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8화 〉 이런저런 얘기
* * *
송선우가 참치 김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음.”
송선우가 나를 쳐다보며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맛있다 온유야.”
살폿 웃었다.
“고마워.”
“같이 살면 매일 이렇게 해주는 거야?”
“네가 원하기만 하면.”
“흐흫. 근데 힘들지 않아?”
“그렇게 안 힘들어. 그리고 힘들어도 해야지.”
송선우가 눈웃음 지었다.
“온유야.”
“응.”
“넌 무슨 음식 좋아해? 다섯 개만 말해 봐.”
“왜?”
“네가 말한 거만 딱 열심히 배워서 네가 먹고 싶다 할 때마다 해주게.”
살폿 웃었다.
“고마워, 말만으로도.”
“응? 왜, 나 진짜 해줄 거란 말이야.”
“알고 있어. 근데 나 지금 뭐 생각나는 음식이 없어서.”
“으응.”
“네가 아무거나 해줘도 맛있게 먹을 자신 있어. 싫어하는 음식 딱히 없으니까.”
“흐흫... 그래 온유야.”
송선우가 젓가락으로 참치 김밥을 집어서 내 입 앞에 가져다 댔다.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맛있어 온유야?”
“응.”
과묵하게 참치 김밥을 먹던 백지수가 피식 웃고는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희 뭐 해?”
“흫. 그냥 나중에 요리해주고 먹여주는 연습?”
“진짜 웃긴다.”
“괜히 질투나서 그러는 거지?”
“뭐래. 나 온유랑 같이 요리해서 나눠 먹은 적 있거든.”
“응? 진짜 온유야?”
커다랗게 뜬 송선우의 두 눈이 나를 바라봐왔다.
“응. 에그타르트 만들어서 같이 먹은 적 있어. 지수가 만드는 거 내가 옆에서 손만 빌려준 느낌으로.”
“으응...”
백지수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올라간 입꼬리가 귀여웠다.
백지수가 미소된장국을 한 입 마시고 송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우 넌 요리 할 줄 알아?”
“난 뭐 고깃집 알바한 짬이 있으니까... 조금?”
“그럼 된장찌개랑 계란찜 같은 거 해?”
“볶음밥이랑 계란찜 정도 하지.”
“된장찌개는?”
“뭐 하면 하지...”
백지수가 히 웃었다.
“해본 적 없지.”
“아직까지...? 이상하게 해본 적이 없네...”
“그럼 못 하는 거네.”
“아니, 그래도 계란찜 같은 거 잘하니까 상관없어.”
백지수가 여유롭게 빙긋 웃었다.
“그래.”
송선우가 뚱한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진짜 요리 배워서 맛있는 거 해 줄게 온유야. 지수가 해준 에그타르트보다 더 맛있는 거.”
“응. 고마워.”
백지수가 송선우랑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 같이 만들래 온유야?”
“음? 좋아. 근데 무슨 메뉴?”
“몰라. 그건 이따 생각해야지.”
송선우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평소에 요리 배워둘 걸 그랬다.”
“그러게. 왜 안 배웠어.”
백지수가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신기하게도 그 속에 놀리는 기운이 풍겨있었다.
송선우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선우도 진짜 귀여웠다.
지수랑 선우 둘 다 은근 유치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둘 다 거기에서 오는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참치 김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근데 지수가 맨날 나한테 요리를 시켜서 정작 지수가 요리하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던 거 같은데. 얼마나 자신이 있는 걸까. 요리 실력이 궁금했다. 왠지 어쩌면 요리를 되게 잘하는 건 아닌데 그냥 지금 선우를 골려주려고 허풍을 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수가 양손으로 미소된장국 그릇을 들고 한 입 마셨다. 지수랑 눈이 마주쳤다. 지수가 그릇을 내려놓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왜?”
“아니 그냥.”
계속 지수를 보는데 뭔가 할 말이 생길 것만 같았다.
백지수가 참치 김밥을 집어 입에 넣고 씹다가 나를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백지수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할 말 있음 해애.”
목소리가 애교스러웠다. 귀여운 투정이었다.
송선우가 싱긋 웃었다.
“뭐야? 지금 지수 애교부린 거야?”
“응.”
“진짜 너무 귀여운데? 어떡해야 돼?”
“뭐래.”
백지수가 툭 말했다. 송선우가 히히 웃었다.
“아 진짜 지금은 귀여움 수준이 범접불간데? 유은이랑 나란히 놔도 이기는 거 아냐?”
백지수가 픽 웃었다. 웃는 모습을 보니 불현듯 머릿속으로 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백채영이었다. 머리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지수야.”
백지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너 친척 중에 백채영이라는 사람 있어?”
“백채영? 몰라? 누군데?”
“그냥 내가 계약서 사인한 데 대표님.”
“어? 어디 계약했는데?”
“그니까. 너 계약한 데 있다는 거 지금 처음 듣는 거 같은데?”
송선우가 말했다.
“AOU 엔터.”
“아 거기 배우 많은 데 아냐?”
“어, 맞아.”
“연기하려고?”
“연기도 할 수 있음 하고.”
“으응. 연기이...”
선우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이었다. 그냥 생각을 이어나가게 잠시 내버려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백지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친척인지 아닌지 모르는 거야 지수야?”
“응... 한번 아빠한테 물어볼게. 지금 아빠도 점심시간일 테니까.”
“응. 고마워.”
“어.”
백지수가 폰을 켜서 빠르게 텍스팅했다.
참치 김밥을 입에 넣고 씹었다. 송선우가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입을 벌렸다. 젓가락으로 참치 김밥을 집고 송선우의 입에 넣어줬다. 송선우가 미소 짓고 우물거렸다. 귀여웠다.
“저녁 만들 때 나도 옆에 같이 서서 하는 거 배워도 돼?”
“응.”
송선우가 고개를 돌려 백지수를 바라봤다.
“그래도 돼 지수야?”
“... 그냥 쉬는 게 좋지 않아? 옆에 서있기만 하는 거는 좀 재미없고 그럴 건데.”
“아냐 괜찮아. 배우는 거인데 뭐 하는 재미는 떨어져도 머리에 넣는 재미는 있을 거구.”
“... 그럼 맘대로 해.”
“흐흫. 고마워 지수야.”
“응.”
백지수의 폰이 울렸다. 백지수가 폰을 내려봤다.
백지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문자야?”
“응. 그니까, 백채영이란 사람이 나랑 오촌이래. 내 할아버지의 남동생의 딸.”
“아아.”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바로 물어보고 알려줘서.”
“응.”
송선우가 왼손으로 턱을 괴고 듣다가 백지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오촌인데 왜 몰랐었어?”
백지수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할아버지 남동생 딸이 누구인지를 어케 알아? 넌 외조부모님 형제자매 아들딸 누군지 다 알아?”
“아니, 그건 아니지.”
“거봐.”
“미안.”
“그래. 봐줄게.”
송선우가 눈웃음 지었다.
“너 오늘 진짜 귀여움 피크 찍는 거 아니야?”
“...”
백지수가 양손 엄지로 폰 화면을 빠르게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직 피크 아니야.”
송선우가 히히 웃었다.
“아,오늘은 내가 지수한테 너무 밀린다.”
“밀리면 오늘은 내가 온유 독점하게 해줄 거야?”
“그거는 아니지.”
“그러면서 뭐가 밀린다고.”
“흫. 미안해.”
“됐어.”
백지수가 폰을 끄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백지수를 바라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근데 폰으로 뭐 했어?”
“그냥 아빠한테 알려줘서 고맙다고 문자 했지.”
“으응.”
문득 백도식이 지금 내가 지수랑 선우와 같이 있는 것을 보면 나를 죽도록 패리라는 생각이 스쳤다. 위기감에 심장이 순간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아버님이 한번 보러 오겠다거나 말씀하신 적 없지?”
“응. 저번에 불시에 온 게 되게 의외였던 거지 평소에는 별로 간섭도 안 하고 풀어줘.”
“좋은 아버지네.”
“그니까. 그래서 너 진짜 더 조심해야 돼.”
“그래야 될 거 같아.”
송선우가 히 웃었다.
“그러고 보니까 온유 진짜 사리면서 살아야겠다.”
“그니까.”
백지수가 짧게 맞장구 했다. 말로 두드려 맞는 느낌이었다.
“조심할게.”
“흐흫. 그래.”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진짜 우리 아빠한테 언제 한번은 맞게 되겠다. 우리 오빠한테도.”
“음? 왜?”
송선우가 물었다.
“아니, 나중에 얘가 나 임신시키고 너나 다른 여자도 임신시켜서 다 출산하면 얘가 아빠로 출생신고 되는 거잖아.”
“그렇겠지?”
“그럼 어떻게 되겠어. 그건 못 덮으니까 주변 사람들 다 알게 되고, 얘는 어디 뼈 하나쯤은 깨질 정도로 맞겠지. 말로든 육체적으로든.”
“흐응... 온유 맞음 안 되는데.”
“얘가 불러들인 운명이니까 뭐.”
씁쓸하게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언젠가 두들겨 맞아야 했다.
송선우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중동 갈까 온유야?”
“아니 그건 내가 싫어.”
백지수가 말했다.
“한국에 있어야 돼.”
“근데 우리나라 중혼 안 되잖아.”
송선우가 말했다.
“몰라. 이온유 얘가 다 알아서 방법 궁리하고 해야지. 뭐 한 명씩 결혼해서 애 낳고 이혼하고 또 결혼하고 그 사람이랑 애 낳고. 뭐 어떻게든.”
“으음... 되게 어렵겠다.”
“그니까. 그래도 다 자기가 자처한 거니까, 책임감 있게 잘하겠지.”
백지수가 말했다.
내가 감당해야만 할 미래를 상상하니 어질어질했다.
“그치 온유야?”
백지수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백지수가 눈웃음 지었다.
“믿을게.”
“응.”
백지수가 참치 김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나도 참치 김밥을 하나 입에 넣었다. 이제 참치 김밥이랑 미소된장국이 거의 다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따 저녁은 뭐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강예린이 저녁 초대를 한 게 떠올랐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근데 나 화요일 저녁에 성연이네에서 밥 먹기로 했어.”
“왜?”
송선우가 물었다. 백지수가 김밥을 우물우물 씹으면서 눈살을 찌푸린 채 나를 쳐다봤다.
“성연이 어머님이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보답하겠다고 하셔서. 가 가지고 성연이랑도 좀 얘기하면서 사이 좀 더 개선하고 하려고. 학폭 논란 생기면 성연이한테서 도움받을 수 있게.”
“으응... 치밀하다...”
송선우가 말했다. 백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먹으러 가.”
“응. 고마워.”
백지수가 피식 웃었다.
“이걸로 고마울 게 뭐 있다고.”
성연이한테 거부감이 있을 테니까, 같은 말을 하려다가, 문득 지수가 성연이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걸 선우한테 알려주기 싫어서 고마울 게 뭐 있냐고 하면서 화제를 넘기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측이 맞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일단 넘겨야 할 듯했다. 싱긋 웃었다.
“그렇네.”
다 같이 나머지 음식을 나눠 먹고 2층으로 올라가서 백지수 방 침대에 누웠다. 이번에도 왼편에는 지수가, 오른편에는 선우가 눕고 가운데에는 내가 누웠다. 내 두 팔은 지수랑 선우에게 뺏겨서 베개가 되어버렸다. 선우랑 지수가 자기 폰을 켜서 봤다. 남의 폰을 훔쳐보는 것도 좀 그래서 그냥 눈을 감았다.
“온유야.”
선우 목소리였다.
“응.”
“너 이거 봤어?”
눈을 떴다. 선우가 화면을 보여줬다. 시크네스 기사였다.
“응. 아까 전에 봤어.”
“오. 어떻게? 평소에 기사 같은 거 읽어?”
“아니. 크롬 켰는데 위쪽에 떠서 봤어. 너는 기사 자주 봐?”
“자주는 아니고, 인터넷으로 기사 살피는 게 아빠 습관이라서 나한테도 조금 옮아 가지고 가끔 보기는 봐. 근데 너 기사 봤음 티저도 본 거지.”
“그치.”
“그래도 일단 같이 보자.”
“응.”
선우가 유튜브를 틀고 시크네스 뮤비 두 번째 티저 영상을 눌렀다. 세은이 얼굴만 보였다.
“세은이 진짜 엄청 예쁘다...”
미소 지어졌다. 송선우가 내 얼굴을 보고 픽 웃더니 오른손 검지로 내 오른 볼을 쿡 찔렀다.
“진짜 욕심쟁이.”
“미안.”
“할 말 없어서 미안 이러구.”
멋쩍게 웃었다. 송선우가 폰을 끄고 자기 뒤쪽에 대충 내려놓은 다음 오른팔로 나를 안았다.
“세은이 아이돌 된다 생각하니까 갑자기 안 믿겨. 그냥 가까운 친구에서 뭔가 훌쩍 멀리 넘어간 거 같애.”
“으응...”
오른손으로 송선우의 옆구리를 쓸었다.
백지수가 폰을 협탁에 내려놓고 왼팔로 내 배를 안았다. 그러고는 내 품 안으로 들어와서 큰 가슴이 짓뭉개질 정도로 밀착해오며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좀 자고 이따가 깨면 할 거야.”
“응...”
눈을 감았다. 오늘도 어제처럼 하려면 조금이나마 쉬어둘 필요가 있었다.
양옆에서 지수랑 선우가 쌔액쌔액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맞닿은 둘의 몸과 위를 덮은 이불은 따스했다. 점점 나른해졌다. 가없이 편안했다. 서서히 잠이 몰려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