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화 〉 이준권 장례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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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이준권 주변 인물들이었다. 다 자기 일이 있고 바쁜 사람들일 텐데 어떻게 이리 빨리 온 건지 놀라울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검은 정장을 입고 무리 지어 오는 그 사람들이 파리 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꼭 재산 따위를 노리고 이준권의 시체에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그렇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겠지만 한 번 그리 느끼고 나니 생각이 고정되어버린 듯했다.
애도의 눈빛을 한 사람들이 다가와 누군가는 헌화를 하고 누군가는 절을 하며 향을 피워 꽂았다. 그러고 나서는 나와 수아와 윤가영을 바라보며 맞절을 하고 일어섰다. 애도의 눈빛이 측은함으로 바뀌어 우리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우리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위로하려는 마음이 있는 듯 보였다. 이준권의 지인들이 손을 맞잡고, 어깨를 다독이면서 조금은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왔다. 말없이 다가와서 나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순간 울컥했다. 억지로 울음을 참고 침을 삼키며 삭였다. 포옹을 해온 사람이 허그를 풀고는 내 두 팔을 잡았다. 안쓰럽다는 눈빛이 견디기 힘들었다. 괜히 시선을 살짝 내려 눈을 피했다.
“슬플 땐 슬퍼해도 돼. 아무도 뭐라고 안 해. 숨기고 억누르는 게 어른스러운 게 아냐, 오히려 자기 감정에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게 성숙한 거지.”
알겠습니다, 라고 답하고 싶었는데, 왠지 목이 메서 말이 안 나왔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빙긋 웃었다. 고개를 떨궜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주저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매일 미워했는데. 증오했는데. 차라리 내가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얼굴을 보는 것도 싫었는데. 그 사람이 죽었다고 우는 내가 도저히 이해 안 됐다. 어깨랑 등을 토닥이는 손들이 느껴졌다. 윤가영이랑 수아, 그리고 장례식장을 찾아온 이준권의 지인 손이었다. 왠지 나더러 슬퍼해도 된다고 하는 것만 같아서, 그대로 서럽게 울었다. 흘릴 눈물을 다 쏟고 나서는 어떻게 얼굴을 들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잠시 얼굴을 묻고 있었다. 윤가영이 물티슈를 가져와준 후에야 얼굴을 들고 눈두덩이를 닦았다. 창피한데 후련했다.
언젠가 이준권의 명복을 비는 근조화환이 들어섰다. 이준권의 지인들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규모가 꽤 큰 장례식장인데도 자리가 비어 보이지 않았다. 한번 온 사람들이 오래 자리를 지키다가 또 다른 무리가 오면 그제야 떠나서 그런 거였다. 사람이 많다 보니 장례식장은 조용할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장례식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결국 인정해야만 했다. 이준권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한테는 과분한 사람이 과분하리만치 많았다.
울어서 그런지 몰라도 허기가 졌다. 시계를 봤는데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된 거였다. 지인들도 의식하고 있던 거인지 슬슬 밥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을 걸어왔다. 윤가영이 미소 지으며 먹어야죠, 먹을 거예요, 라고 답했다. 그러다 멀찍이 서서 지켜보고 있던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직원 아주머니들께 부탁해서 음식을 내달라고 하고 자리를 완전히 세팅한 다음 밥을 먹으라 권유해왔다.
“수아야, 온유랑 가서 먼저 먹어.”
내 왼편에 선 윤가영이 말했다. 내 오른편에 선 이수아가 윤가영을 바라봤다.
“엄마도 먹어야지.”
“한 명은 지켜야 돼...”
수아가 콧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가자 오빠.”
“응.”
“천천히 먹고 와.”
“알겠어.”
수아가 답하고 내 오른팔을 끌어 앞으로 걸어갔다. 같이 나란히 걸어서 의자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소고기뭇국에 밥을 말아서 떠먹으며 반찬을 집어 먹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음료수는 뭐 마시고 싶은 게 없느냐고 물어왔다. 수아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저는 콜라요.”
“으응.”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봤다. 답을 요하는 눈이 살짝 부담스러웠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저도 콜라요.”
“그래.”
아주머니가 일어나서 캔콜라를 두 개 가져와 나랑 수아한테 건넸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왼손으로 캔을 잡았다. 쿨링이 되어 있어서 차가웠다. 뚜껑을 따 한 모금 마셨다. 시원했다. 마음이 점점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탄수화물과 당도 강한 탄산음료, 그리고 몇 방울의 눈물로 기분이 조정된다니. 신기했다.
수아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윤가영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밥 먹어요.”
윤가영이 고개 저었다.
“아직 안 배고파...”
“그냥 지금 가요.”
“맞아. 엄마 새벽부터 일어나서 계속 이것저것 해 가지고 배고플 거잖아.”
“으응... 알았어. 먹을게.”
“응.”
“가요.”
“알겠어...”
윤가영이 밥을 먹으러 걸어갔다. 잠시 뒷모습을 보다가 출입구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당장은 오는 사람이 없었다. 서 있는데 살짝살짝 눈이 감겼다. 식곤증이 온 듯했다. 오른손 엄지랑 검지로 왼팔을 꼬집었다. 계속 이렇게 잠을 깰 수는 없을 건데.
“나 잠깐만 수아야.”
“왜?”
“믹스커피 마시게.”
“내 것도.”
“응.”
믹스커피를 두 잔 타 가져갔다. 수아가 양손으로 받았다.
“고마워.”
커피를 홀짝였다. 다 마시고 수아의 종이컵을 겹쳐 좁은 방 안에 내려놓았다. 왠지 사흘간 카페인으로 버텨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윤가영이 밥을 다 먹고 내 왼편으로 돌아와 섰다. 살짝 졸려 보였다. 방금까지 내가 졸려서 남이 졸려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잘 분간이 안 됐다.
한 시가 지나고 얼마 안 지나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지수랑 선우였다. 둘 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있었다. 학교는 어떻게 하고 온 거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오늘이 1학기 중간고사 시험 첫날이었다. 아침에 연락 돌릴 때 제일 먼저 지수랑 수아한테 문자 보냈었는데. 시험에 지장이 가지 않았을까 걱정됐다.
지수랑 선우가 가방을 내려놓고는 이준권의 영정에 절을 한 다음 우리랑 맞절했다. 다 함께 일어났다. 지수랑 선우가 수아한테 괜찮냐고 물었다. 선우는 껴안기까지 했다. 수아가 괜찮다고 하면서 멋쩍게 웃었다. 선우가 수아를 안을 동안 지수가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나를 껴안아 왔다. 지수의 온기가 느껴졌다. 선우가 수아를 놓아주고 오른편에서 팔을 벌려 나랑 지수를 끌어안았다. 조용히 목소리를 내 미안하다고 말했다. 선우의 눈이 커졌다.
“왜?”
“오늘 시험 보는데 집중 잘 안 됐을 거 같아서...”
“괜찮아. 잘 봤으니까 걱정 마.”
“나도 잘 봤어.”
지수가 말했다. 안심됐다.
“다행이다.”
선우가 응, 이라고 답했다.
“근데 우리 이제 그만 허그해야 되는 거 아닐까.”
“... 그래.”
지수가 답했다. 불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선우가 먼저 팔을 풀고 다음으로 지수가 팔을 풀어 뒤로 물러났다.
“너는 괜찮아?”
지수가 물었다.
“응... 괜찮아.”
“으응...”
“힘들면 의지할 사람도 있고.”
지수가 살폿 웃었다. 선우도 입꼬리를 올렸다. 윤가영이 입술을 입 안에 넣고 깨물었다. 수아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여자친구 네 명한테 둘러싸여 있다는 게 새삼 실감 났다. 내가 진짜 미친놈이구나 싶었다.
“밥은 먹었어?”
내가 물었다.
“그냥 시험 끝나고 택시 타서 바로 왔어. 이따 밴드부원들이랑 쌤 올 거야.”
선우가 말했다.
“응. 일단 밥 먹어. 안 먹고 와서 배고플 건데.”
“초콜릿 먹어서 밥 먹고 싶은 타이밍 약간 미뤄져 가지고, 좀 이따 먹을게.”
“알겠어.”
“응.”
선우가 시선을 돌려 윤가영을 바라보고 두 손을 뻗었다. 윤가영이 두 손을 올려 맞잡았다. 선우가 키가 커서 윤가영을 내려보고 윤가영은 반대로 올려봐야 했다.
“언니는 괜찮아요?”
“괜찮아...”
“든든하죠, 온유. 옆에 있으니까.”
“응... 많이 의지돼...”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가영이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면서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나보다 열 살은 넘는 사람이 이렇게나 귀여워도 되는 건가. 그냥 품에 꼭 껴안고 싶었다.
선우가 빙긋 웃고 손을 놓았다.
“저희 밥 먹고 올게요.”
“응... 천천히 먹어.”
“네. 가자 지수야.”
“응.”
선우가 지수의 왼손을 잡았다. 둘이 나란히 걸어갔다. 뒷모습을 보다가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랑 얘기하고 올게요.”
“응...”
“갈게 수아야.”
“어.”
수아랑 선우가 있는 자리를 찾았다. 둘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맞은편의 의자를 꺼내 앉았다. 지수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왔어?”
“그냥 너희 있으니까.”
지수가 살폿 웃었다. 선우가 눈웃음 지었다.
“할 얘기 같은 거 있어?”
“몰라. 생각 안 하고 그냥 왔어.”
“응...”
“음료수는 안 마셔?”
“음, 난 사이다 마시고 싶어.”
“난 콜라.”
지수가 말했다. 갖고 올게, 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이다랑 콜라를 한 캔씩 꺼내 가져갔다. 나눠주고 도로 앉았다.
“넌 뭐 안 먹어?”
선우가 물었다.
“이미 점심 먹어서. 콜라도 마셨고.”
“으응.”
지수가 콜라 캔을 땄다.
“밥 다 먹고 같이 있어줄까?”
“응?”
살폿 웃었다. 고개 저었다.
“아냐. 고마워. 내일도 시험인데 공부해야 되잖아.”
지수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공부 평소에 다 해놔서 괜찮아.”
“그래도. 돌이켜봤을 때 아쉬운 마음 생기지 않을 수 있게 하는 편이 좋잖아.”
“... 알겠어.”
“근데 너 드라마는 또 어떡해?”
“미뤄야 하겠지, 어쩔 수 없이.”
“으응... 연락은 다 된 거야?”
“매니저 형이 해준다고 했어.”
“그럼 다행이네.”
“응.”
“근데 나도 진짜 연예인 한 번 해볼까?”
선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빙긋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 될 거야. 무조건.”
선우가 흐흫, 하고 웃었다. 지수가 눈을 반쯤 떴다.
“나는 어떨 거 같애?”
“당연히 되지. 예쁘잖아.”
“그걸로 돼?”
고개를 끄덕였다.
“본업 못해도 외모로 용서되는 연예인 심심찮게 있잖아. 배우든 가수든.”
“그렇긴 해.”
선우가 지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진짜 연예인 할 생각 있어?”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선우가 살폿 웃었다.
“너 너무 귀여워.”
“뭐래.”
지수가 퉁명스레 답하고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모른 체하는 게 사랑스러웠다.
선우 말마따나 지수는 엄청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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