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396화 (395/438)

〈 396화 〉 드라마 첫 촬영 바로 전날 (2)

* * *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는데 다다다 빠르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만 들어도 윤가영이었다. 코너에서 윤가영이 튀어나왔다. 윤가영이 나를 발견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걸음이 가볍고 산뜻했다. 입가에 은은히 지은 미소가 사랑스러웠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두 팔을 벌렸다. 윤가영도 바로 양팔을 벌리고 내게 폭 안겨 왔다. 가슴팍에 윤가영의 이마가 닿았다. 윤가영이 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보고 싶었다.

“고개 들어봐요.”

“으으응...”

살폿 웃었다.

“왜요.”

“안고 있을래요...”

왜 이렇게 귀엽지. 왼손으로 윤가영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오른손으로 윤가영의 등을 토닥이면서 머리에 코를 댔다. 머리카락 냄새가 향긋했다. 약간 물기도 있는 듯했다. 샤워하고 금방 머리를 말린 것 같았다. 왼손을 살짝 내려 약지로 윤가영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윤가영이 히히 웃으면서 목을 움츠렸다. 간지럽히면 고개 들 줄 알았는데.

“나 여보 얼굴 보고 싶은데 보여주면 안 돼요?”

“잠깐만요...”

“많이 기다려줬어요.”

“으응...”

윤가영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발그레했다.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다. 왼손으로 윤가영의 오른 볼을 쓰다듬었다.

“여보 얼굴 왜 이렇게 복숭아처럼 됐어요.”

“몰라요...”

“진짜 몰라요?”

윤가영이 끼잉 소리를 냈다. 보면 볼수록 연하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윤가영이 내 새엄마고 나는 그냥 고등학생인데. 신기할 정도로 풍기는 분위기가 어리고 귀여운 사람이었다.

“너무 여보만 기다린 거처럼 보일 거 같아 가지구...”

“맞잖아요, 나 기다린 거.”

“그래두... 엄청 티 내기 싫었단 말예요...”

입꼬리가 올라갔다. 양손으로 얼굴을 잡고 입술을 맞췄다. 윤가영이 히 웃었다. 마주 웃고 입을 열었다.

“여보 나 오기 전에 뭐 했어요?”

“그냥 수아랑 저녁 먹구 설거지한 담에 운동 살짝 하고 씻었어요. 그리구 빨리 머리 말리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대본 읽었어요.”

“으응. 그리고 나 온 거 바로 알고 뛰어온 거예요?”

윤가영이 헤헤 웃었다.

“네...”

너무 사랑스러웠다. 다시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윤가영이 까치발을 들고 내 입에 입술을 맞췄다. 미소가 지어졌다. 함께 있으면 계속 웃게 되는 게 뭔가 신혼부부라도 된 것만 같았다.

“여보...”

“네?”

“아뇨, 그냥...”

윤가영이 멋쩍게 웃었다.

“여보라고 부르고 싶었어요...”

“으응.”

왼손으로 윤가영의 목을 쓰다듬었다.

“매일 여보라고 부르잖아요.”

“네... 근데 이젠 수아도 있으니까...”

“수아 있어도 여보라고는 할 수 있지 않아요?”

윤가영이 끄응 소리를 냈다.

“수아 이제 여보랑 계속 붙어 있으려 할 건데 그 시간 만큼은 여보라고 못 하잖아요...”

“아아...”

윤가영의 표정이 진지했다. 보는데 왠지 웃음이 나왔다. 윤가영이 콧소리를 냈다.

“나 진짜 진지한데...”

“알아요. 미안해요. 귀여워서 웃은 거예요.”

“알겠어요...”

“근데 수아는 어딨어요?”

“방에 있는 거 같아요...”

“으응. 수아랑 많이 어색해요?”

“많이는 아니구... 밥 같이 먹을 때 조금 어색하긴 했어요... 혼자 막 심장 엄청 뛰구...”

“먹을 때 별로 얘기는 안 하고 먹기만 한 거예요 서로?”

“아예 말 안 하지는 않았어요...”

“그럼요?”

“그냥 수아가 여보랑 나 언제부터 그런 사이 됐냐고 물으면 답하고 그랬어요...”

“으음.”

별로 얘기를 많이 나누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근데요 여보...”

“네.”

“저 말고도 여보라고 부르는 사람 있어요...?”

“음... 이렇게 항상 서로 여보라고 부르는 건 여보랑 밖에 안 해요.”

“으응...”

윤가영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여 보였다. 미소를 띤 건 아닌데 뭔가 기분 좋아 보였다. 이런 거 하나하나에 기뻐하는 게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오른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윤가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안은 팔을 풀어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고마워요.”

오른손으로 폰을 꺼냈다. 이수아가 전화를 걸어온 거였다.

“수아예요.”

“아...”

“받을게요.”

“네...”

연결했다. 스피커폰으로 전환해야 하나. 순간 고민하다가 그냥 윤가영도 듣게 바꿨다.

ㅡ어디야.

“나 지금 집 왔어.”

ㅡ집이라고?

“응.”

ㅡ씨... 딱 기다려.

전화가 끊겼다. 숨죽이고 있던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고는 바로 뒤로 돌고는 왼발을 뻗었다. 다다다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윤가영이 순간 얼어붙더니 다시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윤가영의 두 눈이 흔들렸다. 난처해하는 얼굴이 귀여웠다.

“어떡해요...?”

윤가영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냥 있어요.”

“네...”

윤가영이 벽 쪽에 붙어서 등이 닿게 했다. 이수아가 현관으로 뛰어와서 나를 보고는 속도를 줄여 멈춰섰다.

“존나 늦게 오네 진짜. 내일이 촬영일인데.”

눈살을 찌푸린 이수아가 윤가영을 흘깃 봤다가 나한테 다가와서 왼팔 소매를 꼬집듯이 잡고 뒤돌아 걸어갔다. 그대로 끌려가면서 고개를 돌려 윤가영을 봤다. 윤가영이 이수아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랑 눈을 마주쳐왔다. 오른손을 흔들었다. 윤가영이 오른손을 낮게 들고 작게 흔들었다. 움직임이 되게 소심해 보였다. 이수아랑 대조적이었다. 왼소매가 한 번 강하게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앞을 봤다. 이수아가 정면만 주시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걷는 게 살짝 지체됐나. 느려지지 않게 노력했는데. 뒤를 본 게 느껴진 건가. 아리송했다.

이수아가 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매가 잡혀서 그대로 따라들어가게 됐다. 이수아가 나까지 방에 완전히 들어오자 소매를 놓고 뒤돌아서 나를 쳐다봤다.

“문 닫아.”

“응.”

왼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잠가.”

“알겠어.”

문을 잠갔다. 이수아가 내가 문을 잠그는 걸 보다가 침대로 가 털썩 앉았다.

“집 왔는데 나는 안 찾고 엄마랑만 오붓하게 시간 보내고 있었어?”

삐친 듯한 얼굴이 귀여웠다. 웃으면 안 될 거 같은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수아의 왼편으로 가 앉았다.

“미안해.”

“미안할 짓을 애초에 하지 말든가.”

“집 들어왔는데 가영 씨가 바로 나한테 와서 그랬어.”

“오빠 엄마보고 가영 씨라고 해?”

“응.”

“... 존나 맘에 안 들어...”

안 그래도 작게 낸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사랑스러운 투정이었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그냥 이름만 부를 수도 없고.”

“알아...”

살폿 웃었다. 오른손으로 이수아의 왼 어깨에 올려진 머리카락을 걷었다. 하얀 목이 드러났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오빤 나보다 엄마가 좋아...?”

“아냐.”

“그럼?”

“둘 다 사랑해.”

“완전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말이 돼?”

“... 나는 그래.”

“... 오빠 존나 쓰레기 같아...”

맞는 말이었다. 상식 선상에서 나는 이견 없을 만큼 끔찍한 놈이었다. 씁쓸하게 웃었다. 이수아가 콧숨을 내쉬었다.

“오빠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나쁜 년 된 거 같잖아...”

“아냐. 네가 왜 나빠.”

“그니까... 그러지 말라고...”

“알겠어.”

“...”

이수아가 왼손을 내 오른 볼에 대고 엄지를 움직여 내 얼굴을 쓸었다. 이수아가 작게 한숨 쉬었다.

“왜 잘생겼어?”

답하기 난감했다. 작게 웃음 지었다. 이수아가 다시 한숨 쉬었다.

“내가 엄마한테 취향을 물려받은 건가...”

이번 질문도 답하기 곤란했다. 이수아가 왼손으로 내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그대로 손을 내려 내 오른 허벅지를 탁 때렸다.

“오빠.”

“응.”

“엄마가 오빠한테 존댓말하잖아.”

“그치...?”

“그럼 오빠랑만 단둘이 있을 때 엄마가 오빠한테 뭐라고 해?”

“...”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말해.”

“... 여보라고 해.”

이수아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럼 오빠는 엄마한테 뭐라 하는데?”

“... 여보.”

“미친... 진짜?”

“응...”

“하아...”

이수아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나를 쳐다봐왔다.

“나랑도 뭐 호칭 정해.”

“... 뭐로 해?”

“몰라. 키스나 해.”

신경질적인 어투가 애교스러웠다. 사랑스러운 애였다. 얼굴을 가까이했다. 이수아가 양손으로 내 가슴팍을 짚었다.

“오빠 양치는 했어?”

“응? 했지.”

“아니, 집 들어오기 전에 키스했어 안 했어? 했지.”

“응...”

“그럼 양치해.”

“알겠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수아가 나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냥 가글하고 와.”

피식 웃었다.

“쪼갤래? 뒤진다 진짜?”

“아냐. 미안.”

화장실로 뛰듯 걸었다. 최대한 빠르게 가글을 하고 다시 나왔다. 이수아가 내 침대에 드러누워 베개를 베고 있었다.

“오빠 대본.”

“응.”

대본을 챙기고 이수아의 오른편에 누웠다.

“너 대본은?”

“내 방. 같이 봐.”

이수아가 내 왼팔에 바짝 붙었다. 대본집을 넘겼다. 수아가 왼팔로 내 배를 안았다. 시선이 내 얼굴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수아가 내 왼볼에 입술을 맞춰댔다. 고개를 수아 쪽으로 돌렸다. 수아가 입술을 포개왔다.

“쮸읍... 츄읍... 쯉...”

수아가 왼다리를 내 왼허벅지 위에 올렸다. 수아가 입술을 맞대오면서 점점 내 몸 위로 올라왔다. 수아의 왼 가슴이 짓눌려왔다. 흥분감이 올라왔다. 왼팔로 수아의 몸을 안았다.

“아움... 츄읍... 하웁...”

오른손에서 대본집을 놓았다. 툭, 하고 대본집이 바닥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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