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삼손
* * *
아침이 되고, 리리스의 안내를 받아 삼손의 저택을 찾았다.
'생각보다는 작네?'
거인족이 산다고 하기에는 전체적으로 작았다.
'아니 큰 건 맞지만 골리앗을 생각하면 꽤 아담한... 아니 들어갈 수는 있는 지 의문이네...'
한 층의 높이는 기껏해야 4미터정도, 층 수도 2층이 끝인 귀족의 별장수준은 될까 싶은 저택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저택이라고 할 수는 있겠는데.'
"리리스? 여기 정말 거인족이 사는 곳 맞아? 골리앗이 너무 큰 거였다고 해도, 다른 거인도 들어가기 힘들어 보이는데?"
"음... 언니? 그건 조금 있다가 아실거예요. 후후."
리리스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작게 불만을 표현하려고 했지만, 금세 저택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나온 어린 남자아이에 의해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저런 어린아이가 살면 좀 작게 살 수도 있겠지... 그래도 너무 작지 않아?! 거인족 평균이 7미터라고 리리스!"
아이는 그렇다고 쳐도 거인족의 신장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삼손이 앉아서 생활하지 않는 이상에는 살기란 불가능할 거 같다.
"후후후후, 언니. 잠시만 있으면 돼요."
"그래, 리리스여. 오랜만이로구나. 그간 별 탈은 없었느냐? 벨제부브에게 네 소식을 귀에 피나도록 들었지만 직접 물어봐야 할 거 같아서 내 이리 물어본다."
"네, 삼손님. 저는 잘 지냈고, 사랑스러운 연인도 얻었어요. 히히히"
리리스는 내 팔짱을 끼면서 이야기했다.
'누구라고? 삼손씨? 저 꼬마가?'
"저기 리리스? 저 꼬마가 삼손씨라고? 혹시 동명이인? 아니면 그냥 놀리는 거야?"
신장은 아무리 봐도 미네르바보다 한참은 작아보였고, 얼굴도 아이처럼 어려 보였다.
'그리고 골리앗의 아버지라고 하기에는 말을 너무 잘하잖아!'
"음? 리리스여 말하지 않은 것이냐?"
미취학 아동을 벗어난 초등학교 저학년 처럼 보이는 아이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하였다.
"하지만 삼손님. 모르는 사람이 삼손님의 그 보고는 누가 거인족이라고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언니가 저렇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으신 게 얼마나 귀여우신데요. 후후후."
아이에게도 존대를 하는 리리스의 모습은 어색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만 놀려 주었으면 했다.
"리리스. 그만 놀리고 제대로 삼손씨한테 안내해 줘. 지금쯤 검순이랑 놀고 있을 미네르바도 오고 싶었는데 내가 적은 사람과 만나고 싶다고 거절했으니, 쓸데없는 시간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평소에 놀리는 건 그냥 넘어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기에 진지하게 이야기하면서 혼을 냈다.
"우후후, 죄송해요, 언니. 하지만 이분은 정말 삼손님이 맞아요. 단지..."
'단지?'
뿌득 뿌득.
아이 쪽에서 기괴한 소리가 나서 쳐다보자. 신체가 부풀어 오르고 골격이 바뀌고 있는 한 남성이 보였다.
그 남성은 아이에서 소년으로, 다시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하더니 더욱 거대해져, 저택의 지붕과 비슷할 정도의 크기로 거대한 거인족이 되었다.
"어..."
"미안하군, 아가씨. 그 모습으로 있으면 많이 오해하고는 하지. 하지만 거인족이 다른 지역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네."
골리앗보다 작았지만, 조금 큰 '거인'이 거기에 있었다.
"반갑네, 나는 거인족 삼손이라고 하네. 그래서 나를 찾는 이유가 뭔가?"
알몸 상태로.
'크...크다...'
☆☆☆
우리는 다시 작아진 삼손과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삼손님? 찢어진 옷조각은 어떻게 할 까요?"
허리에 수건을 두른 삼손이 리리스를 보며 이야기했다.
"마당에 내비두면 사용인이 알아서 치우네."
[압축]과 [반로환동], 그 두 가지가 삼손의 고유 능력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두 능력을 사용해서 다른 종족이 사는 곳을 자주 들른다고도 했다.
'앨리스가 부러워, 미칠만한 능력이군.'
"그래, 소피아라고 했나? 자네는 나를 왜 찾는 거지?"
이유.
내 죄를 마주 보고, 그 죄의 값을 치우기 위해.
그리고,
'단순한 자기만족이겠지...'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자기만족.
어떤 식으로 포장해도 결국에 지금 이 행위는 그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왜, 말이 없는 것이냐? 리리스. 이 아가씨가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냐?"
"글쎄요? 언니가 저한테도 말씀 안해주셔서 자세하게는 모르겠어요."
나를 바라보는 눈들.
의아함을 담은 눈이 곧 분노로 바뀔것이다.
'리리스는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저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
이 사람을 속이고 웃으며 지낼 수 없다.
아예 모른 척하고 지낼 수도 없다.
'그건 내 죄를 피하고, 다른 사람의 죄값만 받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니까.'
이 사람을 속이며 지내는 것은 배신이니까.
"당신의 아들 골리앗을 죽인 자입니다."
"언니! 그건!..."
겨우 입을 열어서 삼손에게 이야기를 하였고, 당황하며 소리를 높인 리리스와 주먹을 휘둘러오는 삼손을 바라보았다.
콰직.
'아... 이거 몇 군데 박살 났겠는데...'
주먹이 내 몸에 다았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저택 밖으로 날아갔다.
쿵!
"커헉!"
막지 않았다.
막을 수 있었다.
막아선 안 됐다.
투력도 마력도 사용하지 않고, 오롯이 분노를 받아 냈다.
건물에 부딪쳐 몸이 멈췄지만, 주변은 전부 박살 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힘이... 정말 골리앗의 아버지가 맞나보네...'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와 함께 쓰러져 있는 나에게 삼손이 천천히 걸어왔다.
"일어나라. 적당하게 힘 조절해서 휘둘렀으니, 아직은 움직일 만한 것을 알고 있다."
그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아니, 감정이란 게 사라질 정도로 분노한 것이겠지...'
"예..."
온몸이 고통 속에서 떨고 있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삼손님! 잠시만요! 이야기를...!"
삼손은 달려오는 리리스를 노려보면서 막는다.
"리리스, 실망이구나. 내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본 네가 이 여자와 연인으로 지내고 있었다니... 내가 여지것 너를 잘못 판단하고 있었군..."
삼손의 눈에서는 리리스에 대한 분노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나에 대한 분노가 대부분 이었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원수를 보는 눈이었다.
'당연하겠지... 적어도 리리스에게는 피해가게 하면 안 돼...'
"리리스... 쿨럭! 빠져 있어... 이거는 내가 받아야 하는 죄값이야... 외면하면 안 될 죄값, 누군가에게 죄값을 받아내겠다고 하는 사람이 내 죄를 외면하면 안 되지... 쿨럭!"
"언니! 그러니까 이야기를...!!"
입에서 피를 토하고 망가진 내장조각을 뱉어 내면서 일어났다.
"잘 아는군, 그러면 내 아들을 그렇게 죽이고 모독한 대가를 치러라..."
삼손을 다시 한번 주먹을 쥐고, 내게 휘두르려 했다.
'하하... 저거 또 맞으면 좀 오래 기절할 거 같은데... 복수는 다 이루고 말해야 했나...'
나는 삼손의 주먹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아 진짜! 두 사람 다 내 말 좀 들으라고!!!!"
삼손의 주먹이 코앞에서 멈추었고, 나와 삼손은 리리스를 바라보았다.
소리를 지르며, 화가 조금 많이 나 보이는 리리스를.
"두 사람 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평소와는 다르게 높임말을 쓰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골리앗님을 죽인건 언니가 아니야."
"어? 아니... 쿨럭! 하지만..."
"아 들으라고."
"..."
삼손도 당황한 것인지 주먹을 공손히 내렸다.
"언니와 싸우고 빈사상태에 빠진 건 맞아, 하지만 그때까지는 살아 있었고 언니와 싸운 것은 골리앗님의 선택이었으니, 나는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어."
나는 저렇게 화내는 리리스를 본적이 없다.
그녀는 화가 났어도 조곤조곤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지만, 지금은 눈살을 찌푸리며 분노하고 있었다.
"언니와 싸움이 끝나고 나는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달려갔지만, 거기에 그 여자가 나타났어."
"리리스. 그럼 이 여자가 그 여자가 아니란 말이..."
"말하면 끊지 말고 들어!!!"
"..."
"그 여자. 로젤리아 드 글리아스. 그 여자가 나타나서 아직은 살릴 수 있던 골리앗님을 죽이고 언니와 마찬가지로. 아니 언니의 사체를 이용하기 전의 실험체로 쓰였던 건지, 골리앗님의 머리와 일부 뼈를 뜯어서 가져갔어."
로젤리아.
'그년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당황해하던 삼손은 입을 열면서 질문했다.
"잠깐 리리스. 이건 들어 주게. 골리앗이 싸운 건 용사였고 죽인건 그 여자라고 하지 않았느냐? 기사와 같이 나타나서 나설 수 없었다고, 죄송하다고 했지. 용사는 남자고 거기에..."
"용사는 한 번 죽고 여자로 환생했어요."
조금은 진정했는지 다시 높임말을 쓰며 나를 가리켰다.
"저기에 있는 언니로요."
삼손은 당황하고 안절부절한 모습으로 나와 리리스를 번갈아 보며 쳐다보았다.
"어... 쿨럭! 그러니까. 골리앗은 죽지는 않았고, 죽이고 사체를 유린한 건... 쿨럭! 로젤리아. 그년이다? 쿨럭!"
입에서 피가 섞인 기침을 하며 물어보자, 리리스는 다시 찌푸리며 이야기했다.
"언니, 말하지 마... 에휴... 네, 맞아요. 언니는 골리앗님을 죽이지 않았어요."
"..."
"그럼...쿨럭! 나 왜 맞은 거...쿨럭!"
리리스는 한숨을 쉬며 회복마법을 걸어 주었다.
"아파..."
'이럴 줄 알았으면 투력이라도 조금은 두를걸...'
맨몸으로 맞은 거인족의 주먹은 매우 아팠다.
"언니? 지금 회복마법 걸어 주고 있으니까. 닥ㅊ... 조용히 하세요?"
뼈가 박살 나고, 내장이 망가져 있는 고통에 쓰러져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아!!!!"
'큰 소리나서 쫓아왔나보네...'
나를 보며 달려오는 미네르바와 카르마. 얼마전에 리리스와 미네르바를 임시사용자로 한 덕에 카르마를 들고 올 수 있었다.
"삼손!!!! 죽여 버리겠어!!!"
"엇! 미네르바?! 이건 그러니까... 오해일세! 내가 한 건 맞지만..."
미네르바를 본 삼손은 심하게 당황한 채로 그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감히 내 소피아를!!! 죽어!!!!"
"미네르바?! 잠깐 이야기를...!"
분노한 미네르바는 리리스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검을 휘두르려 했다.
"비켜! 리리스! 넌 저 새끼가 소피아를 저 상태로 만들 동안 뭘 한 거야!!!"
하지만 이미 한번 말을 안듣는 걸로 머리끝까지 화난 리리스가 다시 화를 내는 건 금방이었다.
"아! 시발 사람이 말을 하면 들으라고! 왜 내가 말하면 듣지를 아는 건데?!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어?! 내가 평소에 좋게 말하니까 무시하는 거야?! 대답해 봐 미네르바!!!"
리리스의 분노에 미네르바는 진정한 것인지, 아니면 당황한 건지 휘두르던 카르마를 멈추었다.
"히끅!"
아니, 그냥 욕까지한 리리스에게 놀란 것이고, 겁먹은 것이니라.
"히끅! 히끅! 히끅! 잘못... 잘못했... 우으으으."
<아이고, 미네르바.="" 놀랐나="" 보구나.="" 눈가에="" 눈물도="" 맺힌게="" 곧="" 울겠어.=""/>
'넌 제발 이럴 때는 눈치 좀 보고 빠져!'
리리스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짜게 식은 눈으로 카르마를 노려보았다.
<히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