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밤 (2)
* * *
먹을 땐 말 시키는 거 아니라는 말로 대화를 차단한 어머니가 조용히 죽을 드셨다. 먹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아서 그릇의 바닥이 보이는 것보다 수액이 다 떨어지는 게 우선이었다. 피로에 젖은 남자 간호사가 와서 바늘을 빼고 어디 불편한 데 있으시면 바로 호출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어머니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힘들면 그만 먹어도 돼.”
외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고개 저었다.
“아냐 엄마. 다 먹을 수 있어.”
어머니가 다시 숟가락을 집어 넣어 죽을 퍼 먹었다. 스스로 식고문하는 사람처럼 보여서 불편했다.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도 불편한 듯 보였지만 어머니가 그러겠다고 하는데 제지하는 것도 아니다 싶으셨는지 가만히 지켜보셨다. 어머니가 기어코 그릇을 깨끗이 비우셨다.
“잘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외할머니가 바로 그릇을 치우셨다.
“엄마. 오랜만에 산책할래?”
내가 물었다.
“그래.”
어머니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외할아버지가 무릎을 짚고 일어나셨다.
“아냐 아빠. 온유랑 나 둘이서만 나갈 거야.”
외할아버지가 도로 앉으셨다.
“그래. 밤이라 추울 거니까 외투 잘 껴입고.”
“네.”
“내가 챙겨주마.”
외할아버지가 다시 일어나서 어머니의 외투를 꺼내 주실 동안 어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신으셨다. 어머니는 하얀 양말을 신고 계셨다.
“양말 신고 슬리퍼 신음 안 예쁜데.”
어머니가 말했다. 피식 웃었다.
“신발 꺼내줄까?”
“아냐. 그냥 나가자.”
“응.”
어머니와 팔짱을 끼고 함께 병실을 걸어나왔다. 엘리베이터를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문이 열렸다. 1층을 눌렀다.
“왜 나랑 둘이서만 가?”
“그냥.”
어머니가 식은땀을 흘렸다.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아까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와 같이 있을 때 보인 얼굴은 꾸며낸 모습이었다. 5층을 눌렀다.
“의사 부를까?”
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어머니가 닫음 버튼을 눌렀다.
“아냐. 내려가자. 엄마 괜찮아. 그냥 너무 배불리 먹어서 그런가봐.”
“왜 억지로 먹어. 그냥 남기지.”
“얼마 안 먹고 남기면, 엄마랑 아빠 걱정한단 말야.”
어머니가 눈썹을 찌푸리고 오른손을 윗배에 얹은 채 구부정하게 있으면서 소리 없이 끄응거렸다. 애 같았다. 또 미련해보였다. 남 걱정 안 시키려고 자기를 더 괴롭힐 필요가 있을까. 더 좋은 방법이 수두룩할 텐데. 이해가 안 가는 한편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도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았다. 혼자 끙끙 앓다가 겨우 백지수에게 털어놨던 것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런 면은 어머니를 쏙 빼닮았는지도 몰랐다.
1층에서 내리고 밖으로 나가 옥외공간을 걸었다. 조경이 꽤 되어 있어서 걸을만 했다. 어머니는 발걸음이 조금 느렸다. 팔짱을 끼고 있어서 내 평소 속도로 회귀하지 않도록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어제 얘기 좀 해줘.”
어머니가 말했다.
“... 어제 얘기?”
“응.”
“아침부터 주욱?”
“얘기해주고 싶은 부분부터.”
“으응.”
기억을 되살렸다. 찜질방에서 잠들었다가 아침으로 넘어가는 새벽에 일어나서 씻은 다음 토스트로 배를 채우고, 김세은에게 전화 걸었다. 김세은의 불안을 달래고, 카페에 가서 서유은에게 전화 걸었다. 기타를 챙기기 위해 집에 가면서 김세은에게 모닝콜하고, 집에 가서는 이른 점심을 만들면서 서유은에게 모닝콜한 다음 이수아와 나눠 먹었다. 그러다 꼴려서 자위... 했고. 도망치듯 나와 핫쵸코를 산 다음 서유은네에 가서 연습하고 놀았다. 세 시에는 성수에서 김세은이랑 만나서 북카페에 가 잡담하고, 노래방에 가서 김세은에게 대딸을 받았다.
“일이 많았나봐?”
어머니가 물었다. 괜히 뜨끔했다.
“응. 어제 일정이 생각보다 촘촘했어.”
물을 입에 머금은 채 하는 키스도 장난식으로 네 번인가 하고 다시 버스킹 연습을 했다. 그다음 선상 카페에 모여서 점검하는 과정에서 김세은이 또 불안감에 시달려서 달래줬는데 그것도 모자랐는지 소원권을 써서 외투를 벗어줬다.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그냥 버스킹을 시작했는데 내 순서가 끝난 때 어머니 대신 윤가영이 나타났고. 밖에 뛰쳐나가 토하고, 뒤쫓아온 윤가영을 붙잡아 엄마 흉내내지 말라고 한 다음 다시 돌아가 김민준에게 명함을 받았다. 앉아있는데 서유은이 와서 웃게 해줬고, 김세은이 또 불안해해서 밖에서 껴안아줬다. 다시 안에 들어가 백지수에게 별장에서 자도 되냐고 부탁하고 버스킹이 끝나기까지 기다린 뒤 앵콜곡으로 ‘Imagine’과 ‘소우주’를 단체로 불렀다. 손정우가 뒤풀이를 하자고 해서 무한 리필 고깃집으로 갔다. 그때 송선우가 쌈을 몇 번 싸서 먹여줬고, 다른 테이블에 있던 김세은이 손정우가 호감을 가진 걸 알고 철벽을 쳤다. 식사를 마치고 다들 귀가할 때는 백지수와 함께 별장으로 갔다. 술을 마시고 혼자 쌓아두고 묵인 것들을 토해내고 위로받았다. 쉬고 있는데 서유은이 전화를 걸어와서 내일 버스킹을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서 알겠다고 답하고 백지수에게 잠이 안 온다며 재워달라고 전화 걸었다. 새벽까지 잠 안 오면 재워준다는 말을 듣고 알람이라도 맞춰서 그때 깨어 있을까 하다가 그냥 잠들어버렸다.
내용을 검열할 필요가 있었다.
“되게 일은 많았던 거 같은데, 말할 건 딱히 없는 거 같아. 잔 움직임이 많았다고 해야 하나?”
“말하고 싶으면 다 말해줘 시간 많으니까.”
“알겠어.”
조심조심 말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토스트 먹어서 배 채우고, 부원들 컨디션 어떤가 물어보면서 잠 덜 잔 사람 있으면 모닝콜해준다고 하고 다시 자라고 했어. 카페에서 시간 좀 때우다 점심으로 스테이크랑 파스타 만들어 먹고 나서, 그 여자애 있잖아. 오늘 버스킹한 후배. 그 애랑 만나서 버스킹 연습했어. 걔가 처음 무대 서는 거라고 해서.”
“응.”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주변을 두리번거려서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봤다.
“왜 두리번거려?”
“그냥. 암튼, 세 시 돼서는 여자친구랑 만나서 북카페 갔어.”
“여자친구?”
“응. 세은이.”
“그 애랑 사귄다고? 언제부터?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어머니가 활짝 미소지었다. 어머니의 얼굴과 목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걱정됐다. 일단은 나도 마주 웃었다.
“최근에 사귀어서. 원래 서로 좋아하는 맘은 있었는데, 뒤늦게 고백해서. 근데 비밀연애라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걔 연습생이라 이제 곧 아이돌 되는데 남자친구 있다고 소문 돌면 안 되잖아.”
“으응. 그렇겠다. 알겠어. 입 꾹 닫을게. 근데 온유야.”
“응.”
“잠깐만.”
어머니가 갑자기 멈춰섰다. 힘드신가. 벤치가 어딨나 확인했다. 바로 앞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엄마 힘들어? 여기 벤치 있는데 앉을래?”
어머니가 오른손으로 가슴을 짚고 허리를 숙였다. 우욱, 거리시는 게 토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하수구를 찾아 그곳에 쪼그려 앉아 바로 토를 쏟아냈다. 옆에 앉아 오른손으로 어머니의 등을 쓸어주었다. 어머니의 몸은 위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내야만 한다는 것처럼 구역질을 멈추지 않았다. 입에서 침과 신물만 나올 때까지 어머니는 쪼그리고 있었다. 그렁그렁 맺히던 눈물은 어느 순간부터 주륵주륵 흐르는 수준이 되어 한바탕 운 사람처럼 보였다. 가슴이 먹먹했다. 화도 났다.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미웠다.
“하아... 엄마 왼주머니에 물티슈 있거든? 몇 장 뽑아줄래?”
어머니가 말했다. 세 장을 뽑아 건넸다. 어머니가 오른손으로 한 장을 들어 눈물을 닦아내고 가볍게 입가를 닦았다. 쓴 물티슈는 접어서 왼손에 옮기고 다시 오른손을 뻗어 내 손에서 두 장을 가져가고는 입을 꼼꼼히 닦은 뒤 침을 뱉었다. 끈적한 침은 입에서 쉬이 떨어지지 않고 입과 물티슈 사이에 가는 선을 만들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떨어졌다. 그 사이 나는 다시 한 장을 뽑았다. 어머니가 썼던 거를 또 왼손에 옮기고 내 손에서 물티슈 한 장을 가져가 입을 닦아냈다.
“나 줘 엄마.”
“하아... 응.”
물티슈를 한 장 더 뽑고 어머니가 쓴 물티슈를 받아서 감싼 뒤 내 왼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남은 물티슈는 도로 어머니의 왼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업힐래?”
“바로 앞인데 그냥 걸어서 앉음 되지.”
“그냥 업혀.”
어머니가 살풋 웃으며 응, 이라고 했다. 양팔을 뻗어 오는 걸 보고 등을 내주었다. 어머니가 내 등에 밀착해왔다. 두 팔을 허벅지 밑으로 넣어 고정하고 몸을 일으켰다. 벤치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옆에 앉았다.
“엄마 안 무거웠어?”
“하나도 안 무거워서 운동도 안 됐어. 엄마 살 좀 쪄야 돼 진짜.”
“고마워.”
“아니 엄마 먹어야 된다니까? 살 뺄 필요 하나도 없어.”
“알아.”
답답했다. 걱정이 화로 나타나기라도 할 것 같았다. 입을 열었다 도로 다물었다. 두 손으로 어머니의 왼손을 잡았다.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어머니가 은은히 미소 지으며 내 왼손 위에 오른손을 포갰다. 다크 서클과 살짝 패인 볼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다. 어머니가 나를 안아서 토닥여주었다.
“울지 마. 엄마 괜찮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가 안 아팠으면 했다. 아파야 할 건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만 맘고생하는 게 너무 가엽고 부당하게 여겨졌다. 이 순간에도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을 지독히도 아끼는 엄마가 아무도 모르게 고통스러워 했고 그 어떤 위로도 없이 홀로 견디고 있었다는 사실이 내가 다 서러워서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섧고 또 설워서 아빠와 윤가영이 죽도록 미웠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엄마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엄마를 더 끌어안았다. 한동안 그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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