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장례식 (21)
* * *
윤가영의 헐떡임이 잦아들었다. 적당히 쉰 거 같았는데 윤가영이 그대로 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두 팔을 무릎 위에 올리고 나를 올려보면서 오른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 뛰어온 거예요?”
“응... 깼는데 너 안 보여서 찾았어...”
“바보예요? 전화나 하면 됐을 건데.”
“너 나 차단해서 안 받잖아...”
“내가 당신 차단한 줄은 어떻게 확신하는데요?”
“했잖아...”
“그럼 지금 전화해보시든가요.”
“... 진짜 안 했어?”
“알고 싶음 한번 해보세요.”
윤가영이 정장 안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양손 엄지로 화면을 눌러댔다. 오른 주머니에서 두드드, 하고 폰이 울렸다.
“바보였죠 그쪽?”
“... 그렇네...”
“빨리 꺼요, 제가 꺼내서 끄기 싫으니까.”
“응...”
윤가영이 오른손 엄지로 통화 종료를 눌렀다. 입을 열었다.
“외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전화하는 방법도 있었을 건데, 진짜 바보네요.”
“아...”
윤가영이 멋쩍게 웃었다. 왼 주머니에서 두 개 남은 담배 중 한 개비를 꺼내고 입에 물었다. 윤가영이 눈을 크게 떴다.
“너...?”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도로 왼 주머니에 넣었다. 연기가 입 사이로 자연스레 빠져나가는 걸 구경했다. 한 입 빨고 연기를 뿜었다. 윤가영이 일어나서 두 손을 뻗어왔다. 뒷걸음질 쳤다.
“피우지 마.”
뒤를 보면서 걸었다. 대충 세 걸음만 뒤로 걷고 앞으로 달려야 할 듯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을 걷고 멈춰 섰다가 달렸다. 윤가영이 달려들어서 정면에서 나를 껴안았다. 윤가영의 크고 부드러운 가슴이 내 상체에 맞닿아 눌렸다. 자지가 껄떡거렸다. 윤가영이 흠칫 떨었다. 아찔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오른손이 두 손에 잡혀서 담배가 빼앗겼다. 눈 떴다. 담배를 뺏어서 왼손에 든 윤가영이 뒷걸음질 쳤다. 천천히 다가갔다.
“장난해요?”
윤가영이 고개를 저었다.
“피우면 안 되니까 그랬어...”
헛웃음이 나왔다.
“내놔요.”
“안 돼...”
달려들어서 윤가영의 두 손으로 왼 손목을 잡았다. 윤가영이 왼손을 꼼지락거려서 담배를 손안에 넣고 손가락을 움직여 손안에서 담배를 비벼 분질렀다. 윤가영의 왼손 틈새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눈이 크게 떠졌다. 양손으로 윤가영의 왼손가락을 뜯어내듯 했다. 윤가영의 왼손이 펴지면서 꽁초랑 담뱃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윤가영의 왼손에 담뱃재가 묻어나면서 담배 냄새가 풍겼다. 다행히 탄 자국이 남은 것 같지는 않았다. 윤가영의 얼굴을 바라봤다.
“미쳤어요? 끌 거면 바닥에 떨어뜨리기나 하지 뭘 손으로 비벼서 끄고 있어요?”
윤가영이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러게... 그 생각을 못 했네.”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요?”
“몰라... 그냥 웃었어.”
“...”
윤가영의 왼손을 놓아줬다. 윤가영이 입을 열었다.
“이제 돌아가자.”
“먼저 돌아가요.”
“응? 왜?”
말없이 왼 주머니에서 마지막 담배를 꺼냈다. 윤가영이 두 손을 뻗어왔다. 예상해서 왼손을 높이 들었다.
“피우지 마!”
“싫어요. 어차피 이게 마지막이고, 앞으로 평생 안 피울 거예요.”
“... 그래도...”
“당신이 어쩌든 피울 거예요.”
“...”
“먼저 돌아가요.”
“진짜 마지막이지...?”
“네.”
“그럼 나 너 주머니 뒤져봐도 돼...?”
담배를 오른손에 옮기고 왼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비어 있는 걸 보여줬다.
“진짜예요.”
“그래도. 주머니에 더 있는지만 잠깐 볼게.”
“하. 그렇게까지 해봐야 돼요?”
“한 번만 더듬어서 확인할게.”
“그러세요.”
윤가영이 정장 안주머니랑 바깥 주머니를 더듬고 쪼그려 앉아서 바지 주머니 위를 더듬었다. 다리를 벌리고 자지 앞에서 다리를 더듬는 모습이 윤가영의 커다란 가슴이랑 골반 탓에 엄청 야하게 보여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되새겼다. 더듬는 손길이 안 느껴질 때 고개를 내렸다. 윤가영이 일어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 없죠?”
“응...”
“그럼 돌아가요.”
“... 알겠어.”
“빨리 뒤돌아서 가요.”
“응.”
윤가영이 허리를 숙여 꽁초를 줍고 뒤돌아서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윤가영이 서유은에게 무슨 말을 듣고 흠칫 떨더니 움츠러든 모습으로 장례식장을 걸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잠깐만요.”
“응?”
윤가영이 뒤돌아섰다.
“당신 나가기 전에 유은이가 뭐라 했어요?”
“유은이...?”
“당신 귀에 속삭인 애요.”
“아... 그 애... 그냥, ‘뭔데 여기 있는 거예요? 걷지 말고 빨리 좀 나가세요, 양심이란 게 있으면’이라고 했어.”
“... 네. 가요 이제.”
“... 응.”
윤가영이 다시 뒤돌아서 걸어갔다. 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윤가영의 모습이 사라지는 걸 보고 원래 담배를 피우고 있던 데로 돌아가 쪼그려 앉았다. 서유은이 윤가영이 말한 걸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잘 안 됐다. 윤가영이 한 말은 내가 여태 서유은을 봐온 바랑은 너무 달랐다. 얼떨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정신이 몽롱해졌다. 복수, 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윤가영과 이준권 말고도 이수아랑 강성연이 생각났다. 학폭위가 열려서 어머니가 더 괴로워졌으니 학폭위가 열리게 한 이수아랑 강성연한테도 복수를 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내 과실도 있는데 그 둘에게만 죄를 넘기듯 복수해도 될까? 입맛이 씁쓸했다. 부당한 짓을 해서는 안 될 거였다. 복수하려거든 나도 벌을 받아야 할 거였다. 그나저나 이수아는 윤가영이 이준권과 쌍으로 평판이 완전히 무너져서 욕을 먹거나 하면 펑펑 울 텐데. 그런 식으로 멘탈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복수가 아니었다. 연기를 뿜어냈다. 담배를 왼손 검지랑 중지 사이에 끼우고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잠금을 풀고 연락처에 들어가 정지연을 찾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폰을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연기를 뿜었다. 수신음이 일고여덟 번 정도 들리고 연결됐다.
ㅡ온유. 왜 전화했어?
“저 부탁드릴 거 하나 있어서요.”
ㅡ음? 뭔데?
“그 기사 있잖아요, 이준권 끌어내리는 거요.”
ㅡ응. 근데 혹시 쓰지 말아달라거나 하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그냥 내용 하나만 추가해주세요. 새엄마가 이준권이랑 만났을 때 아내 있는 줄도 몰랐다고요. 이준권이 이혼도 안 한 상태에서 불륜녀 만나서 자기가 유부남이라는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아들이 있다고만 말하고 유부남인 걸 유추할 다른 단서를 주지 않았다고요.”
ㅡ으음... 왜 근데? 새어머니한테도 복수해야 하지 않아? 어떻게 기적적으로 진짜 몰랐다고 해도 뺏은 건 맞잖아?
“그래도요.”
ㅡ으응... 근데 나 진짜 이해 안 돼서 그러는데, 다른 이유라도 있어?
“있어요.”
ㅡ알려줄 수 있어?
“네. 제 새엄마한테 딸이 있거든요? 근데 그 애가 진짜 자기 엄마한테 무슨 일 있으면 되게 상처받고 죽을 것처럼 울어요. 그래서, 걔 맨날 펑펑 울면 저 방에서 잠 못 잘 거 같아 가지고 부탁드리는 거예요.”
웃음소리가 들렸다.
ㅡ너 진짜 착하다.
“아니에요...”
ㅡ아냐. 너 진짜 착한 거 맞아. 내가 사람 여럿 만나봐서 알아. 암튼, 네 말대로 기사 써볼게.
“감사해요.”
ㅡ응. 근데 어떻게 마음은 진정됐어?
“네 조금 괜찮아요.”
ㅡ으응... 다행이다. 근데 나중에 만약 또 힘들어지고 그러면, 주변 사람한테 기대. 소연 언니처럼 혼자 앓지 말구...
“알겠어요.”
ㅡ나한테 전화해도 돼. 아니 전화 걸어줘. 시간 억지로라도 내서 달려가 가지고 위로해줄게. 언니 얘기도 좀 해주고 하면서.
픽 웃었다.
“감사해요.”
ㅡ그래. 뭐 더 부탁할 거 없어?
“없어요.”
ㅡ응. 그럼 전화 끊을게.
“네. 진짜 감사해요.”
ㅡ어. 담에 보자.
“네.”
전화가 끊겼다. 왼손에 든 담배를 내려봤다. 거의 다 타들어 갔다. 옥상 문 쪽에서 작게 무슨 소리가 들렸다. 별거 아니겠지. 마지막으로 한 입 빨아들이고 연기를 내뿜었다. 바닥에 버려 왼발로 짓이겨 끄고 꽁초들을 다 주워 왼손에 올렸다. 왼손을 주먹 쥐고 담배 냄새가 조금이라도 빠지게 제자리에서 스무 번 통통 뛰어올랐다가 걸어가서 오른손으로 옥상 문을 열었다. 안에 들어가면서 문을 닫는데 바닥에 무슨 약이 떨어진 게 보였다. 쪼그려 앉아 오른손으로 들어봤다. 윤가영 에코백에 들어있던 청심환이랑 같은 거였다. 옥상에 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진짜 윤가영 거인가? 근데 급히 뛰어간 게 아니라면 청심환 같은 걸 떨어뜨릴 일이 없을 텐데. 누가 빨리 내려오라고 소리쳐서 불렀나. 그렇다기에는 아까 통화가 끝나기 전까지 문 쪽에서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었다. 그럼 옥상에 있던 걸 남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했던 거 정도밖에 없는데, 누구한테 들키지 않으려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밖에 없었다. 작게 들려온 소리까지 고려하면 윤가영이 옥상 문을 넘어서서 가만히 서 있다가 내가 통화를 마쳤을 때 급히 내려갔다는 것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 윤가영이 내려가기 전에 지었을 표정까지 떠올려졌다.
확실했다. 윤가영은 내가 정지연과 통화하는 걸 듣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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