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41)

색기발랄 15 

과정이야 어쨌건 나는 현아와 제대로 된 애인이 됐다.

박우리가 했던 말이 가슴에 와 닿은건 아니다. 

솔직히 뭐라고 했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난다. 뭐? 내손으로 지켜내라? 이 무슨 중2병 돋는 대사냐. 말만 들어보면 자기는 언제든지 현아를 낚아챌 수 있는 하이에나같은 남자니까 어디 한번 지켜내 보시지 음하하핫! 이런 분위기랄까. 

녀석과는 언제든 만나서 담판을 지을 생각이다.

분명 얼마전의 나는 현아를 잃는 한이 있어도 박우리와의 우정을 택하겠다 라는 마음가짐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사정이 달라졌다. 일단 내가 현아한테 진심을 가지게 됐고, 나에 대한 박우리의 태도가 영 거시기하니까. 어찌됐든 이제는 녀석에게 현아를 넘겨줄 수 없다.

......

근데, 막상 진심으로 대하게 됐어도 변한 건 별로 없다. 

여전히 현아는 나를 앞에 두고 다른 남자와 부비는 플레이를 즐긴다. 

난 뭐하냐고? 현아가 그렇게 놀다가 선을 넘지 않도록 컷해주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열받지.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의 현아는 진짜로 내 여친인데. 그런 현아의 몸을 다른 남자가 만지고 부벼댄다는거, 그거 진짜 열받더라. 

이 계집의 취미가 그런 변태스러운 플레이라는 것은 옛적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래서 부탁을 했다. 강도좀 줄여달라고. 최소한 떡치는건 막아야 할꺼 아니야.

그래서 현아도 조금씩 자제는 하는 편이다.

질투하냐고 깔깔대는 현아에게 질투하는거 맞다고 정색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조금 나아졌더라. 그래도 내가 막아주지 않으면 아마 분위기 타고 원나잇 하겠지.

......

지금 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막아주느니 뭐니 그딴 병신짓 하지 말고 애초에 현아가 그런 플레이를 못하도록 해야 하는거 아니냐? 맞다. 당신은 현자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변하지 않은 건 현아 뿐만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더라.

그렇게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여기저기 만져지는 현아를 보면서, 나 역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분신이 서버린다. 예전의 내가 이랬지. 현아와 다른 남자가 섹스하는 걸 상상하며 그 음란한 보지에서 좆물이 꿀럭꿀럭 흘러내리는 것을 직접 보고싶어 했던, 그 때의 그 흥분. 그게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다.

그래서 그만두라고 못하겠다. 나도 그거 보면서 흥분하니까.

물론 끝까지 가게 내버려두진 않는다. 이젠 거기까지 보는 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예전의 내가 현아를 생각하는 마음 : 그거 보고싶은 마음이 1 : 9 정도였다면,

지금은 한 9 : 1? 아니면 8 : 2? 그쯤 될 것 같다. 열받으면서도 흥분되는게 묘한 중독이다.

* * *

내가 변하지 않은 부분은 하나 더 있다.

사과머리가 아직도 내 섹파로 남아있다는 거다.

"...훌쩍, 흑... 흐윽..."

정소연이 울고 있다. 침대에 엎드려 고개를 파묻고 끅끅댄다. 뭐, 힘들꺼다. 다섯번이나 내 자지를 받아내는 건 현아도 힘들어 하니까.

현아를 내 여친으로 생각하게 된 다음부터는 저렇게 몇 번씩 현아를 뚫어내는게 망설여 지더라. 이 전까지는 억지로라도 쑤셔넣어서 현아를 울리는게 내 취미였잖아? 근데 이제는 안그러고 적당히 두어번 정도만 안아주니까. 현아를 맘대로 굴리던 그 욕정이 전부 정소연한테 쏟아지는 거지.

얘는 내가 이렇게 심하게 굴리는데도 졸졸 쫓아다닌다. 내가 현아를 여자친구로 받아들이고 정말로 사귀자고 했던 그 다음날, 옆방에 가보니 정소연이 없길래 삐져서 갔나보다 했다. 연락도 없고 해서 이제 얘랑은 끝났구나 싶었다. 

근데 왠걸, 그 다음날이 되자마자 연락이 오더라. 그것도 대뜸 나랑 하고싶다는 메시지를 띡 보냈다. 현아가 오후에 우리동네 와서 밤에 간다는 걸 알고 있는지, 점심때 연락이 왔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거의 매일매일 낮에 만나서 내 좆물을 받아간다.

"후우... 하응..."

정소연의 숨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 모양이다.

내가 특별히 섹스를 잘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긴 시간을 빳빳하게 세울 수 있는 지구력(?)이 있을 뿐. 안죽었으니까 계속 하는 거다. 마침 옆에 구멍도 있고.

정소연도 요즘엔 하다가 기절까지 하는 추태는 보이지 않는다. 은근히 내 스타일에 길들여져 가는 중이겠지? 꽤나 과격하게 움직이는 내 허리를 그 쪼그만 몸집으로 용케도 받아낸다는게 좀 신기하기도 하다.

바들바들 떨리던 다리를 추스릴 기운까지 얻게 되자, 정소연이 그 몸뚱이를 바짝 밀어붙히며 내 몸에 기대온다.

"...을이오빠. 나 싫어하죠."

"엥? 갑자기 뭔 소리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맨날맨날 나 죽일려고 할 리가 없어요."

......

뭐라고 대답할까.

"...내가 원래 하는 스타일이 그렇잖냐. 한두번 해보는 것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게. 왜, 힘들어? 나랑 그만하고 싶어?"

"에? 아니, 아니에요. 오빠가 하고싶은 대로 막 해주세요."

음, 잘 먹혔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이 사과머리는 나랑 섹스하는게 무슨 삶의 목적인 마냥 달라붙으니까. 저런 쪽으로 살짝 협박(?)을 해주면 순한 양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정소연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현아랑 섹스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쾌락의 극치이긴 한데, 그래도 어디 남자라는게 한 여자만 가지고 성이 찰까? 가끔은 이렇게 다른 여자도 품어주고 그래야 세상 사는 것도 배우고 경제 돌아가는 것도 알고 미래에 대한 예지도 하고... 깊게 생각하지 말자.

그러니 이렇게 쫄깃한 정소연이 제 발로 찾아와서 따먹어주세요 하는 것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현아한테는 이제 못하는 과격한 섹스를 정소연을 통해서 풀어낼 수 있으니 현아와의 금술도 더욱 좋아지는거 아니야?

솔직히 이걸 현아한테 들키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못하겠다.

예전에 그 3개월 꼬맹이때 한번 들키고, 정소연이랑 맨 처음 모텔가려다가 들키고.

삼진아웃이라는 말처럼, 혹시 한번 더 들키면 난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소연과 만나면 별다른 건 못하고 이렇게 모텔에 틀어박혀 정액이나 뿌려주는게 전부다. 섹스가 끝나면 옷입고 헤어지는 거지. 언제 현아와 마주칠지 모르니까, 오후가 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빠빠이 하는 거다.

"오빠... 나 배고파요."

"......"

근데 이 꼬맹이는 항상 이런식으로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전에는 갑자기 배아프다면서 꾀병을 부리기도 했다. 나랑 있어봐야 떡치는거 말고 뭐 있나? 왜 저렇게 들러붙으려는지 알 수가 없다.

......

아, 맞다. 저거 나 좋아한다고 했지 참. 깜박했다.

근데 정소연이 나한테 좋아한다고 말한 건 그때 모텔에서 말한 이후로 한 번도 꺼낸적이 없다. 그래서 나도 가끔 이렇게 까먹는다. 이 사과머리는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때의 난 분명히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는 의사를 내비쳤었다. 그러니까 더이상 말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 만약 그렇다면, 고백을 거절당하고도 이렇게 몸이라도 섞는 관계를 원하고 있는 건가?

"...오늘도 그냥 갈 꺼죠? 난 너무 배고프지만 오빠를 배웅하고 혼자 쓸쓸하게 집에 가겠죠.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서 밥을 먹으려 했지만 반찬이 없어서 굶고 말 꺼에요. 배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가 너무나도 애처로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를 때면, 내 입에서는 을이오빠... 하는 갸냘픈 소리가 나오고..."

"...돈 줄께. 가다가 밥 사먹어."

...갈수록 스킬이 늘어나고 있다. 하마터면 같이 밥먹자고 할 뻔 했다.

나중에는 정말 일찍 만나서 떡치는거 말고도 좀 여러가지 해줘야 겠다. 이쯤 되면 불쌍하다.

* * *

아쉬워하는 정소연을 돌려보내고, 현아를 맞을 준비를 했다.

현아는 이제 예전처럼 오자마자 내 자지를 꺼내서 쪽쪽 빠는 짓은 안한다. 물론 나중에는 그러긴 하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떡치고 시작하거나 아예 모텔에서 살다 가는게 아니라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게 된 거다.

따라서 현아를 기다리는 나도 조금은 분주해 졌다. 데이트 코스를 짜는 건 거의 남자의 몫이니까. 현아는 나에게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면 자기 멋대로 끌고 다니기 때문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이쪽에서 데이트 코스를 짜는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

보자.

어제는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가서 그나마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수 있었다. 어? 중간에 차 세워놓고 해버려서 시간을 좀 지체했거든. 그렇게 드라이브를 마치고 다시 시내로 와서 저녁 먹으니까 딱 현아가 갈 시간이 됐더라. 덕분에 모텔은 못갔지.

오늘은 뭘 하는게 좋을까? 이 짓을 매일매일 하고 있으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영화보러 가는 건 너무 자주 했고... 밥 먹고 커피마시고 하는 것도 슬슬 질린다.

솔직히 현아가 이쪽으로 넘어오는 시간이 너무 애매하다. 오후쯤에 와서 밤에 가버리니까. 괜찮은 데이트코스를 뽑아내려면 역시 외곽으로 빠지는게 좋은데, 그럴 시간이 촉박하다. 다음날 가라고 하면 그건 또 안된다고 하고. 저번에 박우리랑 같이 술마실때 한번 안들어간 이후로는 꼬박꼬박 귀가시간을 지키고 있다.

내가 현아네 동네로 가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는 없단다. 차도 있고 하니 그쪽으로 가는게 시간으로 보나 뭐로 보나 더 나을텐데. 뭐 말로는 이쪽으로 건너오는게 더 놀 것도 많고 하다는데... 딱히 납득할 만한 이유는 아니다.

결국 현아가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을이야!"

"어... 왔어?"

"응!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음... 니 치마가 너무 짧아서?"

"뭐야. 한두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으히히. 오늘은 뭐해?"

"......."

나도 그게 고민이다.

내가 우물쭈물 하고 있는게 보인건지, 현아가 요상한 미소를 짓는다.

"흐음~ 오늘은 할 꺼 없나보네?"

"...내가 진짜 머리가 좋은데 말이야, 오늘따라 이상하게 되는 것도 없고 머리도 안돌아가고... 꼭 이런 날이 있더라니까?"

"뭐래. 풉. 할 꺼 없으면 나 따라와."

"...어디가는데?"

앞장서서 걷던 현아가 내 물음에 맞춰 몸을 휙 돌린다.

...짧은 치마가 보기좋게 휘날린다.

"겜방가자!"

* * *

해가 저물 때까지 현아에게 끌려다녔다. 

따로 저녁도 안먹었다. 그냥 걸어가다가 닭꼬치 파는거 보이면 그거 먹고, 또 가다가 붕어빵 팔면 그거 주워먹고. 이러다가 보니 배가 빵빵해졌다.

한 거라곤 죄다 노는 거였다.

겜방에서 나오자 마자 내 손을 잡아 끌고는, 인형을 뽑아 달라거나 두더지 잡기 하자거나 야구 방방이 휘두르는 거 하고 싶다거나, 계속 이런 식이었다.

......

알고 있다.

머리 짜내서 거창한 데이트 코스같은거 만들지 않아도, 현아는 이런 소소한 것에서 헤헤 웃는 여자라는 걸. 원래 저런 성격이기도 하지만... 나랑 같이 있어서 즐거워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놀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모텔에 들를 시간도 안된다.

현아의 표정은 먹구름이 잔뜩 낀 듯 흐리다.

"...떡쳐야 되는데..."

"...하루라도 안하면 몸에 쥐가 나냐?"

"쥐는 안나고, 멍들어."

"뭐야 그게."

"후움... 하루정도는 괜찮겠지?"

"정 하고 싶으면... 잠깐 들르던가. 끝나고 내가 차로 태워주면 돼잖아."

"아냐. 오늘은 넘기지 뭐. 대신 내일은 그거 뿌러질 각오하는거다?"

"간만에 내 자지에 매달려서 울고불고 난리치고 싶은가 보지?"

"나 그거 좋아. 히히. 그럼 갈께~"

지하철 개표기로 들어가려던 현아가 갑자기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는 휙휙 손짓을 하며 나를 부른다.

뭐지? 뭔가 귓속말을 하려는 듯, 입술에 손가락까지 갖다붙히며 부르고 있다.

"왜? 뭔 말을 하려고..."

"......"

......

어느덧 현아는 계단 아래로 촐랑촐랑 뛰어 내려갔다.

그런 치마 입고 그렇게 뛰어 내려가면... 에휴.

근데 방금,

뭔가 보드라운 게 내 입술에 닿았던 것 같은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어쩔 수 없다.

내일 현아가 오면 그 발칙한 입술부터 틀어막고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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