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선물
* * *
"우리는 여신님의 진정한 사도다!"
"저 거짓된 여신교를 무너뜨려라!"
"탄압에 굴복하지 마라!"
"우리는 언젠가 승리할 것이다!"
글리아스와 디퍼루드의 연합군이 교국의 민중들은 진압했다.
교황은 이미 분노한 민중앞에서 처형당했고 추기경, 주교등 높은 직급에 앉아 있는 자들도, 교황과 함께 모조리 처형당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처형당한 건 교황측 인물이 대부분.
마리아측의 인물들은 상당수가 살아남았다.
"이런... 프레디님, 신세졌습니다. 교황님은 안타깝지만... 뭐, 어째선지 굉장히 만족한 얼굴을 하고 처형당했으니 상관은 없겠죠."
"마리아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프레디는 상자를 들고 찾아온 마리아를 보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민간인을 이렇게 규탄해도 좋은겁니까? 이런 식으로 강하게 진압한다면 더욱 반발할 거 갔습니다만..."
"이대로가 좋은겁니다..."
"그렇...습니까... 이것도 필요한 일... 인 겁니까..."
프레디는 떨리는 눈으로 수많은 인간이 희생된 광경을 바라보았다.
'꼭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 건가? 스승님... 이것도 필요한 일인겁니까?'
"그런데... 프레디님? 용사님도 같이 오신걸로 아는데... 그분은 어디계신가요?"
프레디는 마리아의 말에 끔찍한 광경에서 눈을 돌리고, 구석에서 토악질을 하고 있는 신혁을 바라보았다.
'그래... 필요한 일이야... 필요한 일...'
"저기에 있습니다. 시연님은 그린우드로 향하고 있고, 곧 성녀님과 만나서 출발하겁니다."
"이런... 용사님은 이런 장면이 익숙하지 않은가 보군요. 여행에 나서면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거둬드려야 할 것인데... 벌써부터 저러면..."
익숙해지다.
프레디는 익숙해 져버렸는지, 이런 장면을 보아도 단순하게 '끔찍하다.'라는 감상만을 할 뿐이었다.
'그런가? 나는 익숙한 건가? 죄 없는 사람들을 살해해서? 아니다. 그때는 마왕에게 현혹된 자들이었어...! 그때는...'
"프레디님?"
프레디는 손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그때의 기억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후우. 마리아님. 역시 익숙한 게 좋은 겁니까? 자신에게 변명하면서 익숙해지는 것이..."
마리아는 고민하는 표정을 하더니 프레디에게 자신의 답을 알려주었다.
"제가 말씀드리면... '딱히 익숙해질 필요 없다.' 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익숙할 필요가 있지만, 자신의 신념을 따르되 자신의 죄에는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이건 '제'가 해드리는 충고예요. 누군가에게 현혹돼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눈을 돌리지 마세요. 언젠가 진실을 알더라도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되, 절대로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마리아는 아까처럼 온화한 미소가 아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럼 저는 용사님께 가 보겠습니다."
'죄에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떠오른다.
그날 친절하게 우리를 환영해주었던 평범한 마을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던 마을주민들이.
그 주민들을 즐거운 놀이를 하듯이 베어낸 우리들이.
'아니야...! 그건 필요한 일이었어! 필요한 일...!'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생각도 못할 정도로 자신을 몰아넣으면 잊을 수 있다.
미친 듯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빨리... 훈련을... 훈련을 해야지... 스승님도, 단장님도 내가 늘어지는 걸 걱정했어... 그러니까 늘어지면 안돼...!"
프레디는 다시 자신을 세뇌해가면서 몸을 움직였다.
☆☆☆
이 세계는 게임 같은 것일 줄 알았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게임.
자신만을 위한 세상.
'그런데 이게 뭐냐고! 우웁!'
"우웨에에엑!"
이미 수차례 속을 비워내서 나오는 거라고는 투명한 위액 뿐이었다.
"용사님? 괜찮으신가요?"
마리아가 다가와서 신혁의 등을 두들기지만 신혁은 버럭 화를 내며 대답했다.
"!!! 괜찮을리가 있어?! 당신은 왜 멀쩡한 건데? 이게 뭐야?! 왜 시체가 이렇게! 우웁!"
생생했다.
튀어나온 내장.
잘려 있는 목.
불쾌할 정도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탄 냄새.
이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저 잔인한 B급영화에서나 보는 것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곳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신혁은 다시 토악질을 하며, 이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인 장면을 피했다.
'왜 내가 주인공인 세상에서 이런 장면을 봐야 하는데?! 이런 세상은 그냥 재미있게 즐겨야 하는데...!'
"용사님? 앞으로 보아야 할 세상은 이런 세상이 될겁니다. 이곳은 당신을 위해서 만들어진 세상이 아니니까요."
"지금 무슨...!"
신혁은 화를 내면서 마리아를 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평소의 온화한 표정이 아닌 차갑기 그지없는 표정. 아니, 표정이란 게 없었다.
'...! 뭐야 갑자기...! 뭔데 하렘멤버도 아닌 게 건방지게...!'
신혁은 노려본다고 생각했지만, 주위에서 보기에는 겁먹은 강아지가 짖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착각하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당신은 그저 이 세계로 온 다른 세계의 주민일 뿐, 이곳은 당신의 놀이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한 마리아는 평소의 온화한 미소로 돌아와서 한 상자를 건넸다.
"이건 지원을 해준 로젤리아님에게 건네는 선물입니다. 제 동료분들이 모이면 열라고 전해주세요. 후후."
그가 건넨 상자는 조금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자리를 벗어나는 마리아는 잠깐 돌아보면서 한 가지 말을 했다.
"용사님? 제 일은 끝났으니 용사님도 글리아스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여기에는 용사님이 보기에는 너무 현실적이니 빨리 꿈속으로 돌아가야죠."
꿈속으로 돌아가라는 마리아의 말에 신혁은 화가 났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에 아무 소리도 못하고 주먹만 쥐고 있었다.
"빨리... 돌아가서, 나도 시연누나하고 성녀가 있는 엘프마을에 가야지... 하하하."
이런 곳이 아닌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곳으로.
☆☆☆
마차가 역참마을에 도착해서 멈춰 섰다.
나는 무릎을 베개 삼아서 누워 있는 미네르바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미네르바? 도착했어, 이제 일어나."
그러나 그녀는 내 허벅지를 강하게 잡고 거부를 했다.
"싫어.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래..."
'조금만...'
이 소리를 하면서 미네르바는 이동중에 항상 나한테 붙어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데카라비아를 없는 존재로 만든채, 마차 내부를 둘만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데카라비아 조차 완벽하게 기척을 지우고 있어...!'
역시 우수한 비서.
둘의 연애에 방해꾼이 되지 않기 위한 그녀의 배려일 것이다.
"아니! 데카라비아?! 도망치지 마! 거기 바깥의 마부도! 너도 마부역할 하면서 왜 존재감을 지우는 건 수준급인데?!"
"저희는 주 임무가 잠입이기에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잠입업무가 주인 그들에게는 기척을 지우고 허벅지를 쓰다듬는 미네르바와 부끄러워하는 나를 감상하고 있었다.
'이런 쓸데없는 곳에 그런 우수함을 발휘하지 말라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미네르바를 강제로 일으켰고, 마차 밖으로 나갔다.
"치... 소피아. 리리스가 돌아오면 밤에 가만히 안둘거야..."
"..."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가서 미네르바가 만족할 때까지 허벅지를 내 주었다.
☆☆☆
미네르바에게 모자를 씌어 주고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피아? 이곳에 용사 한 명이랑 만나기로 했다고?"
"응. 그린우드로 가기 전 이곳에서 만나서 간다고 했어."
리리스도 교국의 일을 마치고 곧 우리와 합류 할 것이다.
그 전에 용사로 소환된자를 만나서 파악하고, 그린우드의 일을 결정할 것이다.
"리리스에게 일이 끝났다고 연락이 왔으니까 이곳으로 전이해 오라고 전했어. 어쩌면 우리보다 더 빨리 왔을 수도 있지."
마법적인 [다형체]와 달리, 그녀의 고유 능력인 [변신]은 그 능력의 차이가 명확했다.
겉보기에는 같은 변신으로 보여도, 디스펠이 통하지 않고 마법색적에도 걸리지 않는 잠입과 다른 인물을 속이는 것에 최고로 적합한 능력이다.
'다른 인물로 변하는 건, 그 인물을 잘 연기하지 않으면 주위사람에게 들키지만, 리리스는 마리아의 연기를 잘해주었지...'
그 둘의 말투가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만난 인물들이 마리아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한목했다.
'만난 것이 로젤리아 였으면 들켰을 거야. 정체는 몰라도 마리아가 아니란 것은 눈치챘겠지.'
교국으로 찾아온자가 만약에 로젤리아나 앨리스 였다면 바로 도망치라고 전했었다.
'다행히도 걸린 건 새로운 용사와 그 파티원이었지...'
리리스의 보고로는 용사쪽은 별 볼 일 없어 보인다고 했다.
교국의 광경을 보고 환상이 깨진 소년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오히려 파티원을 더 큰 위험분자라고 알려주었다.
'리리스와 만났던 도시에서 본 기사라고 했나? 아마, 그 단장놈하고 같이 찾아온 가벼워 보이는 기사일 거라고 했는데...'
그날 본 그 하급기사는 껄렁한 하급기사 정도였다.
하지만 불과 몇 달이 지난 지금은 영웅급에 발을 걸치기 전까지 성장했다고 전하였다.
'처음부터 영웅의 씨앗이었다고 했지... 그렇다고 해도 빠른 데... 어쨌든 주의할 필요가 있겠어, 이 속도면 금세 성장할 거니까.'
나머지는 또 한 명의 용사였다.
이곳에서 다른 용사를 보고, 같이 행동하면서 그린우드로 갈 것이다.
'짧게 본 용사보다, 한동안 같이 지내는 것이 더 파악하기 쉽겠지...'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일에 조금은 불안감을 느끼지만, 폐쇠적인 그린우드로 쉽게 잠입할 기회이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기회. 거기에 용사를 파악할 수 있으니 더욱 좋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관으로 걸어갔고, 누군가 내 옷을 잡아당겨서 그쪽을 돌아보았다.
<오! 소피아.="" 그대는="" 큰일="" 났다.="" 리리스가="" 집무실을="" 보고는="" 가만히="" 안두겠다고="" 전하라="" 하였느니라.=""/>
그곳에는 카르마가 나를 올려다보면서, 굉장히 무서운말을 해주었다.
"어? 검순아? 벌써 와 있었어? 아니... 전이를 하면 앞지를 수 있지만 뭐라고?"
"카르마! 그러면 오늘 소피아를 맘대로 해도 되는 거야?! 헤헤헤."
미네르바는 한 술 더 떠서 기뻐하고 있었다.
'아니요. 누구 마음대로요? 아내님들 마음대로라구요? 살려주세요.'
나는 식은땀을 한 방울 흘리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뒤쪽에서 나를 막아서는 미네르바만 아니었으면 도망을 쳤을 것이다.
<소피아. 미네르바도="" 한="" 달="" 가까이="" 쌓여서="" 조금="" 무섭게="" 변했느니라.="" 아!="" 리리스가="" 여관은="" 방음이="" 잘되는="" 곳으로="" 잡았으니,="" 오늘은="" 마음껏="" 소리를="" 내라고="" 했다.=""/>
큰일 났다.
용사건보다 위험하다.
'주로 내 '막'이! 뒤돌면 욕실 때의 미네르바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서 못 돌아보겠어!'
카르마는 웃으면서 엄지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고,
아래쪽으로 내리찍었다.
<그러게 소피아.="" 청소는="" 했어야지...="" 본녀가="" 보기에는="" 어질러="" 놓고="" 청소를="" 아내에게="" 맡긴="" 남편="" 잘못이다.="" 해="" 줄="" 말은="" 하나다.="" 의무방어전="" 힘네!="" 히히힛!=""/>
끝났다.
나는 오늘 마리아와 같은 yes 동정, no 처녀가 될 운명인가 보다.
"음... 저기 혹시 성녀님과 그 수행원분들 이십니까?"
나는 죽은 눈을 하고 돌아보자, 그곳에는 어떤 기사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정확하게 찾았군요. 저는 용사님의 안내역을 맡은 글리아스의 기사입니다. 멀리서 보기에도 분위기가 딱 성녀님이어서 한번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하하하!"
'나이스! 어시스트!'
"네! 다행이네요! 어서 용사님에게 가 볼까요!"
만면의 웃음을 띄우며 대답해주자 기사는 얼굴을 붉히면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퉷!!!"
<칫. 재미없네...=""/>
<소피아님은 나중이="" 더="" 위험한걸="" 모르네요.=""/>
뒤에서 들리는 소리와 로자리아의 염화를 무시한 채로 용사가 묵고 있는 여관에 대해서 들었고, 그곳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리리스가 잡은 여관과 같은 곳이었다.
'어?!'
<로자리아. 오늘은="" 본녀가="" 팝콘각이="" 뭔지="" 보여="" 줄게.=""/>
<어머, 카르마.="" 뭔지는="" 몰라도="" 재미는="" 있을="" 거="" 같네요.="" 후후후.=""/>
두 무기 중에 무엇이 더 튼튼한지 반드시 시험해 보겠다.
☆☆☆
여관에서 기다리던 리리스와 합류하고, 곧장 용사에게로 향했다.
"성녀님, 수행원들이 많군요. 아! 혹시 전투능력은 적은 것입니까? 호위를 겸하는 수행원분들?"
"후후후. 네, 호위분들이죠. 솔직히 수행원보다는 호위에 더욱 가깝구요."
기사는 이해했다는 표정을 했고, 곧 한 문 앞에 도착했다.
"여기가 용사님이 머무르시는 방입니다. 용사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성녀님을 모셔왔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기사가 노크를 하고 물어보자, 안쪽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성녀님 안쪽으로 들어가시지요."
기사는 방문을 열어 주었고, 방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성과 눈을 마주쳤다.
검은색의 긴 생머리, 끝이 날카로운 눈을 가진 여성.
어딘가 도도해 보이고 짜증이 조금 나보이는 여성.
저 차가운 눈은 예전에는 날카롭지만 밝고 따뜻한 눈이었다.
저 성격은 장난기 많고, 나를 자주 놀리던 그런 친근한 성격이었다.
예전보다 성숙해 보이고, 어딘가 낯설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여성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 성녀님? 이 시연이라고 합니다."
나를 보는 그녀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납치 된 피해자가 가해자를 보는 듯한 눈.
"성녀님? 사람이 불렀는데 대답은 해주시죠?"
전생의 가족.
내 동생이 이곳에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