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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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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에 있는 버려진 8층짜리 어느 폐건물.
그곳의 옥상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아주 깜깜한 하늘에서는 구멍이라도 뚫린 듯 굵은 빗줄기를 쉴 새 없이 뿌려대고 있었고, 지면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로 인해 주위의 모든 소음이 차단이 된 것 같았다.
"이, 이비야! 미, 미안해!! 내, 내가 잘못했...."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두 손을 싹싹 빌며 연신 "미안해." 라고 지껄이는 녀석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녀석은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녀석 중 하나였다.
녀석의 패거리는 총 4명이었는데, 이 녀석들은 겉으로 보면 굉장히 활발하고 재밌으며 누구에게나 친절해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녀석들의 썩어빠진 인성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녀석들에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괴롭힘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참…. 좆같은 4년이었지…. 별것도 아닌 이런 병신 같은 새끼들 때문에....
나의 머릿속으로 녀석들에게 고통을 받아왔던 4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곧 그 끔찍한 기억들은 차가운 빗물에 식어가던 내 몸을 다시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특히나, 한 달 전 나의 여자친구인 하린이에게 벌어졌던 일을 생각하자, 손에 쥐고 있던 날카로운 사시미용 칼이 부르르 떨려왔다.
녀석들은 나를 더이상 괴롭히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어 하린이를 자신들의 아지트로 부른 후, 강제로 최음제를 먹이고선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린이를 처참하게 짓밟고 능욕을 하며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는 몇 번을 더 동영상을 빌미로 하린이를 협박해 더러운 자신들의 성욕을 채우기 바빴고, 영원히 녀석들에게서 벗어나지 못 할 거란 절망과 함께 밀려드는 수치심에 결국, 그녀는 밤하늘을 달리고 나서야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이 세상과 작별을 하고서 나는 내 자신을 원망하고 저주했다.
그녀가 녀석들에게 불려가 몇 번을 그 지옥 속에서 허덕일 때, 얼마나 나를 원망하며 증오했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매일매일 계속해서 나의 목을 조르는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병신처럼 살아가던 나는 그래도 그녀의 복수만은 절대 포기하지 말자 다짐하고선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그녀가 죽기 직전 내게 보낸 문자들과 음울하고 우울한 그녀의 심정이 담긴 그녀의 일기장 등등을 경찰들에게 증거물로 제출했다.
그렇게 녀석들이 사회에서 도태되어 죗값을 치르길 기다리던 그때.
뜬금없이 그녀의 죽음에 관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사인은 단순자살이라 정해졌고, 녀석들은 증거불충분으로 아주 가뿐하게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이유는 안 봐도 뻔했다.
지금 내 앞에서 눈물을 질질 짜며 용서를 구하는 이 녀석의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무언가의 압력이 들어왔을 테고, 사건을 맡은 경찰, 형사들은 현실에 순응하며 꼬리를 말았을 게 너무나 분명했다.
.... 참 좆같은 세상이야...... 법이 심판을 못 하겠다면 나라도 심판해야지.
잠깐 그간의 일을 생각하며 끈적한 살의로 몸을 예열하던 나는 어느새 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무릎을 꿇고 있는 이병찬이 보였다.
"이, 이비야!! 내, 내가 잘못했어……. 하, 한 번만!!! 내가 지, 직접 자수할게!!! 그, 그러니까 제발....."
".......자수? 네가 직접 자수를 하겠다고?"
나는 이병찬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물었고, 녀석은 내 말에 고개가 빠질 듯이 아주 빠르게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어, 어!!! 무, 무슨 일이 있더라도....내가 꼭 자, 자수할게!!!"
나의 물음에 한 줄기 희망이라도 보았다는 듯이 녀석의 얼굴에는 아주 가느다란 미소가 보일 듯 말듯 맺혀 있었다.
".....좋아. 하지만 네 친구들은? 나머지 3명은 어떻게 할 건데? 녀석들도 지금 당장 이곳으로 불러. 그리고 다 같이 자수해."
"......저, 정말?! 그, 그래도 돼?"
".........."
"아, 아냐!! 지, 지금 당장 3명 모두 부를게. 자, 잠시만!!"
이병찬은 갑자기 자신의 친구들까지 이곳으로 부르라는 이비의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선, 혹시라도 이비의 마음이 바뀔까 재빠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의 패거리 중 한 명인 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멍청한 새끼....너, 넌 좀 있다 애들 오면 뒤질 줄 알아라.... 이 씨발새끼야!! 아..씨...그나저나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이병찬은 매우 불안한 눈빛으로 엄지를 씹으며 통화를 걸고 있을 때, 귓가를 울리는 빗소리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이게 무슨 소리지?`
결국 현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혹시라도 이비의 마음이 금세 바뀌었을까 싶었던 이병찬은 다급하게 또 다른 패거리인 진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통화연결음이 들리기 시작했지만, 진철 또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이 씨발새끼들이 진짜!!! 내 전화는 무조건 받으라고 했는데!!!`
"마지막 기회다. 빨리 불러."
"히 , 히이익!!! 아, 알았어!!! 이, 이상하다…. 애들이 내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이 없는데...."
이병찬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패거리인 우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이번에도 우철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자신은 저 녀석에 손에 들린 칼에 난도 당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으.....제발....제, 제발!!! 우우....우, 우철아 제발 전화 좀 받아라....`
그렇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가자, 이병찬은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때.
억세게 내리던 굵디굵은 빗줄기의 기세가 한풀 꺾이기 시작했고, 귓가를 계속해서 강타하던 빗소리가 줄어들며 빗소리가 아닌 또 다른 무언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차가운 피를 용서해~♪
어디선가 많이 듣던 노래의 멜로디가 들려왔다.
`.......이 노래는........으음........`
그때.
`허어어억!!! 이, 이 노래는 우철이의 벨소리잖아!!!!!`
제법 작아진 빗소리를 뚫고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은 이병찬의 몸이 아주 크게 들썩거리며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서 바닥을 내려보고 있던 이병찬은 갑자기 노랫소리가 멈추고 귀에 대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매우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고개 들어."라고 들려오자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큽! .....크흡.....으흐...흐윽....."
이윽고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이병찬이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자, 그의 눈앞에서 피가 잔뜩 묻은 스마트폰 3개를 들고서 자신을 바라보며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비가 보였다.
"..으으...으....사, 살려.....커헉!"
푸우욱!!
나는 애기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고개를 올려 나를 바라보는 녀석을 보고선 그대로 녀석의 목에 기다란 사시미용 칼을 깊게 쑤셔 넣었다.
푸욱!!
녀석은 죽음의 기운이 확실히 엿보이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씨익
드디어 모두 죽었네...? 하린아 드디어 내가 복수를 마무리 지었어...
나는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짜릿한 쾌감과 희열감에 몸을 맡긴 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웃었다.
가슴 한 켠이 찡해지며, 시큰한 감각이 나의 두눈을 감쌌고, 곧 두눈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는 듯 했다.
쏴아아아아
하지만 새까만 하늘을 올려다본 나의 얼굴에 차가운 빗물이 떨어지며 나의 두 눈가도, 나의 몸도, 나의 마음도 차갑게 식어갔다.
"......왜 눈물이 안 나오지?"
나는 복수를 끝내고서 찾아왔던 쾌감과 희열감 뒤에 찾아온 슬픔이 너무나도 빠른 시간 안에 사라져버려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내가 끔찍이도 사랑하던 그녀가 죽었을 때조차 눈물을 흘리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슬펐다.....아니 슬펐었나…? 분명....내 자신을 원망하고 증오하고 아주 화가 났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내가 슬퍼했는지, 눈물을 흘렸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그저 그녀가 녀석들에게 능욕을 당했다는 사실과 그런 그녀가 수치심을 참지 못해 자살했다는 사실에 차가운 슬픔보다는 뜨거운 증오와 화가 먼저였던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선 차가운 바닥에 뻗어있는 이병찬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뭐, 어때. 어쨌든 복수는 성공했으니까, 괜찮아. 그렇지? 하린아?`
나는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고선 녀석의 시체로 다가갔고, 발을 뻗어 몇 번을 툭툭 쳤다.
"하, 하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지?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 거냐고..."
발로 몇 번을 차다 보니, 내 속 안에서 무언가의 욕구가 점점 치솟아 오르는 게 느껴졌다.
"....으음....그래....이 느낌이야....오늘만 해도 벌써 4번째네…."
이병찬을 만나기 전 죽였던 3명의 시체를 보고서 느꼈던 욕구가 또다시 몸을 타고서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끝내기엔 아직 부족하단 말이지......누구 또 없을까…?"
그 욕구란 바로 살(?)욕이었다. 몸속을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살욕심에 머리가 핑핑 도는듯했고, 자꾸만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살인충동이 산불이 번지듯이 나의 머릿속을 좀 먹기 시작했다.
때앵! 때앵! 때앵!
검지가 칼의 옆면을 때리는 소리가 몇 번 울릴 때 즈음.
"아!! 찾았다....그래. 그놈들도 빼먹으면 안 되지....비리경찰 새끼들은 사회악이니까...."
나는 다음 목표를 정하고 나자, 공허했던 가슴이 채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으흠흠~ 흠흠!!"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콧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고. 이미 나의 머릿속에선 비리경찰들의 목이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옥상문의 문고리를 돌리려던 순간.
"살인! 멈춰!!!!!"
웬 좆같은 뉘앙스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새까만 하늘에서 새하얀 빛이 나를 향해 떨어지더니, 괴상한 울렁거림과 함께 내 몸의 통제권을 잃었다.
"씨, 씨발...!! 너나 멈춰....이 개새끼야....."
그리고는 몸이 노곤해지는 느낌과 함께 나의 의식이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느끼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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