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55화 (55/438)

〈 55화 〉 서유은 (2)

* * *

상영관을 나오며 콜라와 조금 남은 팝콘을 버렸다. 각자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왔다.

“지금 좀 배부르지.”

“저 근데 괜찮아요. 더 먹을 수 있어요.”

“그래? 바로 밥 먹을 수 있어? 배 꺼질 때까지 기다리고 먹으면 시간 좀 빠듯할 수도 있어서.”

“그렇네요? 지금이 11시 반 좀 넘었으니까...”

“뭐 먹을래? 생각나는 대로 말해줘. 어디서 먹을지 정하고 빨리 이동해야 되니까.”

서유은이 나를 올려봤다.

“저 진짜 선배가 해주신 스테이크랑 파스타 먹고 싶은데.”

피식 웃었다.

“나중에 기회 되면 해줄게. 그래서, 지금 스테이크랑 파스타 먹고 싶은 거야?”

“으음. 네. 괜찮을 거 같아요.”

“마늘 좋아해?”

“한국인은 마늘이죠! 웅녀 시절부터 근본 식재료...!”

웃었다.

“왜요...?”

“너 귀여워서.”

“아... 선배애...”

“응?”

“그러시면 안 돼요오...”

“왜?”

“그럼 착각하게 된단 말예요오...”

“착각?”

얼굴을 보려 시선을 내렸다. 서유은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며 내 눈을 피했다.

“근데 저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마늘에 미친 데.”

오픈하자마자 바로 간 거라 웨이팅이 없었다. 테이블 앞에 앉아 마주보았다. 같이 태블릿을 보며 메뉴를 골랐다. 서유은이 편히 볼 수 있게 내가 일어서서 서유은 쪽으로 상체를 기울여서 얼굴 사이가 퍽 가까웠다.

“스테이크랑 파스타 먹을 거야?”

“어어... 선배가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돼요오...”

“피자는 어때? 이거. 갈릭 스노윙 피자. 마늘 좋아한다면서.”

“네, 네... 괜찮을 거 같아요...”

“그럼 스테이크 먹을래 파스타 먹을래? 파스타면 너무 탄수화물인가?”

“아... 저는...”

태블릿에서 시선을 돌려 서유은을 봤다. 얼굴이 붉었다.

“유은아.”

“... 네...?”

“얼굴 가까워서 부담 됐으면 얘기하지. 몰랐잖아.”

도로 앉았다.

“아뇨 아뇨오... 저 그냥...”

“그냥 뭐?”

“아녜요. 저 파스타 먹을래요.”

“파스타? 그럼 갈릭 페뇨 파스타 먹을래?”

“네, 네.”

테이블에 오른팔을 대고 턱을 괴었다.

“너무 다 내가 결정하는 거 아냐? 네가 먹고 싶은 거로 골라.”

“저 마늘 진짜 좋아해요. 제가 골랐어도 그 메뉴들이었을 거예요.”

“그래 그럼. 음료는 어떡할래?”

“저 자몽에이드요. 선배는 뭐 드실 거예요?”

“난 레몬에이드.”

주문했다. 곧 직원이 태블릿을 가져갔다.

“근데 영화에서 나온 그 말 뜻 뭐야? 밀루유 떼베?”

“아, 그거요. 그거 뜻, ‘나는 너를 사랑해’래요.”

“아... 너무 로맨틱하다. 안타깝고.”

“근데요 저는 그거 좀 비겁했던 것 같아요. 상대방은 못 알아듣게 자기 마음 고백하는 건 뭔가, 지금 당장 내 마음을 고백함으로써 편해지고는 싶지만, 또 그 남자를 택할지 가정을 택할지 선택은 유예하고 싶어서 그런 느낌이라서. 지금 저 좀 흥분해서 말이 좀 이상했죠...?”

“아냐, 다 알아 들었어. 음, 어쩌면 그 여자가 이미 가정을 택하기로 마음을 결정해서 그렇게 말한 거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지막 선택도 결국은 거기로 가는 거 보면 나는 그런 거 같은데. 그리고 아침식사도 딱 잘랐잖아.”

“으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오! 역시 선배.”

서유은이 양손 엄지를 세워보였다.

“너 지금 그러는 거 뭔가 그거 같애. ‘완전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진짜! 최고의 선배!’”

서유은이 배시시 웃었다.

“아, 아니에요오...”

“알아. 그냥 생각나서. 근데 우리 두 시까지 하는 거잖아, 버스킹.”

“네.”

“그거 한 다음에 뭐할 거야? 다섯 시까지 성수 가야 되잖아.”

직원이 에이드를 들고 왔다.

“레몬에이드 주문하신 분 어느 분이세요?”

“저요. 감사합니다.”

내가 답했다. 직원이 레몬에이드를 내게 주고 자몽에이드를 서유은에게 줬다.

“감사합니다아.”

서유은이 말했다. 빨대를 휘저어 섞고 레몬에이드를 한 입 했다. 서유은도 똑같이 해서 자몽에이드를 한 입 빨아먹었다. 서유은이 눈을 크게 뜨고 검지로 자몽에이드를 삿대질하며 허공을 쿡쿡 찔러댔다.

“이거 맛있어요.”

“내 것도.”

“무슨 얘기 하고 있었죠? 아, 기억 났어요. 다섯 시에 단합하러 가기 전에 할 거... 그 사이에 시간 비는데 집 갔다가 다시 성수 가는 것도 귀찮을 거 같기도 하네요... 아니다. 기타는 도로 둬야 되니까 집에 가긴 해야겠네요. 그러고 보니까 선배 짐 엄청 많잖아요. 그것들 가져오시는 것도 되게 힘드셨을 건데...”

“괜찮아. 힘든 건 아냐. 그냥 조금 귀찮은 거지. 귀찮은 것도 버스킹하면서 느끼는 거 고려하면 상관 없을 정도로 가벼운 수준이고.”

“그래도 오늘은 예정에 없는 수고하신 거잖아요...”

“괜찮다니까.”

“그래도요오...”

“정 마음이 안 좋으면 너도 나중에 내 부탁 하나 들어주든가 하면 되지.”

“오...! 그럼 되겠네요! 나중에 제가 뭐든지 들어드릴게요.”

피식 웃었다.

“응. 고마워.”

“아직 해드린 거도 없는데요...?”

“말만 들어도 고마워서. 그래서, 버스킹하고 나면 집 갈 거야?”

“그래야 되지 않아요...?”

불현듯 좋은 생각이 났다.

“왜 웃으세요...?”

“부탁할 거 생겼어.”

“네? 네! 말씀하세요!”

“버스킹 끝나고 나랑 서울숲 가자. 기타 챙기고.”

“네...? 서울숲이요...?”

“응. 마이크는 안 들고 갈 거야.”

“그럼 기타는 왜요...?”

“단합할 때 쓸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아... 알겠어요! 그럼 서울숲 가고 바로 단합 가는 거예요?”

“응. 괜찮아?”

“네! 근데 저 서울숲 가본 적 한 번도 없어요!”

“어? 진짜? 왜?”

“맨날 한강만 가서요. 서울숲은, 가볼까? 싶었을 때 맨날 퇴근 시간대 겹치거나 해서 가기 좀 그래 가지구, 언젠가 가긴 가야 되는데, 하다가 여태 안 갔어요!”

“와. 진짜?”

“네.”

“그럼 꼭 가봤어야 했던 거 이번에 가보는 건데, 부탁권 돌려줘야 되는 거 아냐?”

서유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진짜 그렇네요...?”

웃었다. 그냥 서유은을 볼 때면 많이 웃는 느낌이었다.

“장난이야. 부탁 맞지.”

“근데 저 진짜 다른 부탁하셔도 상관 없는데요...?”

“아냐. 이미 얘기한 거 무르는 것도 이상하잖아.”

“선배 맘이 정 그러시면 어쩔 수 없고요...”

말꼬리가 흐지부지 뭉그러지는 걸 들으니까 또 웃음이 나왔다.

“뭔가 시무룩한 거 같다? 남 부탁 들어줘야 된다는 의무 생기는 거 귀찮지 않아? 차라리 없는 게 나을 텐데, 아냐?”

“그것도 맞긴 한데요, 뭐랄까, 부탁권을 준다는 걸 자꾸 사양받으니까 또, 아 내가 부탁을 받을 만한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건가...? 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구. 근데 이것도 혼자 너무 멀리까지 가 버린 것도 같기도 하구 그래서...”

“너 생각 되게 깊게 한다. 거기까진 고려를 못 했어. 미안해.”

서유은이 멋쩍은 듯 헤헤 웃으며 양손으로 손사래쳤다.

“아, 아녜요 선배.”

“그럼 부탁권 갖고 있는 걸로 해도 돼?”

“네. 괜찮아요.”

“고마워.”

대화하다보니 어느새 음식이 왔다. 맛있네요, 그치, 근데 이거 먹고 나면 입냄새 엄청 날 거 같아요, 그래서 버스킹할 때 거리를 좀 유지해달라고 처음에 멘트 쳐야지, 풋 뭐예요 선배, 같은 시덥잖은 대화를 하며 접시를 비워나갔다. 서유은이 생각보다 잘 먹어서 클린 플레이트를 했다.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인접 상가에 맡긴 기타와 앰프, 마이크와 마이크 스탠드를 챙기러 갔다.

“근데 너 되게 잘 먹는다.”

“그쵸? 근데 저 이 먹성 좀 골칫거리예요.”

“왜?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실 텐데.”

“아니 그래도 자칫 잘못하면 살 찌잖아요. 몸 관리 엄청 어려운데. 근데 선배 몸 지인짜 좋아요. 어떻게 사신 거예요? 막 칼로리 계산하면서 식단 조절하시고 그러셨어요?”

“식단 조절까지는 안 했고, 운동을 꾸준히 했지.”

“언제부터 했어요?”

“중학생 때부터? 2학년이었나 3학년이었나 아무튼.”

“선배 공부도 잘하시죠?”

“음? 갑자기?”

“선배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잘한다고 들었던 거 같아서요.”

“못하지는 않지?”

“너무 겸손하지 마시구요.”

“상위권은 맞아.”

“그쵸. 저 진짜 선배 보면 엄친아라는 말밖에 안 떠올라요.”

피식 웃었다.

“또 콩깍지 씌었다.”

“네? 아녜요오!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냥 선배가 너무 잘나신 거라니까요?”

“그게 그렇게 혼내면서 해줄 말이야?”

“선배가 저 막 몰아가시잖아요오!”

웃었다. 장비들을 맡긴 상가의 문을 열었다.

“그만할게.”

기타와 마이크 스탠드 케이스를 다시 매고 왼손에 앰프를 들었다. 슬슬 버스킹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광장에서 기타를 꺼내고 마이크와 앰프를 세팅했다. 기타 소리를 체크하고 서유은과 내 발치에 기타 케이스를 두었다. 서유은이 다가와서 조용히 말했다.

“저 엄청 떨려요...!”

“설레는 거라고 생각해.”

“설렘이랑 떨림이 섞여서 어떻게 안 돼요...”

“그럼 떨렘인가?”

서유은이 풋하고 웃었다.

“뭐예요 그게.”

“웃게 해서 긴장 풀어주기.”

“조금 효과 있는 거 같아요.”

“다행이네. 자리로 가. 이제 시작해야지.”

“네!”

서유은이 통통 튀어서 자기 마이크 앞에 섰다. 아직 소개 멘트도 안 했는데 우리 앞에 멈춰선 사람이 두어명 생겼다. 왠지 벌써부터 느낌이 좋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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