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장례식 (8)
* * *
[모친의 별세를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문상하지 못하여 대단히 죄송합니다.]
강성연에게서 온 문자였다. 서운함이 왈칵 밀려들었다. 여태 봐온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을까. 충동적으로 전화 걸었다. 연결되지 않아서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갔다. 김민우에게 문자도 보냈는데 지금 폰을 안 갖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다시 전화 걸었다. 세 번 수신음이 가고 연결됐다.
“여보세요.”
세찬 바람이 불었다. 귀가 먹먹했다. 대답이 오지 않았다. 아니 대답이 왔는데 바람 때문에 못 들은 걸지도 몰랐다.
“여보세요.”
ㅡ... 응.
가슴이 저려왔다. 별 생각 없었고 괜찮을 줄 알았는데. 배신감이 예상한 것보다 컸다.
“진짜 안 올 생각이야?”
ㅡ미안해.
“너 앞으로도 나 아예 안 볼 거는 아니잖아.”
ㅡ... 나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못 가.
“... 그럼, 진짜 안 온다고?”
ㅡ어.
머리가 아팠다.
“하나만 물어볼게.”
ㅡ물어봐.
“너 지금 내가 있는 병원으로 못 올 정도로 아픈 거야?”
대답이 없었다.
“그게 대답인 거지?”
다시, 대답이 없었다.
“끊을게.”
ㅡ... 응.
전화를 끊었다. 별로 아프지 않았다. 그냥, 친구 하나를 잃었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뒤돌아서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으로 향했다. 첫 계단을 밟는데 오른발을 헛디뎌 황급히 난간을 붙잡았다. 왼발이 삐끗했다. 계속 걸었다. 아프지 않은 걸 보면 다치지는 않았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어 신발장 안에 넣었다.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백지수가 왼팔을 테이블에 대 왼손으로 턱을 괴어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나? 나... 강성연이랑 전화했어...”
“... 온대...?”
“아니...”
갑자기 왼 발목이 아파왔다. 삔 거 같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강성연 이 개 미친 새끼...”
백지수가 조용히 말했다. 송선우가 왼손으로 내 오른팔을 부드럽게 쓸었다.
“울지 마...”
“성연 선배 때문이에요...?”
서유은이 물었다.
“아냐 나 그냥 발목 삐어서 그래...”
“발목이 삐었다고?”
백지수가 물었다. 시선이 몰렸다.
“아, 미안.”
“발목 삐었으면 엑스레이 찍어야 되는 거 아냐?”
정이슬이 물었다.
“괜찮아요 막 아픈 건 아니니까.”
“아냐 지금은 안 아파도 나중엔 엄청 시큰거릴 수도 있어. 병원 가야 돼.”
정이슬이 말했다. 송선우가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업고 가줄까?”
“진짜 괜찮아...”
“흐음...”
콧숨을 내쉰 송선우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철현이 콜라를 꼴깍 삼키고 입을 열었다.
“아프면 걍 말해 이송해줄 사람 많으니까.”
“아프냐 온유야?”
외할아버지 목소리였다. 고개를 뒤로 돌려 봤다.
“아프면 그냥 아프다 해라. 버티지 말고...”
외할아버지의 목이 멨다.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어머니를 떠올리신 듯했다.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좀 이따 갈게요...”
“... 늦지 않게 가라.”
“네...”
외할아버지가 다시 외할머니 곁으로 갔다. 뒷짐을 지고 온 송선우가 자리에 앉으며 내 왼 발목에 뭔가를 댔다. 차가웠다. 수건인데 물을 흡수했는지 겉면이 검게 보였다. 얼음을 넣고 온 듯했다.
“뭐야?”
두 눈을 크게 뜬 정이슬이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상체를 세워 내 발치를 봤다.
“와... 내조 뭔데...?”
“내조요...?”
서유은의 두 눈이 흔들렸다. 서유은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려봤다. 백지수가 관심 없는 척 시선을 다른 데에 두다가 결국엔 나를 바라봤다.
“뭔데?”
“그냥 수건에 얼음 넣어와줘서 발목에 대주고 있어...”
“지극정성이네.”
송선우가 입꼬리를 올리고 백지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극정성까지는 아니고.”
송선우가 얼음을 넣은 수건으로 내 발목을 꾹꾹 눌러줬다.
“솔직히 가볍지 이 정도는.”
백지수가 눈을 찡그리고 살짝 입을 벌린 채 송선우를 바라봤다. 뭔가 삐딱한 느낌이 들었다. 무서웠다. 다시 나가고 싶었다. 누가 장례식장으로 급히 달려오는지 바닥이 울렸다. 입구 쪽을 바라봤다. 하얀 셔츠에 검은 슬랙스 입은, 긴 보라색 머리카락을 야무지게 묶어 포니테일을 만든 여자가 뛰어들어왔다. 김세은이었다. 머리가 쭈뼛 솟는 듯했다. 가쁘게 숨을 내쉬며 장례식장 안을 빠르게 훑어보던 김세은이 이내 이쪽을 봤다. 눈이 마주쳤다. 입을 벌려 숨을 헐떡이던 김세은의 두 눈이 흔들렸다. 김세은이 입을 꾹 다물더니 도로 밖으로 도망치듯 달려나갔다. 위기감이 들었다. 지금 놓치면 안 될 거였다. 주변을 빠르게 훑어봤다. 김세은을 본 사람은 나 말고 없는 것 같았다. 뭐라 변명하면서 나가야 하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선우가 나를 올려 보며 입을 열었다.
“다리 삐었는데 왜 일어나...?”
“나 급해 지금...”
“으응...”
달려가서 신발을 꺼내고 최대한 빨리 신었다. 김세은은 안 보였다. 왼쪽 계단으로 방향을 정하고 두리번거리며 계속 뛰었다. 왼 발목이 아파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보일 때까지 뛰어야 했다. 1층을 돌아다녔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서 사위가 조용했다. 조용함, 청력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을 듯했다. 2층으로 올라갔다. 어디로 갔을까? 아예 나가서 사라졌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건물 안에 있다고 상정해야 했다. 건물 안이면 어디로 갔을까. 울고 있을 텐데 어디에 몸을 숨겨서 눈물을 삼키고 있을까? 아무래도 화장실이었다. 하지만 여자 화장실에 내가 어떻게 가지?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그냥 발을 디뎌 들어가면 됐다. 김세은이 있다면 어디든 가야 했다. 화장실 쪽으로 뛰었다. 2층에는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1층으로 내려갔다. 어두운 장애인 화장실에서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흑, 끅, 거리는 소리가 익숙했다. 울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확실히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김세은을 울려 왔던 거였다. 미안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변기 커버 위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뚝뚝 흘리던 김세은이 얼굴을 들었다. 메이크업이 눈물로 무너져 내려 있었다.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지만, 김세은이라서 마냥 귀엽고 예쁘기만 했다.
“세은아...”
“흑, 온유야... 끕...”
화장실 문을 잠그고 김세은의 앞에서 무릎 꿇고 김세은을 올려 봤다. 오른손을 들어 김세은의 왼 볼을 쓰다듬었다.
“왜 울어...”
“나, 흡... 미안해... 내가, 흑... 미안해...”
“괜찮아...”
“흑... 미안해애...”
“...”
일어서서 김세은의 두 팔을 잡고 몸을 숙여 김세은의 목 왼쪽에 입술을 맞췄다. 한 3초 정도 있다가 김세은의 왼 볼에도 가볍게 입 맞추고 왼 귀에도 입술을 맞췄다. 입을 열었다.
“사랑해 세은아.”
“나도, 흡... 나도 사랑해...”
다시 무릎 꿇고 김세은을 올려 봤다. 두 손으로 김세은의 볼을 잡았다. 흑, 끅, 흡, 거리면서 고개를 얕게 끄덕이는 김세은이 내 눈을 마주쳐왔다. 어두운 빛을 품은 두 눈이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울지 마...”
“흑, 알겠어...”
가만히 김세은을 바라봤다. 울음이 차차 잦아들었다.
“... 눈물 닦아줘도 돼?”
“흑... 응...”
엄지로 눈물을 조심히 닦아줬다. 내가 지은 죄들이 머리를 스쳤다. 미안했다. 미소 지어 보였다. 입을 열었다.
“왜 울었어.”
“너 여자애들한테 둘러싸여 있는 거 보고서, 흑, 나 없어도 잘, 흡...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흐윽...”
“나 너 없으면 못 살아 세은아.”
“흑, 미안... 나 완전 바보지...?”
“아냐. 내가 나빴어.”
“네가 왜 나빴어...?”
“나한테 네가 없으면 안 된다는 확신을 못 줬잖아. 난 너 없으면 안 돼.”
“...”
김세은이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엄지를 움직여 내 볼을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김세은의 손길은 한없이 따스했다. 입을 열었다.
“너 지금 폰 있어?”
“응...”
“보여줄 거 있어. 플래시라이트 켜봐.”
“알겠어...”
안주머니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꺼냈다. 김세은이 폰을 꺼내 손전등 기능을 켰다. 변기 옆으로 가 꿇어 앉은 다음 편지를 펼쳐서 김세은이 볼 수 있게 했다.
“뭐야...?”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남긴 편지. 다 읽으면 다 읽었다고 얘기해줘.”
“응...”
김세은이 금방 편지에 집중해서는 다음, 다음, 이라고 말했다. 슬픈 대목에선 울상을 짓고, 별을 다섯 개 그린 부분 같은 데에선 미소 지으며 어머니 되게 귀여우시다, 라고 말했다. 그렇게 반응하면서 편지를 보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알게 모르게 미소 짓고 말았다. 김세은이 마지막장을 보고 허억, 하고 숨을 삼켰다.
“이거 피 뭐야...?”
“나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거래, 외할아버지가.”
“...”
김세은이 몸을 내 쪽으로 돌려 두 팔로 나를 감싸안았다. 편지를 접어 바지 왼 주머니에 넣고 두 팔로 김세은을 끌어 안아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입을 열었다.
“매일 사랑한다라고 써 있잖아, 마지막 장에.”
“응...”
“내가 보기에 말을 못 끝맺으신 거 같아. 온점도 없고 그러니까.”
“으응... 그럼 무슨 말하셨을 거 같은데...?”
“매일 사랑한다고 해주기. 대충 그런 내용으로 나한테 어떡해야 할지 알려주시려 했던 거 같아.”
“응...”
고개를 들었다.
“사랑해 세은아. 매일, 매일 사랑해.”
“...”
김세은이 빙긋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왼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내 얼굴에 떨어졌다. 뜨거웠다. 김세은이 예쁜 입을 열어 나직이 목소리를 냈다.
“나도 사랑해 온유야...”
가슴이 뭉클했다. 미소 지어졌다. 여태 이 감정을 정의하는 걸 회피해왔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나는 김세은을 사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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