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잭콕 (5)
* * *
[올라가도 돼?]
[왜]
왜, 라는 답장이 온 시간은 열한 시 십이 분이었다. 대략 세 시간 만에 온 답장이었다. 세 시간 동안 계속 자위한 걸까? 아니면 자위하다가 문자를 보긴 봤는데 용서해주기 싫어서 안 보고 있다가 지금 답장을 해준 걸까? 왠지 전자일 것 같았다. 텍스팅했다.
[사과하고 싶어서]
[해봐]
[올라갈게]
[어]
백지수 방으로 갔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팔짱 끼고 있던 백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생각을 안 해두고 무작정 올라온 내가 스스로 바보 같았다. 입을 열었다.
“놀려서 미안해.”
“그게 끝이야?”
“...”
다가가서 백지수 앞에서 무릎 꿇었다. 백지수가 날 내려보면서 왼눈썹을 치켜세웠다.
“뭐하냐?”
“나 사과 잘 못 해.”
“... 그래서 나 보고 어쩌라고?”
“몸으로, 시간으로 내가 미안하다는 거 보여주게.”
백지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한번 해봐.”
백지수가 침대에 누워 영상을 틀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쥐가 나도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백지수가 누운 자세를 고치는지 매트리스가 푹푹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 응?”
“눈 떠봐.”
눈을 떴다. 바로 앞에 백지수의 얼굴이 보였다. 백지수가 양손으로 내 목덜미를 붙잡고 입술을 맞췄다. 피할 수 없었다. 혀가 들어왔다. 민트 향이 났다. 백지수가 눈을 마주쳐왔다. 어떡해야 하지? 키스를 잘하면 꿈이 아닌 게 들킬 거였다. 일부러 혀를 서툴게 여기저기 돌려 피하듯이 했다.
“하움... 헤웁... 츄릅... 쯉... 하아... 츄읍... 하웁... 쮸읍...”
백지수가 입을 뗐다. 눈빛이 이글거렸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씨발... 미안해. 첫키스 뺏어서.”
“...”
일단 꿈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건 성공한 듯했다. 키스한 사이가 된 건 결국엔 마찬가지가 됐지만. 백지수가 다시 내 입술을 덮쳤다. 어쩔 수 없었다. 눈을 감고 혀를 섞었다.
“츄릅... 하아... 쯉... 헤웁...”
백지수가 입술을 떼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야.”
“응?”
“키스라는 게 교감이잖아. 서로 입술이랑 혀 맞닿게 해서 하는.”
“응.”
“그니까 혀 좀 내버려 두면 안 돼?”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키스 개 못했으면서.
“알겠어.”
백지수가 다시 입술을 포개왔다. 혀를 섞었다.
“츄읍... 하움... 쮸읍... 츕...”
입술이 떼어졌다. 눈을 떴다. 백지수가 다시 입술을 포개와서 가볍게 뽀뽀했다.
“야.”
“응.”
“우리 사귀자. 이렇게 키스도 한 거.”
피식 웃었다.
“선후 관계가 좀 잘못되지 않았어?”
“좆까 그런 걸 왜 따져.”
“왜 따지냐니, 순서나 절차 같은 게 왜 있어 그럼.”
“서로 호감 있으니까 키스한 거잖아.”
“네가 키스 갈긴 거 아니고?”
“너 키스 피할 수 있었잖아.”
“나 눈뜨라고 하고 바로 키스 갈겼으면서 피할 수 있다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그거 말고, 방금 두 번째로 키스했을 때부턴 너도 혀 섞었잖아.”
“피하면 네가 싫어할 거잖아.”
백지수가 픽 웃었다.
“그럼 너도 나 좋은 거지?”
“몰라.”
“몰라 이 지랄 하지 말고, 그냥 나랑 사귀자고.”
“...”
백지수가 우리가 사귀는 사이라고 공언하고 다니고, 그걸 김세은이 알면 김세은은 완전히 미쳐버릴 게 분명했다. 김세은이랑 사귀고 있다고 백지수한테 말해야 할까?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말해. 사귈 거야 안 사귈 거야?”
사귈 수 없었다. 세상 누가 연인을 동시에 두 명 이상 사귈까? 백지수가 다시 내 입술을 덮쳤다.
“하움... 쮸읍... 츕... 츄릅... 헤웁... 하아... 빨리 말 안 해?”
“... 못 사겨.”
“왜. 너 연예인 돼야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있고 또 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속이 탔다. 여러 말을 떠올렸다. 개중에 하나가 너무 터무니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왜 웃어?”
“지수야.”
“어.”
“내가 너랑 사귀게 됐어.”
“응.”
“그런데 내가 다른 누구랑도 만나게 되면 어떡할 거야?”
백지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뭔 개소리야?”
“그니까, 내가 너랑 사귀는데 내가 다른 누구랑 키스하고 그러면 어떡하냐고.”
“그냥 존나 개지랄 같은 생각인데? 그런 가정을 왜 해?”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너처럼 갑자기 급발진하는 여자가 나한테 호감 가지고 나 붙잡은 다음 키스 갈기면 어떡해.”
“그럼 나한테 말해. 내가 그년 조져버릴 테니까.”
“그게 문제가 아냐.”
“또 뭐?”
“내가 그걸 안 피해. 그럼 넌 그때 나 용서해줄 수 있어?”
“... 너 지금 나한테 바람피우겠다고 선언하는 거야?”
“그런 건 아냐.”
엄밀히 말하면 이렇게 백지수를 뿌리치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바람피우고 있는 거였다. 백지수가 다시 입술을 포개왔다.
“하움... 후음... 쮸읍...”
백지수가 입술을 떼고는 양손으로 내 볼을 붙잡고 눈을 마주쳐오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을 해봤거든?”
“응.”
“나 너 못 미워하겠는데?”
“왜?”
“그냥 너 덮친 년만 존나 저주할 거 같애.”
“...”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백지수가 씨익 웃었다.
“너 존나 야한 거 알아?”
“... 뭔 소리예요 또?”
“너 그냥 존나 야해. 말하는 거나 생긴 거나.”
“... 네.”
“그래서 누가 너 덮친다고 해도 이해는 될 거 같애. 네가 평소에 존나 야하게 구니까. 내가 단속을 잘못했구나, 탄식 나오고. 그리고 존나 빡칠 거 같애. 내 건데 감히, 이러면서.”
“왜 내가 벌써 네 거가 돼요?”
“왜. 싫어?”
“저는 소유물이 아니에요...”
“좆까 너 소유물 맞아.”
백지수가 다시 입술을 덮쳐왔다.
“츄읍... 쮸읍... 헤웁... 하움... 쯉...”
백지수가 입술을 뗐다.
“야 나 지금 자세 존나 불편하거든. 침대로 올라와.”
“...”
침대 오른편으로 갔다. 백지수가 몸을 꿈틀대 자리를 마련했다. 침대 안으로 들어가 옆으로 누워 백지수를 바라봤다. 백지수가 나를 마주 보면서 양손을 뻗어 내 얼굴을 잡았다.
“야.”
“응.”
“널 어떻게 해야 바람 안 피우게 할 수 있을까?”
피식 웃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네가 널 제일 잘 알 테니까요?”
“내가 거짓 정보 주면은 어떡하게.”
“그래서 나한테 구라를 치시겠다?”
“날 믿는 게 그리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라는 거지.”
백지수가 흐음, 하고 입 다문 채 한숨을 흘렸다.
“너 진짜 존나 바람 잘 피우게 생기긴 했다.”
“바람 잘 피우게 생긴 상은 칭찬이야 욕이야?”
“섞였어.”
백지수가 왼손으로 내 오른볼을 쓰다듬었다.
“그래서 우리 사귀는 거지?”
“...”
가슴이 답답했다.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백지수가 양손으로 내 볼을 잡고 힘을 줘서 고개를 고정했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존나 키스해놓고 발 빼겠다고?”
“존나 키스 갈긴 건 너 아니에요?”
“혀 섞었으면 쌍방이지. 계속 말장난할래?”
“너 후회할걸.”
“뭘 후회하는데.”
“어떻게든지.”
“지랄하지 말고.”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벌써 후회될 거 같으니까 적당히 해라.”
“그냥 지금 후회하고 말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가 지랄 말랬지.”
“나중에 후회하면 안 좋다니까?”
“이런 개 병신 새끼가.”
백지수가 내 입술을 덮쳤다.
“하움... 츄릅... 쮸읍... 헤웁... 쯉... 츄읍... 하아...”
백지수가 입술을 떼고 나를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후회하면 다 내가 할 건데 왜 네가 나서서 지랄이세요. 후회 안 하게 존나 발버둥칠 거니까 넌 그냥 고개만 끄덕이면 돼요, 우유부단한 새끼야.”
“...”
“씨발놈이.”
백지수가 다시 입술을 포개왔다.
“하움... 츄읍... 쮸읍... 말 안 해?”
“...”
답답했다. 백지수는 왜 날 좋아할까? 김세은도 왜 날 좋아했을까? 나는 이렇게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놈인데. 둘 모두에게 미안했다. 눈물이 나왔다. 백지수가 내가 우는 것을 보고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소리 없이 울었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 왜 울어?”
“미안해서.”
“뭐가?”
“너한테.”
그리고 김세은한테.
“그니까 뭐가 미안한데?”
“그냥 다.”
“너 아직 잘못한 거 없잖아.”
“그래도.”
“진짜 병신이네.”
백지수가 몸을 꿈틀거려 내게 다가오고는 양손으로 내 머리를 붙잡아 자기 가슴으로 가져갔다. 얼굴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살내음이 풍겨왔다.
“감수성 좆돼 이온유.”
이건 감수성이 아니었다. 죄책감이 가슴을 조여들었다.
“나중에 잘못하면 그때 사과하고 울면 되지 왜 지금 울어.”
이미 잘못을 저질러서였다.
“너 울면 나도 존나 가슴 아픈 거 알아?”
“...”
“그니까 적당히 울어.”
“... 그게 뭐야...”
“그냥 말 그대로. 적당히 울라고. 내 잘못 전혀 아닌 것도 다 내 잘못 같고 미안해지니까.”
울음이 차차 잦아들었다.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말은 잘 듣네.”
졸음이 몰려왔다. 백지수랑 나의 관계를 정립해야 했는데. 너무 피곤했다. 오늘 한 일이 너무 많았다.
“너 힘들면 힘들 때마다 내가 안아주고 위로해줄 테니까 혼자 앓지 말고 나 찾아.”
백지수는 왜 이리 내게 호의적일까.
“하지도 않은 잘못으로 혼자 우울해하지 마.”
이미 잘못을 저질러서 우울한 거였다.
“잘못해도 얘기만 하면 용서해줄 테니까 숨기지 말고 다 털어놓기만 해.”
김세은이랑 사귀는 사이라고 얘기해야 할까? 그럼 백지수에게 버려질 거였다.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를 안은 백지수의 포근한 품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 김세은이랑 사귄다고 얘기한다면 백지수가 김세은에게 내가 자기랑 키스했다고 말해서 나는 결국엔 김세은에게도 버려질 거였다. 둘 다 갖고 싶었다. 한 명도 포기할 수 없었다.
“말 못하겠음 그냥 이 상태로 고개만 끄덕여. 그럼 앞으로 쭉 옆에 있어 줄 테니까.”
잠시 고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지수가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코가 가슴에 눌리면서 막혀 잠깐 숨쉬기 곤란했다. 부드러운 가슴과 두 팔에 갇혀 살 내음을 맡으며 수마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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