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아니 나 진짜 어떡해야 하지 (5)
* * *
정이슬이 서유은 왼편으로 가서 쪼그려 앉아 두 팔을 무릎 위에 올렸다. 잿더미가 여전히 머리를 내어주어 서유은의 손길을 느끼며 골골거리고 있었다.
“골골송 되게 친근해야 내는 거 아냐?”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거로 알고 있어요.”
“유은이가 귀여워서 고양이도 친숙하게 느꼈나?”
서유은이 정이슬을 보며 빙긋 웃었다. 정이슬이 싱긋 웃고 백지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잿더미 만져봐도 돼?”
“네 만져 보세요.”
“고마워. 만질게 잿더미야?”
잿더미가 냐아, 울었다. 정이슬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거 허락이야 부정이야?”
“허락일걸요?”
“으응.”
“언니 봉투 일단 저 주세요.”
송선우가 말했다.
“어? 어.”
정이슬이 오른손을 위로 뻗었다. 송선우가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다시 고개를 내린 정이슬이 오른손 검지로 잿더미의 턱을 살살 쓸었다. 잿더미가 눈을 감은 채 그르릉 거리면서 턱을 점점 위로 치켜세웠다.
“얘 진짜 귀엽다.”
“그쵸.”
“뭐 어떻게 안 애야?”
“그냥 얘가 언제 현관문 앞에서 울길래 문 열어보니까 바로 안에 들어와 가지고 뭐 어떻게 친해졌어요.”
“대박이네 진짜.”
정이슬이 오른손으로 잿더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두 손으로 무릎을 짚어 일어섰다. 서유은도 일어났다. 정이슬이 서 있던 송선우를 쳐다봤다.
“선우 넌 잿더미 본 적 있어?”
“아뇨 저도 처음 봐요.”
“음... 고양이 안 좋아해?”
“좋아해요.”
“근데 반응이 조금 미지근한 거 같아서.”
“그냥 안에 들어가서도 보고 만질 기회 많을 거 같아서요.”
“으응...”
백지수가 고개를 들어 송선우를 쳐다봤다.
“그럼 들어갈까?”
“응.”
“그래.”
백지수가 잿더미를 잡은 채 몸을 일으켰다. 잿더미의 배가 까졌다. 정이슬이 꺄악거리면서 안에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아 얘 진심 너무 귀엽다.”
“근데 귀엽기만 해요 얘.”
“고양이가 귀여우면 됐지.”
정이슬이 고개를 돌려 오른손을 뻗었다.
“선우야 봉투 줘.”
“네.”
정이슬이 분식이 들어간 봉투를 받았다. 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나중에 들어온 송선우가 문을 닫아 잠그고 고개를 돌려왔다. 눈이 마주쳤다. 송선우가 눈웃음 지었다. 소란했던 마음이 순간 잠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같이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이슬이랑 서유은이 같은 줄에 있고 맞은 편에 백지수가 주방 테이블 앞에 앉아서 정이슬이랑 서유은이 각자 로제 떡볶이의 비닐을 뜯고 있었다. 총 다섯 명이라 누가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인지 테이블의 왼편에 의자가 하나가 더 있었다. 백지수의 발치에는 잿더미가 참치캔을 챱챱대며 먹고 있었다. 백지수가 고개를 들어 송선우를 쳐다봤다.
“옆에 와.”
“어.”
송선우가 백지수의 오른편에 앉았다. 왼편에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다 나를 쳐다봤다. 서유은이 나무젓가락을 내게 주었다.
“고마워.”
서유은이 미소 지었다. 자리가 부담스러웠다.
“그냥 먹죠?”
“그래.”
정이슬이 답했다. 백지수가 콜라 뚜껑을 열어 컵들에 따랐다. 정이슬이 핫도그를 하나 꺼냈다.
“지수야 접시 있어?”
“있어요.”
“내가 가져올까?”
송선우가 백지수를 보며 말했다.
“어.”
송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얀 접시를 다섯 개 가져와 각자의 앞에 하나씩 놓았다. 정이슬이 핫도그를 내게 제일 먼저 주고 차차 나눠줬다. 젓가락을 들어 떡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정이슬이 간절한 눈빛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왜요 누나.”
“나 떡볶이 국물에 핫도그 찍먹하고 싶어서.”
“그럼 찍먹해요.”
“근데 그걸 제일 먼저 먹는 특권을 너한테 주고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누나 진짜 애예요?”
“몰라. 빨리 먹어주라.”
“알겠어요.”
핫도그를 들어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었다. 정이슬이 핫도그를 들고 있다가 기다렸다는 듯 떡볶이 국물에 찍어 한입을 베어 물었다. 정이슬의 미간이 좁혀졌다. 정이슬이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 지금 술 마시면 안 되지, 왼팔 때문에.”
“안 되죠.”
“으응... 아... 좀 아쉽다.”
서유은이 눈을 크게 떴다.
“언니 술 마셔요?”
“응.”
“오빠도요?”
“응...”
“헐...”
정이슬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유은이 술 한 번도 안 마셔 본 거야?”
“네...”
“그럼 나중에 마셔봐야겠네.”
“아 근데 안 되지 않아요...?”
“안 되는 게 뭐 있어 그냥 마심 되는 거.”
“그래도요...”
“음... 그럴 수도 있지.”
“네...”
“그럼 너 성인 되면 바로 나랑 만나서 마시자.”
서유은이 살폿 웃었다.
“네.”
“그때 온유도 데려갈게.”
“네...?”
“제가 지참물이에요?”
“스스로 널 물건으로 격하하지 마 온유야.”
“누나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아요.”
“응? 난 항상 널 목적으로서 대우했어.”
“근데 저 누나랑 있을 때 많이 피곤해요.”
“어 그럼 안 되는데. 어떡하지?”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둬 주시면 될 거 같아요.”
“으응... 근데 가만두기엔 네가 너무 매력적인데?”
살폿 웃었다.
“제가 잘못한 거예요?”
정이슬이 눈웃음 지었다.
“아냐 미안해.”
웃음이 나왔다.
“왜 갑자기 미안하다 해요 안 어울리게.”
“그냥 그렇게 말해야 할 거 같아서.”
백지수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둘이 그렇게 얘기만 하면 저희가 다 먹어요?”
“먹어야지, 응.”
정이슬이 젓가락으로 소시지를 집고 입에 넣었다. 서유은이 송선우를 바라보며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언니.”
“응?”
“언니는 근데 언제 왔던 거예요?”
“나? 대충 점심 시간대였나? 그때 왔어.”
정이슬이 송선우를 바라보며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음, 그쯤에 나 너한테 톡 보냈었는데. 그때 이미 여기 와 있던 거야?”
“아 저 여기 오고 폰을 잠시 안 봐 가지고요.”
백지수가 무심한 눈빛으로 송선우를 쳐다봤다. 송선우가 백지수를 슬쩍 봤다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고개를 돌려 정이슬을 바라봤다.
“그럼 그 시간에 지수랑 온유랑 뭐 했어?”
“그냥 낮잠 잤어요.”
“으응... 다 피곤했구나.”
분명 별생각 없이 말한 거 같은데 왠지 뜨끔했다. 정이슬이 백지수를 쳐다봤다.
“근데 지수 자리 앉을 때 등에 손 대고 있던데. 허리 아파?”
“아 저 허리에 손 댔어요?”
“응.”
백지수가 멋쩍게 웃었다.
“제가 잘못 잤는지 등이 좀 뻐근해가지고 무의식적으로 그랬나 봐요.”
“어, 힘들겠다. 허리 아픔 진짜 암것도 하기 싫은데.”
백지수가 빙긋 미소 지었다. 내 눈에는엄청 어색해 보였다. 서유은이 송선우를 바라보며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근데 선우 언니도 허리 아픈 것처럼 보였는데 언닌 괜찮아요?”
“응? 난 괜찮은데?”
정이슬이 눈을 크게 떴다.
“왜 왜 왜?”
“저 그냥 선우 언니 걷는 거랑 표정 보고 추측한 거예요.”
“오. 너 눈썰미 되게 좋구나.”
“아, 아니에요...”
“아냐 넌 보는 눈 진짜 좋은 거야.”
정이슬이 송선우를 봤다.
“근데 선우야 너 진짜 아파?”
“아뇨 저 진짜 안 아파요.”
“그럼 다행인데 만약에 아픔 아프다고 해. 내가 등 마사지해줄게. 지수 먼저 해주고 나서.”
백지수가 고개를 저으면서 손사래 쳤다.
“아뇨 언니 저 필요 없어요.”
“나 마사지 엄청 잘해, 맨날 부모님한테 해드려서.”
“그래도 괜찮아요.”
“흐응... 진짜 사양 안 해도 되는데...”
“언니 마음만 받을게요.”
“응... 그래도 필요하면 말해. 해줄게.”
“고마워요.”
“응.”
냐아,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서유은의 시선이 밑을 향했다. 따라서 아래를 내려봤다. 잿더미가 참치캔에 머리를 부딪으면서 냐아냐아 울어대고 있었다.
“왜 우는 거예요...?”
“목마른가 봐.”
백지수가 왼손으로 의자 등받이를 잡고 오른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 내가 일어나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물 줄게.”
“어 고마워.”
참치캔을 들어서 정수기 물을 담고 밑에 내려줬다. 잿더미가 혀를 빼꼼빼꼼 내밀면서 물을 핥아 마셨다. 도로 자리에 앉아 잿더미를 바라봤다.
“잿더미 너무 귀여워요...”
“그냥 내가 확 집사 돼주고 싶다.”
정이슬이 말했다. 백지수가 피식 웃었다.
“안 돼요. 얘 이미 저 선택했어요.”
“음, 근데 잿더미가 또 나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저 잿더미 납치할 거예요.”
“아 진짜?”
정이슬이 큭큭 웃었다.
“근데 아까 보니까 잿더미 유은이한테 넘어갈 거 같은데?”
“안 돼요 진짜로.”
정이슬이 서유은을 봤다.
“만약에 잿더미가 네 집으로 오면 어떡할 거야?”
서유은이 살폿 웃었다.
“일단 잘 데리고 있어 줄 거 같은데요?”
“그렇게 계속 키우는 거야?”
“음, 그래도 지수 언니한테 전화는 해야 되지 않을까요?”
“으음... 근데 네가 지수한테 잿더미 돌려주려 하는데 잿더미가 지수한테 안 가. 그럼 어떡할 거야?”
“어어...”
“그럼 제가 잿더미 안 받아요.”
백지수가 단호히 말했다. 정이슬이 백지수를 봤다가 잿더미를 내려봤다.
“잿더미가 저렇게 귀여운데?”
“... 뭐 나중에 또 스스로 돌아오고 머리 막 비벼대면 생각은 해보겠죠.”
“오... 역시 집사는 관대한 건가?”
백지수가 오른팔을 테이블에 대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관대한 것보단 호구인 거 같지 않아요?”
“응? 왜?”
“아뇨, 몰라요, 그냥 그래요.”
정이슬이 살폿 웃었다.
“뭐야 너 왤케 귀여워 갑자기?”
“저 원래 귀엽지 않았어요?”
정이슬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오오...”
송선우가 피식 웃었다. 서유은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열었다.
“왜요? 지수 언니 엄청 귀엽지 않아요?”
정이슬이 미소 지었다.
“귀엽지. 귀여운데, 네가 더 귀여운 거 같아.”
“네...? 왜요...?”
“넌 그냥 귀여워 이 귀여운 생물아.”
서유은이 눈웃음 지었다. 정이슬이 마주 웃었다.
“나 너 볼 만져도 돼?”
“안 돼요.”
“와, 너무 단호한 거 아냐...?”
“히. 장난이에요.”
“이 요망한 것.”
정이슬이 두 손을 들어 서유은의 양 볼을 잡고 쓰다듬어댔다. 엄청 부들부들해 보였다.
“온유야 너도 만지고 싶어?”
서유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아냐 유은아 누나가 장난치는 거야.”
“에이 완전 뚫어져라 봤으면서.”
“그냥 귀여워서 본 거예요.”
“헙...”
“유은이 지금 심쿵했다.”
“아니에요...”
“어 유은이 얼굴 빨개지는 거 봐 진심 개 귀여워!”
“아...”
서유은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거 그냥 언니들이랑 오빠가 너무 봐서 그런 거예요...”
웃음이 나왔다. 오른쪽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송선우랑 백지수가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음기를 차츰 지워냈다.
어떻게 입버릇을 고쳐내야 하는데 너무 굳어버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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