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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309화 (308/438)

〈 309화 〉 오디션 후 (5)

* * *

귀찮아서 택시에 올랐다. 폰을 켜 잠금을 해제하고 문자 앱을 열었다. 강예린한테서 온 문자가 있었다.

[온유야 또 문자 보내서 미안한데, 언제 저녁 먹으러 올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전에 성연이가 말했던 것처럼 일해야 하는데 스케줄에 조금 지장이 생기는 게 있어서...]

[부담 주려는 건 아니니까 편히 얘기해줘. 고마워(홍조를 띤 채 미소 짓는 이모티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강예린 같은 사람이 이모티콘을 쓰면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보다 엄청 귀엽게 느껴졌다. 눈살을 찌푸린 채 고민을 거듭하고 이모티콘을 골라서 누른 다음 전송하는 모습이 상상되어서 그런 걸까. 아마 그럴 것 같았다.

내일은 일단 지수랑 선우하고 같이 있어야 할 테니 먹으러 가지 못할 거였다. 월요일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일하는 데 지장을 준 만큼 강예린도 업장을 살펴야 할 테니 하루 정도는 더 텀을 줘야 할 듯했다.

[화 수 목 괜찮을 거 같아요. 어머님이 날짜 정해서 얘기해주세요(홍조를 띤 채 미소 짓는 이모티콘)]

뒤로 가기를 눌렀다. 정지연 기자님한테서 온 문자가 있었다. 뭐 때문에 보내셨을까. 괜히 살짝 긴장됐다. 눌러봤다.

[오랜만이네 온유야. 바빠 가지고 연락 뜸하게 해서 미안해.]

[기사 원고 다 썼는데 메일 좀 알려줄래? 파일 보낼게.]

이준권을 나락으로 보낼 때가 됐구나.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마음이 약간 들뜬 게 설레는 것 같기도 했다. 감사하다고 쓰고 내 메일을 적어 전송했다. 숫자가 금방 사라졌다.

[어 확인했어. 잠깐 기다려봐.]

[네. 감사해요.]

[응.]

[그런데 원고 제가 먼저 봐도 되는 거예요?]

[당연하지. 일단 네가 오케이 해야 띄우는 거니까.]

[감사해요, 편의 봐주셔서.]

[아냐 내가 고맙지. 내가 하고 싶었던 거인데 허락해준 거니까.]

[메일 보냈으니까 확인해봐 봐.]

[네.]

어플을 키고 메일을 열어봤다. 정지연 기자가 보낸 게 맨 위에 떠 있었다. 파일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간략히 정리된 것이었고, 하나는 특보 형식으로 길게 쓴 것이었다.

기사에는 이준권을 제외한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이니셜로만 나와 있었다. 윤가영도 이준권에게 당한 한 명의 피해자처럼 쓰여 있었고, 이수아는 Y의 딸 정도로만 서술되어 있었다. 이혼 전문 변호사의 인터뷰도 있었고, 이준권에게 당했다고 할 수 있는 또 한 사람의 인터뷰도 담겨 있었다. 보아하니 어릴 적에 이준권과 사귀었다가 헤어진 사람인 듯했다.

더 바랄 게 없는 깔끔한 기사들이었다. 다시 문자 앱을 켰다.

[다 확인했어요. 최고예요.]

[고마워. 보람 있네.]

[근데 기사 두 개쓰신 거는 이유가 뭐예요?]

[사람들이 너무 긴 기사는 잘 안 보고 하니까.]

[아 그럴 수 있겠네요.]

[응.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올릴 거야. 아마 내일일 거 같아.]

[네.]

[응. 언제 한 번 밥이라도 먹자 온유야. 누나가 사줄게.]

[네 감사해요.]

[응. 나중에 보자.]

[네. 기사 써주셔서 진짜 감사해요.]

[안 고마워해도 돼. 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아무튼 시간 나면 만나자.]

[네.]

뒤로 가기를 눌렀다. 심장박동이 거세졌다. 두려움과 묘한 기대감이 뒤섞여서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만 같았다.

“기사님 저 창문 좀 열어도 돼요?”

“네 여세요.”

택시 기사가 말했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바라봤다.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속으로 5초를 세고 도로 창문을 닫은 다음 폰을 내려봤다. 강예린에게서 새로 온 문자가 있었다. 눌러서 확인했다.

[난 언제든 괜찮아 온유야. 네가 편한 때로 골라줘.]

왠지 서로 계속 미루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떡해야 강예린이 식사일을 정하게 할까. 잠깐 고민하고 타이핑했다.

[어머님이 일정 맞추실 수 있게 어머님이 편할 때로 정해달라고 한 거예요. 제가 정하면 조금 곤란해지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숫자는 사라졌는데 작성 중 표시는 바로 뜨지 않았다. 택시가 커브를 돌 때쯤 작성 중 표시가 떴다.

[화요일이 좋을 거 같아. 내 편의 봐줘서 고마워 온유야.]

[그때 먹고 싶은 거 있니? 최대한 맛있게 해서 준비해둘게.]

딱히 먹고 싶은 건 없는데.

[성연이한테 물어서 성연이가 먹고 싶다 하는 거로 정해주세요. 저는 다 잘 먹어서 뭐든 상관없어요.]

[그래도 너 식사 대접해주는 거인데 네가 먹고 싶은 거로 정해야 하지 않니?]

[저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어서요. 저녁 성연이랑 어머님이랑 같이 먹으면서 얘기할 거인데, 그러면 성연이가 좋아하는 거 먹으면서 서로 기분 좋게 대화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잠깐 답장이 안 왔다. 이윽고 작성 중 표시가 나오고 문자가 왔다.

[너 정말 사려 깊은 아이구나.]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나한테 사죄하러 유치원으로 찾아온 날부터 나를 되게 좋게만 봐주시는 느낌이었다.

[미안해 온유야.]

왜 갑자기 미안하다고 하시지?

[아뇨, 미안하실 일이 어딨다고 그러세요.]

[아니 그냥, 너랑은 갈등 일으키기 어려울 텐데 성연이랑 싸우게 된 거니까... 성연이가 많이 잘못했던 거구나 실감 나서. 그게 갑자기 미안해져 가지고.]

[그때 저도 많이 잘못했어요. 성연이가 한 것보다 훨씬 더 잘못했어요.]

[그래도 너는 먼저 사과해주고, 성연이 다시 잘 지낼 수 있게 챙겨줬잖아.]

[다 성연이가 먼저 잘못했던 거인데... 진짜 미안해. 또 고맙고.]

[사죄는 어머님이 먼저 해주셨잖아요. 저는 그다음으로 한 거고요. 고마워하실 거 없어요. 미안하실 이유도 없고요.]

숫자는 사라졌는데 답장이 또 오지 않았다. 많이 고민하고 문자를 보내시는 건가? 상당히 신중한 성격이신 듯했다. 딱 강성연과 관련되었을 때만 다혈질로 변하시고. 그런데 자녀와 관련한 일에 다혈질이 되는 것은 세상 모든 부모님이 가진 특징일 것이었다.

뒤늦게 작성 중 표시가 뜨고 답장이 왔다.

[나한테 정말 바라는 거 없니? 진짜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어서 그래.]

피식 웃었다.

[화요일에 저녁 대접해주시잖아요. 맛있는 거로요.]

[아니 그거 말고. 좀 큰 거 있잖아.]

[저 진짜 괜찮아요. 뭐 안 해주셔도 돼요.]

[알겠어. 나중에라도 좋으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줘. 뭐라도 안 해주면 내 마음이 무거워져서 못 견딜 거 같아.]

난 진짜 괜찮은데.

강예린이랑 하는 대화는 자꾸만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알겠어요. 나중에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감사해요.]

[응. 이따 성연이랑 얘기해서 메뉴 추린 다음에 너한테 또 문자 보낼게. 그거 중에서 골라 가지고 말해줘.]

[화요일에 보자(홍조를 띠고 미소 짓는 이모티콘)(홍조를 띠고 미소 짓는 이모티콘)]

[네(입꼬리를 올려 미소 짓는 이모티콘)(입꼬리를 올려 미소 짓는 이모티콘)]

뒤로 가기를 누르고 백지수랑 송선우에게 나 지금 가고 있어, 라고 문자 보냈다. 곧장 둘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래서 지금 어딨는데?]

[알겠어. 기다리고 있을게 온유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자친구 두 명을 동시에 보러 간다는 게 갑자기 실감이 나서 실소가 나온 거였다.

한편으로는 내가 진짜 쓰레기 새끼구나 하는 생각에 입 안이 씁쓸했다. 내가 이준권이랑 다른 사람이려면 결코 모자람 없이 사랑해주어야 할 거였다.

백지수의 문자를 먼저 누르고 타이핑했다.

[나 택시 타고 가고 있어. 어딘지는 잘 모르겠어.]

송선우 문자를 봤다.

[응. 지금도 지수랑 같이 있는 거지?]

[응.]

백지수한테서 답장이 왔다. 눌러서 확인했다.

[올 때 아이스크림 이것저것 많이 사 가지고 와. 초코 들어간 거로.]

[알겠어. 그것 말고는 뭐 필요한 거 없어?]

[선우 내보낼 방법이나 궁리해봐.]

[그건 조금]

[그건 조금 이러고 있네]

[와서 혼날 준비나 해라]

[네]

그러고 보니까 오늘이 지수가 생리 끝났다고 존나 따먹어준다고 했던 날이었나. 살짝 무서웠다.

그나저나 지수랑 선우가 서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스러웠다. 어차피 나중 되면 다 같이 살게 될 것 같은데 지수가 이대로 계속 밀어내게 할 수는 없었다. 세은이랑 윤가영도 함께 해야 하니까.

아니 어쩌면 지수는 그 나중을 염두에 두고 지금이나마 나를 독점하려는 것일 수 있었다. 선우만큼은 아니지만, 둘이서만 오붓하게 보낸 시간이 짧았으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지수랑 선우한테 많이 미안했다. 긴 시간 함께하면서도 따뜻하게 대한 적이 적었던 김세은한테도 미안했다.

나는 매일 매일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할 거였다.

송선우한테서 문자가 왔다.

[나 오늘 지수랑 뭐 했는지 알아?]

[뭐 했는데?]

[영화 보고 서로 껴안고 낮잠 잤어.]

피식 웃었다.

[네가 껴안고 잔 거지]

[응. 지수 껴안고 있기 되게 좋더라.]

[근데 이 말 내가 언제 한 번 했던 거 같은데.]

[나도 네가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 들어봤던 거 같아]

[그치?]

[뭐 암튼. 나 지수랑 사이좋아지려고 되게 노력했으니까 나 보면 많이 아껴줘야 돼.]

[알겠어 이따 봐]

[응 사랑해(미소 짓는 이모티콘)]

[나도 사랑해]

[웅]

절로 미소 지어졌다. 지수한테도 사랑해, 라고 문자 보냈다.

[나도 사랑해]

나는 진짜 복에 겨운 놈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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