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155화 (155/438)

〈 155화 〉 월요일, 근데 이제 학교를 안 가는 (6)

* * *

“듣고 싶은 노래 있는 사람 있어요?”

나랑 강혜린이 사귀는 거냐고 물어본 남자애가 손을 드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저요! 작은 것들을 위한 시요!”

이어서 애들이 마구 손을 들면서 듣고 싶은 노래를 말해댔다. 카메라를 킨 강혜린한테서는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강은 선생님을 바라봤다. 입을 다문 채 은은히 미소를 띠고 있는 게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처음으로 말한 남자애의 명찰을 봤다. 이지성이라 쓰여 있었다. 뭐라 할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얘들아 잠깐만 집, 중.”

강은 선생님이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입을 열었다.

“집중!”

““집중!””

애들이 조용해졌다. 귀여웠다. 미소지었다.

“지성이가 제일 먼저 말했으니까 작은 것들을 위한 시부터 부를게.”

“그럼 다른 노래도 불러주는 거예요?”

어떤 남자애가 물었다.

“불러줄게. 근데 다음부턴 다 손 먼저 들고, 선생님이 지목하는 사람만 얘기해야 돼요?”

““네!””

뒤늦게 네, 라고 답하는 애들도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무 귀여웠다. 머릿속으로 코드를 되짚어봤다. 익숙한 노래였으니 바로 해도 될 듯했다.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애들이 우아, 하고 감탄했다. 잘 쳐요, 라고 말하는 애도 있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까지 순수한 반응은 또 처음이라 새로웠다. 호흡하고 성대를 울렸다.

ㅡ모든 게 궁금해 how's your day

Oh tell me oh yeah oh yeah, ah yeh ah yeh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하나 같이 초롱초롱했다. 앞으로는 봉사활동을 한다면 유치원만 오는 것도 좋을 듯했다.

*

ㅡ함께 하고 있지만 마음이 이상해

자꾸 CG같애 내 몸이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Drama를 부르는 중인데 강은 선생님이 문을 열고 밖에 나갔다. 얼마 안 가 강은 선생님이 문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었다가 도로 빠져나갔다. 뭐 하시는 걸까. 곧 강은 선생님이 다시 돌아와서 문 안으로 들어오고 아이들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남자분 한 명이랑 여자분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를 데리러 오신 건가. 시선을 앞으로 돌린 채 계속 노래를 불렀다.

ㅡ이건 네 drama

아이들이랑 부모님들이 박수 쳤다. 멋쩍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은지야 수영아 밖에 부모님 계셔. 나가자.”

강은 선생님이 말했다. 두 여자애가 강은 선생님을 쳐다봤다. 김수영이라는 명찰을 찬 여자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모습을 본 이은지라는 명찰을 찬 여자아이가 고개를 똑같이 도리도리 저었다. 강은 선생님이 다가와서 맨 앞줄에 앉은 이은지의 양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고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다섯 살 정도 되는 애 같은데 들어 올리려면 꽤 힘이 들 거였다. 과연 승모근이 눈에 띄지는 않을 정도지만 약간은 발달해 있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모양이었다.

“가야지.”

“싫어여!”

강은 선생님이 이은지를 익숙하게 품에 안았다.

“지금 집 가야 부모님이랑 빨리 저녁 먹지.”

“안 배고파요!”

“그래도 엄마랑 아빠가 우리 은지 보고 싶어 하는데 가야죠?”

“흐잉... 애들아 잘 있어...”

“잘 가 은지야.”

“바이.”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은지를 보냈다. 강은 선생님이 그대로 문밖으로 나갔다. 부모님들도 자기 아이를 불렀다. 불린 아이들이 나를 보고 인사하고 애들을 보고 인사한 다음에야 나갔다. 김수영이 방구석으로 도망쳐서 쭈그려 앉았다. 그런다고 몸이 숨겨지는 건 아닌데. 강은 선생님이 돌아와서 방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단박에 김수영을 찾고 품에 안았다. 김수영이 나를 바라보면서 강은 선생님의 어깨 위로 두 팔을 올려 손을 흔들었다.

“내일 봬요 온유 선생님.”

오른손을 마주 흔들어줬다.

“내일 봐요.”

“애들아 잘 있어.”

“응 잘 가.”

강은 선생님이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문 쪽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어떤 남자애가 입을 열었다.

“노래 또 불러주세요!”

미소지어졌다.

“알겠어.”

그 뒤로도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 아이를 직접 데리러 오신 부모님을 따라 차에 오르거나 유치원 버스를 타서 하원하는 아이들을 보내기를 반복했다. 좀 지친다 싶어질 때 강혜린이 다가와서 내 오른팔을 오른손 검지로 쿡쿡 찔렀다. 고개 돌려 눈을 마주쳤다. 강혜린이 입을 열었다.

“온유 쌤 저희가 여섯 시 되면 저녁 먹거든요. 식사 준비하는 거 좀 도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강혜린이 몸을 똑바로 세우고 아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녁 먹자 얘들아.”

““네!””

기타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강혜린이 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고개를 돌려 나를 본 다음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강혜린의 뒤를 졸졸졸 따라갔다. 맨 뒤에서 강은 선생님이랑 같이 뒤따랐다. 식당에 들어가고 아이들이 익숙하게 식탁 앞에 가 앉아 시끄럽게 떠들었다. 맵지 않아 보이는 제육볶음, 김치, 깨를 올린 시금치 무침, 잡곡밥, 김자반, 닭죽이 올라가 있는 식판을 받아 차차 아이들 앞에 올려줬다. 맛있어 보이는데 바로 먹지는 못하고 건네주기만 하니 허기가 졌다. 괜히 침을 삼키고 비로소 내 식판도 받아서 강은 선생님 옆자리에 식판을 놓았다. 강은 선생님이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불길했다. 강은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식사 전에 애들한테 식단 소개해줘야 돼요.”

“너무 저만 시키시는 거 아니에요?”

“온유 쌤 하는 게 너무 보기 좋아서요. 애들도 좋아하고. 애들 빨리 밥 먹어야 되니까 빨리 일어나서 설명해주세요.”

하는 수 없었다.

“네.”

일어나서 식단을 하나씩 짚으면서 되는 대로 얘기했다. 제육볶음은 돼지 전지, 앞다리살이나 삼겹살, 목살로 만드는데 앞다리살이 싸고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말부터 시금치는 섬유질이 풍부해서 변비에 좋고 칼슘 흡수를 돕는 비타민이 많아서 키가 크고 싶으면 많이 먹는 게 좋다는 말까지 했다. 말을 마치고 강은 선생님을 바라봤다. 밝게 웃고 있었다. 괜찮게 한 모양이었다. 강은 선생님이랑 마주 보는 자리에 앉은 강혜린이 입을 열었다.

“우리 노래도 잘 부르고 똑똑하고 잘생긴 온유 쌤 수고하셨으니까 박수!”

아이들이 와아, 하고 소리 내면서 박수쳐줬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강혜린이 이제 먹자, 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나도 숟가락을 들어 밥을 한술 떠 놓고 젓가락으로 제육볶음을 세 점 집어 입에 넣었다. 강은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고 눈웃음지었다.

“진짜 유치원 선생님 해야겠는데요 온유 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저 귀 얇아서 넘어갈 수도 있어요.”

“그럼 더 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안 돼요 진짜.”

강혜린이 닭죽을 한 입 먹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온유 쌤은 꿈 뭐예요?”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저 가수요.”

“으음! 그럼 유치원 선생님은 못 하시겠네요?”

“안 돼요!”

“온유 쌤 유치원 선생님해요!”

애들이 나를 쳐다보면서 외쳤다. 뭘 먹고 있다가 말을 한 애도 있었다. 너무 귀여워서 웃었다.

“생각해볼게요.”

한술 떠 놓은 밥에 김자반을 조금 올려 입에 넣고 제육볶음도 두 점 집어 입에 넣은 다음 우물거렸다. 노래만 주구장창 부르고 난 다음이라서 그런가 밥이 되게 맛있었다. 강은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밥 맛있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네 진짜 맛있어요.”

“영양사분이랑 요리사분이 따로 있으신데 진짜 잘해주세요. 근데 온유 쌤 방금 얘기하신 거 들어보면 요리도 잘하시는 거 같은데, 요리가 취미에요?”

“네.”

“으음... 진짜 최고네요 온유 쌤.”

강혜린이 눈웃음 지으면서 강은 선생님을 바라보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온유 쌤 고등학생이에요 유강은 선생님.”

유강은이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대학생 아니었어요?”

“네 저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대애박.”

애들이 나를 쳐다봤다.

“온유 선생님 고등학생이에요?”

“난 온유 쌤 젊은 거 알았어!”

“나도!”

웃었다. 애들은 왜 이렇게 귀여운지, 보기만 해도 행복지수가 오르는 느낌이었다. 밥이나 반찬을 더 달라는 애들에게 달라고 하는 만큼 배식해주면서 밥을 먹어치웠다. 식판을 정리하고 강혜린이랑 다시 반으로 걸어갔다. 문득 강혜린은 원장 선생님인데 왜 계속 나랑 있는 건가 궁금해졌다. 강혜린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혜린 선생님.”

“네 온유 쌤.”

“혜린 선생님은 원장 선생님인데 왜 계속 애들이랑 계세요?”

강혜린이 눈을 좁혔다.

“저 눈치 주는 거예요?”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온유 쌤이 콘서트하는데 그걸 놓칠 순 없잖아요. 밥은 같이 먹을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당장 급한 건 없으니까 온유 쌤 어떡하나 보면서 영상에 담을 컷 좀만 더 만들 생각하고 있어요.”

“전 삼일 있다가 가는 건데 제가 많이 담겨도 돼요?”

“괜찮아요. 어차피 제가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거니까 누가 뭐라 안 해요.”

“그럼 어쩔 수 없구요. 근데 저 잠깐 화장실 좀 가고 싶은데.”

“화장실이요?”

강혜린이 고개를 돌려 왼손 검지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있어요.”

“아 네.”

“빨리 갔다가 반으로 와요?”

“알겠습니다.”

강혜린이 미소 짓고 먼저 반으로 갔다. 화장실로 뛰어가서 소변을 눈 다음 손을 씻고 돌아갔다. 노래를 또 부르게 시키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아까 노래를 불러줄 때처럼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결국엔 다시 의자에 앉아서 노래를 세 곡 불러주고 말았다. 기타를 케이스 안에 넣고 뒤돌아봤다. 아이들이 자리를 비울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았다. 유강은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제 온유 쌤이 동화 읽어주셔야 해요.”

유강은의 품에 동화책이 안긴 게 이제야 보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네.”

유강은이 미소 짓고 동화책을 건네줬다. 두 손으로 받았다. 제목은 욕심 많은 다람쥐씨였다.

“그림 보여주시면서 읽어주면 돼요.”

“알겠습니다.”

책을 정면으로 해서 애들에게 표지부터 보여주고 고개를 앞으로 숙여 글자를 보면서 읽어줬다. 사방팔방이 도토리인 곳을 발견한 다람쥐씨가 뺨주머니에 도토리를 왕창 넣었다가 비좁은 입구에 걸려서 나가지를 못하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발만 동동 구르면서 고민하는 게 초반부였다. 중반은 입구에 돌멩이를 던져보고 이빨로 갉아보기도 하다가 헛되이 시간만 허비하고 저물어가는 해를 보는 내용이었다. 결말은 나이 들고 현명한 다람쥐씨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으로 갑자기 등장해서 욕심 많은 다람쥐씨한테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적당히 가져가라는 말을 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욕심 많은 다람쥐씨도 도토리 두 알만 양 뺨에 나눠 넣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용이었다.

“온유 쌤 목소리 진짜 좋다.”

나를 영상으로 찍다가 동화를 다 읽어주고 나니 폰을 내려놓은 강혜린이 대뜸 말했다.

“그치 얘들아.”

““네!””

“그럼 우리 온유 쌤한테 하나만 더 읽어달라고 할까?”

““좋아요!””

강혜린이 나를 쳐다보고 미소지었다.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강혜린이랑 유강은이 나한테 이것저것 시키는 거에 맛 들인 듯했다. 유강은이 새로운 동화책을 내게 건네줬다. 아이들이 얌전히 앉아서 나를 쳐다봤다. 어쩔 수 없이 동화책을 두 손으로 받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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