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8화. 한시아.(5)
* * *
진지하게 탈주를 생각하던 내게 탈주를 부추기는듯한 이석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으음…. 남는 책상이 하나밖에 없구나. 뒷자리라도 괜찮겠니, 시아야?"
이석훈이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만약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의 의사를 표한다면, 당장 앞자리에 앉아있는 김아무개 훈련생의 뒷덜미를 잡고서 한 판 엎어 친 후, 그 자리를 그녀에게 줄 것만 같은 기세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앞자리에 앉은 학생에게는 다행히도, 그 순간을 지켜보면 마른침을 삼키는 나에게는 불행히도, 그녀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씨....발...."
입에서 절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저벅저벅
매우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덜거덕.
이내 내 옆에 있는 책상과 의자를 차지한 한시아는 앞을 바라보며, 이석훈에게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이석훈 또한, 그녀가 괜찮아 보이는듯하자 "수업 잘 받아라."라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괜히 복잡한 일을 만들기 싫었던 탓인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뒤, 바깥 풍경을 바라만 보던 중.
나의 오른손을 톡톡 건드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보나 마나, 한시아 그녀일 것이 너무나도 확실했다.
"......용건이 뭐야?"
"........"
툭 던진 짜증이 섞인 물음에 마치 "우우...."하는 입 모양과 함께 희고 가녀린 두 손으로 수화를 하고 있는 그녀를 보자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녀의 눈빛을 보자니,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듯 보였다.
【.....용건이 뭐야?】
텔레파시를 이용해 그녀와 나의 정신을 연결한 후, 전음을 보냈다.
【....앗! 드, 들린다.】
화가 잔뜩 나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어째선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기쁨이란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흐음...잘하면 좋게 풀어나갈 수도 있겠어……. 한 번 세게 나가보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으으...하, 하고 싶은 말이요? 마, 많죠..!! 어,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없다면 그, 그게 더 이상한....】
그녀가 황당한 목소리로 말을 하던 도중, `어제` `그런 일` 등의 단어를 꺼내자, 나는 그녀에게 세로로 길게 찢어진 파충류의 눈동자로 섬뜩한 살기를 내보냈다.
【분명...어젯밤 일은 잊으라고 했을 텐데?】
【......!! 히끅!! ........어, 어떻게 그래요....】
몸을 덜덜 떨면서도 나를 똑바로 마주 보며 말대답을 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적당한 수준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강도를 높여야겠어…….
나는 어젯밤 숨겨진 특전의 보상으로 새로운 꼬리가 개방되어 총 2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각각 녀석들에게 일미와 이미라는 이름을 붙여준 나는 일미와 이미를 한시아의 얼굴 양옆으로 들이밀었고, 곧 두 녀석이 혀를 날름거리며 그녀의 얼굴을 핥았다.
쉬이이익.
듣기만 해도 몸이 굳어질 듯한 쇳소리가 그녀의 귓가에서 낮게 울리자, 그녀는 흠칫 몸을 떨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러긴…. 너도 먹히고 싶다면, 말리진 않아. 이 녀석들은 매우 식탐이 강한 녀석들이거든.】
전음을 보내는 중간중간 사이에 블러핑을 깔아두었다.
식탐이 강한 녀석들은 무슨....무지성으로 살아가는 놈들인데…….
하지만 그녀에게는 제법 먹혀든 것 같았다.
그 증거로 그녀는 일미와 이미가 새빨간 혀로 그녀의 목과 얼굴을 핥을 때마다,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렇게 저를 협박하셔도....하읏!! 저, 절대 이, 잊을 수 없어요!! 으읏...】
나는 완강한 그녀의 태도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살기 위해서 그녀를 최대한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일단.. 대충 미안하다고, 죄값을 치르겠다고 둘러댄 후, 오늘 밤 조용히 처리하자.
한시아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모든 일을 잊을 기회를 주었지만, 그녀는 제 발로 들어온 동아줄을 싹둑 잘라버렸기에….
그렇게 생각을 마친 나는 더는 그녀를 협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녀를 둘러싸 협박을 도와주던 일미와 이미를 다시 불러들이는 그 순간.
【으읏...아, 안 돼!! 머, 멈추면 싫어...】
"..........???"
.....뭐지? 잘못 들었나? 분명.....
【....저,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그, 그게...그게....제 처, 첫 경험이니까요....대, 대신...누군가에게 발설하거나 할 생각은 없으니까, 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호재였다.
그녀의 전음을 듣고 나서 나는 곧바로 심안을 사용해 그녀의 속마음을 읽어봤고,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확인했다.
【......어, 어쨌든...당신이...아니, 사이비씨가 저를 구해주신 건 사실이니까요……. 무, 물론 그 후에....저를 가, 강간......우우....】
피식.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좋았어?】
【네, 네...너무 좋았ㅇ.....가, 갑자기 무슨 소릴 하, 하시는거에요오오....】
나의 장난스러운 농담에 금세 얼굴이 새빨개지는 한시아였다.
참, 솔직하면서 순진한 여자였다.
【우선 네가 어젯밤 일들을 말하고 다니지 않는다면……. 나도 너에게 해를 가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 마. 이제 됐지? 할 말 더 있나?】
【자, 잠깐만요!! 이, 있어요!! 정확히는 부, 부탁이 있어요....】
【.....말해. 뭔데?】
혹시라도 무리한 부탁을 말해온다면 단칼에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 그게.... 호, 혹시 가능하다면 이 테, 텔레파시? 능력을 제가 항시 사용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지.....】
......뭐야……. 별것도 아닌 부탁이잖아.
나는 뭔가 큰 부탁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싱거워 보이는 부탁에 되려 김이 팍하고 새버렸다.
....잠깐.... 좋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내가 이런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한시아는 자신의 부탁이 거절당할까 싶어 안절부절못하며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뱀 앞에 놓인 무방비한 토끼와 겹쳐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은 해.】
나의 전음에 한시아의 얼굴이 햇살을 머금은 듯 빛을 발하며 활짝 펴졌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야. 이 텔레파시를 유지하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마력이 소모되거든.】
개구라였다.
하지만 한시아는 나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절대 모를 일이었다.
【....그, 그런가요....다, 당연히 그렇겠죠....이런 정신계열의 능력이나 마법은 쉽게 찾아보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또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야. 아니 확실히 방법이 있지. 근데 그 방법이…….】
나는 전음을 보내다 끊고서, 그녀의 입술부터 몸까지 위아래로 훑으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러자 그녀는 내 눈빛이 말하는 바를 이해한 듯, 양손으로 자신의 작은 가슴을 가리며 흔들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성과 성적인 접촉을 통해 사정을 하게 되면 마력의 소모 없이 일주일간은 텔레파시 능력이 사용 가능해.】
【.....꼬, 꼭 해야 효과가 있는....건가요?】
【뭘 말하는 거야? 섹스?】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시아에게 되물어봤고,
【....네, 네......세, 섹스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홍당무가 되어버린 한시아는 내 눈을 피해 책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뭐, 하고 싶으면 해도 되지만, 굳이 섹스를 안 해도 돼. 대신 너의 손으로 나의 자지를 문지른다거나, 입으로 하는 펠라 같이 확실한 성적인 접촉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아아.....하아아....】
나의 말에 그녀는 무언가 아쉬움과 안도감이 섞인 한숨을 내뱉더니, 곧 시무룩한 표정과 함께 나를 향해 전음을 보낸 뒤,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 그래도 결국, 서, 성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거네요...흐으... 이, 일단 알겠어요...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녀의 전음을 곱씹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그녀와 마찬가지로 시선을 돌려 앞문을 열고서 들어오는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뭐, 그녀가 거절한다면, 괜히 엮일 일이 없어서 좋은 것이고, 그녀가 승낙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쌓인 정액을 뽑아낼 수 있는 섹스파트너가 생겨 좋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녀가 진심으로 나에 대해 떠벌릴 생각이 없다지만, 모를 일이었다.
한동안은 그녀의 마음속을 수시로 확인하며,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레드문 아카데미 이사장의 하나밖에 없는 귀하디귀한 손녀였기 때문에, 더욱더 조심해야 했다.
까딱 잘못하다간, 이병찬의 좆집년들을 만나보기도 전에 내 목이 썰려 나가겠지....
"반가워요. 저는 마법학 교수인 김한준이라고 합니다. 첫대면부터 강의는 좀 빡빡하겠지만, 모두 함께 잘해봅시다."
말끔한 인상을 가진 서른 중반대로 보이는 젊은 교수였다.
"자, 그럼. 마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마력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마력이란, 공기 중에 퍼져있는……."
※
그렇게 레드문 아카데미의 정식 훈련생이 되어 보낸 아카데미의 첫날은 각 학과의 교수님의 소개와 지겨운 이론수업으로 하루를 보냈다.
마지막 강의인 실전 전투학 교수님의 강의를 끝으로 D 클래스의 훈련생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 어디론 가로 사라져버렸고, 오늘 있었던 강의 시간 내내 밀린 잠을 보충하기 위해 엎드려 자기만 했던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들었다.
"....하암... 벌써 끝났나?"
어느새 자신과 한시아를 제외하고 D 클래스의 모든 훈련생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얘는 왜 안 가는 거지?
한시아는 무언가를 다짐한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그 작은 가슴이 들썩거릴 정도로 제법 거친 호흡을 내쉬며 뱉어대고 있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그런 그녀를 두고서 강의실을 빠져나가려던 나는 예의상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는 나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선
대답했다.
【.....하, 할게요!! 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이렇게라도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포, 포기할 수 없어요!!】
씨익.
설마 진짜로 받아들일 줄이야...
전혀 밑질 게 없는 장사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좋아, 그럼 오늘 바로 시작하면 되는 거지? 여기서 할래? 아님, 내 방에 가서 할래?】
나는 일미와 이미를 이용해 그녀의 허리를 슬그머니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까이 가까이 갖다 대었다.
조금만 더 앞으로 나간다면 당장에라도 그녀의 앙증맞고 색스러운 선홍빛의 입술을 지배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홍인이라 불러도 될 만큼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선 두 손으로 나의 가슴을 밀어내며 매우 흥분한 목소리로 전음을 마구 날려댔다.
【어, 어젯밤에 했으니까!! 저, 적어도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마력의 소모 없이 느, 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시잖아요오……. 저, 절대로 안 돼요!! 일단은 대, 대답은 들려드려야겠다 싶어서 남아있던 거니까.....】
한시아는 뾰족하게 전음을 쏘아 보내고선, 새침하게 나를 한 번 흘겨본 후에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으음....역시 쪼그만 해도……. 색기 하나는 끝내주네…. 지금이라도 당장 따라가서 확.....흠...아니야, 일주일 뒤에 있을 그때를 기다리는 게 더 재밌을 수도 있겠어…. 저 작은 입으로 펠라라니....."
나는 강의실을 빠져나가기 직전, 꼴려버린 자지를 손으로 어루만져 배꼽에 닿게 하여 발기의 흔적을 지워버렸고, 곧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흐음……. 배꼽에 쿠퍼액이 묻은 것 같은데……. 엄청 찐득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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