예린은 강예린대로 자기 파트의 음식을 만들면서도 다른 요리사들이 만드는 것도 체킹하고 조율하느라 극히 바빠 보였다. 어떻게 이런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불 앞에 오래 있어서 그런가 목이랑 얼굴에 땀방울이 맺혀있는 강예린이 왼팔로 웍을 들고 주걱으로 볶음밥을 컵들에 나눠 담았다. 분명 팔 하나만으로 지탱하기 힘들 무게일 텐데 안정감 있어 보였다. 평소에 꾸준히 운동한 게 여실히 드러나는 거였다.
강예린의 이마에 난 땀방울 하나가 느긋이 흘러내려 강예린의 왼눈을 건드렸다. 강예린이 눈살을 찌푸리고 남은 볶음밥을 마저 옮겨 담은 뒤 웍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고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쳤다. 남자 요리사가 컵밥에 참깨를 뿌리고 연갈색 소스를 부은 다음 강성연 앞으로 넘겼다. 강성연이 새 주문서를 고리에 걸고 볶음밥을 시킨 사람들을 콜했다. 스태프 두 명이 와 컵밥 네 개를 전부 받아갔다. 보니까 다 같은 연출팀이었다. 요리사들을 배려해서 여럿이 메뉴를 하나로 통일하기라도 한 듯했다.
“우리 메뉴 통일하는 게 좋을까.”
내가 조용히 말했다.
“메뉴 다 다르게 해도 괜찮아요.”
까랑까랑한 목소리였다. 딱 강성연이 초면인 사람을 마주할 때 사교성 있게 톤을 높여서 내는 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푸드트럭 쪽을 봤다. 강성연하고 눈이 마주쳤다. 강성연의 두 눈이 커졌다. 원래 저렇게 눈을 크게 뜰 수 있는 애였나.
“왜 못 볼 거 본 것처럼 그래. 네가 여기로 온 거면서.”
“아니, 그, 아 일단 주문해.”
“컵 스테이크 두 개랑 볶음밥 둘. 버거 하나.”
“아 나 볶음밥으로 바꿀게...”
정서아가 말했다.
“응. 컵 스테이크 둘에 볶음밥 셋.”
“알겠어.”
강성연이 빠르게 주문서를 적어나갔다.
“주문했음 옆으로 가봐.”
“번호는 안 물어봐?”
“이미 알잖아.”
“외웠어?”
“내가 기억력이 좀 좋아서.”
“어, 만드는데 좀 오래 걸리지?”
“약간?”
“빨리 내놓을 수 있게 반조리해뒀으니까 생각보다 금방 나올 거야 온유야.”
강예린이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좀 이따 시간 비면 얘기하자 온유야.”
“네.”
선선히 답을 하고, 정시은 정서아 자매와 수아랑 같이 옆으로 빠졌다.
“편의점 가자.”
내가 말했다.
“좋아요.”
정시은이 쾌활하게 답했다. 수아랑 정서아도 응, 이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다 같이 편의점으로 가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근데 뭐 사러 가요?”
“커피랑 콜라 정도? 물도 사야겠다.”
문을 열어주고 기다렸다.
“먼저 들어가.”
“고마워.”
수아가 당연한 듯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정 씨 자매도 들어간 다음에 마지막으로 들어가고 바구니를 두 개 들어 음료가 있는 쪽으로 갔다. 500ml 콜라 두 병이랑 물 여섯 병을 담고, 유제품 쪽을 찾아 275ml짜리 커피 여섯 병을 담았다. 정시은이 스트링 치즈를 세 개 손에 쥐고 커피들을 눈으로 훑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오빠 뭐 골랐는지 좀 봐도 돼요?”
피식 웃었다.
“그런 건 허락 안 맡아도 돼.”
정시은이 히 웃었다.
“넵.”
정시은이 빙글빙글 미소 지은 채 내 바구니를 뒤적였다.
“커피랑 물이 많네요?”
“푸드트럭 안에 있는 분들한테 드리려고.”
“아아. 근데 그 안에 다섯 분 있지 않았어요?”
“하나씩은 여분 느낌으로 더 드리려고. 오히려 좀 어떻게 나눌지 난감해지려나?”
“그럴 수도 있을 거 같긴 한데 괜찮지 않을까요?”
“으응.”
“다 골랐어?”
수아가 어느새 다가와 물었다. 정시은이 진열대에서 275ml 커피를 하나 꺼내 오른손에 쥐었다.
“가자.”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이 계산대로 갔다. 두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다 내려놔. 내가 살게.”
“앗, 고마워요.”
“고마워.”
남자 직원이 무심한 눈길로 바코드를 삑삑 찍었다.
“봉투 필요하세요.”
“네.”
근데 정서아는 어딨는 거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정서아가 500ml 물 한 병을 쥐고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오른손을 뻗었다.
“줘, 같이 계산할게.”
“응. 고마워.”
정서아가 가져온 물까지 받아서 내려놓고 폰으로 결제했다. 수아가 자기가 산 콜라를 손에 들었다. 정서아도 500ml 물을 꺼내고 정시은도 스트링 치즈 세 개랑 커피를 들었다. 나도 내가 산 게 담긴 봉투를 오른손으로 들었다.
“언니 스트링 치즈 먹을래?”
“아니.”
정서아가 딱딱하게 답했다. 수아가 정시은을 봤다.
“근데 치즈 안 돌려도 돼요?”
“아, 돌려야지. 고마워.”
정시은이 전자레인지로 달려가 살짝 뜯고 다 넣어서 돌리고는 수아를 바라봤다.
“너도 하나 먹을래 수아야?”
“주면 먹을게요.”
“응. 오빠는?”
“나까지 먹음 너 먹을 거 없어지잖아.”
“그래도 오빠가 사준 거잖아요. 개인적으로 오빠가 스트링 치즈 먹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나 먹는 거 봐서 뭐해.”
“그냥 감상하는 거죠. 아, 이 사람도 우리처럼 음식을 섭취하는구나. 그런 느낌.”
피식 웃었다. 레인지가 다 돌아갔다는 소리를 냈다. 정시은이 스트링 치즈 세 개를 조심히 꺼냈다.
“수아야 하나 가져가.”
“네.”
“오빠 거는 내가 들고 있을게요.”
“아냐. 나 손 하나 비니까 괜찮아.”
“아녜요.”
정시은이 고집을 부려서 오른손으로 스트링 치즈 두 개를 잡고 왼손으로 커피 한 병을 들었다. 왠지 위태로워 보여서 정시은을 보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냥 나 하나 줘.”
“넵.”
왼손으로 스트링 치즈를 하나 건네받고 푸드트럭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따 저기 앉자.”
수아가 손가락으로 비어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먼저 가서 앉아. 나 일단 커피랑 물 드리고 올게.”
“그럼 일단 봉투 벌려봐. 오빠 마실 거 꺼내고 내가 들고 있을게.”
“응.”
양손 엄지로 봉투를 벌렸다.
“뭐야?”
“콜라 하나.”
“콜라 두 개 있는데?”
“하나는 강성연 주게.”
“어.”
수아가 콜라를 하나 꺼내 왼옆구리에 끼우고 또 손을 뻗어 스트링 치즈까지 오른손으로 가져갔다.
“빨리 갔다 와.”
“응.”
푸드트럭으로 뛰어갔다. 열려있는 옆쪽에 가서 문을 똑똑 두드렸다. 잠깐 쉬고 있던 것처럼 보이는 강성연이 고개 돌려 나를 내려봤다.
“마실 거 사 왔어. 네가 나눠주라.”
“어, 고마워.”
“고마워 온유야.”
강예린이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다른 분들도 고마워요, 라고 감사 인사를 해왔다. 강성연이 양손으로 봉투를 받고 바닥에 내려놓더니 냉장고에 쑤셔 넣었다.
“콜라 하나만 있는 건 네 거야.”
“일할 때 콜라는 좀.”
“그럼 나 줘.”
“아냐, 장난이야. 고마워.”
픽 웃었다.
“이따 얘기하자. 진짜 고마워.”
“응.”
강성연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분 와주세요.”
대기하던 사람이 다가가서 메뉴를 말했다.
돌아서서 벤치로 향하면서도 한 번씩 돌아봐 푸드트럭 안을 봤다. 강성연이 일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새삼 달라 보였다. 평소 이미지는 좀 비협조적이고 낯가리면서 괜히 틱틱대는 애였는데, 지금은 느낌이 송선우랑 비슷했다. 강성연도 한 번씩 어머니가 운영하는 데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느낌이 안 나기는 할 것 같았다.
“빨리 와.”
수아가 재촉했다. 달려가서 수아 왼편의 구석 자리에 앉았다. 스트링 치즈랑 콜라를 양손에 들었다.
“오빠 잠깐만요.”
정시은이 커피를 내려놓고 갑자기 일어나더니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렌즈가 나를 향해왔다. 녹화 버튼을 눌렀는지 소리가 났다.
“저 브이로그 찍는데 오빠 출연해도 괜찮아요?”
“어, 아마 괜찮을걸?”
“감사합니다. 그럼 빨리 먹어주세요.”
당혹스러워서 웃음을 터뜨렸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나 어색한데.”
“그 쑥스러운 느낌이 좋아요.”
“진짜?”
“네.”
“아, 근데 나 진짜 재미없는데. 찍어도 살릴 거 안 나올걸?”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이건 뭐 어쩔 수 없을 듯했다. 그냥 스트링 치즈 포장을 조금 더 뜯어 입에 물었다. 핸드폰의 작은 카메라 렌즈가 드라마 촬영할 때 나를 지켜보는 커다란 렌즈보다 더 부담스러웠다. 괜히 시선을 돌려 수아랑 정서아 쪽을 봤다. 정시은이 한 발짝 물러나 폰 각도를 살짝 틀었다. 수아까지 담으려는 듯했다.
수아도 치즈를 질겅질겅 먹고 있었다. 눈빛이 멍한 게 생각을 잠시 관둔 느낌이었다. 그게 또 왠지 귀여워서 절로 미소 지어졌다.
스트링 치즈를 씹다가 카메라 렌즈를 보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렇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도 돼?”
“네. 완전 풋풋해요.”
“너 이거 브이로그 아니지.”
“맞아요.”
“아니라는 거야?”
“몰라요.”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개인 소장하는 거 아니지?”
“그건 아니에요. 보장할게요.”
“아... 나 너랑 얘기하다 보면 자꾸 헷갈려.”
정시은이 히히 웃어 넘겼다.
“수아도 한마디 해주세요.”
수아가 오른손을 들어 브이 자를 만들고 흔들었다.
“겁쟁이둘 많이 봐주세요.”
“둘이라서 브이야?”
“뭐 해야 될지 몰라서 그냥 했어요. 빨리.”
수아가 카메라를 내 쪽으로 돌리라고 손을 옆으로 저었다. 정시은이 웃으면서 카메라를 또 내 쪽으로 돌렸다.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스트링 치즈를 다 입에 넣었다. 정시은이 내가 우물거리는 모습을 계속 찍었다. 콜라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셨다.
“오빠도 마지막 한마디.”
나도 수아처럼 왼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흔들었다.
“많이 아껴주세요.”
“오빠를요?”
“겁쟁이둘이요.”
반사적으로 답하고 나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크게 떴다.
“나라고 하면 너무 속물적이지 않아?”
“이 정돈 할 수 있죠.”
“그런가.”
“네.”
주머니에서 폰이 울렸다.
“전화 왔다.”
꺼내서 봤다. 강성연이었다.
“음식 받으러 가자.”
“세 명 필요하죠?”
정시은이 물었다.
“주문한 게 다 됐으면?”
“그럼 잠깐 멈춰야겠다.”
정시은이 촬영을 멈추고 폰을 도로 넣었다. 일단 통화를 받았다.
ㅡ다 됐어. 빨리 와.
“응.”
전화가 끊겼다.
“계속 찍어도 됐을 건데.”
“일단 밥이 더 중요하니까요.”
수아랑 서아가 일어났다.
“한 명은 쉬어도 될 건데.”
“오빠가 앉아. 아까 음료수 줬으니까.”
“아냐. 너 더 쉬어 수아야.”
“아, 이거 담았어야 됐는데.”
정시은이 아쉬워했다. 수아가 픽 웃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정 씨 자매랑 같이 푸드트럭으로 걸어갔다.
“근데 진짜 아무 사이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폰 번호까지 외우는 건 가족뿐인데.”
“성연이가 기억력이 좋아서 외웠나 봐.”
“어, 그럼 평소에 통화를 많이 하는 거예요?”
“그건 아냐. 근데 아까 영상 찍은 건 진짜 쓸 수 있는 거야?”
“홍보팀한테 넘기면 잘 써줄 거예요. 하나 말고 여러 개 모아서. 근데 아까 언니도 영상에 한마디는 남겨야 했는데.”
“이따 밥 먹을 때 또 찍음 되지 않을까.”
“밥 먹을 땐 밥에 집중해야 되잖아요.”
“그것도 그렇네. 근데 나 스트링 치즈 먹을 때는 왜?”
“그건 별개예요.”
너무 확고한 단언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무슨 말을 해도 도저히 밉지 않은 어린아이랑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정시은도 입꼬리를 올렸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고 있자니 문득 정이슬이 떠올랐다. 이따 밥을 먹을 때 근황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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