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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403화 (402/438)

〈 403화 〉 기 싸움 (2)

* * *

가스레인지 레버를 돌려 불을 껐다. 왼편에 선 윤가영을 바라봤다.

“지수랑 선우 부르러 갈게요.”

“응...”

살폿 미소 짓고 양손으로 윤가영의 양팔 상완을 한 번 잡았다가 뒤돌아섰다. 의자에 앉아있던 수아가 나를 쳐다보더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수아가 양팔을 벌려왔다. 품에 안고 등을 토닥였다.

“올라갈게.”

“... 뽀뽀.”

살폿 웃었다. 이마에 가볍게 입 맞췄다.

“입술에다가 해줘.”

“알겠어.”

입술에 뽀뽀했다. 수아가 픽 웃고 팔을 풀어줬다. 한 번 더 이마에 입술을 맞추고 수아를 안은 팔을 풀었다. 2층으로 올라갔다. 지수 방문을 노크했다.

“밥 다했어.”

“어. 들어와.”

지수 목소리였다. 문을 열었다. 선우는 침대에 걸터앉아있고 지수는 누워 있었다. 지수가 왼손을 까딱였다.

“일루와.”

문을 닫으면서 안에 들어갔다.

“밥 먹어야지.”

“일단 와.”

“응.”

침대에 걸터앉았다.

“누워.”

“밑에서 기다릴 건데.”

“전화해서 먼저 먹으라고 하든가.”

“에바야.”

“몰라. 걍 누워 일단.”

“응.”

침대에 누웠다. 지수가 오른팔로 내 배를 안았다. 선우가 왼손을 내 배에 올렸다.

“내가 좀 이따 내려간다고 말하고 올까?”

“아냐 그러지 마.”

지수가 말했다.

“으응.”

선우도 침대에 누워 왼팔로 나를 안았다. 지수가 나를 올려보다가 눈을 감고 품에 파고들었다. 아무래도 지수는 이대로 조금 시간을 끌 모양이었다. 대략 윤가영이랑 이수아가 무안해질 때까지는 이렇게 있을 듯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음식 식으면 안 되잖아. 내려가자.”

“괜찮아. 좀 식어도 상관없어.”

지수가 눈 감은 채 답했다. 우선순위가 자기가 더 높다는 것을 확실히 각인해두려는 건가. 지수 입장에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다. 그런데 현관에서 마주했을 때처럼 날 세워서 말하거나 대하는 건 조금 걱정됐다. 윤가영이랑 수아 둘 다 마음 여린 사람들이라서 뭐라고 하면 상처받으리라는 게 쉽게 예상됐다. 게다가 수아는 맘이 여리면서도 마냥 욕을 듣고만 있지 않고 받아치는 편이라서 싸움도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잘못한 건 나니까 너무 날 세우지 말아 달라고 미리 말해야 하나.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 지수가 기분이 나쁘다거나 해서 더 공격적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지수가 뭐라 할 때 가영이랑 수아를 옹호하는 방식을 취해야 할까. 근데 그러면 또 내가 수아랑 가영을 위해 나섰다는 데에서 기분이 상해서 더 얄궂게 굴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머리가 복잡했다. 살짝 지끈거렸다. 무슨 일을 하든지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지독스러웠다. 단순하게 떨어지는 최선의 선택지가 있었으면 하는데. 사람 심리랑 관련된 일이라서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선우가 왼손 검지로 내 가슴을 콕콕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선우가 말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도와줄까, 라고 한 것 같았다. 지수가 흔들림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만 고개를 살짝살짝 끄덕였다. 선우가 빙긋 웃고 눈을 감았다.

“나 배고파...”

선우가 말했다.

“나도.”

지수가 답했다.

“그럼 이제 내려갈까?”

“난 좀만 더 있게.”

“으응... 그럼 나 먼저 내려가서 먹어도 돼?”

“아냐, 좀만 더 있다 같이 가.”

“응...”

선우가 답했다. 그래도 선우 덕에 조금은 더 빨리 내려가게 될 듯했다.

선우가 눈을 슬며시 뜨고 지수를 봤다. 지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선우가 시선을 올려 나를 쳐다봐오더니 미안, 이라고 소리 없이 말했다. 눈웃음 짓고 입을 움직여 아냐 고마워, 라고 했다. 선우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선우가 내 가슴팍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이 예뻤다.

“이온유.”

지수가 말했다.

“응?”

“내려가고 싶어?”

“응...”

지수가 흐음, 하고 콧소리를 냈다.

“알겠어. 내려가자.”

지수가 양손으로 침대를 밀어내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선우가 눈을 힐끔 뜨고 지수를 봤다가 자기도 일어났다. 진짜 내려가려고 하는 건지 뭔지 눈치를 본 건가. 너무 귀여웠다. 지수가 나를 내려봤다.

“안 일어날 거야?”

“일어날 거야.”

상체를 세웠다. 선우가 먼저 침대에서 내려갔다. 따라서 내려갔다. 지수가 침대 위를 기어서 마지막으로 내려오고 내 오른팔을 붙잡아 팔짱을 껴 몸을 기대듯 붙었다. 이렇게 테이블까지 갈 듯했다. 선우가 문을 열고 먼저 나가고는 내 왼편에 서서 나란히 걸었다. 다 같이 1층으로 내려갔다. 주방으로 갔다. 윤가영이랑 수아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윤가영이 살짝 의기소침해 보였다. 수아는 표정이 뚱했다.

“너무 늦게 오는 거 아니야?”

“미안해.”

지수가 답했다. 수아가 입을 다물었다. 불만은 있는데 묵게 해준 집주인이 깔끔하게 미안하다고 해버려서 뭐라고 못하겠는 모양이었다. 지수가 은근히 나를 끌어서 수아랑 윤가영 반대편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지수 옆 의자에 앉게 됐다. 맞은편에 있는 수아가 나를 쳐다봤다. 선우가 내 오른편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배고팠으면 먼저 먹지. 아 나 말 놔도 돼?”

지수가 말했다.

“하세요.”

“응. 너도 편히 말해.”

“알겠어요.”

“응.”

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요리 되게 금방 했네?”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영 씨랑 수아가 도와줘서.”

“으음. 와보신 적이 있어서 익숙한가 보다.”

뜨끔했다. 바로 이렇게 찌른다니. 원래도 시선을 못 마주치던 윤가영이 더 밑을 봤다. 수아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뭔 소리예요, 여기 온 거 진짜 처음인데?”

지수가 피식 웃었다. 윤가영이 왼손으로 수아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하지 마...”

“아니 왜...”

“내가 잘못했어...”

“아 얘기 안 했었어요?”

지수가 물었다. 윤가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요 그럼.”

“...”

수아가 윤가영을 바라봤다.

“엄마 여기 온 적 있어?”

“응...”

윤가영의 목소리가 엄청 작았다.

“처음으로 온유랑 한 데야...”

말하면서 윤가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창피해하는 모습이 미치도록 귀여웠다.

“아...”

탄식을 뱉은 수아가 조용해졌다. 그대로 정지해버린 게 약간 고장 난 듯 보였다. 지수가 주걱을 들어 볶음밥을 자기 밥그릇에 담고 먹기 시작했다. 주방 안이 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들 서로 더 말을 안 붙였다. 주걱이 프라이팬 안을 긁는 소리랑 숟가락이 밥그릇을 긁는 소리만 들렸다. 침묵이 견디기 버거웠다. 그래도 지수가 더 쏘아붙이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 듯했다.

선우가 볶음밥을 우물거리다가 나를 쳐다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온유야.”

“응.”

“아버지 지금 귀국하신 거면 집에 쭉 계시는 거야?”

“아마도 그럴 거 같아.”

“으응...”

“그럼 수아랑 새어머니는 어떡할 거야?”

지수가 물었다. 윤가영이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내가 최대한 빨리 다른 곳 묵을 데 알아볼게...”

“그래요.”

지수가 답했다. 윤가영이랑 수아가 잠들 곳을 찾아 전전하는 모습이 상상됐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임신한 윤가영이 불안에 떨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끔찍이 이기적이지만 지수한테 도와줄 수 없겠냐고 부탁하고 싶었다.

지수가 밥그릇을 비우고 일어나서 아인슈패너 컵을 들었다. 지수가 그대로 주방을 나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마저 밥을 입에 넣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울 때 내려올게요.”

“응...”

윤가영이 답했다. 선우가 나를 올려보다 시선을 거두고 볶음밥을 퍼 입에 넣었다. 따라오려다가 내가 지수랑 둘이서만 대화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아채고 포기한 것 같았다. 언제나 나를 위해주는 배려심이 너무 고마웠다. 언제고 꼭 보답해야 할 거였다.

주방에서 나와 2층으로 올라가고 지수 방문을 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폰을 보고 있던 지수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문을 닫았다.

“지수야.”

“뭐.”

지수한테 다가가 왼편에 앉았다.

“수아랑 가영 씨가 묵을 데는 내가 찾아볼 테니까, 그때까지만 좀 둘이 부담 느끼지 않게 해줄 수 있어?”

“무슨 소리야?”

“그니까, 재촉당한다는 느낌이 안 들도록 어느 정도는 호의적으로 대해줄 수 없을까, 그런 말 한 거야.”

“... 내가 그 둘한테 못살게 굴 거 같애?”

“그런 건 아니고...”

“뭐가 아니야.”

“... 미안해. 이준권 와서 불안해져 가지고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했나 봐. 잘못했어.”

“... 한 번만 봐줄게.”

“고마워.”

“근데 왜 네가 묵을 곳을 찾아? 해도 새엄마가 해야 되는 거 아냐? 너 드라마 촬영하는 것도 바쁘잖아.”

“그래도 다 내 책임이니까.”

“책임은 너 꼬신 그 사람한테도 있는 거 아냐?”

“그래도 내가 다 책임지고 싶어.”

“... 지금 나 되게 짜증 나는 거 알아? 갑자기 네 새 여자친구라는 이상한 새엄마에 새여동생 데려와서 며칠 묵게 해줄 수 없냐고 하고, 둘한테 꼽주지 말라고 하고, 다 지 잘못이라면서 그 사람들 미워하지도 말라고 하고...”

지수가 목멘 소리를 냈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양팔로 지수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흑... 존나 미워...”

오른손으로 지수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사랑해 지수야.”

“좆까 씨발 새끼야...”

“미안해.”

“끅...”

“사랑해.”

“... 끕... 개새끼야...”

“...”

“왜 대답 안 하는데에...”

“미안해.”

“개새끼...”

지수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봐왔다. 눈물 흘리느라 상기된 얼굴이 묘하게 애처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그러니까, 가엾게 예뻤다. 왼손으로 지수의 볼을 쓰다듬었다. 지수가 오른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내 목 오른쪽에 입술을 맞췄다. 빨리는 느낌이 들었다. 히키를 남기려는 것 같았다. 드라마 촬영해야 되는데. 막기도 불가능할 듯했다. 지수가 입술을 떼고 입김을 후 불었다. 절로 부르르 떨렸다. 아무래도 히키가 남아버린 듯했다. 지수가 손목으로 눈두덩이 밑을 훔치면서 히 웃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눈물짓다가 띤 짓궂은 미소가 지독하게 사랑스러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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