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버스킹하는 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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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17분. 선상카페에 밴드부가 모였다. 2, 3학년들이 악기와 음향을 체크하고 있었다. 3학년 보컬 한 명이 모종의 사정으로 7시 전에 도착하지 못할 거 같다고 톡을 보내와 안 그래도 분주한데 어수선하기까지 했다. 장소를 제공해준 카페 사장에게 2학년이 먼저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학년 애들은 상황이 어찌 진행되는 건지 몰라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별일 없어 얘들아. 그냥 2학년이랑 3학년 순서만 바뀐 거야.”
1학년 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유은은 30분 언저리에 온다고 해서 아직 보이지는 않았다. 서유은도 노래를 불러야 해서 빨리 올 필요가 있었다.
“제가 유은이한테 전화 걸어볼까요?”
1학년 남자 보컬이 물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생각치도 못하게 일정이 바뀌어서 초조해져 가지고 그런 건가.
“내가 전화 걸어볼게.”
“아냐 부장 내가 할게. 나 할 거 없잖아.”
김세은이 말했다. 잠시 눈을 마주치다 고개를 끄덕였다. 김세은이 전화를 하러 가기 위해 우리와 멀어졌다. 부원들이 준비하는 것을 잠시 보고 있다가, 어머니가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카페 분위기를 다시금 파악하기 위해 카페를 둘러보았다. 선곡이 장소의 분위기와 안 맞으면 레파토리 중에서 조정해야 할 수도 있었다.
버스킹 로케이션을 할 때, 장소를 빌려주는 쪽에서 요구하는 장르나 바이브가 딱히 없는 이상 선곡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 된다. 하지만 그런 선곡도 완전히 우리의 자유인 것만은 아니다.
버스킹을 하기 위한 선곡을 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장소가 실내인지 실외인지’, 또 ‘그 곳을 찾는 주 인구층은 누구인지’와 ‘장소의 분위기는 어떤지’이다. 협소한 실내일 경우 마이크를 들고 고음곡을 부르면 너무 울리므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한다. 반대로 광장 같은 실외에서 잔잔한 곡을 하면 잘 들리지 않아서 이목을 끌기 어렵다. 연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에서 절절한 이별곡을 선곡하면 아웃이고, 유동 인구가 주로 젊은 공간에서 인지도 낮은 옛곡을 부르면 발길을 붙잡기 어렵다.
우리가 버스킹을 할 곳은 강가에 세운 3층 규모의 카페로, 2층 실외에 무대가 있다. 장소가 카페인 만큼 찾아오는 사람들은 주로 젊다. 야외 공간이라서 어느정도 질러도 된다. 멀리서 들리는 백색소음 수준의 자동차 소리 빼고는 소음이 적어서 음악에 집중시킬 수 있기에 선곡에서 제약을 받지는 않는 좋은 장소다. 인디 밴드들도 많이 오는 곳이고, 라이브 음악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마시러 오는 사람도 많기에 듣는 귀도 관대해진다. 다행히 오늘도 그런 듯하다.
‘선곡의 자유도’라는 이점에 준하는 또 다른 메리트는 이 카페엔 드럼, 키보드, 음향 장비와 보면대, 마이크 스탠드 등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렉 기타, 베이스, 어쿠스틱 기타만 챙겨오면 됐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문자를 보냈다.
[나 일곱 시에 바로 노래 시작할 거니까 빨리 와야 돼.]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도로 무대로 돌아가려던 중에,
“온유씨 맞죠?”
라며 나를 알아본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셋과 사진을 찍었다.
“저희 온유씨? 가 버스킹한다 해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멋쩍게 웃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흘깃흘깃 이쪽을 스쳤다. 연예인도 아닌데 이렇게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쟤가 누군데?’라는 시선이 자연스레 따라붙는데, 내 얼굴을 보고 ‘쟤 진짜 누군데 저러지?’가 되면 기분이 굉장히 오묘해져서 이런 상황이 달갑지는 않았다. 알아봐주는 것 자체는 고마워도.
“감사해요. 저 근데 이제 노래 부르는 거 준비하러 가야 돼서, 얘기 못 나눠서 죄송해요.”
키 작은 여자 한 명이 오른손 검지를 들어올리고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치듯 감쌌다.
“가시기 전에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네 물어보세요.”
“아이돌 준비하고 있어요? 그니까, 연습생이에요?”
“아뇨. 저 소속사도 아직 없어요.”
“허얼. 엔터들 일 진짜 너무 안 하네요. 제가 관계자였으면 인별 영상 하나 보자마자 무조건 낚아챘을 텐데.”
일행 중 하나가 여자의 팔을 찰싹 때렸다.
“그만 좀 해. 죄송해요 바쁠 텐데.”
“아뇨 괜찮아요. 저 제의는 꽤 받았는데 그냥 다 보류한 거예요. 기획사들이 일 안 한 건 아니에요.”
“그쵸? 역시.”
“저 이제 가볼게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아 네. 온유씨는 노래 언제 불러요?”
“저 첫 순서라 일곱시 되자 마자 부를 거예요.”
“오 그럼 저희 좀 이따 나가서 볼게요. 지금 나가기엔 좀 쌀쌀해 가지구. 파이팅!”
여자가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네 파이팅할게요.”
내가 따라했다. 여자들이 꺄르르 웃었다. 마주 웃어 보이고 뒤돌아서서 걸었다. 조금 피곤했다. 진짜 연예인들은 이보다 더 한 관심과 감시를 받으며 어떻게 미소 짓고 살아가는 걸지가 궁금했다.
“뭐하다 왔냐.”
베이스를 맨 백지수가 물었다.
“그냥 카페 둘러봤어.”
“넌 부장이 그래도 돼?”
“부장이라서 분위기 확인하려고 본 거야.”
“그런 거 할 거면 빨리 왔어야지 이렇게 늦게 와 가지고 하냐.”
“유은이 왔네. 유은이 하이.”
송선우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돌아봤다. 김세은이 기타 케이스를 맨 서유은과 팔짱을 끼고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오.”
고개를 숙였다 들어서 나를 본 서유은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선배도 낮에랑 똑같은 거 입고 오셨네요?”
김세은이 서유은을 봤다. 차분한 눈동자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유은아. 무슨 소리야? 똑같은 거 입고 왔다는 게?”
“아. 저 선배랑 ‘내 손을 잡아’ 듀엣해야 돼서, 오후에 연습 잠깐 같이 했어서요.”
김세은이 서유은을 껴안았다.
“그래? 고마워. 급히 부탁한 건데 군말 한 마디 안 하고 열심히 준비해줘서.”
“아, 헤헤. 근데 사실 온유 선배가 먼저 연습하자고 해주셔서 한 거예요.”
“그래?”
김세은이 나를 봤다. 무표정한 얼굴이 무기질적이었다.
“진짜야 부장?”
“... 어.”
“부장.”
“응?”
“커피 주문하러 가자. 너희도 먹고 싶은 거 단톡방에 적어. 우리가 주문하고 올게.”
“뭘 커피를 주문해. 곧 시작할 건데.”
백지수가 불만스러운듯 팔짱을 끼고 말했다. 송선우가 백지수의 뒤로 가 백지수의 양팔을 주물렀다.
“에이, 지수씨, 저희 커피 마셔야 돼요. 시간도 남았고. 얘네 보내주세요.”
송선우가 몸을 기울여 백지수의 귀에 속삭였다.
“관객들 있잖아. 그러지 마.”
“... 응.”
감격스러울 정도로 고마웠다. 송선우가 없었으면 우리 밴드부는 성립이 불가능했을 거였다. 고마움에서 비롯된 눈빛을 보냈다. 눈을 마주친 송선우가 픽 웃었다. 돌아서서 김세은과 걸었다. 단톡방에 있던 것들을 주문하고 돌아가려는데 김세은이 내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끌려가줬다. 김세은이 카페 바깥 쪽으로 가 강변 길을 걸으려 했다.
“뭐해 시간 다 돼 가는데.”
“시간이 다 돼 가?”
김세은의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었다.
“너 뭐야?”
“... 멈추고 얘기해.”
한 동안 말 없이 걷던 김세은이 이 정도 멀어졌으면 됐다 싶었는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봤다.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
“미안해.”
“왜 미안할 짓을 하냐고 애초부터.”
목소리부터 표정까지 다 차분해서 더 무서웠다.
“야.”
“...”
“말해봐.”
“내가 못할 짓한 것도 아니잖아.”
“그니까 그런 걸 왜 굳이 나한테 감췄냐고.”
“네가...”
“안 떳떳하니까. 네가 생각해도 안 떳떳해서 숨긴 거잖아.”
여기서 지면 앞으로 김세은에게 영원히 지게 될 것 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세은아.”
“뭐.”
“내가 안 떳떳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
“매일 말했잖아. 너밖에 없다고. 그런데도 네가 계속 나 못미더워하고 의심하니까 호흡 처음 맞춰보는 서유은이랑 연습하는 당연한 일도 감춘 거 아냐. 걔 버스킹도 처음 해본댔는데 좀 그럴 수 있는 거 아냐?"
“너 서유은 버스킹 처음 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둘이 언제 한번 깊이 대화 나눴나봐?”
“너 진짜 그런 식으로 비꼴 거야? 내가 잘못한 게 뭐 있는데.”
순간 김세은의 차분함이 깨졌다. 아랫입술을 깨문 김세은이 양손으로 내 외투를 끌어쥐고 내 가슴팍에 머리를 박았다.
“내가... 우리 서로 약속했잖아... 이성이랑 가까워지지 않기...”
김세은의 팔을 잡고 떨어뜨리려 했다. 김세은이 떨어지지 않으려 나를 껴안았다. 경험상 이럴 땐 차라리 다독이는 게 빨랐다. 왼손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오른손으로 등을 쓸어주었다.
“나 숨 막혀 세은아. 네가 그럴 때마다 나 힘들어. 나 좀 생각해줘.”
“나도 나 이러는 거 싫어... 근데, 네가 나 말고 다른 여자애랑 있는 거 보는 게 더 힘들고 속상해... 너도 나 좀 생각해줘... 나 진짜 죽을 거 같단 말야... 나한테만 웃어줘... 나랑만 얘기해줘... 남들은 모르는 너만의 생각도 비밀도, 나한테는 알려줘... 네가 내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줘... 난 이미 네 거란 말야...”
나도 김세은을 안아주었다. 놓치기 싫다는 느낌이 전해지도록 꽈악 껴안았다. 추운 온도 탓에 붉게 달아오른 왼쪽 귀에 속삭였다.
“사랑해 세은아.”
“나도, 나도 사랑해. 너무 사랑해.”
“돌아가자. 더 있으면 애들이 수상해 해.”
“응.”
김세은과 적당히 떨어져서 돌아갔다. 주문만 하고 딴짓하다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우리가 나간 동안 준비된 커피를 챙겨 애들에게 나눠주었다. 마지 못해 고맙다고 말하는 백지수의 볼에 심술이 가득했다. 미소로 답해줬다. 김세은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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