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아니 나 진짜 어떡해야 하지 (4)
* * *
ㅡSavage love
Did somebody, did somebody break your heart?
벨소리였다. 내 폰은 아니었다.
“아 씨 뭐야.”
백지수가 나를 껴안던 두 팔을 풀고 두 발짝 뒷걸음질을 치더니 두 손으로 자기 허벅지를 더듬거렸다.
ㅡLookin' like an angel but your savage love
백지수가 두 손으로 박스티 끝을 잡고 위로 올렸다. 백지수의 배꼽이 드러났다. 백지수의 돌핀팬츠 오른 주머니에 들어있는 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ㅡWhen you kiss me, I know you don't give two fucks
But I still want that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폰을 잡고 들어 올리고는 눈을 찡그렸다. 엄지로 화면을 눌러 전화를 연결한 백지수가 폰을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ㅡ지수!
“네 언니.”
ㅡ나 지금 유은이랑 같이 네 별장으로 걸어가고 있거든? 떡볶이랑 핫도그 사 들고?
“아 맛있겠다. 근데 얼마나 가까운데요?”
ㅡ몰라 한 삼사 분이면 도착할 거 같은데?
“가깝네요 되게?”
ㅡ응. 문자랑 톡으로 간간이 보고는 했는데 안 보길래 어느새 가까워졌어. 뭐 바쁜 일 있었어?
“아뇨 그냥 저 자느라 못 본 거예요.”
ㅡ으응... 뭐 점심 먹고 잔 거야?
“그런 건 아녜요. 저 세면 좀 해야 될 거 같은데 전화 끊을게요.”
ㅡ알겠어.
전화가 끊겼다.
“아 이 씨..”
백지수가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세면대 앞으로 걸어가서 물을 틀고 정액이 묻은 얼굴을 씻어냈다. 송선우가 가만히 백지수를 바라보다가 내게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폼클렌징까지 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백지수가 뒤돌아서 나를 쳐다봤다.
“떼라.”
“응...”
두 손을 뒤로 해 송선우의 팔목을 잡았다. 백지수가 성큼성큼 걸어 그대로 문을 나섰다. 송선우가 두 팔을 풀어줬다. 송선우랑 같이 화장실을 나갔다. 백지수가 왼손에 의류가 들어있는 택배를 잡고 계단을 두 칸씩 밟아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송선우가 백지수의 발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지수 갑자기 뭐 하는 거야?”
“... 그냥 정리하는 거 아냐?”
“지수가 들고 간 거가 뭐 숨겨야 되는 거야?”
“... 아마?”
“옷 아니었어? 뭐길래 저래?”
“그냥 야한 옷...?”
“야한 옷? 비키니 같은 거?”
“뭐 그런 옷도 있기야 하겠지...”
“...”
“왜 그렇게 봐?”
“네가 해달라고 한 거야?”
“아냐. 지수가 나한테 얘기도 안 하고 선물 느낌으로 다 산 거야.”
“그래? 흠...”
송선우가 두 팔을 벌려 나를 껴안았다.
“나도 뭐 해줄까?”
송선우를 마주 안았다.
“뭐를?”
“네가 원하는 거 말해봐.”
“딱히 없는데...?”
송선우가 살폿 웃고 발끝을 세워 입술을 맞추고 다시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게 했다. 웃음이 나왔다. 입을 열었다.
“이슬 누나랑 유은이 오면 그럼 안 돼.”
“알아. 그래서 지금 하는 거야.”
“그래 그럼.”
송선우가 무릎을 살짝 굽혀 오른 볼을 내 왼 가슴에 닿게 했다.
“나 머리 쓰다듬어줘 봐.”
“응.”
오른손을 들어 송선우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백지수랑 같은 샴푸 향이 풍겨왔다. 같은 공간에서 두 여자랑 섹스했다는 게 새삼 실감 났다. 김세은도 와서 섹스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지가 껄떡거렸다. 송선우가 히 웃었다. 미칠 듯한 배덕감이 휘몰아쳤다. 계단을 쿵쿵쿵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온유!”
두 팔을 놓고 고개를 들어봤다. 내 몸을 감싼 두 팔이 더 세게 조여왔다. 난간 위에 오른손을 올리고 빠르게 내려오던 백지수가 나를 발견하고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내게 달려왔다. 발이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출렁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백지수가 내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가슴 위에 팔을 올렸다.
“이슬 언니랑 유은이 오는데 계속 그럴 거야? 나 문 열어?”
송선우가 고개를 돌리고 내 오른 가슴에 왼 볼을 붙인 채 백지수를 바라봤다.
“난 상관없는데?”
“...”
백지수가 나를 째려봤다. 두 손으로 송선우의 등을 토닥였다.
“선우야 좀 놔주라...”
“키스 한 번만 하자.”
백지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미쳤냐 송선우?”
송선우가 시선을 내게 고정했다. 백지수 폰 벨소리가 들렸다. 백지수가 나를 보면서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전화를 연결했다.
ㅡ지수야 우리 왔어.
“알겠어요. 잠만요.”
순간 송선우가 까치발을 들어 입술을 덮쳐왔다. 목 뒤로 소름이 솟았다. 다행히 소리는 별로 내지 않았다. 백지수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ㅡ전화 끊을까?
“네.”
전화가 끊겼다. 백지수가 다가와서 송선우의 뒤로 가 송선우의 옆구리를 간질였다. 송선우가 킥킥거리면서 몸을 배배 꼬면서도 나를 껴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뭐 해 지수야?”
“아 씨 빨리 떨어져.”
“싫어.”
“야 이온유 네가 힘으로 밀어내면 되잖아. 왜 암것도 안 해. 남들한테 다 들키고 싶어?”
“그건 아니지...”
“하 씨발... 송선우 너 키스도 했는데 왜 안 떨어지는데?”
“딱 한 번만 더 하고 싶어서.”
“아 진짜 존나...”
“네가 키스해주라 온유야.”
“...”
“그럼 바로 떨어질게.”
백지수가 나를 노려봤다.
“존나 키스해 씨발.”
“하지 마...?”
“해보라고.”
“... 안 될 거 같아 선우야.”
“그럼 못 놔주는데?”
“...”
송선우가 히죽 웃었다.
“빨리.”
“... 할게 지수야.”
“아...”
백지수가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송선우의 입술을 덮쳤다. 송선우가 입을 벌리면서 혀가 석였다. 자지가 껄떡거렸다. 하웁, 쯉, 하고 추잡한 소리가 났다. 입술을 뗐다. 송선우가 배시시 웃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백지수가 눈에서 두 손을 떼고 송선우를 밀쳐냈다. 송선우가 왼쪽으로 흔들렸다가 다시 똑바로 섰다.
“진짜 개 짜증나 송선우!”
백지수가 내게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 커다란 가슴이 짓뭉개져 와서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백지수가 나를 올려봤다.
“빨리 키스해!”
“응...”
백지수가 까치발을 들었다. 송선우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내려 백지수의 입술을 포갰다. 백지수가 두 손으로 내 목덜미를 잡았다.
“하움... 쮸읍... 츄읍... 츄릅... 헤웁...”
백지수가 입술을 떼고 침을 꼴깍 삼켰다. 오른 주머니에서 폰이 진동했다.
“이슬 누나 전화 같은데?”
“아 씨 가야 되네...”
“내가 문 열게.”
송선우가 말하고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백지수가 히죽 웃으며 뒤따라갔다.
“그렇게 보기 싫었어?”
“어.”
백지수가 히죽 웃었다. 송선우가 걸을 때마다 긴 머리카락이 양옆으로 흔들렸다. 맨날 이렇게 싸우면 안 되는데. 심란했다. 송선우가 유리문을 열고 신발을 구겨 신고는 현관문을 열더니 그대로 밖에 나가 대문까지 열었다. 대문 틈으로 잿더미가 도도도 달려왔다. 대문 뒤에 있던 정이슬의 눈이 커졌다.
“어 쟤 들어간다!”
백지수가 무릎을 굽히고 두 팔을 벌렸다. 잿더미가 백지수를 지나쳐 가려 했는지 백지수의 다리 왼편으로 쭈욱 가다가 결국에는 백지수의 두 손에 붙잡혔다. 일단 신발을 신고 밖에 나섰다. 정이슬이랑 서유은이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오른손에 분식점 이름이 박힌 흰 봉투를 들고 있는 정이슬이 송선우를 봤다.
“선우도 있었네?”
“네.”
“으응...”
정이슬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안녕 온유야.”
“안녕하세요.”
두 손을 위로 올려 앞을 막았다.
“꼭 안아야 돼요?”
“그냥 안아주고 싶어서.”
정이슬이 내 손은 신경도 안 쓰이는지 그대로 다가왔다. 손이 가슴에 닿을 거 같아서 그냥 팔을 벌렸다. 정이슬이 나를 껴안았다.
“누나 너무 미국식인 거 같아요.”
“칭찬이지?”
“네. 이제 된 거 같아요.”
“응.”
정이슬이 웬일로 순순히 떨어졌다. 서유은이 내 앞에 다가와 고개 숙였다.
“안녕하세요 오빠.”
“안녕 유은아.”
“...”
“뭐 할 말 있어?”
“저도 이슬 언니처럼 인사해도 돼요...?”
“어?”
송선우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이상할 거 같은데.
“안 되면 말고요...”
“아냐 돼.”
“근데 저 막상 한다고 생각하니까 창피해요...”
“그럼 안 하면 되지.”
“... 근데 할래요.”
“어...”
두 팔을 벌렸다. 서유은이 다가와서 나를 껴안고 두 손으로 내 등을 툭툭 토닥이더니 바로 떨어져서 백지수의 앞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언니 얘 아는 애예요...?”
백지수가 고개를 들어 서유은을 바라봤다.
“알지. 잿더미야 이름.”
“잿더미요?”
“응.”
“이름 되게 귀여워요! 저 만져봐도 돼요?”
“얘 반 길고양이라서 위생 상태 별로일 수 있는데?”
“깨끗해 보이니까 괜찮을 거 같아요.”
“그래 그럼.”
백지수가 잿더미의 몸을 잡은 채 밑으로 살짝 누르듯 했다. 서유은이 오리걸음으로 한 발짝 다가가 잿더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잿더미가 눈을 감고 낮게 그르릉거렸다.
“얘 골골송하는 거예요...?”
“그런 거 같은데?”
정이슬이 잿더미를 보다가 왼손 검지로 내 왼팔을 툭툭 건드렸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가렸다.
“아 누나 저 여기 붕대 감았어요.”
정이슬이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래? 미안. 근데 왜 감은 거야?”
멋쩍게 웃었다.
“일단 나중에 얘기할게요.”
“으응... 진짜미안해.”
“괜찮아요아픈 건 아니니까.”
“그래도...”
“괜찮아요 진짜.”
서유은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왼팔 다치셨어요...?”
“아냐 그냥 좀, 괜찮아.”
“... 빨리 나으시길 빌게요...”
“응. 고마워.”
고개를 돌려 정이슬을 봤다.
“근데 저는 왜요?”
“응?”
“누나저 손가락으로 건드렸잖아요.”
“아, 너 잿더미 본 적 있냐고 물으려고 했어.”
“있긴 있어요.”
“으응... 지수 별장 자주 왔어?”
멋쩍게 웃었다.
“무슨 소리예요.”
정이슬이 눈꼬리를 휘었다.
“조금 수상한데?”
“아니에요.”
“흐응...”
“진짜 아니에요.”
“알겠어. 믿을게.”
정이슬이 히히 웃었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시선을 돌려 콧숨을 내쉬었다. 구름이 풀어진 푸른 하늘만큼이나 공기가 맑고 시원했다. 이제 몇 시간이고 다 같이 있어야 할 텐데. 벌써 피곤해지는 듯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