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구원
* * *
사투르의 표정이 진지하다.
아까 전 미네르바와 만났을 때의 손녀사랑이 지긋했던 표정과는 대조되는 표정이었다.
'조금... 부담되는 표정이네...'
"그래... 소피아라고 했나? 자네는 어째서 그런 것을 이야기한 거지? 사망한 용사라는 것을? 우리가 인족에게 자네 정보를 팔아 넘기면 어쩌려고?"
생각보다 상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저기 벨은 영혼이 나가 있는데...'
"믿음이요."
"무엇을 믿고?"
점점 표정이 날카로워지는 사투르, 수인 해방의 주역이라 불리고 아직도 수많은 수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자.
'과연. 이라고 해야 하나? 관록, 그리고 박해받고 인족의 노예로 존재하던 시대를 격은 자의 의심인가? 아니면 주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질책?'
그에게서 나오는 분위기는 리우스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강력한 지도자의 것이었다.
"미네르바를요, 리리스와 미네르바를 믿어서요."
그저 올곧게 사투르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저는 기억을 되 찾았을 때는 매우 혼란스럽고 미쳐 있었어요. 물론 인족과 복수의 대상들에게는 아직까지 미쳐 있다고 해도 되겠죠."
그저 이 세계에 납치되어서, 그들의 입맛대로 이용당하고 살해당했다.
한 번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 당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친구'들이 미웠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다시 태어나고 남은 건 증오와 광기에 사로잡힌 '괴물'이었다.
하지만,
"리리스를 만나고, 미네르바의 진심을 듣고, 그녀들의 마음을 알고, 벽을 세우고 다가오지 말라고 더 이상 괴롭게 하지 말라고 그녀들에게서 멀어지려고 했지만."
숨을 고르며,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투르와 어느새 옆에서 같이 진지하게 듣는 벨에게 전했다.
"그녀들은 항상 제게 다가왔어요. 괜찮다고, 자신들은 그자들이 아니라고, 그러니 겁먹지 말라고, 괴로워하지 말라고..."
"언니..."
"소피아..."
그녀들을 보았다.
리리스는 울먹이며 나를 바라보았고 미네르바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봐 주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웃어 주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위태롭게 걷고 있던 저를 붙잡아 주었어요. '괴물'이 되어 가던 저를 '사람'으로 남게 해주었어요."
다시 한번 사투르와 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녀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들이 믿는 당신들을 믿는 거예요."
"언니!!!!"
"소피아!!!!"
리리스와 미네르바는 울면서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아하하하...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족과 '친구'들에게 까지는 사람으로 남지는 않을거에요. 그들이 지은 죄값을 치러야 하니까요."
"..."
조용히 듣고 있던 벨은 헤픈표정을 지우고, 감고 있던 실눈을 크게 뜨며 리리스와 닮은 에메랄드색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소피아양? 만약 그 아이들이 다시 한번 자네를 배신하면 어쩔 건가?"
"아버지!"
"조용히 하거라, 리리스. 지금은 아빠로서가 아니라 악마왕 벨제부브로서 묻는 것이다."
벨. 아니 벨제부브의 말에 리리스가 소리쳤지만, 그는 리리스의 말을 무시하고 나에게 답변을 재촉했다.
'벨제부브... 그게 본명이었나? 딸바보의 헤픈아저씨는 그저 연기였고...'
그녀들이 배신한다.
생각해 본적 없다.
'아니, 처음에는 그것도 경계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마 나는...
"다시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겠죠. 그전에 그녀들이 배신한다는 건 이제는 상상도 못하지만요. 하하하..."
볼을 긁적이면서 답을 전했다.
그리고 벨제부브는 다시 실눈의 헤픈아저씨로 돌아갔다.
"응! 소피아 아가씨는 며느리로 합격이야!"
'며느리?! 아까 미네르바가 남편으로 소개하지 않았나?!'
"음... 많이 힘들었겠구나. 나중에 이 할애비에게 다 말하거라. 다 혼내주마!"
사투르는 크고 단단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오랬동안 수행했나보네... 아니!'
"저... 벨제부브씨?"
"벨 아버님이라 부르렴."
"... 벨씨."
"벨 아버님~♥하고 불러 보지 않을래?
"... 아까 미네르바가 저를 남편으로 소개했는데... 저도 정신적으로는 일단 남자라서 며느리보단 사위가..."
내 말은 거기까지 이어졌고, 다시 눈을 뜬 벨제부브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빼았겼다.
"이 아버님은 말이야, 우리 딸이 남자를 데리고 오면 일단 가죽부터 벗겨 놓고 시작하려 했는데... 어쩔 거니?
그리고 다시 사투르에게로 대화가 이어졌다.
"음? 소피아양? 우리 손녀는 내 며느리를 닮았고, 리리스도 며느리에게 배웠는데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그러면 참으로 대단한 것 일 텐데..."
"..."
주도권은 고사하고, 항상 괴롭혀지지고 성희롱에 성추행, 이제는 대놓고 '막'을 노리고 있었다.
'어떻게 여자끼리 막을 가져간다는 걸까... 아니 그전에 내 처음은 두 사람이 내기로 가져갔지... 내 의견도 없이...'
정확하게는 두 사람이 아닌 미네르바 한 사람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결정이 나버렸다.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내 표정을 보던 사투르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답했다.
"그렇군, 소피아양도 딱 보니까 잡혀 살 상이구만."
이야기가 마무리되어가자, 멀리서 지켜보던 카르마가 다가왔다.
<소피아, 그냥="" 남편이="" 아니라="" 아내라고="" 하는="" 게="" 어떻겠느냐?="" 본녀가="" 보기에는="" 그게="" 정신적으로="" 덜="" 고통스러워="" 보여.=""/>
"...그럴까? 그러면 덜 괴롭힐까?"
<아니, 본녀가="" 언제="" 정신적으로="" 덜="" 고통스러울="" 거라고="" 했지,="" 괴롭힐="" 거라="" 했느냐?="" 적당하게="" 괴롭히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대는="" 너무="" 있다.="" 포기하거라.=""/>
"..."
<어차피 그대는="" 다="" 먹히고="" 나서,="" 먹을="" 수="" 있을="" 거="" 같으니까.="" 그냥="" 두="" 사람의="" 아내로="" 하거라.=""/>
'하아, 인생...'
☆☆☆
"언니? 오늘은 조금 늦었으니, 내일 삼손님을 만나러 가시겠어요?"
"삼손님?"
"네, 골리앗님의 부친이요."
골리앗의 부친.
내가 그 사람을 만나 보겠다고 했다.
'내가 '친구'들에게 죄값을 치르게 한다는 것처럼, 나도 그 사람에게 죄값을 치러야지.'
나는 그 사람에게 자식을 죽인 원수일 것이니까.
아무리 전사로서 죽음을 맞이 한 거여도, 전사를 신성하게 여기는 종족이여도.
'자신의 자식을 죽인자에게까지 관대하지는 못 할 거니까.'
내가 행한 일을 제대로 마주 보아야 한다.
'리리스 말대로 늦은시간에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바로 가고 싶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다면 단순히 내가 편하자고 찾아가는 꼴 말고는 안 되니까...'
"응, 리리스 부탁할게."
"저기... 소피아?"
미네르바가 내 팔을 끌어안으면서 나를 불렀다.
"응?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까 한 말 진심이지?"
아까 전에 한 말이 많아서 어떤 걸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지만 미네르바는 대화할 때 가끔, 아니. 자주 주어를 빼먹는 경우가 있다.
미네르바는 볼을 부풀리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주어를 모르는 이상, 잘못 말해다가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다.
"언니! 저도 궁금해요! 정말로 아까 저희를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했던 거 정말이죠?"
'아... 그거 말하는 거였나...'
"크흠! 음... 그..."
막상 다시 한번 말하려고 하니까 몸이 달아오르고 있다. 그녀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고,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면서 물어본다.
"또... 듣고 싶어?"
"네!"
"응!"
'듣고 싶구나...'
"두 사람이 나를 구원해 줬어,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나는 더욱 어둠 속에 빠졌을 거야. 아! 물론 카르마 덕에 한 발짝 다가 설 수도 있었지만, 고마워 카르마."
<음... 고마우면="" 맛있는="" 간식="" 좀="" 많이="" 사줘...=""/>
카르마도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힌다.
"그래 알았어. 리리스, 미네르바. 정말 고마워, 난 두 사람이 좋아. 사랑하고 있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진심을 전했다.
"읏!"
"에헤헤."
그녀들도 좋은지 얼굴을 붉히고 볼을 긁적이며 웃고 있다.
"그러면, 소피아."
미네르바가 내 팔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말 나온김에 리리스의 소원권도 쓸까?"
미네르바는 평소와 같은 해맑은 미소로 무서운 소리를 했다.
'어?'
"어?! 미네르바! 그거 좋은 의견 같아! 가죠 언니!"
'네?'
"자... 잠깐! 미네르바 잠깐만!"
내 팔을 잡고 침실로 끌고 가는 미네르바를 부르며 만류한다.
"소피아? 또 다음에 라고 말할 거야?"
볼을 부풀리고 있는 걸 보니 아직은 화난 것 같지는 않다.
"언니? 이유는 들어 줄게요. 말씀해 보세요."
뒤쪽에서 리리스가 이유를 들어 주는 건지, 들어만 주는 건지 알수 없는 표정으로 재촉했다.
"그...러니까..."
<거 보거라,="" 본녀가="" 아까="" 다="" 먹힐="" 거라="" 하지="" 않았느냐.="" 본녀는="" 항상="" 맞는="" 말만해.=""/>
주먹을 허리에 대고 당당한 표정을 한 카르마를 얄밉게 바라봐주었다.
"시끄러워! 검순아!"
"맞아요. 카르마님 벌로 일주일간 간식없어요."
<에?/>
"자, 언니 말씀해 보세요."
장난을 치던 카르마를 가볍게 절망속에 빠뜨린 리리스는 압박을 주면서 답을 요구했다.
"그... 아직은 안 돼... 내가 조금 용기가 필요해서..."
"소피아? 내가 용기나게 해 줄까?"
'무섭게 왜 그래! 아직은 아니야!'
미네르바의 검은 모습을 봐버리고, 그 모습을 다시 불러오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
'그런대, 왜 그래!'
"단계! 그래! 단계를 밟기로 했잖아? 나도 적응이 필요하고 우리 조금씩 단계를 밟자! 응?"
"언니? 한 번에 밟으면 나머지는 조금 더 쉽지 않을 까요?"
'무슨 당연한 말씀을.'
리리스의 말이 백번은 옳은 말이지만 그녀들의 맹공은 버티기가 힘들다. 오죽했으면 눈물이 날정도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때 이상으로 공격할 거고... 방법을 찾아라! 나는 용사였다. 항상 확실한 방법을 찾아서 위기를 해쳐나간 용사였다!'
흔들리는 동공과 다가오는 두 사람에게 대치하면서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켜 나간다.
'방법은 아마... 이거 하나다!'
나는 리리스의 허리에 손을 넣고 그녀의 뒷머리를 살며시 만졌다.
"어...언니?!"
그리고,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입술을 포갰다.
"으흐으으음!"
잠시동안의 입맞춤이 이어지고 나서 떨어지자, 리리스는 황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면안 될까?"
"...네, 언니. 하으으."
리리스는 평소의 요염함은 어디 갔는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 했다.
"하하하..."
"소피아, 소피아."
그녀를 바라보자, 눈을 감고 양손을 모은 채 기다리고 있는 미네르바가 있었다.
"으음..."
나보다 조금 작은 그녀에게는 이것이 좀 더 어울릴 것이다.
한쪽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의 턱을 살짝들어서 입맞춤을 하였다.
"으음. 헤헤헷."
다행히 웃으면서 기뻐하는 미네르바를 보니, 정답이었던 거 같다.
"미네르바?"
"응... 소피아. 좋아."
그녀는 기습적으로 볼에 뽀뽀를 하면서 밝게 웃어 주었다.
"소피아, 오늘은 이 정도로만 하고 그만 자자, 내일도 바쁠거 같으니까. 히힛!"
"응. 둘 다 그럼 내일 봐."
기뻐하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나는 내 방으로 정해진 곳을 향해 등을 돌렸다.
꽈악.
아니 돌리려 했다.
"잠깐만! 리리스, 미네르바!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난 거 아니었어!"
내 양손을 구속한 그녀들의 손이 아니었으면...
"언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응, 소피아. 각방 쓰는 것도 이제 끝내자? "
"엇?! 엣?! 어어어어."
나는 두 사람에게 연행돼, 결국에는 다시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본녀 간식...=""/>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