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4화 〉 이준권 장례식 (2)
* * *
지수랑 선우가 밥을 다 먹었다. 지수가 남은 콜라를 전부 들이켰다. 선우가 나를 바라봤다.
“근데 너 필요한 거 없어?”
“딱히 없는 거 같아. 뭐 필요하면 병원에 편의점도 있으니까 바로 구할 수도 있고.”
“그래도. 자리 오래 비움 안 좋을 수 있으니까. 진짜 뭐 없어?”
“응... 근데 커피는 조금 필요할 거 같아.”
“사와 줄까?”
“아냐, 이따 너희 배웅하고 내가 살게.”
“으응...”
지수가 뚱하게 나를 쳐다봤다.
“우리 진짜 가?”
빙긋 웃었다. 같이 있어 주고 싶어 한다는 게 너무 눈에 잘 보였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맙고, 또 귀여웠다.
“시험공부 해야지.”
지수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알겠어.”
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선우야.”
“으응.”
선우도 일어났다. 따라 일어나서 의자를 밀어 넣었다. 지수랑 선우가 가방을 챙겼다.
“가는 거야...?”
윤가영이 물었다. 지수가 나를 눈짓했다.
“얘가 가래요. 시험공부 하라고.”
“으응... 잘 가...”
“네.”
“잘 가요.”
수아가 말했다.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중에 보자 수아야.”
선우가 말했다. 수아가 네, 라고 답했다. 지수가 뒤돌고는 걸어갔다. 왼편에 나란히 서서 나란히 걸었다. 지수가 먼저 신발을 꺼내 신었다. 나랑 선우가 뒤이어 신발을 신었다. 선우가 지수의 오른쪽으로 가 팔짱을 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올라 밖으로 나왔다. 지수가 왼손으로 선우의 왼팔을 주물렀다. 선우가 팔짱을 풀었다. 지수가 뒤돌아서 나를 올려보고 두 팔을 벌렸다. 살짝 뚱한 표정이 귀여웠다. 지수의 품에 들어가 마주 안았다.
“나 그냥 그 좁은 방 들어가서 공부하면 안 돼?”
“집중 안 될걸.”
“그래도. 너 힘들 때 같이 있어 주고 싶단 말야.”
입꼬리가 올라갔다. 선우가 미소 짓고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고마워. 근데 와준 것만으로 힘 됐으니까 너무 막 걱정 안 해도 돼.”
“으응... 알겠어.”
“응.”
지수가 나를 놓아줬다. 이번에는 선우가 팔을 벌리고 다가왔다. 마주 안았다. 선우가 입으로 작게 숨을 내쉬었다.
“힘내 온유야...”
“응...”
선우가 내 등을 토닥이고 팔을 풀었다.
“난 요정도만 할게.”
“응.”
팔을 풀었다. 선우가 한 발짝 물러났다.
“우리 갈게.”
“응. 잘 가.”
“응.”
“보고 싶으면 전화해.”
살폿 웃었다.
“알겠어. 고마워.”
“응... 갈게.”
“응.”
지수랑 선우가 뒷걸음질 치면서 손을 흔들었다. 마주 오른손을 흔들었다. 둘이 돌아서서 택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마냥 뒷모습을 바라봤다. 지수가 걸어가면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지수가 피식 웃고 손을 흔들었다. 나도 다시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선우도 고개 돌려 내게 손을 흔들어왔다. 결국 둘이 택시 안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보다가 둘의 모습이 안 보일 때에야 돌아서서 병원으로 걸어갔다. 편의점에 들어가 장바구니를 들고 커피 음료 두 종류를 세 개씩 집어넣었다. 스누피 커피 우유도 세 개 집어넣고 폰으로 결제했다. 밖에 나왔는데 햇빛이 강렬해서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로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수아가 나를 바라봤다.
“뭐 샀어?”
“커피.”
“응.”
“마실래?”
“이따가.”
“응.”
스누피 커피 우유를 하나 꺼내고 방문을 열어 봉투를 내려놓았다. 한 모금 마시고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다시 나와서 섰다.
“온유야...”
“네.”
“그 커피들 지금 안 마실 거면 일단 냉장고에 넣어둬야 하는 거 아냐...?”
“금방 마시고 싶어질까 봐요.”
“으음. 그래도 시원한 게 맛있으니까...”
“그건 그렇죠. 냉장고 넣고 올게요.”
“아냐, 안 해도 돼...”
“아니에요.”
문을 열고 봉투랑 스누피 커피우유를 양손에 들었다. 음료수 냉장고를 열어 빈자리에 넣었다. 걸음 소리가 다발로 들렸다. 잠깐 여유가 있는가 했는데 또 한 무리가 오는 듯했다. 뛰듯이 걸어서 재빨리 자리로 돌아갔다. 입구 쪽을 봤다.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 하회탈이랑 밴드부원들이었다. 하회탈이 같이 갈 사람이 있는지 물어서 차에 태우고 데려온 모양이었다. 하회탈이랑 부원들이 신발을 벗고 정리해서 걸어왔다. 부원들이 하회탈을 따라 명부에 이름을 적고 영정에 두 번 절까지 한 다음 우리 쪽을 보고 맞절을 했다. 하회탈이 나를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아직 어린데 힘든 일은 다 겪는구나. 힘내라.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거다.”
“네...”
하회탈이 포옹을 풀고 내 양팔을 주물렀다.
“점심은 다 먹고 온 거예요?”
“아마도. 근데 안 먹은 애도 있을 거 같다.”
고개를 끄덕였다.
“밥 먹고 가세요.”
“그래.”
하회탈이 수아한테 오른손을 내밀었다. 수아가 양손으로 맞잡았다.
“온유랑 사이좋게 지내주라. 네 오빠 불쌍한 애다.”
수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회탈이 고개 돌려 윤가영을 보고 손을 뻗었다. 윤가영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손을 맞잡았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윤가영이 시선을 낮췄다.
“온유 좀 잘 지탱해주세요. 알아서 잘해주시겠지만.”
“네... 걱정 마세요.”
하회탈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손을 놓았다. 하회탈이 다시 나를 보고 왼손으로 내 왼어깨를 토닥였다.
하회탈이 비켜섰다. 부원들이 한 명씩 팔로 나를 다독이거나 포옹을 하면서 괜찮냐는 말이나 힘내라는 말을 해왔다. 괜찮다는 말이랑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택시를 탄 건지 뒤이어 온 다른 부원들도 있어서 절을 하고 인사를 하는 것만 해도 꽤 오래 걸렸다.
다들 밥을 먹으러 자리에 앉았다. 보러 가겠다고 말을 하고 끝자리 의자를 꺼내 앉았다. 지금 보니 자리에 없는 부원이 몇 명 있었다. 서유은이랑 정이슬, 강성연이었다. 폰을 꺼내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바로 못 가서 죄송해요. 이따가 언니랑 갈게요 오빠. 진짜 죄송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동생들이랑 같이 조문 갈게 온유야. 부고 듣자마자 가지 못해서 미안해.]
[삼가 위로의 말씀드립니다. 나 이따 엄마랑 같이 갈게. 힘내 온유야.]
고맙다고 세 명한테 다 답장을 보냈다. 정서아랑 정시은한테도 문자가 온 게 있었다.
[뜻밖의 비보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언니랑 시은이랑 금방 조문 갈게 온유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따 언니들이랑 뵈러 갈게요. 힘내세요.]
이따 보자는 말이랑 같이 고맙다고 답장을 보냈다. 사람들마다 내용이 다르게 문자를 보내는 게 꽤 어려웠다. 폰을 도로 넣었다.
“폰으로 뭐 했어?”
박철현이 물었다.
“그냥 문자 확인하고 답장했어.”
“어.”
“온유야.”
김민우가 말했다.
“네.”
“지금 안 온 부원들 좀 있는데 걔네는 이따 따로 오겠대.”
“아, 네. 저 지금 문자로 지금 확인했어요.”
“으응. 그래.”
“언젠지는 얘기했어?”
박철현이 물었다.
“아니. 정확히 시각 말하기는 애매해서 안 쓴 거 같애.”
“강성연은? 설마 안 오지는 않겠지?”
고개 저었다.
“오겠지. 오겠다고 말까지 했는데.”
“글켔지. 사이 어떻게 봉합까지 다 했는데 안 오면 또 싸우자고 하는 거니까.”
“응. 근데 다 음료수 마시고 싶은 거 없어요? 남으면 처리하기 어려워서 다 먹어치워야 돼는데.”
“뭐 있는데?”
김민우가 물었다.
“콜라랑 사이다요.”
“그럼 거수하고 나랑 현우가 가져오는 거로 하자.”
“그래.”
김현우가 답했다. 김민우가 콜라, 라고 말하면서 손을 들었다.
“손 내리고 이번엔 사이다.”
콜라에서 손을 안 든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김민우가 일어났다. 김현우도 따라 일어나서 냉장고에서 콜라랑 사이다를 가져왔다. 김민우가 나눠주다가 나를 쳐다봤다.
“어, 너 왜 없지?”
“손 안 들었으니까요.”
“으응. 왜?”
“이미 많이 마셔서요. 커피도 사가지고 그것도 먹어야 돼요.”
“응...”
김민우가 콜라를 땄다. 밴드부원들이 음식을 먹는 걸 멍하니 보다가 부담스러울 거 같아서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하회탈이 나를 바라봤다.
“온유야.”
“네.”
“그런데 드라마는 어떻게 되는 거냐?”
부원들이 귀를 기울이는 게 눈에 보였다.
“잠시 촬영 연기하는 수밖에 없겠죠...”
“음, 그렇겠지...”
“네가 드라마 주연이야?”
김현우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도 주연이에요.”
“여동생?”
김현우가 조금 더 목소리 낮춰 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거 같은데.
“네.”
“대박이네...”
생각해보니 진짜 말도 안 되기는 했다. 의붓남매가 한 드라마에 남자 주인공이랑 여자 주인공을 차지하고 로맨스를 찍는 거니까. 절대로 흔하게 볼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 뒤로 조용조용 사담을 나눴다. 드라마 진행상황을 얘기하는 것부터 앞으로 버스킹은 어찌할지 얘기도 했다.
“근데 부장을 다른 사람한테 넘겨야 하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드라마 촬영만 끝나면 재개할 수 있지 않아?”
김민우가 물었다.
“그 뒤로도 제가 이끌기는 어려울 거 같아서요.”
“으응... 그럼 앨범 같은 거 만드려고 하는 거야?”
“그렇죠.”
부원들이 작게 와, 하고 탄성했다. 장례식장이라 차마 큰 소리를 못 내지만 눈만큼은 아우성을 지르는 사람인 듯 반짝이고 있었다.
“빨리 듣고 싶어요...”
1학년 키보디스트 여자애가 말했다. 살폿 웃었다.
“고마워. 최대한 빨리 작업할게.”
“부원들한테 앨범 다 돌릴 거지.”
박철현이 물었다.
“당연하지. 사인까지 해서 돌려야지.”
박철현이 작게 웃었다.
“그거 받고 정식 구매처에서 두 장씩 또 살게.”
“살 거면 하나 정도만 더 사면 되지 않아?”
“하나는 플레이용, 하나는 보관용, 하나는 초판 재테크.”
피식 웃었다.
“나 뜰 줄은 어떻게 알고 재테크각을 잡아.”
“네가 못 뜨면 그건 죄야.”
“개 오글거려.”
“오글거린다면서 입꼬리 올라간다?”
“좋으니까.”
박철현이 웃으면서 손가락을 일그러뜨렸다.
“네가 훨씬 오글거리는 거 같은데.”
“네가 괜히 띄워서 그런 거잖아.”
“어, 미안해. 앞으론 안 할게.”
피식 웃었다.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서 냉장고로 가 커피를 꺼내고 도로 앉았다. 커피를 홀짝이면서 부원들이 음식을 먹는 걸 지켜봤다. 하회탈이 슬슬 가겠다고 하자 부원들이 차차 일어났다. 배웅하겠다고 말하고 같이 걸어나갔다. 밖에 나왔을 때 다시 포옹해오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하회탈이 양손으로 내 어깨를 주물렀다.
“힘들면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고 그래라.”
“알겠습니다.”
“그래.”
하회탈이 어깨를 토닥이고 차 쪽으로 걸어갔다. 손을 흔들며 부원들을 보냈다.
문득 사자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이 남은 사람의 연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