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빨리 와서 밥해
* * *
두드드, 전화가 울렸다.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봤다. 백지수였다.
“누구야?”
송선우가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지수.”
받고 오른 귀에 가까이 댔다.
ㅡ너 어딨냐?
“나 지금 놀이공원.”
송선우가 오른편으로 붙어와서 귀를 내 머리 가까이에 대려 했다. 왼손으로 머리를 막았다.
ㅡ놀이공원? 누구랑?
“송선우.”
ㅡ뭐?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ㅡ미치겠네 진짜. 빨리 와서 밥해.
“알겠어.”
전화가 끊겼다. 송선우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뭔 얘기한 거야?”
“지금 너랑 놀이공원에 있다고.”
“그리고?”
“빨리 와서 밥하래.”
“밥?”
송선우가 오른손을 내 왼어깨에 얹고 몸을 내 쪽으로 살짝 숙인 채 아이처럼 웃어댔다. 머리카락이 다 왼쪽으로 넘어가 있어서 하얀 목덜미가 훤했다. 땀을 좀 흘렸을 건데 이상하게 샴푸 향이랑 살내음이 풍겨왔다. 한동안 웃은 송선우가 몸을 일으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 걔 밥해줘?”
“응. 재워주는 대신에 이것저것 막 시켜.”
“으응. 근데 우리 노는데 뭐 배달시켜 먹으라고 하거나 하면 안 돼?”
“안 돼. 그럼 나 어디서 자. 막말로 백지수가 나 손절할 수도 있는데.”
“에이, 손절까진 안 하지.”
“그래도.”
“그럼 진짜 이대로 간다고?”
“프리패스는 일단 다 썼잖아.”
“흐음, 어쩔 수 없네. 가자.”
“응. 근데 같이 가자고?”
“어. 안 될 거 있어?”
“그건 내가 결정할 게 아니긴 한데요, 일단 전화 걸어봐야 하는 거 아냐?”
“굳이? 안 해도 되겠지.”
“난 몰라요.”
“지수가 혼내면 네 탓 해야지.”
“에바다 진짜.”
굿즈 같은 건 무시하고 빠르게 놀이공원에서 나왔다. 맵 어플을 켜서 출발지를 잠실로 하고 목적지를 백지수 별장 주소로 해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탔다. 두드드, 전화가 울렸다. 꺼내 보니 백지수였다. 아까 전화 걸었을 때랑 시간 간격이 좀 큰데, 그동안 자위라도 했나? 발기할 것 같았다. 서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왼주머니에 손을 넣어 자지를 위로 올렸다. 백지수는 또 뭐가 꼴려서 자위했을까. 위로도 해주고 재워주고 가슴으로 품어준 자기랑 섹스는 안 하고 다른 여자애랑 놀이공원이나 놀러 가서 분해 가지고 보지나 달래줬나? 어지러울 정도로 존나 음탕했다. 한숨이 나왔다.
“왜 갑자기 한숨?”
왼손으로 버스 손잡이를 잡고 까치발을 서서 내 얼굴을 살핀 송선우가 물었다.
“걍 쉰 거야 별 의미 없이.”
“그래.”
전화를 연결하고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ㅡ전화 존나 늦게 받으시네요.
“죄송합니다.”
ㅡ어딨어 지금?
“나 지금 버스 타고 가고 있어. 정류소 둘 남은 듯?”
ㅡ어. 오면 알리오 올리오 해. 스테이크랑.
뭔가 익숙한 조합이었다. 이수아한테 해줬던 거였나.
“고기 무슨 고기인데?”
ㅡ채끝살.
“으응...”
부위도 똑같다니, 조금 신기했다.
ㅡ알겠으면 끊어.
“응.”
전화를 끊고 들고 있다가 단말기에 뒷면을 대서 찍은 다음 송선우랑 같이 버스에서 내렸다. 빠르게 걸어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저 왔어요.”
“바로 요리나 하세요.”
거실 쪽에서 백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파에 누워있거나 앉은 모양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송선우가 내 옆에서 소리가 안 나게 살금살금 걸었다. 송선우가 코너에서 몸을 숨겼다. 별생각 없이 주방 쪽으로 갔다. 예상대로 백지수는 거실 소파에 누워서 양손으로 폰을 붙잡고 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시즈닝된 채끝살을 올려놓은 도마가 있었다. 일단 냄비에 물부터 담아서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다. 냄비에 올리브유를 조금 넣고 소금을 친 다음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내 테이블에 뒀다. 백지수가 다가와서 테이블에 두 손을 얹고 나를 쳐다봤다. 입을 열었다.
“왜?”
“새우도 넣어줘.”
“알겠어.”
냉장고에서 새우를 꺼내 체에 올려 흐르는 물에 씻어주고 물기를 턴 다음 접시에 키친타올을 깔아 새우가 겹치지 않게 놓았다. 소금이랑 후추를 조금 뿌리고 도마에 양파, 마늘, 페퍼론치노를 올려놓은 다음 엄지와 검지로 파스타를 집어 3인분 양을 가늠했다.
“왤케 많이 해?”
“이유가 있어.”
“이유는 뭔 이유. 다 처먹고 벌크업하려고?”
피식 웃었다. 뒤에서 송선우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게 보였다. 모르는 척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벌크업을 왜 해 내가.”
“아니 그럼 적당히 넣어 면을.”
송선우가 백지수에게 달려들어 두 손을 백지수의 어깨에 얹었다.
“지수!”
“꺅!”
백지수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송선우가 끅끅대고 웃으면서 무릎을 굽혀 오른손으로 백지수의 등을 쓸었다.
“많이 놀랬어?”
백지수가 왼손으로 가슴을 짚은 채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송선우를 바라봤다.
“아... 진짜 존나 놀랬어...”
“미안해. 근데 너 반응 진짜 개 혜자다.”
“아... 놀리지 마... 나 지금 심장 아파...”
“그 정도야? 미안해.”
“너 미워.”
송선우가 배시시 웃고는 왼손으로 백지수의 왼볼을 쓰다듬었다.
“왤케 귀엽지? 우리 지수?”
“됐어.”
송선우가 계속 미소를 머금었다.
“업어서 침대에 눕혀줄까?”
“침대 말고 소파에 눕혀줘.”
“알겠어. 업혀.”
백지수가 송선우의 등에 업혔다. 몸이 밀착해서 백지수의 가슴이 짓눌리는 게 보였다. 꼴렸다. 시선을 돌렸다. 냄비 물이 끓고 있었다. 파스타를 집어넣고 프라이팬을 꺼내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르고 불을 켰다. 도마에 올려놓은 채소들을 썰어두고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자지를 위로 올린 다음 가만히 프라이팬을 봤다. 올리브유가 달아오른 듯했다. 마늘을 넣었다. 슬슬 섞다가 마늘에 갈색빛이 돌 때 페퍼론치노를 집어넣고 스패츌러로 슬슬 섞었다. 매운 냄새가 올라올 때 새우를 넣었다. 집게로 파스타면 한 가닥을 집어 올려 먹어봤다. 1분 정도만 더 익히면 될 듯싶었다. 마음속으로 초를 세면서 스패츌러로 한 번 섞어주고 보울에 채를 하나 올려두었다. 60까지 셌을 때 체로 면을 건져 올려서 보울에 두고 다시 스패츌러로 프라이팬을 휘저었다. 조금만 더 익히고 면을 넣으면 될 듯했다. 냄비를 들어서 옆에 옮긴 다음 새로운 프라이팬을 올려 올리브유를 둘렀다. 알리오 올리오를 만드는 프라이팬에 면을 조심히 투하했다. 섞어주다가 면수를 넣고 오일이랑 잘 어우러지게 했다. 면수가 조금 졸아들었을 때 불을 끄고 집게로 파스타 한 가닥을 집어 먹어봤다. 괜찮았다. 테이블에 프라이팬을 옮겼다. 의자에 앉아 폰을 보고 있던 송선우가 오, 하고 소리내어 감탄했다.
“맛있겠다.”
“다 했어?”
백지수가 소파에서 소리쳐 물었다.
“알리오 올리오만 다 한 거 같애.”
송선우가 답했다.
“스테이크는 아직이야?”
“이제 해야 돼.”
이번엔 내가 답했다. 백지수가 다가와 송선우 옆자리에 앉았다.
스테이크를 할 프라이팬에 불을 올렸다. 연기가 올라와서 올리브유를 더 두른 다음 기름이 튀지 않게 고기들을 팬 안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등 바로 뒤에서 송선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스테이크 만드는 거 봐도 돼?”
내심 깜짝 놀랐다. 샴푸 향이랑 살내음이 풍겨왔다.
“이미 왔잖아요.”
“응. 그냥 예의상 한 소리야.”
고기를 뒤집은 다음 버터랑 통마늘이랑 허브를 넣었다. 팬을 기울여 녹은 버터를 숟가락으로 퍼 끼얹었다. 고기를 뒤집었다. 다시 아로제했다. 고기를 뒤집고 또 아로제했다. 왼이마에 땀이 한 방울 흘렀다. 많이 놀아서 그런가, 배도 좀 많이 고팠다.
“선우야. 걔 만드는 거 보지 말고 나 테이블 세팅하는 것 좀 도와줘.”
“알겠어.”
송선우가 뒤돌아 걸어갔다. 불을 끄고 나무 도마에 스테이크를 올린 다음 호일을 덮어 열기를 가둔 채 레스팅시켰다. 고개를 돌려 테이블을 봤다. 세팅이 되어 있었다. 백지수랑 눈이 마주쳤다.
“끝났어?”
백지수가 물었다.
“아직.”
호일을 벗기고 썰어준 다음 그대로 서로 기대듯이 쌓아서 플레이팅했다. 도마를 조심히 들어 테이블에 옮기고 백지수랑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백지수가 바로 집게를 들어 자기 그릇에 파스타를 담았다.
“빨리 먹자.”
“응. 잘 먹을게 온유야.”
“응.”
송선우가 오른손으로 포크를 들어 스테이크를 한 점 찍어 먹었다. 송선우가 음음, 하고 소리를 내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왼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백지수가 송선우 그릇이랑 내 그릇에도 파스타를 담아줬다. 송선우가 스테이크를 삼키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음, 진짜 맛있다. 너 진짜 요리 어디서 배운 거야?”
“그냥 독학.”
“나 이제 할 것도 없는데 여기 와서 너한테 요리나 배워야겠다.”
백지수가 송선우를 쳐다보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좀 에바 아냐?”
“왜? 뭐가?”
“아니 여기 그냥 내 별장이지, 요리 교실 아니거든요.”
송선우가 미소짓더니 왼팔을 백지수의 등 뒤쪽에 넣어 백지수를 안았다.
“아아, 각박하게 굴지 마.”
“아 몰라. 안 돼.”
“된다고 할 때까지 안아줄 거야.”
“아 하지 마. 밥 먹어야 돼.”
“그니까 먹고 싶음 허락해줘.”
백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불길했다.
“야 이온유 네가 안 된다고 해봐.”
송선우가 나를 바라봤다. 오래 고민하고 답하면 또 안 됐다. 생각 없는 척 가장 그럴 듯한 말을 해야 했다. 입을 열었다.
“집주인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오른손으로 든 포크로 스테이크를 한 점 찍고 바로 입에 넣었다. 백지수가 송선우를 봤다. 송선우가 왼팔을 빼고 몸을 일으켰다.
“온유도 지수 편이었네.”
백지수가 입꼬리를 올렸다가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송선우가 포크로 스테이크를 두 점 찍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둘 다 존나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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