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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07화 (107/438)

〈 107화 〉 불편

* * *

“야 근데 둘이 칵테일 만들 술이랑 그런 거는 뭐 어떻게 구해서 마신 거야?”

노래가 끝나고 김현우가 물었다. 정이슬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수 별장에 칵테일 재료 같은 거 다 준비돼 있어 가지고 거기 가서 처음으로 만들어보고 마신 거예요.”

“아 그럼 단 둘이 있던 건 아니야?”

“선우랑 지수도 있었어요.”

“아. 난 또.”

“난 또는 또 무슨 의미야?”

정이슬이 물었다.

“온유가 막 분위기 잡고 칵테일 대접한 줄 알았지.”

“아냐 네 말이 맞아. 얘 분위기 잡고 나 꼬셨어.”

“뭔 소리예요.”

“네가 막 보드카가 무색무취무미한 술이라서 이 칵테일은 그렇게 술처럼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이랬잖아! 칵테일도 처음 만들어보면서!”

“응? 그니까 온유가 지수 별장에 있던 술로 처음 칵테일 만들어 보면서 분위기 잡고 꼬셨다고?”

“정확해.”

“개 에반데?”

“아니 그거 누나가 저 보고 바텐더 느낌 난다고 해서 저도 맞춰주면서 장난친 건데, 누나 그러면 나 진짜 억울해서 못 살아요.”

정이슬이 눈을 감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 온유 또 나 홀린다.”

“이건 네가 무지성으로 혼자 홀려드는 거 같은데.”

“아냐 얘 알게 모르게 나 꼬셔 자꾸.”

“신빙성 제로죠?”

“아니 진짜 네가 한번 당해봐야 돼.”

“죄송한데 제가 게이는 아니라서요.”

“아니 그 뜻이 아니잖아. 온유 말고, 네가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이 너한테 자꾸 막 흘리는 말을 해. 그럼 어떡할 거야.”

“으음. 어장치는 건가 싶겠지?”

“어?”

정이슬이 나를 쳐다봤다.

“이온유 너?”

장난스레 올라간 입꼬리를 보는데 살짝 어지러웠다.

“너 그러면 안 돼.”

“누나도 저한테 그러지 마요.”

“내가 너한테 뭐 했는데?”

“자꾸 사귀자고 하고, 애들한테 사귀고 있다고 거짓말치고, 혼인 신고한다고 농담하고, 웃고 싶으면 혼인서약서 쓰고 웃으라고 하고.”

김현우가 와, 하고 소리를 냈다.

“온유가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걸 다 기억하고 있냐?”

“온유가 나 홀리지만 않았으면 안 그랬어.”

김현우가 오른손으로 내 왼어깨를 토닥였다.

“힘들었겠다. 걍 악어한테 물렸다고 생각해.”

“나 같이 예쁜 악어 봤어?”

“멘트 상투적인 거봐.”

정이슬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눈썹이 처져있고 입이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게 연인에게 애교부리는 사람 같았다.

“온유야 쟤 좀 혼내주라.”

헛웃음이 나왔다.

“온유 지금 약간 즐기는 거 같다?”

김현우가 말했다.

“즐기긴 뭘 즐겨요, 혼미해서 정신 나갈 거 같아요 지금.”

“정이슬 입냄새 때문에?”

“아 김현우 진짜 개 짜증나... 쟤 두 대만 때려주면 안 돼 온유야? 응?”

“나 누나 딱밤 한 대만 때려도 돼요?”

“으응?”

정이슬이 두 팔로 자기 가슴께를 감싸고 상체를 뒤로 뺐다.

“너 그쪽이야?”

“뭔 소리예요 진짜.”

“새디스트냐구...”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요.”

“네가 완전 새디새디스트만 아니면 어느 정도는 맞춰줄 수는 있는데... 막 목 조르는 거 같은 건 나도 조금 무섭거든...?”

“그만해요 제발...”

“어, 나는 빠져줄게요.”

김현우가 말하고 뒷걸음질쳤다.

“아뇨 형 가지 마요.”

“내가 또 은근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라서 이런 대화는 좀. 잠깐 매점 갔다 오면 화제 바뀌는 거 맞지?”

“아마도? 그니까 빨리 가봐. 잘 가.”

정이슬이 오른손을 흔들었다. 김현우가 에, 라고 대충 대꾸하고 부실을 나섰다. 정이슬이 다시 고개 돌려 나를 쳐다보고 씨익 웃었다. 짧은 노란 옆머리가 왼입꼬리에 걸렸다. 순간 숨이 막혔다.

“우리 둘뿐이네?”

“그니까요.”

시선을 문 쪽으로 던졌다. 눈을 마주보기 부담스러웠다.

“애들 왜 이리 안 오죠?”

“오늘 급식이 맛있었거든.”

“뭐였는데요?”

“투움바 파스타랑 핫도그.”

“배부르겠네요.”

“너 왜 나 안 보고 말해?”

“그냥요.”

“나 봐봐.”

고개를 돌려 정이슬을 봤다. 정이슬이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하얀 목과 살짝 패인 쇄골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위로 해서 얼굴을 봤다.

“나를 보랬는데 왜 가슴을 봐?”

“가슴 안 봤어요.”

“그럼 어디 본 건데?”

“누나 목이요.”

“내가 목 조르지 말라고 얘기해서 본 거야?”

“아마도요?”

“졸라보고 싶어?”

미쳤나? 입을 다물고 뭐라 해야 할까 잠깐 궁리했다.

“누나 나한테 왜 그래요?”

정이슬이 싱긋 웃었다.

“너 귀여워서.”

“저 귀엽다고 하는 사람 누나밖에 없을 걸요?”

“그래? 너 진짜 귀여운데.”

정이슬이 내 얼굴을 뜯어보았다.

“입 다물고 있으니까 막 귀엽진 않다.”

“그쵸?”

“응. 귀엽진 않고 그냥 잘 생겼어. 너 왜 여자친구 안 만들어?”

“누나는 왜 남친 안 만드는데요?”

“난 그냥.”

“저도 그냥이요.”

정이슬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은근 나 농락한다?”

“농락이라뇨.”

“솔직하게 얘기할게. 내가 돌려 말하는 건 못 하고, 돌려 말하는 거 싫어하기도 하니까.”

정이슬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너랑 얘기하다보면 약간 나한테 넘어올 것도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 밴드부에 좋아하는 사람 있다던 말도 어쩌면 나한테 한 말 아닐까 괜히 망상도 되고? 근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 말고도 밴드부에 있는 다른 여자애들이 다 같이 하는 생각이라면?”

“...”

“너 지금 대답 안 하니까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 알지.”

“그냥 누나가 더 말할 거 같아서 경청하려던 거예요.”

“그럼 반론해봐.”

“뭐를요?”

“너 여지주는 거.”

난관이었다. 빨리 다른 사람이 들어왔으면 했다. 짧게 생각하고 눈썹을 처연하게 내린 다음 입을 열었다.

“누나 왜 나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요?”

“...”

정이슬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와아... 잠깐만. 너 진짜 여우다...”

“누나가 더 여우 아니에요?”

“내가? 어디가?”

“누나 자꾸 나 괴롭히잖아요.”

“괴롭힌다니?”

“저 진짜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장난치고. 그러다 진짜 넘어가면 나 버릴 거죠?”

“뭐?”

정이슬이 두 손을 의자 밑에 넣어 몸을 들썩이면서 엉덩이를 살짝 뗐다가 붙였다.

“너 진짜 나 미치게 한다?”

“지금도 내 잘못 만들고 있는 거잖아요, 제가 홀렸다고 하면서. 사실은 누나가 나 가지고 노는 건데.”

정이슬이 눈을 찌푸리고 일어서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일루와.”

정이슬이 두 손을 뻗어왔다. 얼굴이 붙잡혔다. 정이슬이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얼굴을 가까이해왔다. 느릿해서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속도였다. 막아야 했는데 한번 키스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미친 거였다. 말로 설득하기엔는 이미 너무 가까워졌다. 양손을 들어 정이슬의 얼굴을 감쌌다. 이렇게 하면 키스하기 위해 나도 얼굴을 잡는 느낌이어서 정이슬이 손길을 피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는데 적중했다. 미소를 머금었다. 정이슬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손을 스윽 내려 입술 쪽으로 좁혀갔다. 이 상태에서 힘으로 버텨주기만 하면 꼴이 꽤 우습게 되더라도 입술이 서로 안 닿게 막을 수 있었다.

“어 씨발 쟤네 뭐야.”

김현우 목소리였다.

“아니 진짜 뭐야 시발.”

김민우 목소리였다. 정이슬이 손을 떼고 상체를 도로 세우고는 기지개를 켰다.

“아으... 무드 완전 깨졌네. 왜 지금 왔어?”

김민우가 오른손을 들어 엄지랑 중지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아니, 무슨. 하...”

김민우가 손을 치우고 눈을 떠 나를 바라봤다.

“둘이 언제부터 그런 사이셨어요?”

“그런 사이 아니야. 될 뻔한 거지.”

정이슬이 도로 의자에 가 앉아서 말했다.

“될 뻔하긴 무슨 이미 사귀는 거 아냐? 둘이 존나 애틋하게 보면서 서로 얼굴 붙잡고 있더만.”

“그런가?”

정이슬이 되묻고 나를 쳐다봤다.

“좀 어정쩡하게 되긴 했는데, 우리 이제 사귀는 거야 온유야?”

“아뇨.”

고개를 돌려 김민우를 봤다.

“누나가 갑자기 급발진해서 막으려고 얼굴 붙잡은 거예요.”

“아, 그래?”

김민우가 피식 웃었다.

“알만 하네.”

김현우가 말했다.

“근데 김민우는 왜 온 거야?”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매점 갔다가 현우가 꼬셔서 드럼 좀 조지러 왔지.”

김민우가 드럼 스틱을 찾고 드럼 의자에 앉아서 가볍게 하나씩 다 쳐보더니 갑자기 곡을 시작했다. 빠르고 강렬해서 강제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2분이 넘는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정이슬이 박수쳤다. 김민우가 이온음료를 들이키며 나를 보고는 문 쪽을 봤다. 나도 문 쪽을 봤는데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나오라는 의미인 듯했다. 내가 먼저 나갔다. 곧 김민우가 나왔다.

“뭐냐?”

“뭐가요?”

“정이슬이랑 너. 뭐냐고.”

말하려 했는데 김민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얼굴 막으려고 붙잡았댔지? 근데 표정은 왜 웃고 있었냐? 응?”

계획대로 돼서 그랬다고 하면 또 어떻게 곡해해서 듣지 않을까? 복잡했다. 김민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유은이 있잖아. 세은이도 너 좋아하는 거 같던데.”

“...”

김민우가 눈을 찌푸린 채 나를 한동안 보다가 한 번 한숨쉬더니 다가와서 오른손으로 내 왼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미안하다. 개 찌질했다.”

김민우가 오른손등으로 내 왼가슴을 툭 쳤다.

“너 빨리 여친 좀 만들어라, 정이슬 같은 애들이 너 막 못 넘보게.”

“... 알겠어요.”

“좀 이따 들어와, 매점 갔다 오거나 해서.”

“네.”

김민우가 밴드부실 안으로 들어갔다. 매점에서 초코 소프트콘이랑 콜라를 사고 밴드부실로 향했다. 조금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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