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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17화 (117/438)

〈 117화 〉 병실 방문 (2)

* * *

해야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괜히 한 번 심호흡도 한 다음에 병실 문을 열었다.

“이온유야?”

강성연 목소리였다. 발음이 명확하지는 않았다.

“응.”

들어가서 문을 닫고 강성연이 누운 침대 옆으로 다가섰다. 강성연이 몸을 일으켜 베개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입을 다문 채 나를 응시했다. 양볼이 발그레하게 살짝 부어올라 있었다. 강성연이 입을 열었다.

“왜 왔냐?”

“사과하려고. 미안해 성연아.”

“사과했네. 가. 볼 일 다 봤으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회탈 쌤이 옆에 있었으면 어떻게든 좋은 말로 중재하려 했을 게 뻔했으니 강성연은 그럴 가능성을 원천차단하면서 동시에 나를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거였다. 하지만 강성연도 나한테 못할 말을 한 사람으로서 내게 용서를 구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다. 서로 미안하다고 하고 각자의 죄를 용서해주는 게 정상적인 수순이었을 건데, 상황이 너무 꼬여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너도 나한테 잘못했잖아, 내지는 네가 먼저 잘못했잖아, 같은 책망을 할 수는 없었다. 서로 때리기는 했어도 성연이가 병원에 있고 나는 크게 아프지 않은 이상 나는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고 강성연은 피해자였으니까. 시선을 돌려 과일 바구니를 봤다.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지 처음 샀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 너 사과 좋아해?”

“가라니까?”

“...”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배운 적이 없어서 머리가 하얘지는 듯했다. 왼손으로 사과를 집고 오른손으로 과도를 쥐어 조심조심 돌려 깎기 시작했다.

“너 나 지금 협박하냐?”

오른손을 멈췄다.

“협박이라니.”

“너 존나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거 아냐? 존나 돌려 깎을 거라고?”

“... 그런 거 아냐. 난...”

말이 쏟아져 나올 거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감정적으로 이 말 저 말 다 쏟아내다가 말실수를 하면 돌이킬 수 없었다. 내뱉은 말도 비틀어진 관계도. 한 번 심호흡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못돼 먹었지는 않아.”

강성연이 코웃음 쳤다.

“너 여자들한테 어장 조지게 치고 남자한테는 겐세이 존나 넣잖아, 알게 모르게.”

태도가 너무 공격적이었다. 나오는 말도 터무니 없어서 당장이라도 발끈할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억지로 가라앉힌 다음 다시 눈 뜨고 입을 열었다.

“나 어장 같은 거 안 쳐. 견제 같은 거 한 적도 없고.”

“지랄하지 마. 그럼 너한테 빠진 거 대놓고 티 내는 김세은이랑 서유은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내가 백지수한테 고백했을 때 네가 대신 받아서 꺼지라는 식으로 존나 눈치 준 건 또 뭐고? 심지어 지수는 나 같은, 레즈도 아니고... 나는 남자도 아닌데 견제하는 거면, 아무리 봐도 여자에 미친 새끼 아니야...?”

“...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넌, 넌 그냥 개새끼야.”

강성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 지 좆대로 하고 수 틀리면 주먹 쓰는 양아치 새끼밖에 안 돼 넌. 여자애 중에 따먹은 애도 있지? 백지수든 김세은이든. 좆 제비 새끼.”

내가 이렇게까지 심한 말을 들을 정도로 강성연한테 잘못했나? 억울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머리가 아팠다.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물고 한자락 한숨만 입 틈새로 겨우 흘렸다.

“꺼져. 보기 싫으니까.”

“...”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깎았다. 이대로 갈 순 없었다. 껍질을 다 깎고 과일바구니에 대충 올려둔 다음 한 조각을 잘라내 오른손 중지랑 검지 사이에 끼워 강성연에게 내밀었다. 강성연이 눈을 찌푸렸다.

“나 사과 안 좋아해.”

다른 걸 주면 먹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희망이라기도 뭐 했지만 다른 활로가 보이지 않는 이상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였다. 사과 조각을 내 입에 넣고 빠르게 먹어치웠다.

“그럼 배 먹을래?”

“좆까. 배가 더 싫어.”

“그럼 참외?”

“꺼져. 걍.”

문득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사과를 한 조각 더 낸 다음 강성연에게 건넸다.

“안 먹는다고.”

“너 사과 좋아하잖아.”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냐? 나 사과 싫어한다고.”

“너 언제 편의점에서 당근 사과 주스 샀다가 맛 없다고 하면서 하수구에 쏟아버린 적 있잖아. 왜 샀냐고 물어보니까 사과 좋아해서 갑자기 궁금해져서 사봤는데 당근 때문에 맛 좆도 없다고 했고.”

“...”

강성연이 사과 조각을 집어가지 않고 창가로 시선을 던졌다. 왜 안 먹을까. 괜히 고집을 부리는 걸까? 차라리 뭐라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했다. 잠시 기다려도 뭘 할 기미가 안 보여서 그냥 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나 부모님 이혼하시고 아버지가 바로 재혼해서 스트레스 엄청 받으면서 꾹 참고 끙끙 앓으면서 살고 있었거든. 내 새여동생, 이수아 걔가 갑자기 학교 찾아와서 내 평판 망쳤을 때 멘탈 특히 더 흔들렸었고. 그럴 때 네가 장난식이라도 음담패설했던 거 들으니까 갑자기 엄청 화나 가지고 막 주먹 날렸던 거야. 너무 심하게 때려서 미안해. 잘못했어.”

“...”

“용서해주라.”

“...”

중지랑 검지 사이에 있는 사과가 내 체온 때문에 데워졌는지 시원하지 않았다. 입에 집어넣었다. 강성연이 나를 쳐다봤다. 새로 사과 한 조각을 내고 다시 내밀었다.

“사과 받아주라.”

강성연이 피식 웃었다.

“넌 농담이 나오냐 지금?”

듣는 순간 등골이 싸했다. 농담하는 걸까? 표정을 살폈다. 진지한 기색이었다. 화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혼자 착각했던 걸까.

“존나 대인배인 척하네.”

“...”

“사실 이수아가 말한 대로 걔 존나 따먹었지 너?”

머리가 뜨거워졌다. 내가 뭘 했다고 이딴 식으로 막말을 해댈까? 접때 지가 백지수한테 전화했을 때 비웃듯이 한 것 때문에 앙심을 품은 것만으로 이렇게 집요하게 매도하는 걸까?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아파왔다.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왜 그렇게 심하게 말하냐?”

목이 멨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강성연이 다른 데로 눈을 돌렸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네가 시작했잖아. 네가 나 없는 데에서 나 욕했잖아. 내가 너 때린 건 잘못한 거 맞는데, 너도 나한테 사과해야 되는 거 아냐?”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턱에 매달린 눈물이 굵게 방울져 바닥에 투욱 떨어졌다.

“내가 다 말했잖아. 밴드부 톡방에 올렸던 거 너도 확인했잖아. 근데 그거 다 알면서 어떻게 이수아를 내가 따먹었다는 소리를 하냐? 넌 나한테 아무 잘못도 안 했어? 나 개새끼 맞아. 근데 네가 말하는 만큼 쓰레기 새끼는 아니야. 그리고 나만 나쁜 거 아니고 너도 진짜 나쁜 새끼야 이 개새끼야.”

“...”

“우리 친구 아니었냐? 근데 어떻게 말을 그리 좆 같이 할 수 있냐?”

“...”

“왜인지 말이라도 해봐 씨발 놈아.”

“... 내가 지금 네 사과 받아주면 나만 존나 쓰레기 새끼되는 거잖아. 나는 네 새여동생으로 근친 드립친 개새끼인데다가 존나 처맞기까지 한 병신인데 너는 가족 뒷담 같은 거 안 참고 바로 달려들었다가 사과하면 바로 용서해주는 대인배되는 거잖아.”

어이가 없었다. 화났다. 이런 새끼를 친구로 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이 개새끼는 나를 친구로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지도 몰랐다. 아닐 거였지만 궁금했다. 입이 열렸다.

“진심이야?”

강성연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래 병신아.”

죽여버리고 싶었다. 왼손에 든 사과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오른볼을 겨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강성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찰싹 소리가 났다. 하으윽... 강성연이 오른손으로 볼을 감쌌다.죽여버릴 거야 개새끼야.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왼손등으로 강성연의 왼뺨을 후려쳤다. 온유야 뭐 하냐? 오니 가면 목소리였다. 발소리만 들어도 달려오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쟤 칼 들고 있어요! 강성연 어머님이 기겁했다. 오른손에 든 과도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두 손으로 강성연의 목을 졸랐다. 아윽... 강성연이 두 손으로 내 양 손목을 붙잡았다. 야 이온유 정신 안 차려? 오니 가면이 양손으로 내 오른팔을 붙잡고 떼어냈다. 몰랐는데 오니 가면은 팔뚝 힘이 강했다. 손이 조금씩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빨리 떼어내요! 야 이온유! 너 진짜 큰일 나고 싶어서 그러냐? 빨리 손 떼! 끄으윽... 이런 애 아니라면서요 선생님! 성연이 어떡해... 우리 성연이... 강성연 엄마가 무릎을 털썩 꿇고 양손으로 내 오른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해 온유야 제발... 우리 성연이 살려줘... 내 오른 손목을 붙잡은 양손을 차마 떨쳐내기 어려웠다. 산소가 모자라는지 강성연의 안색이 안 좋았다. 사람 여럿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온유 손 떼라고! 이 개새끼가 저한테 어떻게 말했는지 알아요? 뭘 어떻게 말했든, 그러면 안 된다고! 오니 가면이 내 왼손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내서 왼손도 강성연의 목에서 걷어냈다. 강성연이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였다. 손들이 나를 붙잡았다. 왜 다들 나만 억누르고 죄인으로 만드는 건지. 강성연 엄마가 일어나서 의사의 왼팔을 붙잡았다. 우리 성연이 괜찮은 거예요? 당장 확답은 못 드리겠지만 외견상 별 문제 없어 보입니다. 쟤가 칼도 들고 있었어요. 자상은 안 보이지 않습니까? 피도 없고요. 진정하세요. 어떻게 진정해요... 또 강성연은 피해자일 뿐이었고 나만 가해자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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