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월요일, 근데 이제 학교를 안 가는 (5)
* * *
냄비를 확인했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송선우가 뒤에 붙어와서 두 손으로 내 양옆 팔을 잡고 까치발을 서서 내 왼 어깨에 턱을 얹었다.
“하나씩 머거보자 오뉴야.”
“꼭 그렇게 내 어깨에 턱 붙이고 말해야 돼?”
“내 맘.”
송선우가 말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릇 두 개랑 젓가락 두 쌍을 가져왔다. 집게로 갈비를 한 대씩 꺼내 그릇에 담고 국자로 채소 건더기랑 국물을 퍼담았다. 송선우가 옆에서 내가 갈비를 꺼내는 걸 보면서 입을 열었다.
“진짜 하나만 주는 건 진짜 정 없는 거인 거 아시죠?”
피식 웃었다.
“알겠어요.”
집게로 갈비를 한 대씩 더 넣어줬다. 송선우가 그릇이랑 젓가락 한 쌍을 받아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그릇이랑 젓가락을 들고 송선우 옆자리로 가 앉았다. 송선우가 먼저 갈비를 한 입 뜯었다. 송선우가 우물거리는 모습을 보며 갈비를 뜯었다. 좀 대강했는데 간이 적당했다. 후추랑 고추를 넣어서 매운 느낌도 있어서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을 듯했다. 송선우가 음, 하고 소리 내며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거는 밥 없으면 안 된다.”
“즉석밥 가져와?”
“응. 반 나눠 먹자.”
“그래.”
일어나서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반을 나눠서 내 그릇에 옮겨 담고 용기를 송선우에게 건넸다. 송선우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밥에 뿌려주고 한술 떠서 입에 넣은 다음 갈비를 뜯어 먹었다. 식욕이 돌았다. 송선우는 맛있게 먹는 재능이 있었다. 송선우처럼 밥을 국물에 비벼 한술 떠 입에 넣고 갈비를 뜯어 먹었다. 맛있어서 결국엔 두 개로도 모자라서 갈비를 한 대 더 꺼내서 뜯어 먹고 말았다.
다 먹고 나서 바로 설거지했다. 기타 케이스를 등에 메고 주머니에 지갑이랑 폰이 있는지 확인해봤다. 소파에 앉은 송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응. 지수 오면 갈비찜 같이 먹고, 시간도 때우게.”
“잠도 여기에서 잘 거야?”
송선우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왜. 내가 여기서 자면 지수랑 같이 못 자니까 안 돼?”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몰라 여기에서 잘지 안 잘지. 일단 그럴 확률이 높을 거 같다는 것만 알아둬.”
“응. 나 갈게?”
“잘 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바로 문을 잠그고 대문을 나와 도로 닫았다. 유치원이 그리 멀리 있지 않아서 폰을 켜 지도앱을 보면서 걸어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뭘 하든 처음이면 긴장되고 가슴이 떨렸지만 지금은 평소랑은 약간 달랐다. 긴장보다는 기대감이 조금 더 큰 느낌이었다. 완전 유아인 애들을 보게 될지 아니면 조금 큰 애들을 보게 될지도 궁금했고, 어린 애들이 내가 부르는 노래를 좋아해줄 지도 궁금했다.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유치원 외벽은 기본적으로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고 방울 같은 원이 여럿 있어 갖가지 단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색이 여럿이면 난잡할 법도 했지만 꽤 조화가 잘 되어 있어서 척 보기에 괜찮았다.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해야 하나 생각했다가 그냥 폰을 켜 통화 내역을 살펴 유치원으로 전화했다. 수신음이 여섯 번 가고 연결됐다.
ㅡ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다섯 시에 봉사하기로 한 학생인데요.”
ㅡ아 네.
“저 지금 유치원 앞에 와 있는데 그냥 안에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ㅡ네. 들어오세요. 제가 지금 바로 나갈게요.
전화가 뚝 끊겼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바로 달려오는 건가. 일단 문을 열어 안에 들어갔다. 왼쪽 코너에서 오른손에 회색 앞치마를 들고 있는 눈에 띌 정도로 가슴이 큰 젊은 여자가 튀어나와 내 쪽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여자가 화색을 띠고 천천히 걸어왔다. 가슴에 시선이 가는 걸 겨우 참고 얼굴을 바라보며 등에 멘 기타 케이스를 빼 문 옆의 벽에 세워놓았다. 가까워진 여자가 입을 열었다.
“봉사 활동하러 온 학생이죠?”
통화할 때 들었던 목소리였다.
“네.”
“와.”
여자가 한 번 감탄하고 시선은 내 얼굴에 고정한 채 오른손에 들었던 앞치마를 펼쳐 목에 걸치는 부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일단 이거 걸쳐요.”
“네.”
상체를 기울이고 고개를 숙였다. 여자가 앞치마를 목에 걸어줬다.
“근데 목소리보다 잘생겼어요 진짜.”
웃었다. 처음 들어보는 방식의 칭찬이었다. 고개를 들고 앞치마 끈을 뒤로 묶었다.
“감사합니다.”
“온유 쌤 애들한테 인기 엄청 많겠네요. 막 보자마자 달려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쌤이요?”
여자가 미소지었다.
“네. 보조 역할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선생님으로 왔으니까 쌤이죠. 그리고 애들한테 봉사자님이라고 말하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그렇긴 하네요.”
여자가 살폿 미소짓고 왼손을 들어 검지로 방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 바로 오른쪽 방으로 들어가서 일하시는 선생님이랑 애들이랑 인사하시고, 이제 또 하원 시간이니까 가는 애들 보내준 다음 선생님이 필요하다 하실 때 보조 맞춰주시고 같이 식사하고 또 놀아주면 돼요. 오늘부터 수요일까지.”
“알겠습니다.”
여자가 미소지었다.
“따라와요.”
“네.”
오른손으로 기타 케이스를 챙겨 오른 어깨에 멨다. 여자가 원장실 안으로 들어가 자기 책상 앞으로 갔다. 컴퓨터랑 색종이, 색연필 같은 게 늘어놓아진 책상 위에는 종이를 접어 만든 삼각 명패도 있었다. 명패에는 꽤 공을 들였는지 반듯한 글씨로 강혜린이라고 쓰여 있었다. 무슨 서식이 그려진 종이랑 볼펜을 하나 든 여자가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명패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거 지성이가 저한테 만들어준 거예요. 되게 귀여운데. 이제 곧 있으면 보실 애예요.”
강혜린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면서 종이랑 볼펜을 내게 건네주었다. 두 손으로 받았다.
“그거 일과 마치고 오늘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뭐 했는지 쓰는 건데 하는 거야 정해져 있으니까 지금 써도 되고 나중에 써도 돼요.”
몸을 기울여 종이가 원래 있던 데에 도로 내려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나중에 쓰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끝나기 전에 다시 여기 원장실 들어와서 쓰고 가요?”
“네.”
강혜린이 미소지었다.
“좋아요. 따라오세요.”
강혜린이 원장실에서 나가서 문을 열고 한 발짝 안으로 들어가 옆으로 비켜선 다음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선생님을 바라보고 오른손바닥을 내보여 손끝으로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강은 쌤, 봉사하러 오신 온유 쌤이에요.”
강은 쌤이라 불린 여자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고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안에 있던 애들이 나를 쳐다보며 동시다발적으로 입을 열었다.
“새로 온 선생님이에요?”
“안녕하세요!”
“우와!”
“안녕하세요!”
멋쩍게 웃으면서 두 손을 흔들었다.
“어 안녕.”
“선생님 잘생겼어요!”
“쌤! 쌤 이름 뭐예요?”
강은 선생님이 내 이름을 물어본 남자애의 머리를 왼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쌤 말고 선생님. 그리고 온유 쌤이라고 원장 쌤이 말씀해주셨잖아.”
“아 이름 말고 성이요!”
“이 쌤 성은 이예요, 오얏 리.”
강혜린이 미소지으며 답했다.
“오얏 리온유 선생님!”
“오얏 리온유 선생님 아니고 이온유 선생님이에요.”
강은 선생님이 친절히 말해줬다. 나를 보고 오얏 리온유라고 말한 남자애가 히히 웃었다. 시답잖은 말장난인데 하나도 짜증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마냥 귀엽기만 했다. 아직도 은은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는 강혜린이 아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얘들아 잠깐 집, 중.”
말이 멜로디컬했다. 강은 선생님이 이어서 입을 열었다.
“집중!”
““집중!””
나한테 무관심한 듯 멀리서 장난감을 만지고 있던 아이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강혜린을 쳐다보았다. 강혜린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면서 두 손바닥을 내보이며 나를 가리켰다.
“지금 오신 우리 온유 쌤이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거를 진짜 어어어엄청 잘하셔서, 우리한테 노래 들려주시겠대. 그니까 박수!”
“우아!”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멋쩍게 웃었다. 이건 어떻게 뒤로 뺄 수 없었다. 기타 케이스를 어깨에서 빼서 지퍼를 열면서 강혜린을 바라보았다. 아이 같은 웃음을 지은 강혜린이 무릎을 굽혀 왼손을 들어 자기 입을 가리면서 내 왼 귀 가까이에 입술을 댔다.
“미안해요. 온유 쌤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게 진짜 너무 궁금해서 억지 좀 부렸어요.”
“괜찮아요.”
“그럼 영상 찍어도 돼요?”
“영상은 왜요?”
“제가 비디오 만드는 취미 있거든요. 연마다 영상들 모아서 편집해서 테이프로 만들어두고 있어요. 그거 나중에 애들 크면 보여주려고요.”
“졸업 앨범 느낌이네요?”
“맞아요.”
주춤주춤 가까이 다가온 남자애가 강혜린이랑 나를 번갈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온유 쌤이랑 혜린 쌤 사겨요?”
강혜린이 남자애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글쎄?”
“사귄다! 온유 쌤이랑 혜린 쌤 사귄다!”
“거짓말!”
어떤 여자애가 말했다. 옷의 가슴께에 달은 명찰에 성하윤이라고 쓰여 있었다.
“온유 쌤이 그렇게 얘기도 안 했잖아요.”
기본적으로 애들은 보통 사람이 말할 때랑 비교하면 한 옥타브가 높은 느낌인데 성하윤은 이상하게 목소리가 낮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강혜린이 성하윤을 보며 양손을 들어올려 엄지를 세웠다.
“맞아요. 역시 우리 똑똑한 하윤이.”
성하윤이 히 웃었다. 강은 선생님이 어느새 등받이 없는 의자를 가지고 내 오른편에 내려놓았다.
“온유 쌤 여기 앉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기타를 품에 안고 의자에 앉았다. 강은 선생님이랑 강혜린이 다들 여기 모여요, 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내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양반다리로 앉았다. 아이들을 한번 스윽 훑은 강혜린이 아이들의 맨 뒤로 가서 앉은 다음 폰을 켜 렌즈가 나를 향하게 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멋쩍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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