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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16화 (116/438)

〈 116화 〉 병실 방문 (1)

* * *

오른손에 쥔 과일바구니가 꽤 무거웠다. 하회탈이 오른손으로 닫혀 있는 1인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내 모습을 드러내기는 왠지 조금 꺼렸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회탈이 나를 흘깃 보고는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하회탈이 얕게 고개를 숙였다. 강성연의 부모님 중 한 분 아님 두 분 다 오신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여자 목소리만 들렸다. 강성연의 어머니만 오신 듯했다.

“누구신데?”

강성연 목소리였다.

“담임 선생님 오셨어.”

“으응...”

“많이 아프냐 성연아.”

“지금은 그렇게 막 아프지는 않아요.”

“다행이네. 여기 앉아도 될까요?”

“아 네 앉으세요.”

들어가야 하는데,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내가 지은 죄의 무게가 갑자기 발등에 가해진 듯했다. 내가 때린 애의 어머님이 계신데 어떻게 당당히 발걸음을 디딜 수 있을까? 미안했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고통을 느꼈다.

“선생님 근데 문은 왜 열어두셨어요?”

강성연 어머님이 말하는 소리였다.

“뒤에 또 들어올 사람이 있어서요.”

“누구요?”

강성연이 물었다.

“이온유.”

“이온유 걔가 왜 오는데요?”

“이온유면 우리 성연이 때린 애 맞죠?”

“네 맞습니다.”

“걔 지금 밖에 있는 거예요?”

하회탈이 답하지도 않았는데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침을 삼켰다. 그리 나이 들어보이지 않는, 솔직히 말하면 엄청 젊어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여인이 문에서 나와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를 쳐다보는 두 눈이 커다래졌다. 허리랑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안녕하세요 성연이 어머님. 성연이 때려서 죄송합니다.”

“... 네가 진짜 우리 딸 때린 거야?”

“네. 맞습니다.”

“...”

강성연 어머님이 병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잠시만 얘 데리고 가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네. 너무 혼내지만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강성연 어머님이 허리를 살짝 숙이며 고개도 숙였다.

“온유야 과일 바구니는 일단 나 줘라.”

하회탈이 일어나서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두 발짝 디디고 오른팔을 뻗어 건넸다. 뒷걸음질 쳐 병실에서 나오고 복도를 봤다. 강성연 어머님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걷고 있었다. 가볍게 뛰어서 뒤쫓았다. 밖으로 나가는 건가 싶었는데 어머님이 비상계단에 들어갔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문 닫아봐.”

“네.”

문을 닫았다. 강성연 어머님이 팔짱을 꼈다.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내가 지금 너 불러세워서 뭐라고 했다고 트집 잡아서 어떻게 해볼 생각은 아니지?”

“그런 생각 없습니다.”

“... 싸웠다고 들었어, 성연이한테.”

무슨 소리일까. 파악하기 조금 어려웠다. 눈을 똑바로 마주치기 송구스러워서 어머님의 얼굴 언저리에 시선을 던졌다. 애쉬브라운으로 염색한 중단발의 레이어드컷 c컬펌을 한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너 입 없니?”

“... 죄송합니다.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그니까, 우리 성연이가 너랑 싸웠다고 말은 했는데, 그게 상식적으로 맞는 소리냐고. 덩치 큰 남자애랑 키 작은 여자앤데.”

“...”

“네가 일방적으로 때린 거지? 우리 성연이. 그것도 기습적으로 달려들어서.”

“네. 맞습니다.”

하, 하고 강성연 어머님이 코웃음 쳤다.

“너 누구한테 맞아본 적 없지?”

“...”

“있어 없어.”

“없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누구한테 맞아본 경험이 있었으면 ‘아, 이 정도 때렸으면 아프겠구나’ 하고 대충 예상해서 그칠 건데. 안 맞아봤으니까 우리 성연이 얼굴에 성한 데가 없지.”

“죄송합니다.”

“죄송해? 죄송하다고? 왜 왔어? 성연이가 네 얼굴 보고 싶어할 거 같니? 너는 너 기분 나쁘게 한 애가 너 보러 오면 기분 좋을 거 같애? 그것도 사과 말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온 애인데? 단순히 기분 나쁘게만 한 게 아니라 두드려 패고 한 애인데?”

“...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닙니다.”

“너 지금 어른 상대로 말장난하려는 거야? 너 학교폭력으로 생기부에 기록 남기기 싫어서 선처 받으려고 온 거잖아. 내가 틀렸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분하게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목이 멨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너 지금 울어? 울어야 할 사람은 우리 성연이 아니야? 왜 네가 울어?”

“죄송합니다 어머님...”

“하... 너 지금...”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계단으로 올라오던 남자가 나를 슬쩍 보고는 도로 내려갔다. 강성연 어머님이 한숨 쉬었다.

“너 비열한 애구나? 그렇게 울기만 하면 사람들이 여태 대강 넘어가줬지?”

반박할 수 없었다.

“얼굴값한다 아주. 내가 뭐라 말을 못 하겠어. 우리 딸 두들겨 팬 가해자한테.”

“죄송합니다 어머님...”

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갔다. 무릎 꿇었다.

“너 지금 뭐 하니?”

“때리고 싶은 대로 때리셔도 됩니다.”

“미쳤니? 내가 너 때려서 성연이 불리해지게 하게?”

“제가 지금 맞는다고 해서 불리하게 하지는 않겠다고 맹세드리겠습니다.”

“진짜 무섭다 너. 고수야 고수. 사람 맘 갖고 조종하는 데 아주 도가 텄어 그냥.”

가슴이 답답했다. 그럴 의도는 하나도 없었는데도 강성연 어머님은 나를 사람 마음을 읽고 가지고 노는 소시오패스로 보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너 같은 놈은 자기 소중한 줄만 알지? 보통 사람은 남도 소중한 줄 알고 막 안 대해. 보통 사람은 악어의 눈물은 안 흘리고 진짜 슬플 때만 울고, 주먹이 들고 싶을 때도 말로 먼저 해. 나쁜 놈아.”

“죄송합니다...”

목이 쉬었다. 물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한테는, 우리 딸 성연이가 나보다 소중해. 너 같은 놈은 모를 거야, 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다치면 얼마나 아픈지. 가슴 한 편이 저려오는 게 아니라 저미는 거 같다니까? 넌 평생을 가도 모를 거야 절대.”

“죄송합니다...”

“안 봐줄 거야. 네가 성연이를 속여서 어떻게 하든 교우관계 때문에 성연이가 사과 받아주든, 그래서 성연이랑 네가 어떻게 화해를 한다고 해도, 나는 너 용서 안 할 거야.”

“죄송합니다 어머님...”

“울음 좀 그쳐, 나 안 속는다니까?”

“속이는 거, 아닙니다...”

“하, 너 꿈 가수지? 그 꿈 접고 연기자나 하지 그래?”

“잘못했습니다...”

“와, 사람 미치게 하네 진짜. 일어나, 그만 울고.”

“이게 우는 게, 마음대로 안 됩니다...”

“일어서는 것도 못 해?”

일어났다. 울음을 그치랬으니 눈물을 닦는 모습은 보여줘야 될 것 같아 교복 와이셔츠 소매로 계속 눈물을 훔쳤다. 강성연 어머님이 여전히 팔짱을 낀 상태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무릎 털어.”

양손으로 무릎을 털었다.

“밑 층 화장실에서 얼굴 닦고 물기 없앤 다음 올라와.”

“네, 알겠습니다.”

“뛰어. 선생님 오실 수도 있으니까. 그러기 전에 빨리 갖다 와.”

“네.”

달려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싱크대에서 세수하고 얼굴을 두 번 닦은 다음 페이퍼타올로 물기를 없애고 그대로 타올을 버린 뒤 다시 뛰어 올라갔다. 강성연 어머님이 나를 쏘아봤다.

“머리에 땀 나 너.”

“아... 하악... 죄송합니다...”

“...”

강성연 어머님이 에코백에서 주유소에서 받은 듯한 티슈를 꺼내 세 장을 뽑아 내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받고 땀이 난다고 느껴지는 곳을 톡톡 두드렸다.

“그 정도면 됐어.”

“네.”

젖은 휴지를 손으로 말아서 바지 오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강성연 어머님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시다가 입을 열었다.

“너 그거 바로 버려.”

“알겠습니다.”

“너 목 안 나간 것처럼 소리낼 수 있어?”

“조금은 됩니다.”

“한번 해봐.”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선생님 앞에서도 그대로 해.”

“네.”

“...”

강성연 어머님이 또 나를 잠시 쏘아보시다가 고개를 돌리고 오른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아 열었다. 같이 병실로 향했다. 하회탈이 나랑 어머님이 언제 오나 확인하고 싶었던 건지 복도에서 마주쳤다.

“너무 오래 혼내신 거 아닙니까?”

“시간이 많이 지났나요?”

“꽤 지나갔죠.”

“엄청 막 다그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온유한테 들어봐야 될 것 같네요.”

하회탈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별로 뭐라 안 하셨어요.”

“... 그래.”

하회탈이 시선을 돌려 강성연 어머님을 봤다.

“성연이가 잠시 온유랑만 얘기하고 싶다고 했는데 일단 온유만 보낼까요?”

“둘만 둬도 될까요?”

하회탈이 인상을 찌푸리다가 말았다. 하회탈은 자제력이 좋았다.

“됩니다. 온유가 막장인 애는 아니라서요.”

“네 그럼 그러죠. 1층에 카페 있어요. 뭐 드실래요 선생님? 제가 살게요.”

“전 아메리카노 마시겠습니다.”

하회탈이 강성연 어머님이랑 걸으면서 고개만 살짝 돌려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믿고 있으니 잘하라고 시선만으로 말해온 듯했다. 나 전달법을 되새겼다. 당시의 내 감정 상태를 말하고, 그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났다고 하고, 순간의 분을 참지 못해 주먹을 날렸다고 한 다음 미안하다고 해야 했다. 정수기에서 물을 세 번 뽑아 마시고 병실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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