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3화 〉 금요일 종례 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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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가 끝났다. 하회탈이 앞문 쪽으로 걸어가자마자 애들이 우수수 일어났다. 지수도 일어나서 가방을 멨다. 따라서 일어섰다. 왼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빠르게 일어난 강성연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무시할 수는 없는데. 고개를 돌려 강성연을 바라봤다.
“나 오늘 안 데려다줘도 돼.”
“어?”
강성연의 눈이 커졌다.
“어. 근데 누가 태워준대?”
“네가 자주 태워줘 가지고.”
강성연이 피식 웃었다.
“같이 나가자.”
느낌이 별로 안 좋은데. 원래도 이렇게까지 붙으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학교에서 서로 용서한 이후로 심리적 거리감이 훨씬 줄어든 느낌이었다. 내가 평소 강성연이랑 가깝다고 생각한 정도를 뛰어넘어서 강성연이 성큼 다가온 거 같아서 살짝 부담스러운 감도 있었다. 그래도 사이가 좋으면 나중에 학폭 논란이 생기기라도 했을 때 강성연이 잘 옹호를 해줄 테니 나쁠 건 없었다.
지수가 나랑 강성연을 흘겨봤다가 선우랑 팔짱을 끼고 같이 반을 나갔다. 나랑 강성연의 사이가 그리 달갑지는 않은 듯했다. 입이 말랐다. 강성연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말을 안 하냐?”
“아, 나 순간 기립성저혈압 와서.”
강성연이 킥킥 웃으면서 다가오고는 오른손을 말아 쥐어 내 왼팔을 톡 쳤다.
“존나 병신 아냐? 운동 왜 했냐?”
“나도 몰라. 운동 왜 했냐 나.”
“그니까. 걍 나가기나 하자.”
“어.”
강성연이랑 같이 반을 나섰다. 계단을 밟고 문을 넘어서 본관을 빠져나왔다. 강성연이 내 보폭에 맞추려 다리를 빠르게 놀리는 게 괜히 귀엽게 보였다. 강성연이 열심히 앞으로 걸으면서 입을 열었다.
“야, 너 발 존나 빠르다?”
“고마워.”
“아니 좀 맞춰달라고. 칭찬한 게 아니라.”
“그럼 그렇게 말해야지.”
걸음 속도를 살짝 늦췄다. 강성연이 나란히 걸었다. 같이 정문 쪽으로 향했다. 말없이 있는 게 뭔가 어색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입을 열면 더 뻘쭘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강성연이 앞을 보다가 나를 올려봤다.
“근데 너 좋은 냄새 난다.”
“그래?”
“어. 뭐 뿌려? 평소에?”
강성연이 물었다. 향수 같은 거는 안 쓰는데.
“아니. 잘못 맡은 거 아냐? 땀 냄새밖에 안 날 건데.”
“그래? 뭐 향수 같은 거 안 뿌린다고?”
“어.”
강성연이 기습적으로 내 왼팔 손목을 붙잡고 위로 들려고 했다. 힘을 줘서 못 올리게 했다. 강성연이 피식 웃으면서 나를 올려봤다.
“냄새 좀 맡아보자.”
“왜.”
“궁금하니까.”
“존나 개세요?”
“뭐래. 과민반응 개 심하네. 걍 좀 줘봐.”
“...”
왼팔을 올려줬다. 강성연이 내 왼 손목을 조금 더 자기 얼굴 쪽으로 끌고서 코를 갖다 댔다. 뭔가 느낌이 묘했다. 잠시 냄새를 맡은 강성연이 내 왼팔을 놓아줬다. 왠지 내 팔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다. 왼손을 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강성연이 나를 올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닌데?”
“뭐가?”
“땀 냄새 안 난다고.”
“어. 근데 너 뭔데 막 만지고 그러냐.”
“내 맘. 근데 너 진짜 냄새 좋은데?”
“아 뭐래. 몰라. 하지 마. 징그러워.”
강성연이 피식 웃었다.
“미친놈.”
난 네가 더 이상한데. 왠지 속이 답답했다. 한숨 쉬고 싶었다.
“오늘 너 뭐 하냐?”
강성연이 느닷없이 물었다.
“응?”
“너 오늘 뭐 하는 거 있냐고. 버스킹이나 그런 거.”
“아니. 갑자기 버스킹은 왜?”
“걍 안 태워줘도 된다길래. 다른 거 뭐 하는 거 있는갑다, 하고 생각하다가 너 요즘 버스킹 안 한 거 떠올라 가지고 버스킹하냐고 물은 건데?”
“어, 그래.”
“와. 반응 개 건성으로 하네.”
“그럴 수도 있지.”
“인성.”
픽 웃었다. 어느새 찢어져야 할 곳에 이르렀다. 강성연이 강예린의 차가 멈춰서는 곳을 봤다가 다시 나를 올려봤다.
“진짜 안 태워줘도 돼?”
“응. 고맙다.”
“어.”
강성연이 뒷걸음질 쳤다.
“나 간다.”
“잘 가.”
“너도.”
“어.”
강성연이 뒤로 돌고 그대로 쭉 걸어갔다. 나도 반대로 돌고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지수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강성연 걔 왤케 너한테 친한 척해?]
[한번 위축됐을 때 도와줘서 그 뒤로 내적 친밀감 높아진 거 같아]
바로 말 줄임표가 떴다.
[ㄹㅇ 개싫다]
웃음이 나왔다.
[택시 타게 빨리 와]
[응]
평소 별장으로 갈 때 택시를 타던 곳으로 걸어갔다. 선우랑 지수가 서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섰다. 멀리서 택시 한 대가 접근해오는 게 보였다. 타이밍이 꽤 좋았다.
“뒤에 저 차 같은데?”
“어?”
백지수가 뒤돌아봤다. 송선우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맞네.”
송선우가 말했다. 택시가 멈춰섰다. 지수가 문을 열어 먼저 인사하면서 들어가고 내가 다음, 마지막은 선우가 타서 문을 닫았다. 택시가 곧장 출발했다. 지수가 차창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너 내일부터랬지.”
드라마 촬영 말하는 건가.
“응.”
“흐음. 그럼 등교는 좀 뜸해지겠네?”
“그렇겠지 아무래도.”
“... 맘에 드네.”
웃음이 나왔다. 백지수도 피식 웃었다.
“나 학교 못 가는 게 왜 좋아?”
“걍 별 신경 안 써도 되잖아. 성적으로 경쟁할 사람도 주는 거고.”
송선우가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 송선우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는 게 진짜 순진해 보였다.
“왜?”
송선우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아냐.”
백지수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가 자기도 참기 힘들었는지 입을 가리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둘 다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입꼬리가 올라갈 거 같아서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웃음을 참아냈다. 막상 웃음을 삼키고 나니 굳이 이럴 필요가 있던 건가 싶었다.
별장 근처에서 택시가 정차했다. 기사님께 인사를 하면서 다 내렸다. 백지수가 빠르게 열쇠를 꺼내 대문을 열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선우랑 같이 지수를 뒤따라서 안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백지수가 유리문을 열고 거실을 향해 걸어갔다.
“씻고 올라와 이온유.”
백지수가 말했다. 교복을 입은 채 아주 일상적인 어감을 간직하고 저렇게 말한다는 게 미치도록 꼴렸다. 선우가 반쯤 뛰듯 지수한테 가서 지수의 뒤에서 양팔로 껴안았다. 지수가 별말도 안 하고 선우랑 뒤뚱뒤뚱 걸어갔다. 교복을 벗으면서 지수랑 선우가 2층으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봤다. 보면 볼수록 귀여운 조합이었다.
교복을 거실 소파에 대충 놓고 팬티랑 반팔 반바지를 챙겨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빠르게 샤워하고 옷을 입은 다음 소파 왼편에 앉아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 지수랑 선우는 같이 씻으니까 좀 시간이 걸리겠다 싶었다. 폰을 들어서 지수한테 전화 걸었다. 연결음이 여러 번 가고 나서야 연결됐다. 물소리가 들리는 게 씻는 모양이었다.
ㅡ왜?
“마실 거 만들 건데 뭐 먹을래?”
ㅡ난 핫초코. 고마워.
선우 목소리였다. 조금 작은 게 약간 멀리 있는 듯했다.
ㅡ나도 핫초코 해줘.
“커피 마셔도 돼.”
ㅡ아냐, 나 안 잘 거 아니야. 커피 안 마셔.
웃음이 나왔다.
“알겠어. 끊을게.”
ㅡ응.
전화를 끊었다. 폰으로 유튜브를 틀고 계속10초씩 넘기면서 초코 소스를 만드는 과정만 봤다. 냄비를 꺼내 인덕션 위에 올리고 물을 넣은 다음 그릇에 다크 초콜렛이랑 코코아 파우더, 설탕을 넣어 중탕해 녹였다. 에스프레소 머신 앞으로 가 스팀을 살짝 빼주고, 인덕션으로 빠르게 가 스패츌러로 휘저었다. 초콜렛이 다 녹았을 때 옆으로 옮겨서 우유를 조금씩 부으면서 섞었다. 마무리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넣고 섞은 다음 완성된 초코 소스를 작은 통에 옮겼다. 스팀피쳐에 우유를 넣고 스팀 밀크를 만들었다. 컵 세 잔에 초코 소스를 나눠 넣고 스팀밀크를 부었다. 휘핑크림을 얹고 코코아 파우더를 뿌려 마무리했다. 쟁반에 담아 2층으로 들고 갔다. 지수 방문 앞에 섰는데 드라이어 소리가 들렸다.
“문 좀 열어주라.”
“응!”
선우 목소리였다. 다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미소 짓고 있는 선우가 서 있었다. 긴 머리가 촉촉한 게 선우를 평소보다 더 관능적으로 보이게 했다. 선우가 뒷걸음질 치면서 핫초코 잔을 보고 감탄했다.
“나중에 카페도 해도 되겠다.”
“안 돼. 얘한테 그럴 시간 없어.”
화장대 앞에 있던 지수가 말했다. 지수는 머리카락이 짧은 편이라서 금방 머리를 말릴 수 있을 거 같은데 물기가 촉촉했다.
“빨리 와서 머리 말려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알겠어.”
초코를 흘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지수한테 다가갔다. 화장대 빈 자리에 쟁반을 내려놓고 지수의 왼편에 있는 의자를 약간 뒤로 옮겨 앉았다. 선우도 지수의 오른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바로 말려줘?”
“아니 나 한 입만 마시고.”
“응.”
지수가 머들러로 휘핑크림이 내려가게 간단하게 섞고 한 모금 마셨다. 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맛있네.”
“다행이다.”
“응.”
“이제 말릴까?”
“어.”
왼손으로 헤어드라이어를 들고 틀었다. 오른손으로 지수의 머리카락을 쓸고 누르면서 머리를 말렸다. 거울을 힐긋 보면서 지수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내가 먼저 웃고 지수가 마주 웃음 지었다.
“나 핫초코 한 번 더 마시고 싶어.”
“마셔. 나도 마실게.”
“어.”
헤어드라이어를 끄고 화장대에 올려놓았다. 왼손을 뻗어 머들러로 가볍게 섞고 컵 손잡이를 잡았다. 지수랑 선우를 바라보면서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아릴 듯이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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