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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307화 (306/438)

〈 307화 〉 오디션 후 (3)

* * *

김민준이 혼란스러운 듯 눈을 굴리다 자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을 잡고 한 모금 마셨다.

이수아가 말없이 케이크를 입에 넣고 계약서를 훑는 데만 집중했다. 윤가영도 이수아 옆에서 계약서를 보다가 생크림 케이크를 한 입 하고는 나를 쳐다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온유야 너도 먹어. 네가 주문한 거잖아.”

“알겠어요.”

포크를 들고 치즈 케이크를 한 입 했다. 커피랑 접시를 다 비워가면서 계약서 조항들을 찬찬히 훑었다. 접때 보았던 것보다 조건이 더 좋은 느낌이었다. 독소조항이라 할 만한 것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작게 진동이 울리는 게 느껴졌다. 김민준이 왼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고 화면을 켜서 보았다.

“온유 학생이랑 수아 학생.”

김민준이 조용하게 소리 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바라봤다. 윤가영이랑 이수아도 김민준을 쳐다봤다.

“대표님이 보자고 하시네요.”

윤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진짜요...?”

“네.”

김민준이 답했다. 이수아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막 치즈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었다.

남은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다 마셔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민준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 벌컥벌컥 마셔버리고 잔을 내려놓았다. 윤가영이랑 이수아도 일어났다.

“가시죠.”

김민준이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윤가영이랑 이수아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주억였다.

김민준이 앞장서서 걸었다. 다 같이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면서 몸이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긴장됐다. 이수아는 어떨까. 고개를 돌려봤다. 별로 긴장한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윤가영이 더 긴장된 듯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는 것부터 양손을 깍지끼고 맞잡고 있는 것까지 다 떨고 있는 사람 특유의 동작이었다. 왠지 면접 보기 전인 사회초년생처럼도 보였다. 엄청 귀여웠다. 소리 없이 싱겁게 웃었다.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돌려 김민준도 보았다. 왠지 모르게 김민준도 긴장한 듯 보였다.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있어서 그런가. 아님 그냥 기분 탓인가. 추측만 하기보다는 속 시원하게 물어보는 게 나을 듯싶었다.

“대표님은 어떤 분이에요?”

“네?”

김민준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아. 제가 많이 뵌 적이 없어서 어떤 분이다 말하는 건 조금 그런데, 겉보기보다는 친절한 분이에요. 재능 있는 분들 좋아하고. 별걱정 안 해도 돼요.”

걱정이라는 단어를 꺼내니까 왠지 더 무서워지는데. 일단 지레 겁먹기보다는 직접 봐서 무서워해야 할 듯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마음가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김민준이 멋쩍게 웃었다. 쭉 상승만 하던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니 문이 열렸다. 하얀 복도가 보였다.

“나가시죠.”

김민준이 말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네, 라고 답하며 뒤따라 걸어갔다. 이어서 윤가영이랑 이수아도 나왔다. 김민준과 나란히 서서 발을 움직였다. 볕이 잘 들고 트인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첫인상은 고즈넉하다는 거였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가.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뭐 때문이라고 집기가 뭐했다. 그저 아리송했다.

“층 하나가 다 대표실인 거예요?”

윤가영이 물었다. 김민준이 고개를 돌려 윤가영을 바라봤다.

“대표실은 저기 보이는 큰 방 안이에요. 이 층 자체는 대표님 개인 공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아. 이게 답인 모양이었다. 대표의 개인 공간. 그리 생각하고 보니 달리 보였다. 영화를 보기 좋을 듯한 초대형 티비의 맞은 편에 기다란 소파가 있고, 그 가운데에 러그가 깔려있는 곳부터, 옷장이랑 서재까지 있었다. 심지어는 싱크대랑 인덕션이 있어서 주방으로밖에는 안 보이는 공간도 있었다. 입을 열었다.

“집처럼 쓰시는 건가요?”

“네 아마 그런 느낌인 거 같아요.”

김민준이 답했다. 윤가영이 작은 목소리로 와, 하고 감탄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요?”

“그냥, 뭔가 되게 좋아보여서...”

살폿 웃었다. 김민준이 대표실 문 앞에 멈춰 섰다.

“노크할게요.”

“네.”

김민준이 오른손으로 대표실 문을 노크했다.

“김민준 실장입니다.”

“들어와요.”

로우 톤의 여자 목소리였다. 목소리만으로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젊은 느낌이었다.

김민준이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따라서 들어갔다. 듀얼 모니터에 노트북도 하나 있는 테이블 앞에 있는 편해 보이는 의자에 눈매가 날카로운 여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언뜻봐도 높은 사람이었다. 김민준이 고개 숙였다. 나도 급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윤가영이랑 이수아도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귀에 웃음 소리가 들렸다. 대표라는 이름에 대한 선입견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어딘가 우아한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아니 그냥 목소리가 우아한 거였다. 고개를 들어 여자를 바라봤다. 하이 포니테일에 흰 셔츠와 검은 바지, 그리고 차콜 그레이 트렌치코트 차림을 하고 있었다. 외모부터 옷 입은 것까지 다 고학년인 대학생 아님 갓 학사모를 쓴 사람 정도로 젊어 보였다. 나이가 궁금했다. 눈을 굴려 명패를 보았다. 백채영이라 쓰여 있었다.

백채영이 입을 열었다.

“좀 가까이 와서 소파에 앉아요.”

“네 알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답했다. 김민준의 눈치를 보면서 함께 나아갔다. 윤가영이랑 이수아도 같이 걸어왔다.

나 먼저 소파에 앉았다. 윤가영이 내 왼편에 앉고 이수아가 내 오른편에 앉았다.

김민준이 다른 소파에 앉고 백채영을 쳐다보았다.

백채영이 코트를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은 자리에서 눈을 마주치려면 고개를 꽤 들어야 했다. 백채영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구두를 신고 있는지 또각또각 소리가 들렸다. 장신에 도도한 느낌까지 드는 게 모델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백채영이 가장 푹신해 보이는 1인 소파에 앉고는 윤가영을 바라봤다.

“윤가영 씨 맞으시죠?”

“네 맞아요...!”

백채영이 빙긋 웃으면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오른손을 뻗었다. 윤가영이 양손을 뻗어 백채영의 오른손을 잡고 손을 흔들었다.

백채영이 말없이 악수를 끝내고 시선을 돌려 나, 윤가영, 그리고 이수아의 면면을 보았다.

“다들 언제 보나 했어요. 특히 온유 학생.”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느껴졌다.

“저요?”

“네. 여기에 같은 이름 가진 사람 또 있어요?”

“아뇨. 저밖에 없죠.”

백채영이 눈웃음 지었다. 여유로움이랑 수줍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젊음이 가지는 순수함이랑 연륜이 가지는 침착함을 동시에 지닌 사람인 듯했다.

“팬이에요, 개인적으로. 빨리 앨범 나와서 한번 들어볼 수 있었음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멋쩍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백채영이 싱긋 웃었다.

“낯가림 좀 심한가 봐요?”

“그냥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아서요...”

“으음. 그럼 낯가림 같은 건 없는 거예요?”

“조금은 있는 거 같아요.”

“근데 오늘 연기 오디션 봤잖아요? 낯가림 있음 연기하겠다는 결심 내기 좀 힘들었을 건데. 무슨 이유라도 있어요?”

순간 이수아를 흘깃 봤다. 곧바로 백채영을 바라봤는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백채영이 입을 열었다.

“여동생분이랑 관련 있어요?”

“조금 있어요.”

“어떻게 관련되는데요?”

“그냥 오디션도 수아 따라갔다가 우연히 기회 얻은 거고, 수아가 이번에 같이 연기했음 좋겠다고 해 가지고 한 거예요.”

“그럼 수아 없었으면 안 했을 거예요?”

“네, 아마도 그랬지 않을까요.”

“으응...”

백채영이 몸을 뒤로 물리고 소파에 등을 묻었다.

백채영의 시선이 이번에는 이수아를 향했다.

“오빠랑 되게 사이가 좋은가 봐요. 수아 학생은.”

이수아가 빙긋 웃었다.

“네. 좀 많이 친해요.”

백채영이 눈웃음 지었다.

“근데 오빠가 남자 주인공 역하면 조금 그럴 것 같지 않아요? 몰입이 안 된다든가.”

“아뇨,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음, 자신감 되게 좋네요.”

백채영이 오른손의 네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다다닥 두드렸다.

“연기를 되게 잘하니까 그럴만해요.”

“수아 연기하는 거 보셨나요?”

윤가영이 물었다.

“수아 학생 오디션 영상 여러 번 봤어요. 오늘도 두 번 봤고.”

백채영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온유 학생은 수아 학생이랑 비교하면 연기 어느 정도 하는 거 같아요?”

“제가 얼마나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수아가 훨씬 잘하는 거 같아요. 체감하기로.”

“아냐, 오빠도 잘해 되게.”

백채영이 살폿 웃고 윤가영을 바라봤다.

“남매가 우애가 돈독해서 되게 좋으시겠네요.”

윤가영이 멋쩍게 웃었다.

“그쵸...”

“별로 안 좋으세요?”

“아뇨...? 좋죠 당연히...”

“농담이었어요. 암튼, 계약서는 다 보셨어요?”

“아뇨 저는 아직...”

“수아 학생이랑 온유 학생은요?”

“저도 아직 다 안 봤어요.”

이수아가 답했다.

“근데 말씀 편히 해주셔도 돼요. 저보다 엄청 많이 언니이신 거 같은데...”

백채영이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래. 근데 나 나이 별로 안 많아.”

“몇 살이신데요?”

“음, 네 오빠랑 열세 살 차이.”

“그럼 저랑은 열다섯 살 차이인 거잖아요.”

“그치. 내가 많이 언니인 건 맞네. 인정할게.”

김민준이랑 윤가영의 안색이 안 좋았다. 느낌이 안절부절못하는 듯했다. 나도 걱정됐다. 이수아는 뭔 생각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는 소속사의 대표님한테 나이 드립을 치는 걸까. 이해가 안 됐다. 그래도 아줌마라고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백채영이 나를 쳐다봤다.

“저 그럼 온유 학생한테도 말 놓아도 돼요? 많이 누나니까.”

“아, 네. 편히 말해주세요 누나.”

백채영이 살포시 웃었다.

“그래. 지금 시간 있으면 이 자리에서 계약서 다 읽어봐. 맘에 안 들거나 이해 안 되는 데 있으면 얘기하고. 만약 다 맘에 들면 사인해도 좋고.”

“네.”

“온유야 나도 같이 보자.”

윤가영이 내 왼팔에 착 달라붙었다.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리고 윤가영을 보다가 자기 계약서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 자리에서 자기 엄마에게 견제라도 하는 것처럼 무어라 지적하는 것은 아무리 이수아라고 해도 힘든 모양이었다.

“어디까지 보셨는데요?”

“나 지금 이전 장.”

“네.”

앞장으로 넘기고 같이 봤다. 옆으로 보이는 윤가영의 얼굴이 엄청 해맑았다.

이래서 이수아가 의심을 하지. 그래도 꾸짖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혼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기에는 너무 귀여운 사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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