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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44화 (44/156)

〈 44화 〉 남매

* * *

시연은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성녀를 바라보았다.

"하아. 거기 성녀님? 왜 자꾸 말이 없으세요? 혹시 벙어리신가요?"

"저...!"

옆에 있는 수행원이 발끈 했지만, 성녀가 말려서 싸움은 면한 듯싶다.

"죄송해요. 하하... 제가 아는 사람과 무척이나 닮아서요. 조금 놀랐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피아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사과하면서 자기소개를 한 성녀, 소피아를 보면서 조금 화를 누그려 뜨렸다.

'그래도 진심인 것 같네...'

"하아. 조금 쓴소리해서 죄송해요. 제가 조금 입이 험해서요."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하하하."

소피아는 웃으면서 이해해 주었고, 그건 조금 더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보통 욕먹으면 화내지 않나? 사람 미안해지게 만드네...'

"크흠! 두 분, 일단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시는 게 어떤가요?"

"아! 그러네요. 저기 시연님?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아... 그러세요."

시연은 평소보다는 덜 까칠하게 대하면서 착석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대화는 흐르지 않고 그저 소피아만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저기 성녀님?"

"아! 소피아라고 불러 주세요. 저보다 연상이신데요."

"소피아? 뭐라도 이야기하시죠? 조금 어색한데..."

소피아는 당황하고, 그저 입을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뭐 이런 답답한 사람이 다 있데?'

"하아. 그냥 제가 먼저 할 게요. 아까 말한 아는 사람이 누구예요?"

"아! 그... 동생이요."

"동생?"

"네... 이제는 못 만나는 동생이요. 하하..."

'...실수했네...'

지구에서는 가족관련은 금기로 지정될 정도로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욕은 당연한 거고, 저런 이제는 만나지 못한다는 쉽게 말해 사별은 함부로 꺼내선 안 된다.

"죄송해요. 제가 실수했네요."

"아니에요! 오히려 그리운 사람을 떠올릴 수 있어서 제가 더 감사하죠!"

"그... 저랑 많이 닮았나요?"

그제서야 소피아는 기쁜 표정으로 말문이 트였다는 듯이 쉴세없이 떠들었다.

"네! 물론이죠! 제 동생도 시연씨 같이 쌀쌀맞고 입이 험했거든요! 얼마나 심하면 항상 제가 친구가 없는 이유가 제 행동 때문이라고 했어요! 하하하."

'이 여자...'

시연도 마찮가지지만 소피아도 말을 가려할 줄 모르는 거 같다.

'자신의 동생도'라고 말하지만 바꿔말하면 너도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니까.

'바보인 거야? 아니면 노리고 욕하는 거야?'

어느 동생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언니를 참 잘 알아본 거 같다.

'그래도 마냥 미워하기는 힘든 사람처럼 보이네...'

소피아는 웃으면서 시연을 챙겨 주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원하는 걸 아는 것처럼, 오래알고 지내지 않는 다면 알 수 없는 그런 것들.

'정말 내가 동생이랑 닮았나 보구나. 지금도 자연스럽게 나한테 물을 건넸어...'

"그래도 동생이 하나 못 맞친 게 있어요!"

"뭔데요?"

"저 보고, 평생 연인이 없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있다고 자랑할 수 있어요!"

'이런 사람이? 보면 귀여운데? 누가 안 대려간다고?'

가슴을 피고 당당하게 있는 소피아를 보며 웃었다.

이곳에 납치되고 나서 처음으로 웃는 거 같았다.

이 바보 같은 여성을 보면서, 알고 보면 착한 동생이라고 챙겨 주는 마음씨 좋은 사람을 보면 10년 전에 실종된 오빠를 떠올리게 했다.

'오빠도 놀리는 건 참 재미있었는데... 반응도 재미있고... 그래도 그렇게 실종 될 줄 알았으면 하지 말걸...'

오빠 생각에 조금 침울해 하자, 소피아는 당황해하면서 말을 걸었다.

"어?! 괜찮으신가요? 제가 혹시 안 좋은 말이라도 했나요?!"

걱정을 하는 그녀를 보면서, 시연은 다시 웃어 주고는 걱정 말라는 듯이 이야기해주었다.

"아니요. 하... 제 오빠도 소피아를 닮았거든요... 조금 떠올려서요."

"아... 오빠...분이요?"

"네... 10년 전에 실종된 오빠가 있어서요..."

'어디서 뭘 하는지, 살아는 있는지도 모르는 오빠가...'

10년 전, 집에서는 합격 확인하기가 떨린다고 PC방을 가서 돌아오지 않던 오빠.

'엄마한테 전화를 걸고 휴대폰만 남기고 사라졌지...'

시연의 가족은 사라진 오빠를 찾아 헤맸다.

어머니는 10년 동안 전단지를 돌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라진 오빠를 찾았고,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흥신소를 돌고 일하는 날에도 퇴근 후에 종종 오빠방을 들렀다.

"어... 어떤 오빠셨나요?"

소피아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고, 시연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대답했다.

"제 오빠도 소피아를 닮았어요. 바보같으면서 엉뚱한 사람이고 놀리면 반응이 재미있는, 그러면서 동생을 잘챙겨 주고 부모님도 잘 챙겨서는 혼자 집에서 공부하고, 용돈 받는 법 없이 그저 묵묵히 노력해서, 항상 꿈에 그리던 의대에 합격한 날에 실종되었어요..."

자신은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될 거라며 입이 닳도록 이야기한 상냥한 오빠.

"그런... 가족분들도 힘들었겠어요..."

시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조금... 아니 많이요. 제 엄마... 어머니는 아직도 오빠를 찾아 해매고 있고, 오빠의 방도 실종당일 그대로 남겨두었어요. 아빠도 걱정이 많아지셔서, 6시만 넘으면 제가 먼저 전화해서 아빠한테 몇 시에 들어간다고 보고한다니까요? 하하. 저도 지금은 '오빠를 놀리지 말걸,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사이좋게 지낼걸'하고 후회해요. 이러니 저리니 싸워도 참 좋아하는 오빠였는데..."

"..."

소피아는 입술을 깨물면서 울듯이 보고 있다.

'동생을 잃은 사람이야... 내 심정을 잘 알겠지...'

"이젠... 집에서 저까지 찾아 나서겠네요..."

시연은 지금까지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소피아의 앞에서 약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한풀이를 하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빠...! 이제 나 어떻게... 엄마도 아빠도 나까지 잃어 버리면 안되는데...! 걱정많이 하실건데... 어떻게...! 오빠아아! 제발... 제발 좀..."

소피아는 그런 시연을 보면서 머리를 감싸며 안아 주었다.

"괜찮아... 시연아... 괜찮아, 오빠가 다 해결해 줄 거야... 전부 다...!"

☆☆☆

잠깐의 시간이 지났고 시연은 진정이 되었는지 붉어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면서 열을 식히고 있었다.

"후후후, 이제 진정됐어?"

"!!! 소피아! 갑자기 말을 놓으신 건가요?! 방금 건 그냥 잊어 주세요!"

부끄러움에 크게 소리를 지른 시연을 보고, 나는 계속해서 웃어 주고 있다.

"우리 서로 편하게 부르는 게 어때? 시연이도 나도 편하게. 응?"

"크흠! 아까 내가 더 연상이라며? 언니라고 불러야지?"

시연은 부끄러움이 가셨는지 조금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언니라 부를 것을 강요했다.

"내가 언니라고 부르면, 내 연인들이 질투할걸?"

"연인? 남자친구가 왜 질투해?"

나는 어느새 편해진 건지, 말을 놓은 시연을 보면서 웃어 주고는 양 옆의 리리스와 미네르바를 가르켰다.

"'남자친구'가 아니라 '연인', 더 정확하게는 '연인들'."

"어? 레... 레즈..."

"어허! 백합이라 부르거라. 그리고 안타깝지만 시연아. 내 연인은 이 둘 뿐이니 걱정을 말거라."

콧대를 높여가며 이야기하자, 시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수긍했다.

"그...래, 하하... 그럼 서로 편하게 부르자. 나도 솔직히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편해진 기분이었으니까."

시연은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했고, 나는 그 악수를 받아드렸다.

"응. 아! 그리고 로자리아의 '다섯 개의 기적'이라고 알아?"

"다섯 개의 기적?"

시연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응. 여신은 로자리아로 다섯 개의 기적을 행할 수 있도록, 초대 성녀에게 하사했다고 정해져 오고 있어. 두 번은 내가 로자리아를 찾기전에 사용한 상태였고 세 번 남았어."

"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게 왜?"

'정말 그게 뭔 상관이냐는 듯이 보네...'

"왜냐면... '저는 로자리아의 사용자, 로자리아를 빌려 당신에게 여신의 기적을 한 가지 선사하겠습니다.' 이런 거. 헤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기적을 주었고 시연, 리리스와 미네르바, 그 외에 여기에 있는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하면서 쳐다보았다.

"지금 무슨 짓을...! 세 번 남았다며! 그런 걸 왜 함부로 쓰는데?! 바보야?! 어?! 바보냐고?!"

"어어어어어컥억엌 잠깐! 흔들지 좀...!"

내 어깨를 부여잡고, 앞뒤로 격렬하게 흔드는 시연을 말리면서 대답했다.

"언니! 대체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소피아?! 뭐야?! 바람이야? 응?! 저년도 마음에 드는 거야?!!!"

리리스와 미네르바도 참전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토...토나온다...'

"우웁...!"

'참아라! 나의 강한 의지여! 토하면 안 된다!'

겨우 토악질을 하는 걸 피했지만, 이미 모두를 나를 멀리 피한 상태이다.

"하아. 살았다... 일단 시연. 기적은 성녀가 용사에게 내려주는 거야. 그중 하나를 준 것뿐, 기적의 내용은 비밀이야. 그리고 리리스! 나도 생각이 있어서 한 행동이니 걱정마. 미네르바? 바람 아니야. 아까도 말했듯이 내 연인은 너희 둘만이야. 어때 이제 좀 해결됐어?"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았지만 아직은 불완전하게 받아들인듯했다.

'후우. 그래, 세 번만 있는 기회를 이렇게 쓰니까 당황할 만하지...'

그리고 천천히 시연에게 다가가서 살짝 목부근에 손가락을 대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주는 작은 마법."

'[COVENANT BREAER].'

어떤 마법을 몰래 디스펠하고는 리리스와 미네르바를 데리고 방을 빠져나갔다.

"안녕! 내일 봐 시연아! 히히히!"

☆☆☆

우리는 방에 돌아왔고, 리리스와 미네르바는 따지듯이 물어왔다.

"언니! 정말 무슨 생각이신가요?! 다른 세계에서 온 용사라고 해도 적이라구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리리스 말이 맞아, 소피아. 나도 놀랐어. 소피아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러진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아도 '다섯 개의 기적'은 너무했어..."

<...소피아. 무슨="" 생각이냐?="" 지금="" 그대의="" 얼굴.="" 한없이="" 분노했을="" 때,="" 너무="" 분노해서="" 차갑게="" 가라앉았을="" 때="" 보여주었던="" 표정이다.="" 본녀조차="" 한="" 번밖에="" 보지="" 못한="" 표정...="" 무엇이="" 그대를="" 그렇게="" 분노하게="" 했느냐?=""/>

카르마의 말에 리리스와 미네르바는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로자리아가 실체화하며 대신 말을 하려 했다.

<저...저기! 일단="" 기적의="" 내용인데요...!=""/>

"로자리아 말하지 마 내가 말할게."

나는 의자에 주저 앉아서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기적의 내용은 간단해. '만약 정말 목숨이 위험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본래의 세계로 돌려 보낸다.' 그게 끝이야."

입술을 매 만지고, 천천히 이 분노를 식혀갔다.

식지 않는다.

아니, 이미 식어서 한없이 차가워졌다.

어째서 저 아이가 이곳에 있나,

어째서 저렇게 변했나,

많은 의문이 느껴졌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 동생까지 납치를 해?! 거기에 주종계약을 걸어 놓고?! 여차하면 인형처럼 조종하겠다는 소리인가?! 로젤리아...! 이 쓰레기 같은 년이...! 감히...!"

사무치게 그립지만, 그저 그곳에서 안전하게 살기를 바랬던 가족이 납치되었다.

시연에게는 노예에게나 쓰이는 주종계약이 걸려 있었다.

다른 세계의 괴물은 로젤리아에게는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기 쉽게 표현한 것만 같았다.

"언니? 동생이라니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이시연. 그녀는 이성재의 친 동생이야. 시연이가 말한 실종된 오빠가 나라고..."

"!!!"

리리스는 경악했고, 다른 사람도 마찮가지였다.

까득.

이를 갈면서 분노를 참고 있다.

끝까지 자신의 죄를 늘려가는 로젤리아를 생각하면서, 이기적이고 진정으로 '괴물'같은 로젤리아.

지금 차갑게 식은 분노를 뜨겁게 불태웠다가는 모든 걸 망친다.

'우선 주종계약은 디스펠했어... 기적을 사용해서 동생이 정말 위험하면 지구로 돌려보낼 수도 있어.'

목에 걸려 있는 로자리아를 보았다.

영롱하게 빛나던 보석중 하나가 빛을 잃었다.

'이제 남은 건 두 개...'

동생을 위해서 사용한 건 아깝지 않았다.

조금 전 나를 찾으면서 울던 동생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오빠'가 해결해 준다는 말까지 해 버렸다.

'다행인건 시연이가 내가 위로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라 착각한 거야...'

교국의 일은 끝났다.

그린우드로 향한 다음에 그곳을 파괴하고 용사는 글리아스로 돌려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시연인걸 알았는 데 어떻게 그곳으로 보내...!'

손끝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우선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어..."

동생에게 미움 받더라고 시연을 속이고 마왕을 연기하느냐,

아니면 동생에게만 진실을 이야기하고 로젤리아의 손아귀에서 구출하느냐.

"모두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나는 모두를 보며 같이 답을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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