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화 〉 금요일 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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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애들이 티비가 연결된 컴퓨터로 시크네스 뮤비를 틀었다. 밥을 먹으러 가지 않고 반에 있던 애들은 이미 몇 번 봤는지 훅 부분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중독성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시크네스가 순항하는 것만 기다리면 될 듯했다.
은근 관심 없는 척, 시큰둥한 느낌이 나게 오른팔을 책상에 대고 오른손으로 턱을 괸 다음 고개를 들어 티비를 봤다. 김세은이 보일 때마다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는 살짝 짜릿한 느낌마저 있었다. 내 여자친구가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멤버라니. 뮤비 화면을 아무리 보고 또 봐도 현실감이 떨어졌다. 뭔가 입꼬리가 올라갈 것 같아서 시선을 돌렸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있던 강성연이랑 눈이 마주쳤다. 강성연이 시선을 획 돌리고 왼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봤다. 아마 우연인 듯했다.
“세은이 진짜 예쁘다...”
송선우 목소리였다. 의자에 앉은 채 몸을 왼쪽으로 돌려 뒤를 봤다. 일어서서 뮤비를 보던 송선우가 내가 몸을 돌리는 걸 알았는지 곧장 눈을 마주쳐왔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세은이 이렇게 보니까 되게 어른스러워 보이지 않아?”
“응, 진짜 직업 가진 거니까... 뮤비 컨셉도 좀 성숙한 느낌도 있고.”
“그니까.”
누가 내 오른팔을 쿡쿡 찔렀다. 고개를 돌려봤는데 앞자리 의자에 거꾸로 앉은 백지수가 왼 팔을 책상에 댄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매점 갈래?”
“어, 그래.”
백지수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나 앞문 쪽으로 걸었다.
“나도 가.”
송선우가 따라왔다. 백지수가 걸어가면서 응, 이라고 했다.
“근데 나 양치했던가.”
백지수가 몸을 돌려 나를 보면서 뒷걸음질 쳤다. 밥 먹자마자 양치했다고 답해주려는 찰나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일단 나 양치 좀 하자.”
백지수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의뭉스러웠다.
“... 응.”
반을 나섰다. 백지수가 계단 쪽으로 앞서갔다.
“어디 다른 애들 없는 데 없나?”
목소리가 조용했다. 역시 매점이나 양치하러 간다는 건 페이크였던 듯했다.
“옥상 조용할걸.”
“가도 돼?”
“응. 아마도.”
“그래. 혼나면 네 탓.”
“알겠어.”
“응.”
백지수랑 내가 대화하는 걸 보면서 송선우가 히 웃었다. 나랑 지수를 귀여워하는 거 같은데 나는 그런 송선우가 귀여웠다.
옥상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아무도 없었다.
“쌤 없어?”
백지수가 뒤에서 물었다.
“응.”
오른발을 디디고 옥상으로 나왔다. 백지수가 뒤이어 나오고 송선우가 마지막으로 나온 다음 문을 닫았다. 백지수가 입으로 숨을 한 번 들이키고 한숨 쉬었다.
“좋네. 좀 조용하고.”
살폿 웃었다.
“다행이다.”
“어. 어디 앉을 데 없어?”
“의자 어디 있을 건데.”
“의자?”
“응.”
고개를 돌리면서 옥상을 훑었다. 벽면에 가려진 쪽에 있었다. 되게 찾기 쉬운데, 문에서 나오면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여서 바로 보지는 못한 듯했다. 오른손 검지로 가리켰다.
“저기.”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 의자를 봤다.
“아. 음, 안 앉을래. 더러워.”
“그래. 그래도 저쪽으로 가자. 그나마 그늘 있으니까.”
“지금 그늘 필요한 날씨는 아니지 않아?”
송선우가 물었다.
“그건 아닌데 눈 아플 수 있잖아.”
“그래.”
송선우가 내 왼팔을 낚아채 팔짱을 끼고 같이 그늘 쪽으로 갔다. 백지수가 눈살을 찌푸린 채 나란히 걸었다. 다 같이 쪼그려 앉았다. 송선우가 내 왼팔을 풀어주고 왼손으로 턱을 괸 채 지수를 바라봤다.
“지수.”
쪼그려 앉아 두 손을 자기 겨드랑이 안에 넣은 채 나를 쳐다보던 백지수가 송선우를 쳐다봤다.
“어.”
“근데 왜 부른 거야?”
“그냥 좀 조용한 데 있고 싶어서.”
“온유 세은이 좀 더 보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
백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진짜 그래?”
“이미 한번 봤으니까. 나중에 보는 것도 되고. 보려면 지금도 보는 것도 가능하니까. 괜찮아.”
“미안해.”
살폿 웃었다.
“아냐. 미안할 거 없어.”
오른손으로 백지수의 왼볼을 만졌다. 백지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별로 마음에는 안 드는데 굳이 말은 안 하고 봐주는 건가.
“고마워.”
“뭐가.”
“그냥 만질 수 있게 해줘서.”
“... 이미 다 허락한 지 오래잖아.”
목소리가 작았다. 혹여나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갈까 조심한 느낌이었다.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치.”
“온유야.”
송선우 목소리였다. 백지수의 왼 볼에서 오른손을 떼고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송선우는 어느새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양팔로 무릎을 감싸고 있었다.
“응. 너 왜 그러고 있어?”
“쪼그려 앉는 거 좀 불편해서. 그리고 너희 둘이 너무 오붓해 가지구. 그래서 살짝 떨어져줬어.”
픽 웃었다. 왼손으로 바닥을 툭툭 턴 다음 나도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아 왜 그래.”
백지수 목소리였다. 고개 돌렸다. 백지수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왜?”
“아니. 나도 그렇게 앉아야 될 거 같잖아.”
“안 그래도 돼.”
“그래도.”
“그럼 내 마이 벗어줄게.”
“응.”
마이를 벗으면서 답했다.
“아 그럼 나는?”
송선우가 물었다.
“조끼 줄까?”
말하면서 백지수에게 마이를 건넸다.
“고마워.”
백지수가 마이를 바닥에 깔고 그대로 앉았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근데 조끼는 좀 그렇지 않아? 안에 입는 건데.”
“난 상관없어. 오늘만 안 쓰고 하면 되니까.”
“그래도. 좀 찝찝할 거 같아서 안 되겠어.”
“알겠어.”
“으음...”
송선우가 읏, 하고 소리 내며 일어나고는 백지수의 왼편으로 갔다.
“나도 앉을게 지수야.”
백지수가 고개를 들어 송선우를 봤다.
“가능해?”
“응. 넓잖아.”
“... 어.”
백지수가 엉덩이를 살짝 옮겼다. 송선우가 백지수의 왼편에 앉았다.
“넌 어떡할 거야 온유야?”
“응? 어떡하냐니?”
“계획 같은 거 있지 않아? 언제까지 뭐 하겠다.”
“으음... 그냥 이번년도에는 겁쟁이둘 드라마 촬영하고, 앨범도 하나, 많으면 둘 정도 낼 생각 있어.”
송선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지수도 흥미가 돋은 듯한 눈빛이었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앨범을 두 개 낸다고? 이미 가수인 사람도 앨범은 몇 년에 한 번 내지 않아?”
“옛날에 혼자 멜로디 짜고 곡 써둔 거 있으니까. AOU 엔터에서 버려야겠다는 판단 내리는 거 아니면 그것들 정리해서 내면 최소한 앨범 하나는 충분히 나올 거 같아. 그리고... 어머니 돌아가시고 곡 쓰면 그 감정을 함부로 소모해버릴까 봐 여태 피해오기는 했는데. 이제 다시 시작하면 두 개도 될 거 같아.”
“으응... 그럼 뮤비도 만들겠네? 선공개곡 같은 거 해서?”
“그렇겠지 아마.”
“그럼 뮤비 출연자로 누구 쓸 거야? 세은이?”
웃음이 나왔다. 조금 쑥쓰러웠다.
“조금 그렇지 않아? 이제 막 데뷔했는데 다른 남자애 뮤비 출연하고, 학교 동창인 거 밝혀지고 하다 보면 구설수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런가.”
“응.”
“그럼 나 불러보는 거 어때?”
“응? 찍을 생각 있어?”
송선우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흫. 당연하지. 연기되고 얼굴 되잖아.”
살폿 웃었다.
“그치.”
“... 둘이 신났다?”
백지수가 말했다. 송선우가 히히 웃었다.
“응.”
“...”
백지수가 나를 바라봤다.
“그럼 난 뭐해?”
“베이스 들어가는 곡 있으면 녹음 세션으로 참가하면 되지 않아?”
송선우가 말했다.
“됐어. 내가 그렇게 베이스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잘하잖아.”
내가 말했다.
“아냐. 난 걍 네 옆에만 있을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송선우가 눈웃음 지었다.
“아. 지수 갈수록 귀여워지는데 어떡하지. 나 좀 가르쳐주면 안 돼?”
“아 뭔 소리야. 너 원래 애교 많잖아. 뭘 배워.”
송선우가 백지수를 껴안았다.
“그래도 그렇게 통통 튕기면서 귀여운 건 못하잖아.”
“아 좀. 다 가지려고 하지 마.”
송선우가 흐흫, 하고 웃었다.
“칭찬도 왤케 귀엽게 잘해?”
“그만 좀 해. 얘 좀 떼 봐 이온유.”
“그만해 선우야.”
“흐흫. 그럼 네가 일로 와.”
송선우가 지수를 풀어주고 나를 쳐다보며 팔을 벌려왔다. 오리걸음을 해 가까이 갔다. 송선우가 나를 껴안고 내 몸에 기대듯 해서 체중을 맡겨왔다. 백지수가 뚱한 표정을 짓고 나랑 선우를 바라봤다.
“넌 송선우처럼 대놓고 좋아하고 애교부리는 게 좋아?”
“너도 좋아. 다 좋아. 전에 말하지 않았어?”
“나도 몰라. 그래서, 선호도를 따진다고 하면 뭐가 더 나은데?”
“난 지금 당장은 세상에서 네가 제일 귀여운 거 같은데?”
백지수 피, 하고 소리 냈다. 그러고는 왼손으로 볼이랑 입술을 가렸다. 뭔가 미소 짓는 느낌이었다. 미치도록 귀여웠다.
“됐어 그럼.”
손 때문에 가려져서 백지수 목소리가 조금 웅얼거리는 느낌으로 작게 들렸다.
“응.”
“... 나중에 때 되면 네 집 나와서 완전 내 집으로 와.”
“별장?”
“몰라. 별장 말고 다른 데일 수도 있고.”
백지수가 얼굴에서 왼손을 떼고 나를 쳐다봤다.
“아무튼. 성공할 만큼 하고 그랬으면 아예 나한테 오라고.”
“알겠어.”
“거기에 나도 있는 거지 지수야?”
“어.”
송선우가 히 웃었다.
미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게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을 듯해서 두려웠지만, 곁에 있는 여자친구들이 모두 내게 과분하리만치 좋은 사람들이니 아주 힘겹지만은 않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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