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서유은 (3)
* * *
12시 56분인데 서유은이 나를 멀뚱멀뚱 쳐다 보고만 있었다. 마이크를 끄고 입을 열었다.
“시작해야지 유은아.”
“헉, 제가요? 어어?”
서유은은 마이크를 끄지 않아서 소리가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서유은을 향했다. 노래도 안 불렀는데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서유은을 보고 킥킥 웃으며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저 애 되게 귀엽다, 라는 말이 귀에 들렸다. 서유은의 얼굴이 붉어졌다. 서유은이 마이크를 끄고 내게 다가왔다.
“제가 어떻게 해요오...”
“그냥 하고 싶은 말 하면 돼. 그리고 원래 너 혼자 하려 했던 거잖아. 멘트 같은 거 준비 안 했던 거야?”
“아 몰라요오...”
“곧 한 시야. 조금이라도 말하고 시작해야지.”
“네에...”
서유은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아아.”
소리가 안 퍼지는 걸 확인한 서유은이 다시 마이크를 켰다.
“아아,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
사람들이 서유은을 보며 미소지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서유은은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새 웃음 짓고 말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갑자기 서유은의 얼굴이 상기됐다. 서유은의 시선을 좇아봤는데 그곳에 벌써 녹화를 시작한 사람이 있었다. 부담스러울 법도 했다. 서유은이 양손바닥을 보이며 내 쪽을 가리켰다.
“어어, 옆에 계신 온유 선배가 이어서 말씀해주실 거예요...”
웃었다. 서유은과 눈이 마주쳤다. 서유은이 소리 없이 입만 벙긋대서 죄송해요, 라고 했다. 입을 열어서 저는 어느 고등학교 밴드부의 부장이고 옆에는 신입 보컬 서유은이라는 자기 소개와 녹화는 가능하지만 인터넷에 올릴 거면 밴드부 공식 sns 계정에 링크를 걸어달라는 말만 대략 했다.
“이어서 곡 소개는 유은이가 해줄 거예요.”
서유은이 원망 어린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눈웃음으로 응수했다. 소꿉놀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를 보는 사람들도 그런 느낌이 들게 분명했다. 서유은이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댔다.
“요기 시네마에서 ‘Once’ 특별 재상영을 하거든요. 아마 그거 보러 오신 분도 있으실 거구, 이미 보신 분도 있으실 거구. 어쩌면 영화는 안 보셨어도 이 노래는 익히 들어보셨을 수도 있어요. 첫 곡은 원스 주제곡 ‘falling slowly’예요.”
서유은이 나를 쳐다봤다.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 눈이 반짝였다. 피식 웃었다. 마이크를 끄고 입을 열었다.
“잘했어.”
서유은이 배시시 웃었다. 마이크를 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첫 곡 다음부터는 신청곡을 받아서 노래할 예정이니까, 듣고 싶은 곡이 있으시면 노래가 끝났을 때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작할까 유은아?”
“네!”
“자,”
““하나, 둘, 셋.””
핑거 피킹을 해 기타를 퉁기기 시작했다. 맞춰본 적도 없는 곡이지만 합이 썩 잘 맞아서 거의 동시에 나는 소리가 예쁘게 겹쳐졌다. 소리를 내기 위해 호흡하고 내가 먼저 성대를 울렸다.
ㅡ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All the more for that
서유은이 입을 열어 화음을 쌓았다. 서유은의 목소리를 들은 행인들의 발길이 붙잡혔다. 이건 한번 들을 가치가 있다, 같은 판단을 이성적으로 수행하기도 전에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마력이 서유은의 목소리에는 있었다.
누구나 아는 코러스를 부를 때 시선은 서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이대로 서로만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마치 관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 광장이 우리 둘만의 밀실이라도 된듯이.
ㅡFalling slowly, eyes that know me
And I can't go back
And moods that take me and erase me
And I'm painted black
서유은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이 순간 나만을 바라보는 커다란 눈망울을 물끄러미 보다가 발음을 흘리는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면 누구에게 부탁했을 것인지. 이 듀엣곡을 나 아닌 누구와 불렀을 것인지. 애초에 나 말고 후보로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는지. 지금 나를 바라볼 때 보이는 눈빛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는 건지.
ㅡ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You've made it now
세 번째 코러스였다. 반복은 감정을 고조시켰다. 가슴이 벅차갔다. 뱉어대는 낱말들을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라서 가사가 갖는 간절함을 제일 절절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서유은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노래하면서 이렇게까지 극도로 몰입한 적은 별로 없었는데. 영화의 감정선이 이어졌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정도였다. 이상했다. 그 말로 밖에는 표현이 안 됐다.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박수가 멎을 즈음에 입을 열었다.
“신청곡 있으신 분 있나요?”
트렌치 코트를 입은 키 큰 여자가 손을 들었다. 손바닥을 내보이며 지목했다.
“네 말씀하세요.”
“‘Rewrite the stars’. ‘위대한 쇼맨’에서 나온 거요.”
서유은을 봤다.
“알아 이 곡?”
“알아요. 근데 코드를 몰라서... 보면서 쳐야 될 거 같아요.”
서유은이 스마트폰으로 악보앱을 키고 마이크 스탠드의 핸드폰 거치대에 끼웠다. 그리고는 엄지와 중지를 써 스트로크 리듬을 체크했다.
“어, 근데 이거 악보 넘겨드릴 사람 필요한 거 아니에요? 도와드릴까요?”
신청곡을 말한 여자가 물었다.
“아 이거 음소거하고 틀어놓으면 알아서 내려가요. 괜찮아요. 감사해요!”
“아 넵.”
여자가 자기 자리를 지켰다. 서유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시작되면 신호 보내.”
“고개 끄덕일게요.”
“응.”
서유은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순간 핑거스타일을 시작했다. 성대를 진동시켰다.
ㅡYou know I want you
It's not a secret I try to hide
서유은은 악보를 보다 나를 보기를 반복하며 스트로크를 쳤다. 고개를 저을 때마다 찰랑이는 머릿결을 보다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서유은도 나를 보며 눈웃음지었다. 볼에 달라붙은 옆머리 한 가닥이 정신 사나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한껏 오른 입꼬리는 누가 봐도 장난기 많은 말괄량이처럼 보이게 했다.
ㅡAll I want is to fly with you
All I want is to fall with you
So just give me all of you
사람들이 차츰차츰 우리를 둘러싸는 게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쌓여가기만 한다면 사람으로 벽이 만들어져 우리만의 공간이 형성된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우리를 응시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카메라 렌즈가 우리를 한쌍으로 묶어내고 그들과 우리를 분리해내는 것 같았다. 서유은도 이런 기분이 드는지 궁금했다. 서유은을 바라보았다. 우리 둘 다 입은 노래를 불러야 해서 눈으로 웃음지을 뿐이었다.
ㅡBut I can't have you
We're bound to break and my hands are tied
서유은이 한숨 짓듯한 발성으로 노래를 끝맺었다. 우리를 지켜본 사람들이 박수로 호응했다. 서유은이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오른손으로 목을 감싸고 큼큼 거렸다. 마이크를 끄고 기타 케이스에서 750ml 메모보틀을 꺼내고 다가갔다.
“목 아파?”
말하며 물을 건넸다.
“아뇨 그냥. 아픈 건 아닌데, 감사해요오...”
서유은이 메모보틀을 받아서 입을 안 대고 마셨다. 꼬올깍 꼬올깍 넘어가는 소리가 귀엽게 들렸다. 입 안이 작아서 그런가 물이 입가에서 조금 흘러나와서 서유은이 고개를 숙였다. 빠르게 고개를 숙였음에도 물은 서유은의 옷속과 외투에 흔적을 조금 남겼다. 오른손등으로 입을 스윽스윽 닦은 서유은이 고개를 들고 메모보틀을 내게 돌려주려 했다.
“감사해요 선배. 진짜 배려 그 자체.”
피식 웃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귀여웠다.
“그거 네가 갖고 있어. 필요하면 내가 달라고 할 테니까.”
“네.”
서유은이 메모보틀에 달린 줄을 목에 걸었다. 다시 내 마이크 스탠드 앞에 가서 섰다.
‘너도 저렇게 좀 해봐!’
‘아니. 나도 저러잖아.’
딱 달라붙어서 팔짱을 끼고 있는 커플이 왼쪽 주변시야에서 투닥대고 있었다.
“신청곡 있으신 분 있을까요?”
손 든 사람이 듬성듬성 보였다. 방금 투닥거린 커플 중 여자가 까치발을 들어 남자에게 귓속말했다.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 남자를 지목했다. 남자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저요?”
“네 말씀하세요.”
“근데 혹시 팝송만 가능한가요?”
“아뇨. 한국 노래도 돼죠 당연히.”
“그럼 수지랑 백현이 부른 ‘dream’ 불러주세요.”
타브와 함께 가사를 떠올려봤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서유은을 바라봤다. 커다란 눈이 나를 직시했다.
“가능해 유은아?”
“네? 네! 돼요!”
서유은이 화들짝 놀랐다. 이름 부른 거 때문인가. 서유은은 뭘하든 반응이 커서 놀려먹기 좋았다.
“이거는 코드 알아?”
“네! 알아요!”
“인트로 내가 칠게. 바로 시작할까?”
“네, 네.”
기타를 퉁기고 성대를 진동시켰다. 서유은을 쳐다보면서.
ㅡ예쁘네 오늘도 어제만큼
아니 오늘은 더 예뻐졌네
서유은이 자기가 노래 부를 타이밍도 아닌데 입을 벙긋댔다. 아마 잊어먹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가사를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서유은은 자기가 불러야 할 부분을 틀리지 않았다. 나는 여유가 좀 있었고 서유은은 노래 부르기 급급했다. ‘Rewrite the stars’를 부를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서유은은 완전 아마추어스러웠다.
두번째 코러스 파트를 할 때에야 서유은이 페이스를 찾았다. 나를 마주보는 얼굴은 상당히 붉었다. 브릿지로 넘어가 곡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서유은이 다시 입을 열었다.
ㅡWell I don't care
Even if you're a sweet liar
Well I don't care
Cause I will make you believe
내 파트가 끝나고 이제 아웃트로만 남았다. 서유은과 함께 입을 열었다.
ㅡDream 지금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면
나는 니가 꼭 내 것 같은데
Dream 다시 잠들고 싶은
너무 기분 좋은 꿈 그게 바로 너
노래가 끝난 순간 관객들을 보았다. 어느새 사람들이 꽤 모여서 짧은 그늘이 만들어져 있었다. 눈앞에 놓인 카메라 렌즈를 보는데, 갑자기 김세은이 떠올랐다. 부르는 내내 미소가 도저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는데. 변명해야 될 것을 생각하니 또 급 피곤해졌다. 고개를 돌려 서유은을 보았다. 서유은이 나를 보자마자 배시시 웃었다. 나도 따라 미소지었다. 기분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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