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9화 〉 월요일, 귀가 후 (4)
* * *
눈이 뜨였다. 선잠이었다. 그래도 덜 잤다는 감은 없었다. 딱 자야 할 만큼만 잔 것 같았다. 양손으로 시트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괜히 한 번 하품하고 침대에서 나와 일어섰다. 기지개를 켠 다음 왼손으로 폰을 잡았다. 아직 지수한테 답장이 온 게 없었다. 역시 자는 모양이었다. 폰을 왼주머니에 넣고 화장실에서 얼굴을 닦은 다음 방을 나섰다. 주방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밥 먹을 시간인가. 선잠인 줄 알았는데 은근히 오래 잔 모양이었다.
주방으로 가니 가스레인지 앞에 윤가영의 뒷모습이 보였다. 흰 티에 연청 차림이었다. 단출한데 몸매가 워낙 예뻐서 되게 잘 꾸민 느낌이었다.
윤가영이 오른손으로 레버를 돌려 불을 끄고는 뒤돌았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귀여워서 눈웃음 지어졌다. 윤가영이 마주 싱긋 웃고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꽉 껴안고 싶었다. 윤가영이 서서히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수아는...?”
“거실에서 안 보였어요.”
“으응...”
윤가영이 그대로 걸어와 내 품에 당연하다는 듯 안겼다. 윤가영을 마주 안았다. 체온이 쭉 솟는 느낌이었다. 수아가 볼시에 나타나서 볼 수도 있을 텐데 새엄마랑 이렇게 껴안는다니. 배덕감이 상당했다. 윤가영이 히 웃고 팔을 풀었다. 나도 미소 짓고는 윤가영의 이마에 입술을 맞춘 다음 팔을 풀어줬다. 윤가영이 헤헤 웃으면서 한 발짝 물러났다.
“나 수아 불러올게. 앉아있어.”
“테이블 세팅해놓을게요.”
윤가영이 미소 지었다.
“응. 고마워.”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윤가영이 내게 시선을 맞추면서 천천히 발을 떼서 주방을 나섰다. 달려가서 뒤에서 껴안아 주고 싶었다. 수아한테 들키면 안 되니 참아야 하겠지만. 마음껏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고개를 돌리고 가스레인지 쪽으로 갔다. 팬에 새우 로제 파스타가 있었다. 오른손으로 들어 테이블에 옮기고 접시랑 수저를 빠르게 세팅했다.
“이수아!”
윤가영이 다그치는 목소리였다. 살짝 놀라고 당황한 느낌도 섞여 있었다. 뭔 일이지? 일단 달려갔다. 이수아의 방문 앞에 이수아랑 윤가영이 보였다. 이수아는 막 나오려 했는지 얼굴이 보였고 윤가영은 문 앞에서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는지 뒷모습이 보였다.
“브라는 입고 다녀야지!”
“이게 편하단 말야.”
“그래도, 집에 엄마만 있는 게 아니라 온유도 있잖아. 매너는 지켜야지.”
이수아가 순간 눈으로 나를 흘깃 쳐다봤다가 윤가영을 바라봤다. 혼내주고 싶었다.
“난 오빠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든 어쩌든 상관없는데?”
저게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어지러웠다.
윤가영이 한숨 쉬었다.
“어떻게 상관이 없어... 오히려 온유도 신경 쓸 거인데...”
“그럼 벗지 말라 그래 오빠는.”
“... 자꾸 그렇게 막무가내로 굴 거야...?”
이수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브라 좀 안 입을 수 있는 거 아냐? 엄마도 그러면서.”
“... 난 입었잖아...”
목소리가 살짝 움츠러든 느낌이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귀여워서 입꼬리가 올라갈 것 같았다. 뒷모습 말고 얼굴을 보고 마음껏 귀여워 해주고 싶었다.
“근데 안 입을 때도 가끔 있잖아.”
“그건... 온유 없거나 할 때 그런 거구...”
“오빠 있을 때도 안 입었던 적 있던 거 같은데 내 기억에.”
“그렇든 어떻든 온유가 불편하지는 않았잖아...”
“흐응... 그럼 오빠가 나 브라 안 입는 거 불편하대?”
“당연히 그렇겠지...”
이수아가 흥, 하고 콧소리를 내고 나를 올려봤다. 윤가영이 뒤돌아서 나를 쳐다봤다.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이수아랑 대화하면서 퍽 곤란했던 듯했다. 품에 끌어안고 있다가 양볼을 만지작거리고 싶었다. 윤가영이 오른쪽으로 한 발짝 움직여 이수아를 가렸다. 브라를 안 입은 걸 보지 못하게 하는 거구나. 진짜 행동까지 하나하나 귀여웠다.
이수아가 한 발짝 나아가 윤가영의 바로 뒤에 서서 윤가영의 배를 감싸 안았다. 윤가영이 두 손으로 이수아의 양팔을 잡았다. 딸 품에 안긴 모습이 왜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진짜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오빠 나 브라 안 입은 거 그렇게 신경 쓰여?”
“어.”
이수아가 흥, 하고 소리 내면서 눈웃음 지었다.
“그럼 내가 입어줄까?”
“입어줄까가 아니라 그냥 입어.”
“들었지 수아야...?”
윤가영이 이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수아가 히 웃었다.
“생각 좀 해볼게.”
“수아야!”
윤가영이 큰소리쳤다.
“왜애. 장난이야. 오빠랑 좀 말로 놀 수도 있는 건데 왤케 민감하게 반응해.”
“... 너무 선을 넘으니까 그렇지...”
“선 안 넘었어. 아직.”
윤가영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나도 어이없었다.
윤가영이 오른손으로 이수아의 오른팔을 주물렀다.
“딸 자꾸 그러면 진짜 안 돼애...”
이수아가 히히 웃었다. 진짜 말 안 듣는 악동처럼 보였다. 아니 악동 맞나.
“장난이야 엄마.”
의붓오빠를 대상으로 선을 넘을 거라 말해놓고 장난이라고 한다니. 어질어질했다.
윤가영이 흐응, 하고 콧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밥이나 먹자...”
“응. 가자 엄마.”
“브라 입어야지...!”
“걍 가면 안 돼?”
“안 돼!”
이수아가 히 웃었다.
“알겠어.”
이수아가 윤가영을 안은 팔을 풀고 뒷걸음질쳐 방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윤가영이 닫힌 방문을 보다가 고개 돌려 다시 나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먼저 가 온유야...”
“그냥 수아 기다릴게요.”
“으응...”
윤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수아가 곧 나올 거라서 그러지는 못하는 듯했다. 살폿 미소 짓고 폰을 꺼내 빠르게 윤가영한테 문자 보냈다.
[사랑해요]
진동이 울렸다. 윤가영이 눈을 크게 뜨고는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봤다. 윤가영이 내 문자를 확인했는지 히 웃고는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나를 올려봤다. 윤가영이 소리 내지 않고 입술을 움직였다. 나도, 라고 하는 거였다. 눈웃음 지었다. 이따 밥 먹고 나서 어떻게든 윤가영이랑 같이 있을 시간을 만들어야만 할 듯했다. 밥 먹을 동안 수아가 납득할 만한 변명거리를 궁리해놓아야 할 거였다.
윤가영 뒤에서 방문이 열렸다. 검은 브라가 비치는 흰 끈 민소매에 검은 돌핀팬츠를 입은 이수아가 나왔다. 이수아가 양팔로 가슴을 감쌌다. 윤가영이 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뒤돌아 이수아를 봤다.
“엄마 오빠가 자꾸 내 가슴 봐.”
“아닐 거야...”
“아냐. 오빠 내 가슴 계속 힐끔거려. 혼내줘.”
윤가영이 끄응 소리를 내고는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눈빛이 처량했다.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지 온유야...?”
“아니에요.”
이수아가 뒤에서 윤가영을 안았다.
“아냐 엄마. 진짜 막 본다니까?”
윤가영이 콧숨을 내쉬었다. 눈살을 찌푸린 게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데 그러는 것조차 귀여웠다.
“보지 말라고 해줘.”
“보지 마 온유야...”
이수아가 히 웃고 윤가영의 왼 볼에 입술을 쪽 맞췄다. 왠지 모르게 야한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엄마.”
이수아가 나를 올려봤다.
“알겠지?”
“어.”
“응. 가자 엄마.”
“으응... 먼저 가 온유야.”
“알겠어요.”
대답은 해놓고 뒷걸음질을 치면서 속도를 맞춰 주방으로 걸어갔다. 이수아랑 윤가영이 발맞춰 뒤뚱뒤뚱 걸어왔다. 둘 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윤가영이랑 이수아가 동시에 나랑 눈을 마주쳐왔다. 왠지 둘의 시선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니까, 둘 다 눈빛이 뭔가 야했다. 둘이 모녀지간이라 외견이 닮았고 나한테 이성적으로 호감이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느낌이었다.
이수아가 눈웃음 지었다.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 자기 엄마를 연적으로 보고 작은 승리라도 했다고 생각하려나. 어쩌면 내가 자기한테 어느 정도 넘어갔다고 여길지도 몰랐다. 근데 나는 윤가영이랑 섹스하면서 보지에 정액을 싸기까지 했는데. 그 생각을 하니극렬한 배덕감이 느껴졌다. 진짜 이수아는 요망하면서도 순진한 면이 있는 애였다.
이수아가 윤가영을 안은 채 뒤뚱뒤뚱 걷다가 아, 하고 소리 냈다.
“냄새 좋다. 엄마 저녁 스파게티랬지?”
“응... 로제 파스타.”
“맛있겠다. 빨리 갈까?”
“어...”
“응.”
이수아가 윤가영을 안은 팔을 풀고 걸음을 빨리했다. 주방으로 들어가서 평소처럼 내가 먼저 의자에 앉았다.
“와.”
감탄한 이수아가 재빨리 내 왼편에 앉고 집게를 집었다. 내 옆자리 앉으려고 빨리 가자고 하고 음식 때매 급히 앉은 척했나. 수아도 참 약삭빠르기는 했다.
이수아가 고개를 들어 윤가영을 쳐다봤다.
“잘먹을게 엄마.”
“응...”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윤가영이 나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시선을 마주치는 데 슬픈 느낌이 살짝 들었다. 딸이 연적인 것만으로도 힘들 건데 강적이기까지 하니 확실히 더 곤란할 거였다.
윤가영이 한 마음고생이 녹아내릴 수 있게 수아의 감시망이 없을 때 잔뜩 사랑해줘야 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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