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나 진짜 좀 억울해 (1)
* * *
“아 맞다.”
송선우가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했다. 송선우가 나를 바라보면서 일어나고는 오른손에는 포크를, 왼손에는 폰을 들었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이온유. 사진 찍자.”
놀이공원에서도 엄청 많이 찍었는데 왜 굳이 여기에서도 찍으려고 할까, 괜히 긴장됐다. 갑자기 김세은한테 죄라도 지은 느낌이 들면서 미안해졌다. 백지수한테 욕먹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조심히 입을 열었다.
“또?”
백지수가 눈살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보며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또는 또 뭔 소리야?”
송선우가 내 옆자리에 앉고 백지수를 바라봤다.
“나 부모님 가게 일 도울 때 진상들이 번호 알려달라고 하면 얘랑 찍은 사진 보여주려고.”
송선우가 폰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박수를 한 번 짝 쳤다.
“지수 네가 우리 서로 먹여주는 거 사진 찍어주면 되겠다.”
“...”
송선우가 폰을 켰다. 백지수가 나를 째려보고는 테이블 아래로 두 손을 넣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순간 자위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상식적으로 그럴 리 없었다. 아마도 폰을 보는 모양이었다. 송선우가 폰을 왼손에 들고 팔을 뻗어 백지수에게 건넸다.
“지수씨. 저희 찍어주세요.”
“알겠어.”
백지수가 자기 폰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송선우의 폰을 받아서 두 팔을 테이블에 댄 채 렌즈가 우리를 향하게 했다.
“잘 나와?”
송선우가 물었다. 송선우의 폰이 가린 백지수의 얼굴 밑으로 바알간 입술이 움직였다.
“응. 빨리 서로 먹여주는 척해.”
“알겠어.”
송선우가 포크로 스테이크를 한 점 찍었다.
“잠깐만. 포크 서로 바꿔야 되는 거 아냐?”
백지수가 약간 신경질적으로 질문했다. 송선우가 씨익 웃었다.
“그런가?”
“간접키스잖아, 바꿔야지.”
송선우가 나를 바라봤다.
“너 그런 거 신경 써?”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지, 난감했다. 일단 포크로 스테이크를 한 점 찍으면서 생각했다. 신경 안 쓴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었고, 간접키스를 하면서 백지수에게 미움도 받을 거였다. 신경 쓴다고 하면 간접키스도 안 하는 거고 동시에 송선우를 의식한다는 의미니까 송선우를 만족시킬 수도 있었다.
“신경 쓰지.”
송선우가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정답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바꾸자.”
서로 포크를 바꿨다. 송선우가 눈을 굴려 백지수를 바라봤다.
“연속촬영으로 해주세요.”
“알겠어요.”
“오키. 아, 해봐 온유야.”
“아.”
입을 벌렸다. 송선우도 입을 벌리고 포크를 내 입으로 들이밀었다. 나도 송선우에게 스테이크를 물려주었다. 송선우가 입을 꾹 다물고 포크를 문 채로 눈웃음지었다. 싱그럽고 요망했다. 나도 웃어야 하나 싶었다. 일단 미소지었다. 송선우가 머리를 뒤쪽으로 빼서 포크가 입에서 빠졌다. 포크에 송선우의 침이 번들번들했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존나 야했다. 발기했다. 송선우가 우물대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 포크도 먹을 거야?”
고개를 얕게 저었다. 송선우가 내 입에서 포크를 뺐다. 스테이크를 우물거렸다. 입안에 침이 가득 고여 있었다. 송선우가 고개를 돌려 백지수를 바라봤다.
“잘 나왔어?”
“많이 연인 같이 나왔어.”
“좋네. 한번 보자.”
백지수가 송선우에게 폰을 건넸다. 송선우가 받자마자 갤러리에 들어가고 내 옆에 착 붙어서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 속 송선우의 얼굴이 상당히 밝았다. 연극부 하면서 연기력이 물올랐나? 몰랐는데 내 얼굴도 퍽 행복해보였다. 얼굴이 따가웠다. 백지수가 째려보는 것 같았다. 입을 열었다.
“잘 찍혔네. 이제 밥 먹자.”
“응. 먹어야지.”
송선우가 그제야 떨어졌다. 스테이크를 한 점 집고 입에 넣으려 가까이 가져갔다.
“둘이 포크 바꿔야지.”
백지수가 나를 보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멈칫했다가 포크를 멀리하고 입을 열었다.
“응, 그치.”
송선우가 미소짓고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그거 네가 찍었으니까 내 입에다가 넣어줘.”
송선우가 그렇게 말하고 아,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바로 포크를 바꿨어야 했는데.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일단 스테이크를 물려줬다. 송선우가 입술을 앙다물고 머리를 뒤로 빼 포크가 빠지게 했다. 목이 탔다. 왼손으로 잔을 들어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이제 포크 바꾸자.”
“응.”
포크를 바꿨다. 백지수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다면 내 얼굴은 녹다 못해 반대편에 구멍이 뚫렸을 거였다. 송선우가 일어서서 테이블 위로 몸을 숙이고 왼팔을 뻗어 자기 접시를 들은 다음 내 접시 옆으로 옮겨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콜라를 한 모금 또 마시고 백지수를 바라봤다. 백지수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을 열었다.
“재밌었어? 놀이공원?”
“응. 진짜 존잼이었어.”
송선우가 접시를 내려보며 오른손에 든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면서 답했다. 백지수가 팔짱을 끼고 나를 째려봤다가 송선우를 바라봤다.
“뭐 뭐 탔는데?”
“걍 거의 다 탄 거 같애. 어린애들 노는 거 빼고.”
“으응...”
백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재밌었겠다.”
뭐라 말을 해야 할 거 같은데 할 말이 없었다. 송선우가 파스타를 우물대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온유 내가 첨에 놀이공원 가자 했을 땐 에바라고 했으면서 진짜 개 재밌게 놀았어. 나한테 막 끌고 와줘서 고맙다고 하고. 진심 개 웃겼어, 태세전환하는 거.”
송선우가 콜라를 마셨다.
“그랬어?”
백지수가 말했다. 송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지수가 나를 가만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심심한데 술 마실래?”
“술? 너 내일 학교는 어떡하고?”
내가 물었다.
“내일 토요일이야 바보야.”
“아.”
송선우가 나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학교 안 가면 날짜 감각 사라지긴 해.”
“마실 거지?”
백지수가 물었다. 송선우가 응, 이라고 답했다. 나도 어, 라고 답했다. 백지수가 일어나서 큰 얼음이 하나씩 들어간 온더락 글라스를 세 잔 가져왔다. 크기가 다 달랐는데 가장 작은 걸 내게 주고 중간 크기는 송선우에게 주고 가장 큰 잔은 자기 앞에 놨다. 송선우가 웃었다.
“에바 아냐?”
“내가 술 제일 못하니까. 이온유는 제일 세고.”
“나랑 온유 보내서 뭐하게?”
“뭐 안 해.”
송선우가 으흐음, 하고 소리 내며 음흉하게 미소지었다. 얼굴이 예뻐서 그런가 음침해 보이지는 않고 그냥 귀엽기만 했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진짜?”
“진짜야.”
백지수가 다시 일어나서 오른손에는 잭 다니엘, 왼손에는 지거를 들고 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어차피 마시면 내가 제일 빨리 뻗을 거 아냐?”
“그건 맞지.”
“이온유 네가 만들어.”
백지수가 테이블 위로 몸을 숙이고 두 손을 내밀어 잭 다니엘이랑 지거를 내 쪽에 뒀다. 순간 눈앞에 백지수의 가슴이 가까워졌는데 가슴골에 땀이 가득해서 묘하게 반짝거렸고 민소매 가슴 밑부분이 젖어 있어서 약간 어두운 빛을 품고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송선우가 내 옆자리에 와서 도발해 가지고 몸이 달아올랐나. 존나 야했다. 송선우가 두 손으로 내 왼 상완을 살짝 밀었다. 조금 흔들렸다. 오른손으로 테이블을 잡고 몸을 다시 세웠다.
“야 미쳤냐 이온유?”
송선우가 나를 다그쳤다. 자리에 도로 앉은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왜? 뭔 일인데?”
“아니 얘 네 가슴 존나 뚫어져라 봤어 미친 놈이.”
“진짜?”
백지수가 나를 바라봤다. 솔직히 내 잘못 같지는 않아서 조금 억울했다.
“아니 일단 일차적으로 가까이 와서 본 거고, 또 백지수가 땀 엄청 흘려 가지고 얘 뭐지, 싶어서 그랬어.”
“그게 변명이야? 진짜 미친 놈인가봐.”
“이온유 이 새끼 원래 가슴에 미친 놈이었어.”
백지수가 말했다. 할 말이 없어서 일단 술을 땄다. 지거를 뒤집어 잭 다니엘을 채워서 온더락 잔에 한 번씩 붓고 콜라를 잔의 5/6 정도가 찰 때까지 넣었다.
“이온유 너 지금 벌주 마시려 하는 거야?”
송선우가 물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다.
“아니?”
“너 앞으로 우리 가슴 볼 때마다 벌주 마셔야 돼.”
백지수가 말했다. 말도 안 됐다.
“왜 나한테만 그런 패널티 룰을 만들어요?”
“꼬우면 너도 정해.”
“아니 내가 뭘로 정하라고.”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아 진짜 에반데.”
“암튼 너 가슴 보면 술 마시기.”
“아니... 내가 막 의도한 것도 아니잖아.”
“누가 네 눈만 따로 조종하세요?”
백지수가 쏘아붙였다. 송선우가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추하다 온유야.”
“아니 나 진짜 좀 억울해.”
“본 거면 본 거지 뭐가 억울해.”
“그니까.”
백지수가 맞장구쳤다. 송선우가 왼팔을 테이블에 대고 왼손으로 턱을 괸 다음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정 가슴 보고 싶음 나한테 말해, 보여줄지 생각 좀 해볼게.”
"..."
백지수가 송선우를 보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 선우씨? 제정신이세요?”
송선우가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이 새끼 검거. 가슴 보여준다니까 부정 절대 안 하는 거봐.”
“어?”
백지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렇네? 이 개쉑.”
송선우한테 제대로 당해버렸다.
“아...”
눈 감고 왼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왠지 술을 많이 마시게 될 듯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