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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67화 (67/438)

〈 67화 〉 밤 (3)

* * *

“다 울었어?”

어머니가 물었다.

“응.”

“그럼 일어나.”

어머니가 내 등을 토닥였다. 상체를 일으켰다. 어머니가 물티슈를 뽑아 내 눈가와 얼굴을 닦아주었다. 쓴 물티슈는 내가 받아서 왼주머니에 넣었다.

“아들.”

“응?”

“네 여자친구 있잖아, 세은이.”

“응.”

“그 애는 너 얼마나 좋아해?”

어머니가 눈을 마주쳐왔다. 이 순간 나는 절대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

“너는? 세은이가 너 좋아하는 만큼 너도 세은이 좋아하는 거 같아?”

“모르겠어 솔직히.”

“온유야.”

어머니가 내 오른허벅지에 왼손을 얹었다.

“관계라는 게 다 완전히 균등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하는 거는, 한 사람이 상대를 훨씬 더 많이 좋아하게 되면, 둘 다 힘들어지게 되어 있어.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가 다르면 다를수록 더 사랑하는 사람은 쉽게 상처 받고, 덜 사랑하는 사람은 부담을 갖게 돼. 자기 의도랑 무관하게 자기가 상처 입힌다는 걸 아니까.”

“...”

“오늘 병원에서 어제 영상 올라온 거 본 게 갑자기 생각나서. 세은이가 너랑 많이 눈 마주쳤잖아. 아니, 마주치려 했잖아, 알게 모르게. 그게 갑자기 생각나 가지구. 아, 세은이가 우리 온유 엄청 많이 좋아해서 그런 거였구나, 라고 떠올라서.”

어머니가 양손을 뻗어 내 볼을 어루만졌다.

“우리 아들은 똑똑하니까 알아서 잘 할 거라 믿어. 믿는데, 더 잘 됐으면 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 됐으면 해서. 그래서 괜히 잔소리한 거야. 알지?”

“... 응.”

어머니가 손을 다시 내렸다.

“세은이가 가끔 널 힘들게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날 이만큼 사랑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아껴줘. 네가 그만큼 사랑해줄 수 있으면 그렇게 해주고,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세은이의 마음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여줘.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머니의 눈이 슬퍼졌다.

“그냥 세은이한테 솔직하게 얘기해. 우리 마음이 서로 다른 거 같다, 나보다 널 훨씬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라, 라고, 최대한 빨리...”

어머니의 목이 메였다. 어머니를 안았다.

“아프게 하지 마... 제발...”

어머니가 두 손을 내 어깨에 얹고 끄윽끄윽거리며 목 놓아 울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어머니가 느끼는 슬픔에 함께 잠기는 동시에 김세은에 대한 죄악감과 중압감이 몰려와 나를 짓눌렀다. 오른손으로 어머니의 머리를 감싸 어루만졌다. 푸석푸석하지는 않은 머리카락은 어머니의 목숨이 아직 죽음보다는 삶의 영역에 발을 디디고 있음을 알렸다. 나는 어머니의 신체가 보내는 신호에 민감히 반응했다. 그것이 암울한 날에는 우울했고 긍정적인 날에는 기꺼웠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등까지 쓸어주었다. 머리카락이 세네 가닥 뽑혀나와 더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지 않았다. 우울했다.

어머니의 울음이 서서히 잦아듦을 느끼며 머릿속으로 김세은을 떠올렸다. 김세은의 하얀 나신과 울먹임과 집착을 떠올렸다. 흘깃 보는 것만으로 인상을 깊이 남기는 선연한 입에서 쉬임 없이 나오는 신음과 야시시한 말을 떠올렸다. 오직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조직된 입버릇과 몸짓을 되새기며 그 속에 담긴 나에 대한 사랑과 열망을 솎아냈다. 김세은이랑 나 사이에 생길 아이의 얼굴을 남자애랑 여자애 별로 그려보았다. 쉽지는 않았다. 그냥 앨범에서 본 내 어릴적 얼굴이랑 김세은이 어렸으면 무슨 얼굴일까 상상할 때 나타나는 인상만이 흐릿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어머니가 울음을 그쳤다. 어머니가 풀어달라 하기 전까지 내가 먼저 놓을 생각은 없었다. 어머니가 두 손으로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안은 것을 풀어주었다. 어머니가 양손 손바닥 밑부분으로 눈가의 눈물을 스윽스윽 닦았다. 그거로는 모자랐는지 물티슈를 한 장 뽑아 눈가를 톡톡 두드리듯 닦아내고 눈물이 묻은 곳들을 닦아냈다. 오른손을 뻗었다. 어머니가 눈을 크게 떴다.

“왜?”

“내가 치우게.”

어머니가 웃었다. 사용한 물티슈를 받아 접어서 왼주머니에 넣었다.

“고마워. 세은이가 이런 거에 반했나?”

“엄마 목 쉬었어.”

“엄마도 알아요.”

어머니가 왼손을 올려 내 오른볼을 엄지와 검지 둘째 마디로 꼬집었다.

“부끄러워?”

“아니.”

“우리 아들은 왜 이리 잘생겼어? 마음도 곱구. 머리도 좋구.”

“엄마 닮은 거지.”

“하는 말도 예쁘구.”

어머니가 미소지었다. 나도 마주 미소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울던 어머니와 내가 이렇게 웃는다는 게 또 우스워서 꾸며내지 않아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어서 얘기해줘.”

“어제 일정?”

“응. 북카페 갔다는 것까지 했어.”

“으음... 그담에는 세은이랑 노래방 가서 또 노래 연습하고 카페에 가서 세팅 조금 한 다음에 버스킹 시작했어. 준비할 시간에 잠깐 엄마 찾았는데 안 보여서 그냥 바로 해야 됐어. 3학년 남자 보컬 선배가 늦어가지고 내가 첫 순서로 돼서.”

“응.”

“... 그 다음도 얘기해?”

“해줘.”

“... 내 차례 끝나고 엄마 찾으려고 테이블들 보면서 돌아다니다가 안 보여서 난간 쪽에서 한강 바라보고 있었는데, 누가 내 등 톡톡 두드려서 뒤돌아봤다? 근데 그 여자가 있었어. 어지러워서 숨통 좀 틔우려고 밖에 뛰쳐나갔는데 뒤쫓아 온 거야. 나 토하고 나서 내 엄마인 척하지 말라고 하고 돌려보냈어. 다시 카페 올라가서 버스킹 끝내고 고깃집 가서 뒤풀이 하고. 집은 돌아가기 싫어서 친구네에서 나 좀 재워달라고 부탁하고 거기에서 잤어.”

“으응...”

“엄마는 어제 어떡했던 건지 물어봐도 돼?”

“나? 나...”

어머니가 내게서 고개를 돌려 먼 곳에 시선을 던졌다.

“좀 빨리 도착했었어. 여섯 시 반 조금 넘어서. 커피 주문해야지 하고 카운터 갔는데, 네가 말한 그 사람이 있더라. 그 여자가 있는 거 보고, 왠지 도망쳐야 될 거 같아 가지고, 사실 내가 떠나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거는 아는데, 발이 먼저 뒷걸음질치고 어느 순간에 뒤돌아서 달리고 있었어. 그 여자가 눈앞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보고 있으면, 심장이 너무 뛰고 숨도 막 안 쉬어져서, 진짜 그대로 계속 있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내가 막 터지거나 녹아서 없어져 버릴 거 같았던 거야. 그래서 도망쳤어. 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거기에 앉아 있는 게 백 번 옳다는 거 알았는데도. 택시 타서 무작정 속초로 가달라고 했어. 동해 바다 보이는 데로. 내려서 그냥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었어. 아무 생각 없이 물결 치는 것만 보다가, 우리 아들 생각 나는데, 너무 미안해서 답장도 못 했어. 용서해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봤다.

“용서할 게 뭐 있어. 화난 적도 없는데.”

어머니가 배시시 웃었다.

“고마워.”

나도 마주 웃었다. 어머니가 왼손으로 내 오른볼을 꼬집었다.

“왜애?”

“그런 멋진 말은 엄마한테 하지 말고 잘 아껴뒀다가 세은이한테 해줘.”

“알게써.”

어머니가 꼬집은 손을 풀고 내 오른볼을 어루만졌다.

“고마워 아들.”

“뭐가?”

“그냥. 다.”

할 말이 없어 미소지었다. 어머니도 웃었다. 외할아버지가 스무디 얘기를 해줬다고 운을 뗐다. 어머니가 스무디를 만들면서 겪은 사소한 시행착오를 재밌게 알려주었다. 언제까지 병원에 있느냐는 질문을 했을 땐 자기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빠르게 다른 화제로 옮겼다. 잠시 그렇게 잡담하다가, 어머니가 떠는 걸 보고 이제 슬슬 안에 들어가자고 했다.

“나 들어가기 싫은데.”

어머니가 말했다.

“왜요?”

“우리 아들 언제 다시 볼지 모르잖아.”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등을 토닥이고 벤치에서 일어나 엄마에게 등을 내보이며 무릎을 접었다.

“업혀 엄마.”

“어른 흉내나 내고.”

어머니가 투덜대며 업혔다. 병원으로 천천히 걸었다. 내가 여태 등에 져본 살아있는 것은 모두 무게가 있었지만 지금의 어머니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그 사실이 도리어 나를 무겁게 했다.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려 성대를 좁혔다.

“엄마가 애처럼 구는 거 아니고?”

“또또 한 마디도 안 지려고.”

“또 보러 올 거야. 또 볼 거야.”

“믿는다?”

“응. 나 믿어.”

“언제 보러 올 건데?”

“시간 나면?”

“너 세은이한테는 그러면 안 돼?”

“알겠어.”

어머니가 내 등에 밀착했다.

“으응... 부럽다 세은이.”

“왜?”

“우리 아들 같은 좋은 남자가 애인이잖아.”

“엄마라서 내가 예쁘게 보이는 거 아니고?

“아냐. 우리 아들은 누가 봐도 멋있어.”

“알겠어.”

“본인도 다 아는구만.”

웃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병실로 가는 동안 지나며 어머니가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같이 인사했다. 다들 아들이냐 물으며 잘생겼다느니 효자라느니 의례적인 말을 해주셨다. 무표정할 때 안면 근육이 은은한 미소로 고정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웃음 지어보였다. 어머니를 병실 침대에 내려놓고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며 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도 작별 인사를 고했다. 안 데려다 줘도 되냐는 외할아버지의 말에 괜찮다 답하고 나와 백지수 별장 방향으로 택시를 불렀다. 폰에 쌓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네가 식당에 버려놓은 기타 내가 간수하고 있음.]

백지수가 보내온 문자였다.

[고마워. 근데 나 오늘도 네 별장에서 신세 좀 져도 돼?]

택시에 오르고 다시 폰을 꺼내봤다. 백지수가 답장을 보내놓았다.

[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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