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장례식 (10)
* * *
두드드, 오른 주머니 안에서 폰이 울렸다. 꺼내서 화면을 확인했다. 외할아버지였다. 김세은이 내 얼굴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누구야?”
“외할아버지. 어디 있는지 물어보실 거 같아.”
“으응... 그럼 빨리 받아야 되는 거 아냐...?”
“받아야지.”
김세은이 두 팔을 벌려 나를 껴안고 오른 볼을 내 왼 가슴에 대서 나를 쳐다봤다.
“조용히 할게.”
“응.”
전화를 연결하고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ㅡ어딨는 거냐 온유야. 병원에도 없는 거 같은데.
“저 지금...”
김세은이 오른손 검지로 밑을 쿡쿡 찌르며 바닥을 가리켰다.
“화장실이요.”
ㅡ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니냐.
“죄송해요. 속이 안 좋은가봐요.”
ㅡ... 그래. 억지로 빨리 오려 하지 마라.
“알겠어요. 감사해요.”
ㅡ감사할 건 아니지. 그럼 네 친구들한테 그렇게 말한다.
“네 감사해요. 금방 갈게요.”
ㅡ그래. 끊으마.
“네.”
전화가 끊겼다. 폰을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김세은이 입을 열었다.
“외할아버지 되게 좋으신 분인 거 같애.”
미소 지었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그냥 너 보면 알지.”
왼손으로 김세은의 오른 볼을 쓰다듬었다.
“고마워.”
“응...”
김세은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나 이제 내려가야 돼.”
“응...”
“좀 이따 내려와서 우리 어머니한테 절하고 밥 먹고 가.”
“응.”
김세은이 배시시 웃었다.
“왜 웃어?”
“그냥. 결혼하는 거 같아서. 어머님한테 절한다고 생각하니까.”
“으응...”
다시 김세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김세은이 나를 꽉 껴안았다.
“나중에 결혼할 수 있을 때 되면... 그때 바로, 최대한 빨리 결혼하자...”
“응...”
왼손으로 김세은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김세은이 내 목 오른쪽에 입술을 맞췄다.
“이제 내려가...”
“응...”
김세은이 나를 놓아줬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거울을 봤다. 목에 키스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문을 열고 걸어나가면서 목을 스윽 닦았다. 왼 발목이 시큰거렸다. 막 엇나간 것 같지는 않은데 달리기는 버거울 듯했다. 아까 김세은을 찾으러 돌아다닐 때 무리해버려서 지금 더 아픈 느낌이었다. 지하로 내려가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부원 모두가 아직 남아있었다. 신발을 벗고 걸어갔다. 김민우가 일어나서 내게 다가왔다.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냐?”
“죄송해요.”
김민우가 내 왼편에 섰다.
“근데 형은 왜 일어난 거예요?”
“너 병원 가는 거 내가 부축하기로 했어.”
“아...”
김민우가 오른팔을 내 왼 겨드랑이 안에 넣어 어깨 동무했다. 지금 병원을 가면 김세은을 보지 못할 거였다. 가면 안 됐다. 오른손으로 김민우의 오른 어깨를 살짝 톡톡 쳤다.
“근데 저 병원 안 가도 될 거 같아요.“
“뭔 소리야. 네 외할아버지가 가랬는데 말 듣고 효도해야지.”
“저 진짜 괜찮아요.”
“너 고집 진짜 세다.”
김민우가 부원들이 있는 쪽을 봤다.
“얘 연행할 박철현 구함.”
“네엡.”
박철현이 일어났다. 왼 어깨를 털었다.
“아 저 진짜 병원 안 가도 돼요.”
“병원에 와야 됐는지 안 와도 됐는지는 의사 선생님이 판단하게 하고 걍 가자. 들자 철현아.”
“옙.”
박철현이 내 오른편에 와서 왼팔을 뒤로 해 내 등쪽을 받치고 오른팔을 내 오른 무릎 뒤로 넣었다. 김민우가 내 왼 무릎 뒤로 왼팔을 넣고 입을 열었다.
“하나, 둘...”
“아 하지 마요...”
“셋.”
무릎이 굽혀지면서 몸이 들렸다. 떨어지기 싫어서 두 팔로 김민우랑 박철현을 껴안듯이 했다. 자세가 자세다보니 수치스러웠다. 김민우가 박철현을 바라봤다.
“내가 하나 둘 하나 둘 할 테니까 게걸음으로 가자.”
“올라갈 땐 엘리베이터 타죠?”
“당연하지.”
“아 진짜 됐으니까 그냥 내려주세요...”
박철현이 웃었다.
“아서라 아이야. 허리랑 다리 건강은 어려서부터 챙겨야 하는 것이야.”
김민우가 피식 웃었다. 미칠 것 같았다. 구두를 신은 누군가가 장례식장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김민우가 입을 열었다.
“일단 입구 쪽으로 가게 몸 돌리자.”
“네.”
“어?”
서유은 목소리였다.
“세은 언니!”
서유은이 벌떡 일어나서 입구 쪽으로 도도도 달려갔다. 김민우랑 박철현을 번갈아 봤다.
“문상객 왔으니까 절해야 돼요. 내려주세요.”
“그래.”
김민우가 선선히 나를 내려놓았다. 박철현은 반응속도가 약간 느려서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김민우가 어우 씨발, 이라고 욕하면서 무릎을 꿇으며 다시 내 왼 다리랑 몸을 받쳤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박철현이 말했다. 김민우랑 박철현이 나를 내려놓았다. 진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한숨 쉬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김세은이 나를 내려보면서 풋 웃었다.
“... 왔네.”
“응.”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명부 썼어?”
“써야 돼.”
“그래. 일로 와.”
“응.”
외조부모님을 향해 가면서 왼손 검지로 명부를 가리켰다. 외조부모님 사이에 서서 김세은이 명부에 이름을 적고 봉투를 꺼내 넣은 다음 영좌 앞에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김세은이 어머니의 영정 앞에 서서 5초 정도 가만히 어머니의 얼굴을 보다가 두 번 절한 다음 나를 보았다. 마주 보면서 한 번 절하고, 반절했다. 김세은이 내게 다가와서 나를 꽉 껴안았다. 마주 안아서 등을 두 번 툭툭 치고 입을 열었다.
“밥 먹고 가.”
“응...”
김세은이 떨어졌다. 같이 부원들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원래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송선우는 안 보였다. 어딨나 둘러봤는데 냉동고 앞에 있는 게 또 수건 안에 얼음을 넣는 모양이었다. 김세은이 자연스럽게 내 오른편에 앉았다. 정이슬이 테이블에 두 팔을 대고 몸을 기울였다.
“어떻게 왔어 세은아?”
“매니저 오빠 차 타고요.”
“으응... 근데 너 폰 뺏겼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촬영하다가 공용 노트북 쓸 시간 잠깐 있어서 톡 들어가서 단톡 확인하고 왔어요.“
“아아...”
정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눈을 크게 뜨고 김세은을 바라봤다.
“촬영하다가?”
“네.”
“촬영하다가 왔다고?”
“쉬는 시간이었어요.”
“그럼 지금은?”
“모르죠.”
“어어...? 그래도 돼...?”
“중요한 건 아니고, 그냥 vlog였어요. 매니저 오빠한테 가겠다고 하니까 태워줘서 바로 왔어요.”
“으응... 그럼 그거 촬영은 어떻게 되는 거야...?”
송선우가 내 뒤에 와서 내 왼 어깨를 잡고 내 등에 몸을 밀착했다. 송선우의 부드러운 가슴이 뭉개졌다. 얼음을 감싼 수건이 왼 발목 위에 올라갔다. 김세은이 송선우를 쳐다봤다.
“뭐야?”
“얘 발 삐어서 얼음 대주고 있어.”
“그래? 옆으로 가 내가 해줄게.”
“근데 너 앉은 데 원래 내 자린데.”
“원래가 어딨어.”
“... 그냥 내가 여기 앉을게.”
“내 오른쪽에 빈 자리 있잖아.”
“됐어.”
“...”
김세은이 대답을 안 하니 조용해졌다.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정이슬이 뭐라도 말했으면 지금 분위기가 더 나을 것 같았다, 라고 생각했는데 흥미로운 듯 말똥말똥하게 쳐다보는 눈을 보니 그것도 아닌 듯했다.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선우야 그냥 앉아주면 안 돼...? 나 힘들어...”
“... 알겠어. 수건 잡아 온유야.”
“응...”
송선우가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아 얼음을 넣은 수건을 쥐게 하고 일어난 다음 김세은 오른편에 앉았다. 김세은이 싱긋 웃으며 송선우를 봤다가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치워서 대신 수건을 잡은 다음 정이슬을 봤다.
“언니 무슨 질문했죠?”
“그 브이로그 촬영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봤어.”
“음, 아마 나중에 편집해서 쓸 거 더 모아서 짜깁기해 가지고 만들지 않을까요.”
“으응... 그럼 언제 볼 수 있는 거야?”
“데뷔하고 하나씩 푼다고 알고 있어요 듣기로는.”
“와... 진짜 멋있다.”
김세은이 살폿 웃었다.
“고마워요.”
김세은이 나를 바라봤다.
“근데 너 발목은 언제 삔 거야?”
“너 오기 좀 전에?”
“으음... 조심 좀 하지.”
정이슬이 오른팔을 테이블에 대고 오른손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근데 온유 얘 되게 웃긴 게 발목 삐어놓고 화장실 급하다면서 뛰쳐나갔다?”
“히힣. 그래요?”
“응. 보통 발목 삐면 뛸 때 진짜 죽는데 어떻게 뛰었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너 오기 전에 남자애들이 얘 들고 병원으로 강제 이송하려 했었어.”
“으음... 그럼 제가 좀만 더 늦었으면 온유 못 봤겠네요?”
“그니까. 온유 얘가 안 간다고 안 버텼으면 못 봤을 걸?”
“흐으응...”
김세은이 고개 돌려 나를 바라봤다. 휘어진 눈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그럼 지금이라도 병원 빨리 가야겠네?”
“가야지. 부원들 다 가면 갈 거야.”
“으응...”
“근데 너 밥 안 먹어?”
“온유야, 아이돌인데 체중 관리해야지.”
정이슬이 나를 타박했다. 김세은이 고개 저었다.
“괜찮아요. 먹어도 된다고 얘기 듣고 왔어요.”
“오 그래?”
“네.”
“그럼 앉아있어봐 내가 맛있는 거만 골라올게.”
김세은이 살폿 미소 지었다.
“네.”
정이슬이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일어나더니 도와줄 사람을 두 명 골라 일으켜 세우고 음식을 골라 가져왔다. 김세은이 숟가락을 들어 소고기무국에 밥을 말아 한 입 떠먹고 수육에 쌈장을 올려 고추 한 조각이랑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먹었다. 우물거리는 모습을 보는데 입맛이 돌았다. 원래 이렇게 맛있게 잘 먹었나? 입을 열었다.
“너 되게 맛있게 잘 먹는다.”
김세은이 싱긋 웃고 몇 번 씹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 그 소리 되게 자주 들어.”
“그니까. 너 먹방해야겠다.”
“이미 먹는 모습 몇 번 찍혔어.”
“으응...”
이렇게 잘 먹는 애한테 요리 한 번 해준 적 없었다니.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해줘야 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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