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화 〉 백지수의 임신 플랜
* * *
백지수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쳐다봤다.
“다 먹었어?”
왠지 다 먹었다고 해야 할 거 같은데.
송선우가 어묵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왜 그래, 온유 부담되게. 먹고 싶은 만큼 먹게는 해줘야지.”
또 말싸움이 시작되기라도 하는 건가.
“부담 준 거 아냐. 그냥 물어본 거지.”
송선우가 흥, 하고 웃었다.
“그래?”
“어.”
백지수가 나를 올려봤다. 질문에 대한 답을 듣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뭐 더 먹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일단은 백지수에게 맞춰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다 먹었어 안 먹었어?”
“다 먹었어.”
“그럼 우리 빨리 올라가자.”
“응. 근데 일단 좀 치우고 가자.”
“그래.”
백지수랑 같이 쓰레기를 치우고 싱크대에 컵을 놓은 다음 2층으로 올라갔다. 백지수 방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가서 선반에 폰을 두었다. 먼저 칫솔에 치약을 짜둔 백지수가 칫솔을 입에 물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다가가서 내 칫솔을 잡아 들고 백지수 앞에 들이밀었다. 백지수가 치약을 짜줬다. 나도 입 안에 칫솔을 집어넣었다.
백지수가 양치질을 하면서 세면대 앞에 있는 큰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봤다. 백지수가 입속에 들어있는 양칫물을 뱉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잠깐 쉬고 바로 할 거야.”
나도 양칫물을 뱉었다.
“응.”
“... 너 선우랑 했다고 좀 약해졌다거나 하는 느낌 들면 더 짜낼 줄 알아.”
피식 웃었다.
“안 그럴 거야.”
칫솔을 다시 입 안에 넣었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근데 더 짜내는 건 해도 상관없어.”
백지수가 눈웃음 지었다.
“바라는 거 같다?”
“맞아.”
백지수가 픽 웃고 칫솔을 물었다. 양치질하는 속도가 빠른 게 아무래도 나를 빨리 따먹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양치를 다 하고 백지수가 샤워기를 잡았다. 뭐하는가 싶었는데 머리에 물을 끼얹는 게 머리를 감는 거였다. 샴푸까지 빠르게 한 백지수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그냥 단순히 머리를 씻는 것뿐인데 마냥 귀여웠다. 미소를 머금은 채 가만히 지켜보다가 같이 화장실에서 나와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백지수가 오른편에서 왼팔로 내 허리를 감싸 안고 내 몸에 기대어서는 체중을 내게 맡겼다. 나도 오른팔로 백지수를 안았다.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내 오른 허벅지를 약하게 착착 내려쳤다.
“야.”
“응?”
“이따 어디에서 할지 네가 말해 봐.”
“그냥 침대에서 하는 게 좋지 않아?”
“침대?”
“응.”
“근데 선우 골려줘야 되는데 방에서 하는 건 좀 별로지.”
웃음이 나왔다.
“너무 사탄 아냐?”
“그럼 주변 친구 세 명 따먹고 그 세 명이랑 다 사귀는 것도 모자라서 새엄마까지 따먹는 너는 사탄 중의 사탄이야?”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해.”
“어.”
백지수가 오른손을 내 바지 안으로 슬쩍 넣고 팬티를 비끼어서 내 자지를 잡았다.
“나한테 사악하다 프레임 씌우지 마라.”
“응.”
“근데 자지 서 있네?”
“서 있지. 나 네 향기만 맡아도 서.”
백지수가 피식 웃었다.
“존나 파블로프의 발정난 개야 네가?”
픽 웃었다.
“왜 웃어? 나 반 다큐로 말한 건데.”
“표현이 웃기잖아. 그리고 반 다큐면 반은 웃으라고 한 말 아냐?”
“그치. 근데 막상 웃는 거 보니까 살짝 괘씸한 맘 들어서.”
“으응...”
“... 괘씸해 진짜.”
백지수가 내 팬티에 집어넣은 오른손을 빼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와이셔츠를 벗었다.
“너도 빨리 벗어.”
“알겠어.”
티셔츠랑 바지를 벗었다. 지금 바로 섹스를 하기 시작하면 송선우는 언제 찾아올까. 얘기라도 나눠놓아야 했을 건데 지수가 계속 붙으려 드는 틈에 얘기나 문자를 할 방도가 없었다.
백지수가 돌핀팬츠를 벗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뭐 입어줄까?”
“음.”
송선우가 올라오면 아마 지수의 몸을 애무할 텐데. 만약 몸을 덮는 옷가지가 있다면 걸리적거릴 거였다. 가능한 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면적이 넓어야 하니 아무것도 입지 말게 해야 할 듯했다.
“나 그냥 너 알몸인 게 좋아.”
백지수가 피식 웃었다.
“알겠어 변태 새끼야.”
백지수가 브라랑 팬티만 입은 상태로 침대로 올라가 이불을 덮었다. 얼마 안 있으면 송선우랑 백지수를 동시에 따먹는다는 생각에 미치도록 흥분됐다.
팬티도 벗어버리고 침대로 올라가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백지수가 오른팔을 뻗어 나를 안으면서 히히 웃었다. 송선우가 난입해와서 3p를 하게 될 것을 전혀 상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백지수는 은근 순진무구한 면이 있었다.
“나 근데 잠깐만 화장실 가도 돼? 소변 마려운데.”
“아까 양치할 때 싸지.”
“지금 마려워져서. 미안.”
“알겠어. 빨리 갖다 와.”
“응.”
화장실로 들어가서 선반에 둔 폰을 오른손에 들었다. 별 생각 없이 놓아뒀던 건데. 상당히 절묘했다.
변기 커버를 올리고 방뇨했다. 발기가 되어 있어서 줄기의 압력이 거셌다. 문자 앱을 켠 다음 송선우를 찾았다.
[선우야.]
[응?]
바로 답장이 왔다.
[언제 올 거야?]
[글쎄?]
[그냥 빨리 갈까?]
[아냐 너무 빨리 오지는 말고]
[한 35분에서 40분 정도 있다가 와줘.]
[응응]
[지수 버둥거리지 않게 잘 잡아줘]
[알겠어 최대한 찍어누르는 포지션으로 할게.]
[응]
[이제 나 폰으로 소통 못 해]
[알겠어. 밖에서 타이밍 기다리고 적당히 맞춰서 들어갈게]
[응]
후배위나 정상위로 해야지.
물을 내리고 변기 커버를 다시 원상 복구한 다음 폰을 다시 선반에 놓았다. 샤워기를 틀어 자지에 물을 끼얹었다. 바디워시를 묻혀 빠르게 씻은 다음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기대감이 너무 커서 긴장감마저 들었다.
세탁기로 수건을 대충 던져 넣은 다음 화장실 문을 열고 침대로 걸어갔다. 이불 속에 있는 백지수가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너 뭐 오줌 수백 년 참았다가 싼 거야?”
피식 웃었다. 이불 안으로 들어가서 왼팔로 백지수를 안았다. 백지수는 어느새 속옷을 다 벗었는지 알몸인 상태였다. 언제든지 섹스할 준비를 마친 듯한 느낌이라 존나 꼴렸다.
“별로 안 참았어.”
“... 참으면 병 드니까 참지 마.”
“알아. 그리고 안 참았다니까.”
“참긴 참은 거잖아, 별로 안 참았다고 했으니까.”
“그냥 화장실 간다고 말하는 때만 잠시 참았어.”
“으응...”
백지수가 그제야 오른팔을 뻗어 나를 마주 안았다. 그러고는 꿈틀거리며 내게 가까이 와 몸을 밀착했다. 백지수의 크고 부드럽고 말랑한 가슴이 짓뭉개져 왔다. 행복감이 들었다. 남자는 참 단순하구나. 느닷없고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백지수가 눈을 감은 채 이마를 내 가슴 위쪽에 댔다.
“한 오 분 정도만 껴안고 있자...”
“응, 좋아.”
백지수의 머리에 코를 대고 눈을 감았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머리카락에서 송선우의 머리 향이랑 같은 향이 났다. 엄밀히 말하면 원래 지수가 쓰던 샴푸를 같이 쓰는 것이니 지수의 향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거였다.
백지수의 숨결이 주기적으로 가슴을 간질였다. 어떻게 숨 쉬는 것까지 귀엽지. 살짝 신기했다.
“온유야...”
“응?”
“오 분 말고 십 분만 딱 이러고 있을까...?”
“난 좋아. 마음대로 해.”
“으응...”
낮은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깊은 잠에서 금방 깨서 비몽사몽할 때 낼 법한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품에 안긴 백지수가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졸려 지수야?”
“몰라... 막 졸린 건 아닌데, 이러고 있다 잘 수 있을 거 같아...”
“그럴 때 있지. 주말인데 약속 없고 그러면 그냥 막 누워 있다가 잠 와서 또 자고.”
“그니까...”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데 당장은 정수리에밖에 해줄 수 없었다.
그냥 정수리에라도 뽀뽀할까? 잠시 누군가 내 정수리에 쪽 하고 입술을 댄다고 상상했다. 평소에 그랬다면 모를까 갑자기 한다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할 것 같았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거였다.
“있잖아 온유야...”
“응. 말해.”
“... 임신하는 거, 언제했음 좋겠어...?”
“어...?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라... 해야 되는 거잖아 결국에는...”
“그건 그렇지...”
“그니까... 그래서 넌 언제가 좋을 거 같냐구...”
“... 난...”
머리가 안 돌아갔다. 생각해놓은 것도 없어서 답할 말이 궁했다.
근데 진짜 언제가 적기일까. 세은이랑 내가 연예인으로서 하고 싶은 것 이룰 것을 다 이룬 뒤에 하는 것이 가장 옳기는 할 텐데, 그때는 과연 언제일까.
“생각 없어...?”
“일단 당장은.”
“으응...”
“근데 한 이십 대 중반 정도는 되고서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
“왜...?”
“그냥, 그때쯤 돼야 부모가 아닌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거, 즐기고 싶은 거를 그나마 다 했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부모여도 하고 싶은 거 즐기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지 않아?”
“취미 같은 거면 그렇지. 근데 나랑 세은이는 하고 싶은 일이 연예인이니까...”
“으응...”
“너는 무슨 생각 갖고 있었는데?”
“나는 뭐... 그냥 고3 여름방학쯤에 애 가져서 스무 살 되면 바로 낳는 거...? 그다음부터는 연년생으로 쭉...”
미친.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응... 별로야...?”
“아니, 별로라는 건 아닌데...”
백지수가 내 품속에서 히 웃었다. 순간 등줄기에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별로 아님 그렇게 하면 되잖아...”
세상에. 너무 충격적이어서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의문만 생겼다.
“열아홉 살에 가져야겠다 생각한 이유가 뭐야?”
“그냥... 최대한 빨리 갖고 싶은데 미성년자인데 낳는 건 좀 그렇고... 그럼 열아홉 살 여름이나 가을쯤에 가져서 스무 살에 낳음 되겠다... 대충 그런 사고 흐름...?”
어질어질했다.
“그리고 또 애 가지면 생리 안 하니까... 수능 같은 거 볼 때 주기 계산 안 해도 되는 이점도 있고 그래서...”
진짜 미쳤다. 살짝 혼미했다.
“싫어...?”
“... 막 싫은 건 아닌데, 난 아직 내가 말했던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흐응...”
백지수가 머리를 뒤로 빼고 내가 벤 베개에 왼 볼을 대서 눈을 마주쳐왔다.
“그럼 딱 스무 살 된 해 일월에 가져서 시월 십일월쯤에 낳는 거는 어때? 너 올해부터 연예 활동하는 거면 이 년 정도 시간 있으니까 하고 싶은 거 많이 할 수 있잖아.”
“으음... 그래도 좀 아닌 거 같아.”
백지수가 흐응, 하고 콧숨을 내쉬었다.
백지수는 진짜 임신에 진심이구나. 사랑하는 여친이 내 애를 극도로 가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무척 꼴리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살짝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백지수의 플랜에 맞춰서 백지수를 임신시키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상당히 기울여야 할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