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화요일 (3)
* * *
송선우랑 같이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 반쯤 눕듯이 앉았다. 아침부터 밥하고 누워 있는 걸 안아 들어서 1층으로 내려와 식탁 앞 의자에 앉혀 주고 머리 감겨주고 뒷정리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아주 별일을 다 했다. 송선우가 내 왼편에 나랑 비슷한 자세로 앉고 오른팔을 등받이 위에 올려 오른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수고했어.”
“너도.”
“피곤해?”
“응.”
“그럼 이따가...”
계단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선우가 계단 쪽을 봤다. 가방을 멘 백지수가 내려오고 있었다. 어느새 등교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백지수가 현관 쪽으로 가면서 내 왼편에 있는 송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안 가도 돼?”
“나 걍 온유랑 있게.”
“그래.”
백지수가 산뜻하게 답했다. 뭔가 여유로워 보였다. 내가 송선우한테 가지 않는다고 한 것 때문에 안심했나? 다가가서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입을 열었다.
“잘 가.”
“어. 봉사활동 잘하고.”
“응.”
“학교 잘 가 지수야.”
“응.”
백지수가 밖으로 나갔다. 송선우가 일어나서 현관 쪽으로 갔다. 뭐 하는 거지? 궁금해서 나도 일어났다. 송선우가 문손잡이를 잡고 밀고 당겼다. 잠가놨는지 밀었을 때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뭐 해?”
송선우가 뒤돌아 걸어왔다.
“그냥 확인.”
송선우가 오른팔로 내 등 쪽을 감싸 안아왔다.
“자러 가자.”
“같이?”
“응. 나도 피곤해.”
“...”
덮치지는 않겠지? 아마 안 그럴 거였다. 미성년자 섹스는 안 된다는 대쪽 같은 철칙을 가진 송선우가 갑자기 나를 덮칠 리는 없었다. 같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약간 불안했다. 송선우가 먼저 침대에 기어올라 오른편으로 갔다. 왼편에 누웠다. 송선우가 베개 위에 왼팔을 올려 머리를 기대고 나를 바라봤다.
“근데 껴안고 자는 거 좋더라. 따뜻하고 안정감 있고.”
“그래?”
“응. 그래서 그런데 나 좀 껴안아 주라.”
“에반데.”
“뭐가.”
“그냥 좀 그렇지 않아? 네가 생각해도?”
“응 하나도 아니야.”
송선우가 몸을 뒤척여 내게서 등 돌려 누웠다. 결이 좋은 머리카락을 따라가면 그 끝에 군살 없이 얇은 허리가 있었다. 껴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입을 열었다.
“뭐야?”
“뒤에서 껴안아 줘봐.”
“... 아무리 생각해도 에반데 진짜.”
“아 씨 내가 아니라는데 말이 많아. 빨리.”
“...”
왼손으로 자지를 밑으로 내린 다음 최대한 상체만 밀착하고 왼팔로 송선우의 허리를 감싸서 끌어왔다. 송선우가 끌려오면서 힉,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피식 웃고 송선우를 안았다.
“야 그런 거 할 거면 말 좀 해...”
“미안.”
“...”
송선우가 내 왼팔 위로 자기 왼팔을 올렸다.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이 익숙했다. 백지수가 쓰는 샴푸를 썼을 테니 당연한 거였다.
“야.”
“응?”
“너 그거 세운 거 때문에 지금 다리 못 붙이는 거야?”
“... 네.”
“봐줄 테니까 다리도 붙여봐.”
“...”
“빨리.”
송선우의 힙업된 엉덩이에 골반을 붙였다. 분명 내가 다가간 거인데 송선우의 엉덩이가 내 골반에 붙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송선우의 엉덩이는 감기는 마력이 있었다. 다리도 맞닿게 했다. 왼 허벅지에 붙여서 숨긴 자지가 송선우의 왼허벅지에 맞닿았다. 입을 열었다.
“괜찮아?”
송선우가 목을 움츠리고 부르르 떨었다. 존나 귀여웠다.
“... 아니 너 바지 벗었어...?”
“아니?”
“왜 이렇게 뜨겁냐 진짜...?”
“나도 몰라.”
“미친...”
“다리 뗄까?”
“아냐 괜찮아...”
“이대로 잘 거야?”
“응...”
“느낌 어때?”
“느낌이라니...?”
“뒤에서 안아주는 거.”
“으응... 그냥... 좋은데...?”
“어떻게?”
“따뜻해... 약간 보호받는 거 같은 느낌도 들구...”
“그래?”
오른팔을 사이드 플랭크를 하듯 세우고 오른손으로 송선우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뭐 해...?”
“나 자려는데 머리카락 방해돼서 위로 올리려고. 일단 정리부터 하고 있어.”
“으응...”
송선우의 머리카락을 모아 쥐어 차근차근 위로 올렸다. 머리를 옮겨 송선우의 베개를 같이 썼다. 입을 열었다.
“근데 너 부모님이 오라거나 하지 않으셨어?”
“오늘은 올 거지, 라고 문자 오긴 했어.”
“그럼 오라는 소리네?”
“잘만 얘기하면 또 여기서 잘 수도 있고.”
“으응...”
코로 한 번 크게 숨을 쉬었다 내쉬었다. 가득 풍겨오는 샴푸 향이 좋았다.
“너 변태야?”
“아니 나 그냥 숨 좀 한 번 크게 쉰 건데?”
“왜 하필 내 머리카락에 코 박고 해?”
“코 안 박았어.”
“박았구만.”
“아니야.”
“변태 새끼.”
“그럼 나 억울해.”
“억울하긴 무슨... 너 지수한테도 그래?”
“그런다는 게 뭘 지시하는 거야?”
“코 박고 냄새 맡고 그러냐고.”
“아니 나 그냥 숨 한 번 크게 쉰 거라니까.”
“... 해놓고 그렇게 발뺌하는구나?”
“아니야.”
“그래, 아니겠지.”
“너 그러면 나 삐진다?”
송선우가 피식 웃고 고개를 돌렸다. 선이 또렷한 청순한 옆얼굴에 곱게 휘어진 눈이 요망함을 더했다.
“삐지면 어쩔 건데?”
“안 안아줄 거야.”
“미친놈.”
미소 지었다. 송선우도 살폿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입을 열었다.
“오늘은 벚꽃 보러 가자고 안 할 거지?”
“넌 나랑 벚꽃 보러 가는 게 그렇게 싫어?”
“싫은 건 아닌데 귀찮지.”
“그래. 지금은 나도 귀찮아.”
“이제 진짜 자는 거야?”
“응. 자기로 했잖아.”
“응. 잘 자.”
“잘 자.”
송선우가 뒤돌아 보지도 않고 왼손을 뒤로 해서 내 왼 볼을 쓰다듬었다. 고개를 획 돌리고 입술로 이를 감싸서 송선우의 검지랑 중지를 물었다.
“야 뭐 해!”
“으믐믐.”
“뭐라고?”
입을 열어 검지랑 중지를 빼게 해줬다. 송선우가 내 왼 옆구리에 손가락을 닦았다.
“뭐라 한 거야 방금?”
“그냥 음미한 건데? 음음음, 하고.”
“뭐?”
송선우가 아학학하고 웃었다.
“너 진짜 개 미친 새끼다.”
“고마워.”
“아 씨 방금 딱 잠잘 수 있었는데.”
“개이득.”
“뭐가 개이득인데?”
“난 안 졸렸거든. 이제 비슷한 타이밍에 잘 수 있게 됐으니까 이득임.”
“개 돌았다.”
“감사.”
송선우가 피식 웃었다.
“개 짜증나.”
“짜증나면 왜 웃어?”
“살짝 귀여운 것도 있어서.”
“내가 좀 귀엽긴 해.”
“진짜 지랄 맞으시다.”
“그게 내 매력.”
“그게 내 매력 이 지랄.”
송선우가 왼손으로 내 왼손목을 잡아서 팍 끌어당겼다. 내 왼팔이 송선우의 허리를 감쌌다. 송선우가 왼팔을 내 왼팔 위에 올리고 왼손목을 붙잡았다.
“그렇게 안 해도 어디 안 가.”
“나도 알아.”
“그럼 왜?”
“그냥 한 거야, 얄미워서.”
“그냥이라면서 이유가 또 뒤에 붙는 건 뭐야?”
“너 지금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거 개 찐따 같애.”
“말넘심.”
“또 삐질 거야?”
“아니. 한 번만 봐줄게.”
송선우가 왼손을 뒤로 해서 내 왼 볼을 톡톡 쳤다.
“고마워 찐따야.”
“나 삐짐.”
송선우가 이번엔 내 왼 볼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래서 어디 도망가게?”
“아니 나 이제 슬슬 졸려.”
“남 졸음은 다 물리쳐 놓고 너만 자겠다 이거야?”
“몰라 난 잘 거야.”
“존나 이기적이다.”
“응.”
“단답하는 것 봐 개 얄미워.”
히히 웃었다. 송선우도 살폿 웃고 왼팔을 내 왼팔 위에 올렸다. 수마가 덮쳐왔다. 그대로 몸을 맡겼다.
야 일어나 영화 보자.
송선우 목소리였다. 내 양옆 상완이 두 손에 붙잡혀 몸이 흔들렸다.
“영화 보자아.”
눈을 떴다. 어두웠다. 송선우의 긴 머리카락이 내 얼굴 앞에 드리워진 탓이었다.
“죄송한데 좀 비켜주실래요.”
“응.”
송선우가 머리를 뒤로 뺐다. 눈을 굴렸다. 침대 오른편에 있는 송선우는 바위에 오른 인어처럼 비스듬하게 앉아 있었다. 입을 열었다.
“근데 무슨 영환데?”
“아무거나.”
“영화관 가자는 거 아니지?”
“어. 소파에서 티비로 보자고.”
“으음... 나 일단 세수 좀 하고.”
“오키. 빨리 내려와.”
“응.”
송선우가 침대에서 뒤로 기어 바닥에 발을 디디고 방을 나갔다. 백지수 방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가서 얼굴을 닦고 1층으로 내려갔다. 불이 다 꺼지고 있는 커튼은 다 쳐내서 어두워질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어두워진 거실에 티비 하나만 빛을 내고 있었다. 리모컨을 들고 있는 송선우는 머리랑 다리에 쿠션을 하나씩 놓아서 소파에 드러누워있었다. 다가가서 머리 앞에 서고 입을 열었다.
“나는 어디에 앉으라고요?”
“음. 걍 앉지 말고 네가 내 뒤에 와서 나 껴안을래?”
“진심이야?”
“난 쌉가능임.”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에선 내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얘기해야 되는 거 아냐?”
“내 의견도 중요하지. 무려 뒤를 내주는 건데.”
“에반데?”
“뭐가?”
“너 말하는 거요.”
송선우가 씨익 웃었다.
“왜. 너무 야해서 또 설 거 같애?”
“진짜 변태 아저씨세요?”
“헛소리 그만하고 내 뒤로 오기나 하세요.”
“진짜 내가 네 뒤로 가려면 일단 네가 나와줘야 되지 않을까?”
“그래.”
송선우가 선선히 일어섰다. 왼편에 앉았다. 송선우가 나를 내려보고 입을 열었다.
“뭐야 너 안 누워?”
“응.”
“에반데.”
“네가 더 에바인 듯.”
“이거 내 마음이가 팍 상해버리네요.”
송선우가 투덜대면서 오른편에 앉았다.
“무슨 영화야?”
“이터널 선샤인.”
송선우가 리모컨을 눌러 영화를 시작했다. 입을 열었다.
“너 저번에 어바웃타임 봤다 했나?”
“응.”
로맨스 영화를 되게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뭐 나중에 로맨스 배우라도 되시게?”
송선우가 왼손을 올려서 내 오른 볼을 꼬집었다.
“말 얄밉게 한다?”
“죄송.”
“이번 한 번만 봐줌.”
송선우가 그대로 왼손을 내려 내가 자지를 붙여놓은 오른 허벅지 위에 올렸다. 송선우가 화들짝 놀라 왼손을 떼서 위로 올리고 나를 바라봤다.
“죄송.”
“방금 봐줬으니까 한 번만 봐줌.”
송선우가 피식 웃었다.
“어.”
잡담하느라 처음 장면을 놓쳐버렸다. 송선우가 영화를 뒤로 돌리고 소파에 등을 묻듯이 기댔다. 똑같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 송선우를 바라봤다. 영화에 집중한 옆얼굴이 새삼스럽게 예뻤다. 고개를 돌려 화면을 봤다. 시리도록 차가운 2월의 어느 날,몬타우크행 열차가 경적을 울리며 선로를 달려 역으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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