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142화 (142/438)

〈 142화 〉 일요일 (2)

* * *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폰으로 가장 시간이 근접한 버스표를 뒤쪽 창가 자리로 예약했다. 검정 트위드 자켓을 걸쳤다. 계약서가 담긴 종이봉투를 챙기고 백지수 방으로 갔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 채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아 양손으로 폰을 잡고 들어서 보던 백지수가 놀란 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왜 왔냐?”

“나 나간다고 말하고 나가려고.”

“어, 응.”

백지수가 폰을 끄고 침대에 내려놓은 다음 침대에 걸터앉았다. 백지수가 양팔을 벌렸다. 입을 열었다.

“왜 팔 벌려?”

“너 올라온 거 키스해달라고 온 거 아냐?”

“그런 건 아니었는데.”

“싫음 말고.”

“싫은 것도 아냐.”

다가가서 코앞에서 무릎을 꿇고 종이봉투를 내려놓은 다음 상체를 세웠다. 백지수가 고개를 숙이고 나를 껴안으면서 입술을 포갰다. 혀를 뒤섞었다.

“하움... 츄읍... 하아... 너 키스, 츄릅... 쮸읍... 존나 좋아한다... 헤웁...”

“네가 좋아하는 거 아니고?”

“쯉... 뭐래. 츄읍... 하웁... 쮸읍... 츄릅... 츕...”

“나, 나가야 되는데.”

“쮸읍... 나가. 츄릅... 헤웁... 쯉... 츄읍...”

“놔줘, 그럼.”

백지수가 내 목덜미에서 양손을 빼고 침대 위에 올려놓은 채로 혀를 내빼서 키스해왔다. 백지수가 으흐, 하고 소리 내면서 눈웃음지었다. 미치도록 음탕했다. 이대로 눕히고 따먹고 싶었다.

“왜 웃었어?”

“뭔가, 츄읍... 자세가, 쮸읍... 헤웁... 이상해서. 츄릅... 하움...”

입술을 떼고 일어섰다. 백지수가 내 자지 쪽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입을 벌렸다. 바지랑 팬티를 내리고 자지를 물려주고 싶었다. 백지수가 침을 삼켰다. 오른손으로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백지수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뭐 하냐?”

“넌 뭐 해?”

“내가 먼저 질문했잖아.”

“너 귀여워서. 넌 뭐 했어?”

“너 안 나가도 돼?”

피식 웃었다. 말을 피하는 게 귀여웠다.

“나가야지.”

“그럼 나가.”

“응.”

폰을 켜서 버스터미널을 목적지로 해서 택시를 불렀다. 오른 주머니에 폰을 넣고 무릎 꿇어 상체를 세웠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또 뭐?”

“키스하고 가게.”

백지수가 피식 웃고 내 목 뒤로 두 팔을 감아왔다. 가슴이 맞닿게 꽉 끌어안고 입술을 포갰다. 혀를 섞었다.

“츄읍... 쯉... 츄릅... 하움... 쮸읍... 헤웁... 하아... 나가 이제.”

“응. 잘 있어.”

“어. 잘 가.”

종이봉투를 오른손에 들고 뒤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뒷문을 열어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면서 택시에 올라탔다. 교통 신호가 잘 걸려서 조금 불안해졌다. 정차하자마자 감사하다고 말하고 바로 뛰어갔다. 늦지는 않아서 바로 QR코드를 찍고 버스에 올랐다. 좌석에 앉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껴서 녹음파일을 튼 다음 커튼을 쳤다. 눈을 감았다. 곧 졸음이 몰려왔다.

잠에서 깼다. 커튼을 걷어 창밖을 봤다. 정경이 익숙했다. 도착하는 시간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안 가 정차했다.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내렸다. 어머니 집 쪽으로 걸어갔다. 자괴감이 들었다. 김세은이 있는데 백지수랑 존나 물고 빨아 버린 내가 무슨 낯으로 어머니를 마주할 수 있을까. 고백을 하기는 해야 할 텐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창피했다. 한심스러웠다. 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찌 그리 입술을 빨아댔을까. 한숨이 나왔다. 김세은한테 어떻게 죄를 빌어야 할까. 미안했다.

꽃집에 들러 사랑이랑 건강을 꽃말로 가진 꽃들로 다발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웃는 상의 젊어 보이는 키 작은 여자 플로리스트가 입을 열었다.

“누구한테 주시는 거세요?”

“어머니요.”

“효자시네요.”

플로리스트가 미소를 지었다. 멋쩍게 웃었다. 내가 김세은한테 저지른 잘못을 어머니가 안다면 목덜미를 잡고 쓰러지실지도 몰랐다. 그런 짓을 한 나를 두고 효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플로리스트가 경쾌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꽃을 집고 다발에 꽂기를 반복했다. 얼마 안 가 플로리스트가 내게 흰색 잎이 다섯 개가 핀 버바스쿰과 보랏빛 스톡과 흰 장미를 섞어 다발을 안겨주었다.

“너무 예쁘네요.”

플로리스트가 헤헤 웃고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현금으로 결제하고 다음에도 또 오겠다고 말한 다음 밖에 나섰다. 조금 달리기도 하면서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집 대문 밖에 외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끊으신 거 아니었나. 안 좋은 징조 같아서 불길했다. 외할아버지가 하늘을 바라보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가 고개를 내렸다. 외할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외할아버지가 당황한 듯 어, 온유야, 왔냐, 라고 말하시면서 오른손에 든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대로 밟아서 비벼 끄셨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어요?”

“일 없다. 근데 웬일이냐, 연락도 안 하고 오고.”

외할아버지의 신발에서 스멀스멀 담배 냄새가 풍겨왔다. 불쾌했다. 빨리 어머니를 보고 싶었다. 대문 쪽으로 걸었다.

“저 안에 들어갈게요.”

외할아버지가 대문 앞을 가로막았다.

“아니다. 여기에서 잠깐만 있어봐라.”

“왜요?”

“네 엄마가 너 온다 하면 단장하고 그러는데, 그게 시간이 좀 필요하다. 네가 꽃도 가져왔는데 여기서 좀 기다려라.”

말이 너무 엉성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한테는 감춰야만 하는 문제가 어머니한테 생겼다. 그리 생각하니 가슴이 내려앉는 듯했다. 모두 김세은을 배신한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어떻게 생각해도 비이성적이었지만 심정은 그랬다.

“들어갈래요.”

“내가 먼저 들어가서 소연이한테 너 왔다고 얘기할 테니까 넌 어디 카페에 있다가 다시 와라. 응?”

“... 불안하게 왜 그러시는데요 진짜.”

“불안할 거 없다. 그냥 가라.”

눈물이 차오를 듯했다. 암울한 상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외할아버지가 안심한 듯 한숨 쉬었다.

“그래.”

뒤돌아서서 걸었다. 외할아버지가 보지 못할 곳으로 가서 담을 넘었다. 바로 달려서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안 보였다. 어머니 방으로 갔다. 외할머니가 침대 바로 옆 의자에 앉아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계셨다. 눈 감고 침대에 누워 계신 어머니의 몰골은 내가 여태껏 봐온 사람 중에 가장 가엾고 안타까웠다. 머리카락이 마구 빠졌는지 긴 머리카락으로 가린 머리에 듬성듬성 두피가 드러났다. 눈두덩 밑으로 짙게 내린 다크서클은 흡연자의 폐에 붙은 타르처럼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만 보였다. 움푹 들어간 볼은 해골을 연상시켰다. 앙상한 몸에는 핏기도 잘 돌지 않아서 언뜻 보면 송장으로 착각할지도 몰랐다. 얼마 보이지 않는 요인들만 따져도 어머니는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듯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

외할머니가 고개만 돌려서 나를 쳐다봤다. 외할머니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일어나서 오른팔로 나를 안아 오른손으로 내 팔뚝을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온유야 일단 나가자.”

“... 네.”

외할머니가 거실 소파에 나를 앉혔다. 입을 열어 조용히 소리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예요?”

“... 온유야...”

“왜 엄마 병원 안 데려가요? 어떻게 봐도 정상 아니잖아요. 환자잖아요. 엄마 할머니 딸 아니에요?”

외할머니가 얼굴을 구겼다. 외할머니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안 간대... 내가 몇 번 데려갔는데에... 더는 안 간대... 자기는 아무도 못 치료한대... 소용이 없대... 우리소연이가아...”

“...”

종이봉투랑 꽃다발을 탁자에 내려놓고 외할머니를 안았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죄송해요...”

외할머니가 나를 안고 소리죽여 울었다. 어머니가 깨실까 목 놓아 우시지도 못하는 외할머니를 두고 왜 어머니를 챙기지 않는 거냐고 꾸짖었을까. 화났다. 미웠다. 내가 싫었다. 아빠가 싫었다. 외할머니를 놓아드리고 갑 티슈를 가져와 외할머니랑 같이 눈물을 닦았다. 현관문이 열리고 외할아버지가 담배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너 어떻게 들어왔냐?”

“내가 소연이도 있는데 담배 냄새 풀풀 풍기지 말랬죠. 빨리 빼고 와요.”

얼굴을 찌푸린 외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외할아버지가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선선히 끄덕이면서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온유야. 따라 나와봐라.”

“네.”

일어나서 외할아버지를 뒤따라서 밖에 나갔다. 외할아버지가 대문을 나서고 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온유야.”

“네.”

외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내가 넘었던 담을 봤다.

“담 넘었냐?”

“네.”

“안 높았어?”

“넘을 만은 했어요.”

“그러냐.”

외할아버지가 어깨를 돌리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도 했다. 냄새를 빠뜨리려고 그러시는 듯했다. 금방 숨이 찬 외할아버지가 벤치에 앉았다. 오른손으로 옆자리를 털고 앉았다.

“온유야.”

“네.”

“미안하다.”

“뭐가요.”

“네 엄마 상태 안 좋은 거 얘기 안 했던 거 말이다.”

“... 엄마가 저한테 얘기하지 말라 했던 거죠?”

“그래.”

침묵이 오갔다. 외할아버지가 정적을 깼다.

“소연이 보고 가야겠냐?”

“무슨 소리예요 그게.”

“네 엄마가 너한테 그런 모습인 거 감추려고 여태 그래왔는데 너랑 마주하거나 해서 네가 알게 됐다는 거 알면 또 그걸로 마음 고생 더 많이 하지 않겠냐?”

“...”

외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안아서 왼손으로 내 등을 툭툭 쳤다.

“미안하다.너도 엄마랑 얘기는 해야지. 들어가자.”

“... 네.”

대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침울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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