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김세은이랑 무인텔에서 (8)
* * *
알람이 울렸다. 내 핸드폰이 울릴 리는 없으니 김세은 것이었다. 걸어서 폰을 들었다. 서른 번 흔드는 것으로 종료되는 알람이었다. 끄고 나니 잠이 깨버렸다. 할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콘돔을 꼈다. 나머지는 아침에 하기로 했으니까 준비해둘 겸.
여전히 새근새근 자고 있는 김세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서 샤워하고 입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이불을 걷어 확인했다. 오버핏의 긴팔 흰색 무지 티셔츠에 분홍 돌핀팬츠였다. 이수아가 집에서 입는 것과 같은 복장... 시발. 뭐만 하면 이수아 생각이다. 김세은이 침대보를 더듬거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려고 했다. 뭔가 막힌 듯한, 평소보다 낮은 저음이 들렸다.
“몇 시야?”
“여덟 시 사 분.”
김세은이 팔을 뻗어왔다. 몸을 낮춰 안아주었다.
“더 잘까?”
“그래. 근데 너 목소리 왜 그래?”
“응? 어? 그러게. 뭐지. 아아아아아.”
김세은이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아서 스케일을 했다. 오르락내리락 세 번을 했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왜 그래?”
“나 감기 걸렸나봐...”
그러면서 옷 위로 자기 가슴을 막 주물러댔다. 브라가 없어서 면이 눌리자 손가락 사이로 하이얀 가슴과 분홍빛 유륜과 유두가 비쳐보였다.
“하고 싶어?”
“아니.”
뒤에 앉아서 김세은을 껴안았다. 발기된 자지는 기립근의 라인 위에 두었다.
“그럼 왜 그렇게 꼴리게 해.”
“어제 네가 너무 주물러대서 아파 가지고 그러는 거거든.”
“내가 대신 해줄까?”
“아니.”
“내가 해줄게.”
김세은의 손을 비집어 그 작은 가슴에 내 손을 얹었다. 느리고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흐읍... 흐읏... 응... 흐응...”
김세은이 손을 뒤로 뻗어 내 뒷목을 붙잡았다. 김세은이 야한 소리를 내는 이유야 뭐, 내가 애무하는 방법밖에 몰랐어서. 뭘 어떻게 해야 마사지가 되는지 몰라서 익숙한 대로 주물러주니 이렇게 되고 만 것이었다. 목에 키스를 해주었다.
“흐윽... 안, 대애...”
“뭐가?”
“흐응... 모게, 학... 키스 마크, 흣... 남는단, 마랴. 하읏...”
“그렇네. 키스나 하자.”
김세은이 고개를 틀어 입을 벌렸다. 대충 입을 가져다 대면 알아서 빨았다. 혀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려주려 입천장을 투욱투욱 두드리고 그대로 강하하여 내 혓바닥에 안착했다가 내 입 안이 바로 자기 자리라고 주장이라도 하려는 듯 내 혀와 마구 다투며 뒤섞였다. 김세은의 혀는 침입자인만큼 공격적이었고 내 혀는 응수만 대강 하면 됐다.
“흐읍... 츄릅... 합... 하웁... 츕... 츄웁... 후움...”
질 것 같으면 가슴을 꼬집으면 됐다. 지금처럼.
“학... 마사지, 헥... 해주는 거, 흐읏... 아녔어...?”
“섹스하자.”
“어제, 흐윽... 마니, 핫... 해짜나...”
왼손을 팬티 안에 집어넣어 보지를 만져봤다. 젖고 있는 주제에.
“하자.”
“하으윽... 안 대애...”
“보지 적시면서 그런 말 해봐야 설득력 없거든?”
“안 댄, 헤읏... 다구...”
강간처럼 억지로 해달라는 건가? 김세은은 마조히스트니까 내가 주도하는 상황을 바라오고 있는 것도 같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단 섹스하고 나서 김세은이 정색해오면 사과하면 될 일이다.
나를 꼴리게 한 김세은 잘못도 있다. 자기 몸이 얼마나 좋은지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섹스 어필을 하면 내가 따먹을 수밖에 없는 거다.
“콘돔 안 써도 되지?”
김세은의 등을 눌러 앞으로 눕히면서 말했다. 콘돔을 꼈는데 굳이 그 말을 한 건 김세은의 반응을 보려고 한 것이었다. 또 혹시라도 허락해줄지도 모르고.
김세은은 팔을 쭈욱 펴서 내가 힘을 주는 대로 가지는 않으려 저항했는데, 그러고 있으니까 그냥 정석적인 후배위 자세가 되었다.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된 탓인가 머리가 안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돌핀 팬츠를 끌어내렸다. 손으로 막는데 내가 더 힘이 셌다. 김세은이 이렇게 저항하니까 내가 진짜 강간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김세은의 돌핀팬츠는 발목에서 수갑처럼 기능해서 김세은을 오도가도 못하게 했다.
김세은의 팬티는 어제 봤던 하늘색 티팬티였다. 에코백에 차마 팬티를 챙겨오지는 못한 듯했다. 자지를 붙잡고 귀두로 대충 스윽스윽 비비니까 팬티가 비껴졌다. 조금 뻑뻑한 보지에 자지를 끝까지 밀어넣었다. 일단 한번 박으면 자력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안 두니까.
“흐으응... 제멋, 대로, 읏... 하지, 마...”
뒤에서 봤을 때 머리카락만 빼면 김세은인 것을 알기 어려웠다. 오히려 내게 익숙한 무지 티셔츠에 분홍 돌핀팬츠가 이수아를 연상시켰다. 갑자기 자지가 저릿했다.
“세은아.”
“흐읏... 응...?”
“욕해 봐.”
“뭐, 라고, 흥... 욕해?”
왜냐고 묻지도 않는다. 섹스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줄 요소를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뜬금 없이 제안해보기도 했으니까. 서로 욕하면서 하는 섹스는 여태 해본 적 없던 것이기에 내가 한 말을 두고 우리가 해왔던 제안의 일종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음. 상황은, 내가 강제로 자지를 박는 거. 강간이고. 너는 강간범한테 욕하는 거야.”
“이런, 흐응... 거는, 왜, 학... 해...?”
“좋다는 사람도 많아서.”
“윽... 누가...?”
“인터넷.”
“응... 흐응... 생각, 흣... 잘, 안 나.”
“내가 하고 있는 게 해서는 안 되는 거라는 경각심을 주는 말 같은 거? 그걸 들을 사람이면 강간을 안 할 텐데. 무용한 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라서 그런 말만 반복하는? 그리고 그게 안 되니까 아예 자기 몸을 반 포기하고 저주하듯이 욕만 하는? 해봐.”
“너, 진짜, 학... 어디서, 으읏... 그런 거, 하욱... 알아, 와...?”
“기억 안 나.”
“흥... 으읏... 으응... 흐윽... 흣...”
말이 안 떠오르나. 잔뜩 기대해버려서 아쉬웠다.
어쩌면 몰입이 안 돼서 대사가 안 떠오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내가 진짜 강간하는 느낌을 내주면 영감이 생생하게 날 수도 있겠고.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게 진짜 강간 같은 거일까? 포크너의 [성역]도, 버지스의 [시계태엽오렌지]도, 김승옥의 [야행]도 지금 내게 올바른 예시나 지침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지금 나는 나의 상상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 근처에서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 쥐고 뒤로 당겼다. 목적은 두 개였다. 나는 김세은의 얼굴이 안 보이게 하고 싶었고, 동시에 김세은의 고개를 통제하여 김세은이 내 얼굴을 못 보게 하고 싶었다.
“씨발. 이런 거 익숙한가보다 창년아? 몇 명한테 따먹혔냐? 거지 같은 년. 평소에 돈 벌려고 보지 벌렸냐?”
“아윽... 흑... 으긋... 흐으윽... 싫, 어...”
우는 소리가 꽤 리얼하다. 존나 건방진 년. 자궁이 망가지든 말든 파앙파앙 소리가 나도록 자지를 박았다. 왼손으로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 반죽을 주무르듯이 했다.
“흑... 하지, 마아...”
“보지 벌름거리면서 하지 말라고 하면 누가 자지 박는 거 멈춰주든? 남자 꼴리게 하려고 하는 건가? 그러면 남자가 더 빨리 싸줘? 기술 많은 창녀 같으니라고.”
다시 엉덩이를 때렸다. 보지가 조였다. 옆구리를 꼬집듯이 쥐고 퍽퍽 박았다. 자지로 폭력을 행사하는 느낌이라 해야 되나. 아무튼 난폭한 느낌을 많이 내려했다.
“흑... 흐응... 으응... 흐윽... 흣... 후윽... 하읏... 흑...”
“씨발. 말 안 해? 사람 무시하라고 배웠어? 네 애미가 그렇게 가르치시던?”
“으극... 그만, 흑... 그만, 학... 해애...”
“그만하라면 그만 둘 거 같애? 빨리 끝내고 싶으면 보지나 조여 씨발년아.”
“아윽... 흥... 응... 앙... 하읏... 흑... 후읏... 앙... 앙... 항...”
“느끼고 있네 변태 같은 년.”
“아냐, 시발, 흑... 강간, 범, 새꺄...”
좋다. 왼손으로 왼팔을 잡아당겨 균형을 무너뜨리고 오른손으로 목을 붙잡아 찍어 눌렀다. 오른팔로 버티려 하기에 손을 잽싸게 바꿔 오른팔도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이제는 얼굴을 옆으로 하려길래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아 이마를 베개에 찧게 했다. 얼굴을 보면 김세은도 나도 몰입이 깨질 게 뻔했다.
“하... 씨발. 들려? 보지 푹찍푹찍 소리내는 거? 자지가 그렇게 고팠어? 응?”
“아앙... 앙... 항... 학... 좆까... 좆, 같은, 읏... 새꺄앙...”
상체를 내려 김세은의 등에 내 몸을 얹었다. 무게를 못 견딘 김세은이 일어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그대로 팔을 굽혔다. 주인에게 복종하는 개 같은 자세가 됐다. 골반을 잡고 뒤로 끌어서 박기 쉽게 만들었다. 사정하기 위해서만 보지를 박듯이 허리를 재게 놀려 자지를 자극했다. 쯔북쯔북, 삐걱삐걱, 파앙파앙, 박을 때마다 소리가 따라왔다. 엉덩이 구멍에 왼손 새끼손가락을 반마디 집어넣고 넣었다 뺐다. 조였다 풀렸다 하던 보지가 한순간 크게 수축했다가 이완했다. 정액을 쥐어 짜내려는 것처럼. 그리고 역설적으로 짜낸 정액을 최대한 밖으로 배출하려는 것처럼. 김세은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강간범 자지에 가버린 거냐? 좆맛이 맘에 들었나봐? 보지 입맛이 딱 내 자지인 건가?”
“웃... 아냐학...”
“쯧. 머리에 좆만 가득 찬 병신 같은 년. 내 애나 임신해라.”
콘돔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자기 전에 느꼈던 생보지가 자꾸 기억이 나서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궁 안에 싸지르고 찔끔찔끔 나오는 나머지가 자지에서 다 빠질 때까지 귀두로 자궁구에 키스하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몰래 뺄까? 근데 김세은이 피임약을 먹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싸야 할 것 같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으극... 응... 흐응... 흣... 흥... 하앙... 항... 앙... 앙...”
사정감이 느껴져 김세은을 껴안았다.
“자궁에 싼다. 보지로 자지 꽉 물어.”
“앙... 항... 우그긋...”
자궁구까지 쑤셔넣고 움직임을 멈췄다. 울컥울컥 나오는 정액은 콘돔에 가로막혀 자궁 안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콘돔의 정액 주머니가 차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이유는 나도 몰랐다. 자지를 빼내니 김세은이 몸을 뒤집어 나를 봤다. 울음으로 범벅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좋을 대로 사용한 보지는 벌름거리면서 허연 애액을 내뿜고 있었다.
“넌, 흑... 이런, 게, 흡... 좋아?”
“... 힘들면 얘기하지.”
“내가, 윽... 그만, 하랬, 잖아.”
“이어서 받아주길래 연기하는 줄 알았어.”
“빨리, 끝내려면, 흡... 하라, 매.”
“미안해.”
“다신, 윽... 이런, 거, 흑... 안 해.”
“...”
난 이 플레이를 더 해보고 싶었다. 즉흥적으로 한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상황 설정부터 캐릭터까지 잘 만들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내가 조르면 김세은은 싫어하면서도 어떻게든 받아주려 하지 않을까. 내 성욕에 김세은을 동원하는 건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게 아니라 그저 수단으로 쓰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오나홀로 대우하는 것 같아서 마음은 편치 못하겠지만, 결국에는 이런 죄책감도 덜어지게 될 것이었다. 뭐든지 익숙해지고 둔감해지기 마련이니까.
무뎌지지 않는 것은 고통이나 쾌락 같은 말초적인 감각밖에 없었다. 김세은과 하는 섹스는 항상 새로웠다. 내 자지 모양에 딱 맞게 변모하는 보지는 날이 갈수록 맛이 좋아지는 와인 같았다. 운동과 안무 연습을 병행하면서 만들어진 몸매는 몇 번이고 껴안아도 다시 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입 안을 기억해서 눈 감고도 입 천장부터 혀 아래까지 구석구석 건드려주는 키스 테크닉부터 내 성감대를 기분 좋게 건드리는 방법까지 다 숙지한, 즉 내가 원하는 대로 커스텀 된 김세은은 섹스 상대로서 결점이 없었다.
김세은을 놓칠 수 없었다. 내가 사는 동안 김세은을 가지고 싶었다.
“윽... 끅...”
울음이 점차 잦아들던 김세은이 딸꾹질했다. 물을 가지러 가서 콘돔을 벗고 버린 뒤 물을 건네줬다. 김세은이 두 모금을 마시고 말 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말 없이 새 콘돔을 끼웠다.
“나, 끅, 안 해.”
김세은 앞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김세은을 끌어 내 허벅지 위에 올렸다.
“세은아.”
“섹스, 히끅, 안 한다고.”
“안아주고 싶어서. 안 돼?”
“...”
나는 두 팔을 벌렸다. 김세은이 내 눈을 뚫어져라 보더니 곧 안겨왔다. 왼 어깨에 김세은의 턱이 얹혀졌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김세은이 지금 내 얼굴을 못 보는 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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