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41화 (41/438)

〈 41화 〉 버스킹하는 날 (5)

* * *

ㅡ우린 참 별나고 이상한 사이야

서로를 부서지게 그리곤 또 껴안아

두드드, 전화벨이 울렸다. 서유은이 왼손으로 기타현을 잡아 뮤트했다.

“선배 전화 받으세요.”

“응.”

기타를 바닥에 내려놓고 폰을 꺼냈다. 김세은이었다. 벌써 세시에 가까워졌나. 순간 등에서 땀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죄 지은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시간을 확인했는데 2시 13분이었다. 내가 시간 관념도 없이 푹 빠진 게 아니라 김세은이 불시에 전화한 거였다.

“나 나가서 받을게.”

“안에서 받으셔도 되는데.”

“아냐.”

문을 열고 나왔다. 돌길이 예쁘게 깔린 뒷마당 속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가서 녹음실과 거리를 벌렸다. 전화를 받았다.

ㅡ너 왜 이리 늦게 받아.

“그럴 수도 있지. 넌 왜 지금 전화했어? 3시에 건다면서.”

ㅡ왜냐니. 더 빨리 전화 걸 수도 있지. 너 방금까지 뭐했어?

“노래 연습.”

ㅡ무슨 노래.

“‘Psycho’.”

ㅡ누구랑.

“누구랑이라니?”

ㅡ버스킹 때 너랑 나 듀엣하는 거잖아.

“어. 근데.”

ㅡ진짜 혼자 불렀다고?

“내가 너 아니면 누구랑 하는데.”

ㅡ... 나 진짜 너 믿어도 돼?

“언제는 나 믿을 수밖에 없다면서.”

ㅡ너 내 심리 이용하는 거 아니지...?

“그렇게 못 믿겠어 나를?”

ㅡ... 지금 봐 우리.

“어디에서?”

ㅡ어디에서 만나고 싶어?

“내가 결정하라고?”

ㅡ어.

“... 3시에 성수에서 볼까?”

ㅡ왜 3신데.

“너 만나는데 나도 준비는 해야지.”

ㅡ... 만나서는 뭐할 건데.

“카페 가지.”

ㅡ그리고?

“거기서 그냥 얘기 나누고 커피 마시고. 너무 재미 없어?”

ㅡ아니. 좋아. 어디 갈 건데?

“찾아봐야 돼.”

ㅡ응. 카페들 사진 보내. 내가 고르게.

“어. 끊어. 사랑해.”

ㅡ나두 사랑해. 끊을게.

전화가 끊겼다.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누구랑 통화했어요?”

“3시에 만날 애. 미안해. 얘가 말이 조금 많아 가지고.”

“괜찮아요. 그럼 언제 가셔야 되는 거예요?”

“한 35분까지는 할 수 있어. 이어서 할까?”

“네!”

*

성수역에서 만난 김세은은 회색 후드랑 연청바지, 녹색 야상을 입고 있었다. 야상을 빼고는 일요일에 내가 사준 옷들이었다.

“이온유.”

김세은이 허리에 맨 웨이스트백을 빼 왼손에 들면서 차분히 걸어왔다. 연인인 척은 안 하려는 모양이었다, 싶었는데 갑자기 내 품에 달려들었다.

“뭐야.계약 위반이야 이거.”

“나 너무 피곤해.”

김세은이 내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댔다. 갑자기 웨이스트백을 뺀 게 나를 안는 데 있을 장애물을 없앤 거였나. 착잡했다. 일단 김세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속사가 너무 굴리는 거 아냐? 좀 쉬게 해주지.”

“그니까. 근데 네 탓도 있어.”

“내가 뭐 했는데?”

“그런 게 있어.”

“말 안 해주면 몰라.”

김세은이 까치발을 들어 두 손을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일요일에 내 보지랑 자궁에 정액 꽉 채워준 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괜스레 나도 목소리를 줄여서 다그쳤다.

“밖에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히힣. 응.”

택시를 호출해 북카페로 갔다. 지하로 내려가는데 김세은이 팔짱을 끼고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왔다. 뭐라 말은 못 하고 그냥 앉을 자리를 찾았다. 쿠션이 둘 있는 벽면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무 의자도 두 개 있는 게 적어도 네 명은 앉을 자리 같아서 다른 데를 보는데 김세은이 내가 보던 자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에 앉자.”

“응.”

기타를 대충 세워놓았다. 김세은은 카페 라떼를, 나는 바닐라 라떼를 주문했다.

“앉아계시면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았다. 폰을 꺼내서 괜히 밴드부 단톡방을 확인했다. 김세은이 엉덩이를 들어 옆에 바투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 내 어깨에 턱을 얹은 김세은이 내 폰을 같이 봤다.

“너 왜 나 있는데 폰 봐.”

“오늘 버스킹인데 부원들 무슨 일 있으면 안 되잖아.”

“다 봤잖아. 집어넣어.”

“응.”

“책 고르자.”

일어섰다. 김세은이 돌아다니는 속도에 발 맞췄다. 뭐가 좋은지 김세은이 생글생글 웃었다.

“너 여기 있는 책 중에서 읽은 거 있어?”

“몰라. 없는 거 같은데.”

“너 책 되게 많이 읽잖아.”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아.”

“읽었는데 말해주기 귀찮은 거 아니고?”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니잖아.”

“모르겠어. 나 요즘 너 진짜 모르겠어.”

김세은이 팔짱을 끼고 몸을 밀착했다.

“안에서 걷거나 할 땐 좀 안 붙으면 안 돼?”

“밖에선 붙지 말라면서.”

“너 밖에서도 붙잖아.”

“네가 진짜 붙는 게 뭔지 몰라서 그래.”

“붙는다의 정의가 서로 다른 거 같은데.”

“네가 생각하는 붙는 건 뭔데.”

“지금 너처럼 하는 거. 너는 뭐가 붙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거.”

“뭐?”

김세은이 다시 내 귀에 두 손을 대고 속삭였다. 입에서 불어오는 달콤한 바람이 간지러웠다.

“키스.”

발기했다. 미칠 거 같았다. 내가 요즘 이렇게 성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어쩌면 김세은 탓이었다. 김세은이 보여준 나신이 너무 근사하고 야해서, 나도 모르게 여자를 보면 저 사람을 벗기면 어떤 형태일까, 김세은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를 상상하고 마는 것이었다. 김세은이 다시 속삭였다.

“섰네?”

“... 보여?”

“너무 잘 보여. 숨겨.”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자지를 잡아 숨겼다. 김세은이 책 두 권을 집었다.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김세은이 배시시 웃으면서 내 볼을 콕 눌렀다.

“너 지금 표정 엄청 귀여워.”

“내 표정이 어떻길래.”

“간식 기다리는 강아지 같애. 자존심 때문에 낑낑 거리지는 못하고 가만히 점잖게 기다리는 강아지.”

“넌 동물학대범이고?”

“학대는 무슨. 네가 너무 뚱뚱한 강아지인 거거든.”

사장님이 커피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아주셨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맛있게 드세요.”

김세은이 바로 컵을 들고 후후 불었다.

“커피 마시고 싶었어?”

“응.”

김세은이 웃었다. 통화할 때랑 너무 다른 모습에 무심코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함께 있으면 웃고 거리가 멀어지면 의심하고 싸늘해지는 게 과연 진짜 사랑인가 싶었다.

“왜 그렇게 뚫어져라 봐?”

“너 예뻐서.”

“으응.”

김세은이 카페 라떼를 홀짝였다.

“맛있어?”

“괜찮아. 나 네 거 마셔봐도 돼?”

“마셔.”

김세은이 내 바닐라 라떼를 한모금 마셨다.

“뜨거워. 맛 제대로 못 느껴서 다시 마셔봐야 될 거 같애.”

“맘대로 해.”

“맞다 나 사진.”

김세은이 책과 커피의 위치와 각도를 조정하고 테이블을 찍었다.

“어디 올리면 안 돼.”

“안 올려. 나만 갖고 있을 거야. 너 보내줄까?”

“나한테도 보내면 안 되지.”

김세은이 볼을 부풀렸다. 요새 부쩍 애교가 많아졌다.

“요즘 왜 이리 애교 부려?”

“너 귀여운 거 좋아하잖아.”

“내가 그렇다고 얘기한 적 있었나?”

“... 몰라. 너 귀여운 거 좋아하는 거 엄청 티나니까 맞춰주는 거야. 고마워해.”

“고마워. 근데 난 귀여운 게 좋은 것보다 네가 좋은 건데.”

“왜 이리 말을 예쁘게 해?”

김세은이 웃었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머릿속으로 서유은의 눈웃음과 김세은의 눈웃음을 비교하고 있었다. 서유은은 싱그러웠고 김세은은 요사스러웠다. 괜히 죄스러워서 테이블을 더듬어 커피잔을 집어들고 한모금 마셨다.

“어 거기 내 입술 닿은 데인데.”

“상관 없지 뭐.”

김세은이 씨익 미소지었다.

“커피 다 마시고 어디 갈까? 우리.”

“다음 장소는 네가 정해야지.”

“노래방?”

“가면 안 될 거 같은데.”

“왜?”

“안 돼.”

“왜애애.”

김세은이 검지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피식피식 웃다가 겨우 손목을 붙잡아 막았다. 눈을 마주보았다.

“나 좀 창피해.”

“왜?”

손목을 놓아주었다. 김세은이 내 오른팔을 비집어 팔짱을 끼고 엉덩이를 움직여 몸을 밀착해왔다.

“너무 애정행각 벌이는 거잖아. 지금도.”

“그럼 다른 데로 가자.”

“커피는 마셔야지.”

“그니까. 커피 마시고.”

“다 마시고 이동할 때까지는 그러지 마.”

“노력해볼게.”

“노력해본다는 건 뭐야. 그냥 안 하는 거지.”

“그게 어려워.”

“됐어.”

이번엔 내가 김세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김세은이 꺄르르 웃고 조금 거리를 두었다. 하루가 지나면 기억도 안 나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커피잔을 비워나갔다. 카페를 나서서 위로 올라가려는데 김세은이 붙잡아세웠다.

“왜?”

“사진 찍어야 돼. 억울해서 안 되겠어.”

“억울할 게 뭐 있어.”

“이리 와.”

피식 웃고 옆에 가서 김세은의 폰으로 셀카를 몇 장 찍었다. 김세은이 받아서 일일이 확인했다.

“만족해?”

“응.”

김세은이 핸드폰을 야상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가 택시를 불러서 우리는 노래방으로 갔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듣기 싫은 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방음이 엄청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정된 방에 들어가 기타를 문 옆에 세워놓고 문 잠근 뒤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에 야상과 웨이스트백을 내려놓은 김세은이 익숙하게 점수 제거를 누르고 예약을 여럿 해댔다. 뒤태를 보는데 내 쪽으로 내밀어진 탐스럽게 둥근 엉덩이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일어나서 김세은을 백허그했다. 고개를 옆으로 틀어 나를 본 김세은이 씨익 웃었다. 미러볼 빛이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호를 그리는 눈과 입꼬리가 한없이 요망했다. 불가항력적인 본능에 이끌려 입술을 맞췄다. 김세은은 가만히 두기에는 너무 아름다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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