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2화 〉 학교 공실에서 (4)
* * *
지수가 입술을 떼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 이틀 치 키스를 한꺼번에 다 한 느낌이었다. 지수가 내 허벅지를 깔고 앉은 채 두 팔로 나를 안고 턱을 내 왼 어깨에 올렸다. 내 오른팔은 선우가 양팔로 껴안고 몸을 기대온 채로 눈 감아 쉬어버려서 왼팔로만 지수를 안았다.
“나 이대로 있어도 되지?”
지수가 물었다.
“응.”
“진짜 이러고 있는다.”
“알겠어.”
“응...”
귀여웠다. 왼손으로 지수의 등을 쓸었다. 지수가 숨 쉬는 소리가 나직이 들렸다. 여자친구가 내 품에 안겨서 조용히 호흡하고, 나는 가만히 그 숨소리를 듣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언제까지고 내 곁에 있으리라는 확신이 불어 넣어지는 느낌이었다. 다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시간이었다. 이 순간이 이대로 영원했으면 했다.
공실이 고요했다. 지수랑 선우의 숨소리랑 밖에서 새어들어 오는 작은 소음만 들렸다. 오른손으로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좋은 순간은 왜 지나가고 마는 건지.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조금은 더 있어도 될 거였다. 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눈을 감았다. 지수의 살 내음이 맡아졌다. 안정감이 들었다.
“온유야...”
선우 목소리였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선우랑 눈이 마주쳤다. 엉덩이를 뒤로 뺀 채로 고개를 들어서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귀엽게 보이려고 하는 건가. 애교부리는 게 너무 사랑스러웠다.
“점심시간 얼마나 남았어...?”
“십이 분 정도.”
“으응... 그럼 이제 슬슬 반으로 가야 되는 거 아냐?”
“그래야지.”
“응... 나랑 지수가 먼저 나가야 될 거 같지?”
“같이 나가도 되지 않을까.”
“같이 나가면 애들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잖아.”
“그런 관계 맞잖아.”
“흐흫... 근데 들키면 안 되니까...”
“응...”
송선우가 콧숨을 내쉬었다.
“그냥 대놓고 사귀고 싶다. 다 같이 사귀고 있다고 공표하고.”
살폿 웃었다.
“그러면 내가 죽지 않을까?”
“왜?”
“그냥 세은이도 있고 하니까 팬덤 중에 나 족칠 사람 한 명 정도는 생길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럼 내가 지켜줄게.”
“너만 믿을게.”
송선우가 살폿 웃었다.
“응.”
“야.”
백지수가 말했다. 고개를 돌려 왼쪽을 봤다. 지수가 내 왼 어깨에서 턱을 떼고 나를 쳐다봤다.
“너 사생활 세상에 알려지면 조져질 거 알고 있었어?”
“당연히 알고 있었지...”
백지수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근데 너무 뻗친 거 아냐?”
할 말이 없었다.
“나중에 애 생기면 다 네가 아빠로 등록돼야 하잖아.”
“그치...?”
“그땐 어떡해?”
“등록하는 거 자체를 물어보는 거야?”
“그것도 문제긴 한데, 그거는 뭐 어떻게 됐다고 치고. 다 하고 나면 너 얼마나 다리 뻗었는지 세상에 알려질 수밖에 없는 거잖아.”
“응... 그땐 나 진짜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없겠네.”
“그니까.”
“그니까라고 하면 어떡해.”
송선우가 말했다.
“같이 영화도 보고 돌아다니면서 다 해야 되는데...”
“근데 아기 생기고 나면 그게 불가능하잖아.”
“그럼 그냥 우리가 아이를 조금 늦게 가지면 되잖아.”
“그건 내가 싫어.”
송선우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에 아이 같은 순수함이 담겨 있어서 귀여웠다.
“뭐 아무튼.”
지수가 발을 뻗어 바닥에 있는 신발을 신고 일어섰다. 지수가 자기 조끼를 집어 들고 입었다. 송선우가 백지수를 올려봤다.
“지금 가자구?”
“응.”
“알겠어.”
선우가 일어나지는 않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입술을 쪽 맞춰왔다. 웃음이 나왔다. 송선우가 흐흫, 하고 웃었다. 나도 선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선우가 배시시 웃었다. 가만히 나랑 선우를 보고 있던 지수가 오른 다리 종아리를 내 다리 사이에 대고 입술을 덮쳐왔다.
“쮸읍... 츄읍... 아움...”
짧은 키스가 끝나고 지수가 다시 일어서서 오른손 손등으로 입술을 슥 닦았다. 선우가 지수를 쳐다봤다가 나를 바라봐왔다. 선우도 하고 싶은 건가. 생각하는 중에 선우가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엉덩이를 약간 들어 입술을 맞대왔다.
“하웁... 쯉... 츄릅... 헤웁... 아움... 쮸읍...”
“그만해 이제.”
지수가 말했다. 선우가 한 번 더 내 입술을 빨고는 자연스레 얼굴을 뒤로 물렸다. 뭔가 여운이 남았다. 선우가 조끼랑 마이를 챙겨 산뜻하게 일어나고 몸을 뒤로 돌렸다. 지수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선우가 지수의 왼팔에 팔짱을 꼈다. 지수가 뚱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랑 문 쪽으로 걸어갔다. 둘이 서로 보폭이 다른데 발이 잘 맞았다. 서로 약간 안 맞는 듯하면서도 소울메이트 느낌이 있었다. 선우가 오른손으로 문을 열고 둘이 같이 나갔다. 문이 곧바로 닫히고, 문틈으로 들어오던 빛이랑 소리가 사라져서 공실이 다시 어둡고 조용해졌다. 지금 보니 여기는 낮잠 자기 더없이 적당한 장소였다. 가끔 몰래 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오 분 남았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 앞으로 갔다. 나갔을 때 주의가 나한테 쏠리면 안 되는데. 최대한 없는 타이밍을 노려야 할 거였다. 밖에 소리가 조금 잠잠하다 싶을 때 문을 열어서 나갔다. 빠르게 문을 잠그고 열쇠를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최대한 빨리 교무실로 가서 열쇠를 돌려놓고 빠져나왔다. 쌤들이 수업 갈 준비를 해서 바쁜 탓에 말을 걸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반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심장이 쿵쿵 뛰었다. 공실에서 섹스할 때처럼 박동이 급했다. 학교에서 했다는 게 실감 나서 그런 건가. 진짜 대범하게도 했구나 싶었다. 사진 찍는 미친 짓을 한 것도 진짜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남한테 보여서는 절대로 안 될 터였다. 뒷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전원을 꺼버렸다. 폰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고 반에 들어갔다. 지수랑 선우가 제자리에 없었다. 화장실에 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야 너 점심시간에 밴드부 안 오고 뭐했냐?”
창가 쪽 옆자리 강성연이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왼팔을 책상에 댄 채 말했다.
“그냥 뭐 혼자 사색했어.”
강성연이 피식 웃었다.
“뭐 사색? 미쳤냐? 어디서 했는데?”
“비밀의 장소.”
“개지랄. 학교에서 그런 데가 어딨어. 뭐 옥상이라도 갔어?”
“몰라.”
“뭐 자기가 가놓고 모른대.”
“얘기하면 비밀이 아니게 되잖아.”
강성연이 혀를 차서 치, 하고 소리 냈다.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얘가 키가 작아서 그런가? 아마 그런 것 같았다.
“걍 알려주면 안 되냐?”
“응, 안 돼.”
“개 치사해.”
“내 맘.”
책상 서랍에 두 손을 집어넣어 교과서를 꺼냈다. 햇살이 잘 들어와서인가 반이 따스했다. 잠이 솔솔 몰려왔다. 간 새벽에 수아랑 엄청 섹스한 것도 모자라서 점심시간에 지수랑 선우하고 하기도 했으니까 졸릴 만도 했다. 두 팔을 책상에 대고 턱을 괴었다가 그냥 엎드렸다.
“자게?”
강성연 목소리였다. 얘가 많이 심심한가.
“어.”
“지금 점심시간 다 갔는데?”
“알아.”
“이상한 놈일세.”
피식 웃었다. 고개를 돌려 팔에 오른 볼을 대고 강성연을 바라봤다.
“너 말투 뭐냐?”
“뭐? 그냥 평소 말투잖아.”
“그런가?”
“어.”
“근데 뭔가 좀 이상해서.”
“뭐가 이상한데?”
“몰라. 그냥 좀 느낌이 그러네.”
강성연이 픽 웃었다.
“뭐라는 거야.”
마주 웃었다. 이제 얘도 나에 대한 어색함을 좀 벗은 모양이었다. 강성연이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웃는 거 예쁘다.”
“어?”
멋쩍게 웃었다.
“왜 갑자기 그러냐?”
“걍. 칭찬해주니까 간지럽냐?”
“어... 몸이 많이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데?”
“지랄하지 마.”
“아니 진짜로.”
왼팔을 빼서 검지로 목덜미를 긁었다. 강성연이 내 목으로 시선을 던져왔다.
“근데 너 목에 뭐 묻은 거야?”
“응?”
심장이 쥐어짜이는 느낌이었다. 키스 마크라도 생겼나? 선우가 막 길게 빨지는 않았는데. 왼손으로 목을 문질렀다.
“뭐 있어?”
“손 치워봐.”
존나 어떻게 된 거지. 목을 열심히 비비고 손을 뗐다. 강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가 입을 열었다.
“음, 내가 잘못 본 듯.”
헛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놓인다는 말이 실제적인 말이었구나 싶었다.
“뭐 피부 트러블 생긴 줄 알았잖아.”
“너 피부 좋잖아.”
왜 또 칭찬하지. 불길하게.
“그렇긴 하지.”
강성연이 피식 웃었다. 또 웃네. 전이랑 비교하면 확실히 웃음이 좀 많아진 듯했다.
뒷문 쪽에서 선우랑 지수 목소리가 들렸다. 뭔가 뜨끔 하는 느낌이었다.
“나 좀만 눈 붙인다.”
그렇게 말하고 다시 눈을 감고 엎드렸다. 목덜미에 차갑고 작은 손이 찰싹 달라붙는 느낌이 났다.
“이제 수업 시간이니까 자지 마.”
지수 목소리였다. 종소리가 들렸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응...”
고개를 들었다. 백지수가 나를 내려보면서 피식 웃고는 내 목덜미에서 왼손을 뗐다. 지수가 오른손으로 내 앞머리를 살짝 쓸어서 밑으로 내려주고는 앞자리에 가 앉았다. 뒷모습을 보는데 입꼬리가 올라갈 것 같았다. 느낌이 묘하게 달달했다. 은근하게, 남들이 봐도 별 티가 안 날 정도로만 애정을 과시하는 것도 스릴감 있고 즐겁구나 싶었다. 그래도 대놓고 서로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것에 비견할 만큼은 아니었다.
빨리 별장으로 가서 대놓고 사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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