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74화 (74/438)

〈 74화 〉 월요일 아침 (2)

* * *

에그 베네딕트 하나를 먹어 치운 백지수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왜?”

“너 사진 찍었어?”

“응.”

“다행이다. 걍 바로 먹어버려 가지고 내가 죄 지은 줄.”

백지수가 다음 바게트를 집어 들었다. 바게트 두 개를 먹어치운 백지수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나도 두 개를 먹고 채소들을 먹어치워 배가 좀 불렀다.

“좀 배부르다.”

“그럼 그만 먹어.”

“나머지는 어떡해?”

“먹든가 버리든가 해야지.”

“버리기는 넘 아깝지 않아? 네 노력 들어간 거인데?”

“조금 아깝긴 하지. 그래도 이건 일단 네 거니까. 손님이 음식 남긴다고 뭐라 하는 요리사는 없잖아.”

백지수가 피식 웃었다.

“손님? 누가 보면 네가 집주인인 줄 알 듯.”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개 뻔뻔해서 오히려 호감이네.”

“뭐가 뻔뻔하다는 거죠?”

“이러는 거요.”

백지수가 일어나서 선반을 열어 락앤락 통을 셋 꺼내왔다.

“아냐 하지 마.”

“왜?”

“이거 소스 수명이 짧아.”

“그래? 아 그렇네. 개 빡대가리였다.”

“개 빡대가리라니, 말이 좀 심하다. 아무리 본인한테 하는 말이래도.”

“그럼 그냥 빡대가리하라고?”

“그게 왜 그렇게 돼?”

“보통 너 빡대가리 아냐, 같은 말 해주지 않나?”

“난 그게 더 이상한 거 같은데.”

“그런가?”

“응.”

“너 하나 먹어라?”

“응.”

백지수가 다시 선반에 도로 락앤락 통을 집어넣었다.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남은 할 일을 떠올렸다. 에그 베네딕트를 먹어치우고 설거지를 마친 뒤 기타를 챙긴 다음 집에 돌아가 씻고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서 학교에 가야 했다. 시간이 남긴 남았지만 많이 여유를 부릴 정도는 되지 못 했다. 백지수가 자리에 돌아와 바게트를 집어 들었다.

“뭐해? 너도 먹어.”

백지수가 말하고 한 입 베어물었다.

“응.”

나도 마지막 남은 바게트를 집어 들어 한 입 베어물었다. 시선을 달리 둘 데가 없어서 백지수가 오물대는 모습을 마냥 바라봤다. 백지수가 씹는 속도를 높여서 빠르게 꿀꺽 삼켰다. 백지수가 커피를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너 말 없이 뚫어져라 보는 거 존나 부담되거든요?”

“뭐가요?”

“말할 게 있음 하고 없음 좀, 아. 몰라 걍 부담 안 되게 시선 처리 좀 어떻게 안 돼?”

“폰을 볼 수는 없잖아.”

“차라리 폰을 봐 제발.”

“그건 내가 싫은데.”

“왜?”

“폰으로 할 게 없잖아. 바로 앞에 너 있는데 예의도 아니고.”

“하아...”

백지수가 다시 커피를 마셨다. 다 마셔서 바닥이 보였다.

“그냥 내가 싫은데 배려 좀 해주면 안 될까요?”

“난 너 보는 거 좋은데 네가 감수해주면 안 돼?”

“...”

백지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뒤질래?”

“왜요?”

“왜? 왜애? 씨발 그런 소린 네 여친한테나 하라고!”

백지수가 벌떡 일어나서 자기 폰을 챙기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화낼 일인가, 어벙벙했다. 내 거를 마저 먹은 다음 문자를 보냈다.

[너 에그 베네딕트 남은 거 어떡해?]

답이 바로 오지는 않아서 설거지를 한 다음 폰을 봤다. 답이 와 있었다.

[네가 드시든가 버리든가 하세요.]

[내가 먹음 간접 키스 아니야?]

[너 진짜 듀이졌다 개새끼야]

[듀이지다 라는 동사는 의미가 뭐죠?]

[미친놈]

[진짜 내가 먹는다?]

[먹어 병시나]

[네]

한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맛 없어]

[어쩌라고]

커피로 입가심했다. 또 문자를 보냈다.

[커피로 입가심함]

[어쩌라고]

[나 설거지도 했어.]

[어쩌ㄹ]

[잘함]

[나 이제 가야 될 거 같은데]

[잘 가]

[얼굴 보고 말 안 해줄 거야?]

[존나 내가 네 아내임?]

백지수가 보낸 문자를 보고 갑자기 이마가 뜨거워졌다. 동시에 아랫도리도 뜨거워졌다. 오늘 본 백지수의 검은 브래지어와 어제 밤 나를 안은 백지수의 팔의 살결, 그리고 가슴의 감촉이 떠올랐다. 그때 백지수의 유두는 서있었을까.

[시발 왜 답장 안 하는데]

얼굴이 화끈해졌다. 변태 같은 상상을 했다. 빨리 나가야 할 거 같았다. 현 위치로 택시를 호출했다.

[존ㄴ나 당황타서요]

[병신새끼]

딱히 답장할 말이 없어서 기타 방에 가 케이스를 챙겼다. 나가기 전에 문자를 보냈다.

[나 진짜 나가]

[어 잘 가세요]

현관을 나서고 대문을 넘은 다음 도로 닫았다. 한숨이 나왔다. 스스로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겨울을 벗어나는 봄하늘은 몇 점의 구름조차 탁함 없이 맑았다. 김세은에게 좋은 아침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택시가 금방 왔다. 트렁크에 기타 케이스를 넣고 택시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택시가 출발했다. 대로에 나오자마자 신호에 걸렸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연예인이에요?”

“아뇨. 고등학생이에요.”

“요즘은 나이 상관없이 연예인하고 그러잖아요.”

“아 근데 전 아녜요.”

“학생 생긴 게 요즘 티비 나오는 사람들보다 훨씬 인물이 나은데요. 그럼 뭐 모델 일해요?”

“아뇨. 저 따로 뭐 하는 거 없고 그냥 일반 학생이에요.”

“에이, 얼굴이 너무 아깝다.”

폰이 울렸다.

“저 전화 좀 받을게요.”

“아 예 받아요.”

폰을 꺼내 확인했다. 김세은이었다. 받았다.

“응.”

ㅡ굿모닝.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따라서 소리를 냈다.

“굿모닝. 왜 이렇게 소리내?”

ㅡ그냥.

“옆에 누구 없는 거지?”

ㅡ응. 혹시 모르니까.

“알겠어.”

김세은이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렸다.

ㅡ사랑해 온유야.

“그 말 해도 돼? 조금 위험한 거 아냐?”

ㅡ괜찮아. 아무도 없어.

“으응... 사랑해.”

ㅡ응. 끊어?

“응.”

전화가 끊겼다. 차창 너머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너무 자주 연락하는 거 같았다. 자꾸 이러면 안 되는데. 나중에 진지하게 얘기해야 할 듯했다. 단순하게 문자 조금 하고 지우는 건 몰라도 전화는 자제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걸 어떤 식으로 부드럽게 말해야 김세은이 받아들일까, 고민스러웠다.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다. 상상 속 김세은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안색이 어두워지기만 했다. 그냥 이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집에 들어가서 해야 될 것을 재차 떠올렸다. 일단 이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일어났냐]

집에 거의 가까워졌는데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안 받았다. 아직도 자는 건가, 다시 걸었다. 수신음이 두 번 나고 연결됐다.

“야 이수아.”

ㅡ수아 지금 자고 있어 온유야.

윤가영 목소리였다. 분명히 이수아한테 전화 걸었는데.

“왜 그쪽이 받아요.”

ㅡ지금 원래 수아 잘 시간이잖아. 자는 사람은 못 받으니까 내가 대신 받은 거지. 왜 전화했어?

“끊어요.”

전화를 끊었다. 짜증나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눈을 흘겼다. 뭐라 하시지는 않았다. 계속 폰만 봤다. 드디어 이수아가 답장해왔다.

[지금 인남 왜?]

[필요 없어]

[ㅁㅊㄴ]

[아니다 지금 둘 있냐?]

[울 엄마 있음]

[어]

곧 집 앞에 도착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차에서 나왔다. 트렁크에서 기타를 챙기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은 다음 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방이 뭔가 이상했다. 일단 침대에 기타 케이스를 내려놓고 속옷 서랍을 열었다. 잘 정리된 팬티가 내가 평상시 두지 않는 방식으로 켜켜이 놓여 있었다. 누가 서랍에 속옷을 넣고 자기 식으로 정리한 게 분명했다. 왠지 이상하더라니, 누군가 허락 없이 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만진 모양이었다. 등부터 열이 올라 머리까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액자들을 숨긴 서랍을 뒤졌다. 정리는 안 되어 있었지만 액자들이 쌓여 있는 게 각도가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미묘하게 달랐다. 높이가 달라진 것 같지는 않으니 액자를 따로 챙기거나 하지는 않은 듯했다. 서랍을 닫고 방에 바뀐 게 뭐가 있는지 대략적으로 살폈다. 책상 위에 놓은 AOU 엔터 실장 김민준의 명함이 각도가 우측으로 27도 정도 틀어져 있었다. 방에서 걸어나와 윤가영을 찾았다. 마주하면 주먹이 먼저 나갈 것 같아서 양손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다. 화장실 문이 열려있었다. 걸어갔다. 검은 땡땡이 원피스 잠옷을 입은 윤가영이 싱크대 앞에서 거울을 보며 양치하고 있었다. 윤가영이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입에 머금고 있던 것을 뱉었다. 그러고는 싱크대 물을 틀어 입을 계속 헹궜다.

“왜 온유야? 언제 왔어?”

“내 방 왜 들어왔어요?”

가까이 다가갔다. 윤가영이 칫솔을 닦으며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봤다. 불안이 선명히 드러나는 눈빛은 내가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흔들렸다. 윤가영이 싱크대 뒤에 칫솔을 내려놓았다.

“왜 그래...?”

더 다가갔다.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어느새 발기해버린 자지를 등에 비빌 수 있을 수준으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윤가영이 발 각도를 틀었다. 뒤돌으려는 거 같아서 양손으로 양옆 팔뚝을 잡아 힘을 주었다.

“하윽... 아파아...”

윤가영이 눈을 찌푸렸다. 아무 저항도 못하고 괜스레 움켜쥔 손만 부르르 떨어대는 것을 보며 자지가 움찔댔다. 가학심이 일었다.

“내가 내 방 함부로 들어오지 말랬죠.”

“그게에...”

팔뚝을 잡은 상태로 거칠게 힘을 써 뒤돌아보게 했다. 윤가영이 내쉬어대는 가쁜 숨이 목과 가슴에 닿았다. 윤가영의 두 손목을 붙잡고 얼굴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허락 없이 남의 방 들어가서 남의 서랍 막 뒤져보는 건 누구한테 배웠어?”

“왜, 왜 그래애...”

계속 응시했다. 입을 꾹 다물고 마주 보던 윤가영이 더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렇게 더 붙잡고 있다간 자제력을 잃을 것 같았다.

“뭐 안 사라져서 여기까지 하고 관두는 건줄 알아.”

뒤돌아 걸었다. 윤가영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방에서 나오고 나서는 뛰어서 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옷을 벗어제낀 다음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 머리에 찬물을 쏟았다. 온몸이 식어갔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