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월요일 아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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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씻고 나와 속옷을 입고 머리를 말린 다음 교복을 입었다. 씻는 데 쓸데없이 시간을 많이 허비해서 얼마 안 있으면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액자를 숨긴 서랍을 다시 열어 하나씩 꺼내보았다. 샤워하며 식은 줄 알았던 머리가 재차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감히 추억을 헤집으려 든 윤가영이 괘씸하고 또 괘씸해서 견디기 어려웠다. 늘어놓고 보니 역시 사라진 건 없었다. 도로 쌓고 닫았다. 침대에 걸터 앉아 폰을 봤다. 쿵쿵쿵, 누가 방문을 성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 성질 머리는 이수아였다.
“나와 오빠. 학교 가야지.”
오빠라는 말이 뒤에 붙었지만 전체적인 톤과 어조는 여전히 싸가지 없었다. 이수아는 윤가영이 바라는 것이라면 자신이 탐탁치 않더라도 했다. 등교할 때면 매번 등교 시간이 너무 이른 거 아니냐며 투덜대면서도 나랑 같이 나갔고, 집에서는 오빠 소리도 꼬박꼬박했다.
쿵쿵쿵, 이수아가 문을 다시 두드려댔다. 대답이 바로 안 돌아온다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나가.”
기타 케이스를 등에 메고 방을 나섰다. 문 옆에 서서 다리를 꼬고 있던 이수아가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함께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고 밖에 나갔다. 입이 삐죽 튀어나와있던 이수아가 바로 말을 해방시켰다.
“존나 샌님임? 마이를 처 입네?”
“언제는 코트 입었다고 지랄하더니 이번엔 교복으로 뭐라 하네.”
“아니 누가 다른 외투 안 쓰고 마이만 처 입음?”
“그런 사람 많아요.”
“존나 맘에 안 들어.”
“넌 그냥 내가 뭘 하든 다 아니꼽게 보이지?”
“존나 잘 아네. 통찰력이 좀 있으시네요?”
“너 왤케 나 싫어하냐?”
이수아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여동생한테 손찌검하는 좆병신이니까.”
“내가 언제 때렸는데 미친 년아.”
“기억 안 나?”
말 없이 입을 우물대던 이수아가 머리 묶는 사람처럼 두 손을 뒤쪽으로 들어올려 자기 뒷목에 가져다대고 켁켁, 거리며 목이 졸리는 시늉을 했다. 입 밖으로 내빼진 혀 끝에 침이 맺혀 방울 하나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를 재현하려고 입에 침을 모아둔 모양이었다. 정신나간 년이었다.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병신 같은 년.”
“욕 존나 찍찍 싸는 것도 좆 비호감.”
“너한테 배운 거야.”
“욕을 여동생한테 배우는 새끼가 있다아?”
“네 수준 맞춰주는 거잖아, 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밖에 못 하는 일차원적인 단세포 생물 년아.”
“이 앵면 구뒈러 배대드뤼는 거바께 모톼는 일차온줘긴 돤쉐퍼 샘문뇨나.”
“너 사람 빡치게 하는 방법 연구하고 사냐?”
“그딴 거 한 적 없죠.”
“어떻게 이런 좆 같은 생물이 생겨난 거지?”
“오떠퀘 이뤈 줘까튼 생무뤼 샌교놘 고쥐?”
말 없이 오른손을 올렸다. 이수아가 내 손이 올라오는 걸 힐끔 보고 앞으로 달려갔다. 따라서 달렸다. 기타 때문에 전력으로 뛸 수는 없었다. 당장은 못 잡아도 어차피 결국에 이수아는 내 손에 붙잡히게 되어 있었다. 가볍게 뛰면서 입을 열었다.
“야 이마 딱 대.”
“병신아 네 같으면, 가만히 맞아줌?”
“지금 잡히면 한 대로 봐줌.”
“안 처맞을 거야, 등신아.”
이수아가 말할 때 거친 숨소리가 뒤섞였다. 단숨에 말할 것도 두 번 끊어서 하는 것만 봐도 이수아의 체력 고갈 정도를 알 수 있었다.
“체력도 좆도 없어서 벌써 헐떡이는 게. 어차피 붙잡힐 거 걍 순순히 이마 대지?”
“좆까. 학...”
좆까라는 말을 들은 지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수아를 따라잡았다. 왼손으로 이수아 가방 손잡이를 붙잡고 느리게 걸었다.
“하악... 힘들어. 놔 시발...”
“싫은데.”
“존나, 하아... 뭐 하는데?”
“걷고 있잖아.”
“손, 학... 떼라고.”
“좆까.”
“하아... 시발 새끼...”
“먼저 지랄한 년 누구?”
“개, 쪼잔해 빠진 새끼...”
피식 웃었다.
“존나 헥헥대면서 할 말은 다 하는 거 진심 개 웃기네.”
“하악... 놔. 텀블러 꺼내게.”
“내가 꺼내줄게 가만히 있어.”
“어, 감사.”
“고마워할 줄은 아네.”
이수아의 가방을 열어 텀블러를 꺼냈다. 안에 들어간 게 책 두 권에 얇은 공책 한 권, 노트 한 권에 필통 밖에 없어서 텀블러를 찾기는 굉장히 쉬웠다. 이수아에게 텀블러를 건네고 지퍼를 닫아줬다. 이수아가 뚜껑을 열고 목을 젖혀 커피를 들이켰다.
“커피 마셔서 공부는 하냐?”
“존나 네 알 바?”
“존나 배배 꼬였네. 그 심성으로 남친은 만들 수 있겠냐?”
“오지랖 수준 개 태평양이네. 존나 잘만 만나니까 참견질 좀 하지 마세요 병신 새끼님아.”
“너 남친 있냐?”
“아니? 존나 지가 일차원적인 단세포였네.”
“네가 중의적으로 말했잖아.”
“어쩔.”
“존나 걱정되네,김해인 같은 좆 양아치 새끼나 만나 가지고 펑펑 울게 생겨서.”
이수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처울든 말든 네가 뭔 상관?”
“네가 질질 짜면 그거 듣는 내 기분이 다운되지 않겠어요?”
“... 존나 이기적으로 말하네.”
“뭐 기대했는데. 너 눈물 흘리게 할 만한 새끼를 만나는 건 오빠로서 결코 좌시할 수 없다고 해주기를 바랐어요 수아씨?”
“또 좆 같은 말투 쓰네.”
투닥대면서 주욱 걸었다. 가끔 할 말이 떨어져 잠시 말을 섞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거리를 벌리지는 않았다. 이수아랑 나는 서로를 꺼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호의마저도 갖고 있는 듯했다. 아니, 이수아 마음은 몰라도 일단 나는 어느 정도 그랬다.
학교로 가는 지름길인 좁다란 골목에서 이수아가 느닷없이 멈춰서서 팔짱을 끼고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몇 걸음 걷고 나서야 이수아가 옆에 없는 것을 눈치채서 이수아랑 내 사이는 자연히 멀어졌다.
“야.”
이수아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응?”
“너 아까 집에서 우리 엄마한테 뭐라 했냐?”
“말 안 했어.”
“지랄하지 마. 엄마 얼굴 시무룩했던 건 뭔데.”
“네 엄마한테 물어보거나 했어야지.”
“물어봤어. 근데 얘기 안 해줬으니까 이러는 거 아냐.”
“얘기해줄 게 없으니까 그런 거겠지. 나 말 안 했다니까?”
“...”
이수아가 걸어왔다.
“개새끼.”
이수아가 툭 말을 던지고 입을 다물었다. 개새끼, 라는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머리에 피가 몰리고 안구가 충혈되는 느낌이 들었다. 샤워하며 추스렸던 분노가 시추기로 퍼올리듯이 갑자기 솟아오르는 듯했다.
“개새끼? 개새끼라고?”
나를 지나치려다 다시 멈춰선 이수아가 몸을 틀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 개새끼야.”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까지 화날 욕이 아닌데, 심장이 마구 뛰는 게 느껴졌다. 호흡이비정상적으로 쉬어졌다. 나도 모르는 새에 오른손을 뻗고 있었다. 내 오른손이 이수아의 오른 손목을 낚아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개새끼? 개새끼는 너고 썅년아.”
내 목소리 같지 않았다. 조금 긁혀져서 맹수가 그르릉거리는 소리와 닮아 있었고, 음침했다. 계속 끌고 갔다. 내 발길은 근처의 놀이터를 향했다. 이수아가 앞을 봤다가 나를 보기를 반복했다. 이수아가 왼발을 잘못 디뎌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이수아는 명백히 긴장하고 있었다.
“야, 야 말로 해...”
답하지 않았다. 이수아를 원형 미끄럼틀에 강제로 앉히고 그 앞에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이수아가 침을 삼켰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수아가 눈을 감았다. 앞머리를 옆으로 걷었다. 이수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개새끼는 말야, 지 애비가 누군지 모르는 새끼라는 뜻을 함의하는 욕이야. 그 적절한 용법은, 창녀의 자식 내지는 고아에게 이뤄지는 거고. 굳이 따지자면 나보다는 너한테 어울리는 욕이라는 거야, 지 애비도 모르는 개 같은 년아.”
개새끼는 말야, 라고 서두를 뗄 때부터 얼굴을 일그러 뜨린 이수아는 내가 말을 마쳤을 때에는 펑펑 울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이쪽을 보고 지나갔다. 울지 마, 라고 말하며 오른손을 뻗어 이수아의 왼팔을 쓸어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우측 주변시야에서 머물러 있던 중년 남자가 떠나가는 게 보였다. 아마 신고라도 하려던 모양이었다. 이수아가 왼어깨를 돌렸다. 내 오른손을 떼내고 싶은 듯했다. 바라는 대로 오른손을 떼어주고 그대로 올려서 왼볼을 쓰다듬었다. 이수아가 흠칫 떨었다. 히끅, 히끅, 하고 일정한 리듬을 따라 이수아의 상체가 으쓱였다.
“욕 좀 줄이자 수아야.”
“...”
이수아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노려보며 울음을 삼키려 들었다. 호흡이 점차 안정됐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가슴이 부풀었다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발기해버렸다. 아니 사실은 이수아의 손목을 붙잡고 걷던 순간부터 발기해있었다. 기타 케이스에서 주유소 티슈를 꺼내 이수아의 허벅지 위에 두고 무릎을 짚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갈게. 추스리고 와.”
이수아는 또 답하지 않았다.
“대답.”
“꺼져 개... 병신아.”
이수아의 목은 쉬어있었다. 뒤돌아 학교로 향했다. 머릿속이 지저분했다. 나는 왜 그토록 화를 냈을까. 아마 윤가영 때문일 것이었다. 윤가영에 대한 화를 이수아한테 풀어낸 것일 터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 수업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혼자 그 이유를 찾아 노트에 끼적였다.
윤가영은 화목한 가정을 구상하고 그 안에 내가 들어가기를 바란다. 나는 윤가영에 대항해 어떻게든 자구책을 찾아야 했다. 윤가영이 구상하는 화목한 가정을 해체하는 게 어머니에 대한 의리와 의무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수아와의 불화는 그 일환이었다.
쉬는 시간에 두서 없이 글귀를 적어나간 장을 뜯어내고 여러 갈래로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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