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6화 〉동거 혹은 사육 (3) (86/87)



〈 86화 〉동거 혹은 사육 (3)

혜지는 들어올린 엉덩이를 힘차게 좌우로 흔들며 기었다.

보드라운 꼬리가 허벅지를 스치는 감각도, 목에 매인 사슬이 철그럭거리는 소리도 더이상 낯설지 않았다.

휘익 - 짜악 -

"멍! 헥... 멍멍!"

"개년. 꼬리 존나게 잘 흔드네."

오빠의, 아니 주인님의 가르침도 이제 익숙해졌다.

엉덩이에 꼬리를 단 이후에도 수없이 되풀이된 행위.

앞을 기어가다가 채찍이 날아들면 곧장 가슴을 바닥에 붙인다. 거기서 허리를 최대한 휘고 골반은 위로  치켜든다.

그렇게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든다.

"멍! 멍멍!"

주인을 위해 듣기 좋은 울음소리를 만들어내면서.

"사랑해. 내 강아지 너무 사랑스럽네."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춘 이성 대신 남은건 사랑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뿐.

현우의 사랑한다는 말이 그녀의 모든 의문을 말끔히 지워냈다.

휘익 - 짝!

"멍멍! 헥... 멍!"

얼마나 얻어맞은 것인지 살색을 찾아볼 수 없는 시뻘건 엉덩이. 계속 바닥을 기느라 저릿해진 무릎과 손바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애완동물의 역할을 조금의 불만도 없이 수행한다.

남들이 본다면 정신 나간 짓거리에 불과할 지금의 행위도 그녀에게는 숭고하고도 거룩한 사랑이었으니까.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으니까.

현우가 쌓아올린 굳건한 신뢰에 의심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하... 존나 깜찍하네. 밍밍아."

"네, 주인님!"

"옆에 옷 보이지? 입어, 포장 뜯고. 슬슬 우리 강아지한테 예쁜 옷도 입혀줘야지."

바닥을 가리키는 채찍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투명한 비닐에 싸인 흰색 천뭉치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오빠와 같이 골랐던 섹시한 옷들 중 하나인 모양. 그날 쇼핑을 하며 섹시 란제리나 망사 스타킹  다양한 의상들도 구매했었다.

찌익 -

혜지는 무심코 바닥에 주저앉아 빵봉지를 뜯듯 윗부분의 포장을 뜯었다.

"하, 이년 봐라?"

퍼억!

그러나 갑자기 날아든 현우의 발길질에 포장을  뜯지도 못하고 철퍼덕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옷 봉지도 덩달아 내동댕이쳐졌다.

"끄흑!"

"야."

"네, 흐읍...네, 주인님."

"꼬리 달아주면서 내가 분명 정신 차리랬지."

"... 네."

"넌 지금 인간 정혜지가 아니라 뭐라 그랬어."

"밍밍이요. 주인님 강아지 밍밍이요."

혜지는 걷어차인 등이 욱씬거렸지만 현우의 눈치를 살피며 허겁지겁 대답했다.

또 무슨 실수를 한 것일까.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와 위에서 내려다보는 차가운 눈동자에 그녀의 몸과 마음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근데 방금 그건 뭐냐?"

"... 네?"

"하... 방금 어떻게 앉았냐고."

"아! 죄송합니다."

혜지는 잘못을 깨닫자마자 주인의 자비를 빌며 넙죽 엎드렸다.

"멍청한 암캐년이 실수했어요. 사람처럼, 그... 양반다리로 앉아서 죄송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재빨리 말끝에 덧붙이며 용서를 구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양반다리로 앉는 개라니, 그런 개는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조금 잘하는가 싶었는데 결국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스스로의 멍청함이 속상할 뿐이었다.

"봉지 다시 물어와."

그녀는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휙하고 몸을 돌렸다. 그 와중에도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엉덩이를 흔들며 기어갔다.

"헥헥... 멍!"

입으로 물고 온 봉지를 현우에게 건넨 그녀는 최대한 예쁘게 미소 지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짖었다. 무릎도 최대한 벌리고 젖가슴도 최대한 모았다.

힐끗 바라본 오빠의 얼굴에 아무런 감정이 서려 있지 않은 탓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불안감에 떠는 강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주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재롱밖에 없었다.

짜아악 -!

하지만 이번에는 현우의 무시무시한 따귀가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정신 좀 차려. 이건 아프라고 때리는 벌이야."

또다시 바닥으로 엎어지는 혜지의 귀에 지잉 - 하고 이명이 울렸다. 순간 전등이 꺼졌다 켜진 것처럼 눈앞이 팍하고 암전되더니 몸과 바닥이 부딪혔다.

"불만 없지? 빡세게 해보기로 약속했었잖아, 시작 전에."

벌... 그래, 이건 벌이었다. 방금의 잘못에 치러야  합당한 대가였다.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네, 괜찮아요. 감, 감사합니다. 흐읏... 감사합니다, 주인님."

혜지는 화끈거리는 볼을 만질 틈도 없이 영문 모를 감사인사부터 올렸다.

"내가 그랬지. 할 땐 제대로 한다고."

"흐읍... 네."

"이왕 하는거  잘해주라. 꼭 혼나고나서야 말 들을거야?"

"... 죄송합니다."

"조금만 집중하면 되는건데 왜 그걸 못해서 매를 벌어?"

"흐윽... 죄송해요. 집중할게요."

심지어 피해자가 오히려 미안해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지지만 그녀에게는 그조차 당연한 일이었다.

현우에게 심리적으로 예속된 그녀는 지금같은 분위기 속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군대에서 선임에게 기합을 받는 후임이 그러하듯, 그녀는 저항할 수 없는 상급자의 호된 질책에 그저 사죄만을 되풀이했다.

특히나 지금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사슬은 단순히 상하관계가 아닌 그보다 더 견고한 주종관계가 아닌가.

지금의 그녀는 결코 그 사슬을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너도  할 땐 잘해. 못한다는 말은 아니야. 근데 잘한다고 조금만 풀어주면 바로 실수 해버리잖아. 그건 너도 인정하지?"

"... 네."

"지금부터는 실수하면 안 봐줄거야. 방금처럼 정신 번쩍 들게끔 혼낼거야. 그러니까 똑바로 해."

그녀의 작은 실수를 빌미 삼아 앞으로 체벌의 수위를 높이겠다고 통보하는 현우.

그녀의 반대따위야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그러고 싶다면 그녀는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방금은  그런거야? 일부러 그런건 아닐테고...  배에 적힌 것처럼 멍청해서 그런거야? 배우는게 느려서?"

"맞아요... 멍청해서... 쓰레기년이라서..."

혜지는 자신의 실수에 멍청하다는 변명도 모자라 쓰레기년이라는 비하까지 알아서 덧붙였다.

그것말고는 다른 변명이 생각나지 않기도 했고, 오빠는 비하의 말들을 좋아했으니까.

방금의 말이 부디 실수를 용서 받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현우의 눈치만 살필 뿐이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밍밍이는 멍청한 암캐라고. 말귀를  알아들으면 때려서라도 길들여달라고."

현우는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며 그런 혜지를 한층 더 압박했다.

그러나 그의 속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힘껏 싸대기를 걷어올릴 때의  통쾌함이란. 거기에 지금은 또 어떠한가.

바닥에 쓰러진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듣는 것도 모자라, 멍청해서 죄송하다는 말까지 얻어내고 있지 않는가.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장난감이었다.

"뭐하냐? 말하기 싫냐? 꼬우면 말고."

어쩔  모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군대에서 써먹던 말투도 튀어나왔다. 실컷 혼내고 꼽냐고 물어보면 어느 누가 그렇다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닙니다, 잘하겠습니다'하며 소리치던 후임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마치 지금의 그녀처럼.

"아, 아니에요! 그... 밍밍이는 멍청해서... 정말 멍청한 암캐라서... 말귀를 잘 못알아들었어요. 주인님이 때려서라도 길들여주세요."

"좋아, 또 잘못하면 각오해. 다시 옷 입어. 손말고 입으로 포장 뜯고. 입는 것도 복종자세로 엎드려서 입고. 네가 멍청해서 내가  알려주는거야."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휴우.

혜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봉지에 가져다댔다.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이 정도로 끝나서.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갈  있어서.

그녀는 얼핏 보이는 현우의 미소에 마음을 내려놓으며 바닥에 등을 대고 엎드렸다.

망사로 된 스타킹을 요리조리 둘러보니 충분히 누워서도 입을  있을 듯 싶었다.

먼저 다리부터 끼워넣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허리까지 끌어올린다.

아래가 훤히 트여있는 스타킹이었기에 엉덩이에 달린 꼬리가 걸리는 일은 없었다.

"다 입었으면 일어나서 검사자세. 넌 내가 말할 때만 두 발로 서면 돼."

"네!"

혜지는 몸에  달라붙는 망사의 감촉을 느끼며 서둘러 자세를 잡았다.

생애 처음으로 입어보는 천박한 옷이였지만 별 특별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녀의 마음이 이미 너무도 닳아버렸다.

"옷 입혀놓으니깐 영 보기 좋네. 허리 빙글빙글 돌리면서 춤도 춰봐. 내 위에 올라타서 흔들 때처럼."

현우는 그녀에게 도저히 옷이라 부를 수 없는 천조각을 입혀놓고 그녀의 천박한 댄스를 감상했다.

보지와 엉덩이가 뻥하고 뚫려 있는 스타킹이 마치 여체를 돋보이게 하는 포장지 같았다.

오직 남자의 기쁨만을 위한 옷. 몸을 가리는 의복의 기능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오히려 그 반대의 기능에만 충실한 천조각.

주인이 강아지에게 깜찍한 옷을 입혀놓고 박수치듯, 현우도 그녀에게 망사 스타킹을 입혀놓고 흐뭇하게 웃었다.

"젖탱이도 흔들고. 보지도 더 흔들고. 넌 지금 사람이 아니라 개니까 부끄러워 할 것도 없잖아?"

혜지는 현우의 지시에 더욱 몸을 격하게 움직이며 수컷을 유혹하는 암컷처럼 굴었다.

아찔한 싸대기 뒤에 주어지는 오빠의 미소.

그 미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지금의 흐름에 거리낌없이 몸을 실었다.

 야하고, 더 천박하게. 오빠가 더 좋아할 수 있게.

그것만이 그녀가 할  있는 최선이었다.

"흠... 기다리고 있어봐."

현우는 몸을 요란히 흔들어대는 그녀를 뒤로 하고 서재에 들어갔다 나왔다.

묘한 웃음을 지으며 점점 그녀에게 다가서는 현우의 손에는 이전의 검은색 유성매직이 들려있었다.

"생각해보니까 이제 출근도 안하는데 얼굴에 낙서해도 되는거잖아?"

"아..."

"얼굴에도 한 번 적어보고 싶었거든. 내꺼라고."

유성 매직을 그녀의 눈앞에서 돌리며 싱긋 웃는 현우. 그러다 삽시간에 인상을 굳히고는 그녀의 뺨에 다시 손을 휘둘렀다.

짜악 -!

이전과 소리부터 다른, 조금의 자비도 깃들어 있지 않은 폭력이 재차 그녀의 몸을 뒤흔든다.

어차피 당분간  밖으로 내보낼 일도 없을테니 얼굴이 좀 붓거나 멍이 든다고 해서 신경쓸 바는 아니었다.

"후... 야. 방금 표정 뭐냐? 혼나고 돌아서니까  이러네. 뭐하는 짓이야. "

"흐윽..."

"하... 자기야. 아니, 밍밍아."

"네... 흐읍..."

"이게 플레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제대로 할거라고 말했잖아.  또 울려고 그래."

혜지는 현우의 말에 차마 울음도 터뜨리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잘 지워지지 않는 매직으로, 얼굴에 낙서를 새긴다는 말.

그 말을 듣고 당혹감으로 굳었던 그녀의 얼굴에 지금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혼란이 가득했다.

"낙서좀 하는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그런 표정을 지어.  여기 뭐라 적혔어?"

현우는 말과 함께 그녀의 허벅지 한쪽을 툭툭 두드렸다.

"흑... 죽지만 않는다면... 어떤 명령이든 따르겠다고요."

"그치? 그렇다고 내가 너한테 정말 죽을 만한 짓은 안 시키잖아. 낙서한다고 죽어?"

"아니요..."

"그럼 그냥 웃으면서 낙서해달라고 애교 부릴 순 없는거야? 꼭 그렇게 똥씹은 표정을 해야겠어?"

현우는 한없이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의 굴종을 부추겼다.

폭력을 휘두를 때는 단호하게, 타이를 때는 차분하고 점잖게.

더  갈등을 원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상 목소리만 누그러뜨려주면 항복을 이끌어내기는 쉬웠다.

아무리 이치에 어긋나는 억지라 하더라도 맞서 싸우기보다 수긍하는 쪽을 택할 테니까.

"흑... 죄송해요..."

"에휴... 나는 자기가 얼른 내 마음에 쏙 드는 강아지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고개를  숙인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잠시 숨겨두었던 다정함을 내비치는 현우.

주인과 연인을 오고가는 그의 태도는 이미 이해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이중인격에 가까웠지만, 정신이 병든 혜지에게는 그저 기대고 싶은 따스함만 느껴졌다.

"자기도 얼른 날 기쁘게 하는 여자친구가 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속상하지?"

그렇게 혜지의 양가감정을 한껏 격발 시킨 현우는 그녀가 동의할  밖에 없는 말들로 그녀를 서서히 덫으로 몰아갔다.

"네... 속상해요."

속상하지 않더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오빠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앞의 말까지 부정하는 형국이었으니까.

"그래, 그 마음 이해해. 괜찮아, 그래도 자기는 몸으로라도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잖아. 나도 이제 자기가 배우는게 느리다는걸 알고 있으니까..."

현우는 고개 숙인 그녀가 보지 못할 뒤틀린 조소를 지어보이며 하려던 말을 마저 꺼냈다.

얼굴에 낙서를 새기기 이전에 가학 욕구를 좀더 채우고 싶었다.

"이번에도 노력하면 되지. 아까 물고온 채찍말고 다른거 하나 더 있지? 그거 물고 쇼파로 기어와."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혜지에게 현우의 무시무시한 선고가 날아들었다.

쇼파로 걸어가는 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도 바닥을 기었다.

공포가 번져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채찍을 입에 문다. 오빠를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혼나기 전에 망설이고 멈칫거린다면 그것 또한 잘못이었다.

현우의 폭거에 반기를 들 수도 없고 지금의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혜지는 현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이성과 감정을 억눌렀다.

"헥헥..."

"채찍 물고 왔다고 헥헥거리지만 말고. 이때까지 혼나기 전에 뭐했어? 어떻게 해야 돼?"

"잘못한거 말하고... 때려달라고 하고... 아, 맞으면서  말도 정하고..."

"잘 알면서 멀뚱멀뚱 뭐하고 있어. 버릇없이 구는 개새끼를 혼내달라고 해야지."

현우는  채찍을 가볍게 휘둘러보며 그녀에게 이지선다의 선택지를 한 번  내밀었다.

"뭐야, 왜 말이 없어. 계속 버릇없는 개새끼 하고 싶다는거야? 너도 예쁨 받는 강아지가 좋을거 아니야. 개새끼 할래, 강아지 할래?"

"... 강아지요. 주인님 강아지 하고 싶어요."

"그래, 그럼 똑바로 굴어. 나는 강아지 흉내내는 정혜지를 원하는게 아니라 가끔 사람 흉내   아는 밍밍이를 원하는거니까."

"네..."

현우는 그녀를 흘끗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따끔히 혼내기 전에 잘못을 짚어주는 것은 중요했다.

그래야 강아지의 행동을 확실히 교정할 수 있었다.

"내가 말했었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어려운거 하나도 없다고. 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지금은 그걸 못 해서 혼나는거야."

"네..."

혜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했다.

그래, 오빠가 시키는 대로만 했으면 혼날 일도 없었을텐데.

얼굴에 낙서를 한다고   그러라고 할걸.

오빠가 정말 위험한 일을 시킬 리도 없지 않은가.

현우의 궤변 속에서 그녀는 합리화를 끝마쳤다.

"잘못했어요, 주인님... 밍밍이 채찍질 해주세요. 정신 차릴  있게 채찍으로 길들여주세요..."

그렇기에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채찍질을 청했다.

갈라진 가죽끈들은 보고만 있어도 소름이 돋았지만 주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혹시라도 지금 혼난다고 서운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이건 다 자기를 사랑해서 그러는거야. 아니었으면 아무리 개판 치든말든 대충 무시하고 넘어갔을 거니까.  맘 알지?"

"아, 네... 알아요!"

"좋아, 그러면 시작할게."

현우는 혜지에게 들려줄 세뇌의 말을 마치고는 채찍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제한없는 폭력에 사랑의 매라는 달콤한 꼬리표도 붙였으니 이제부터 맘껏 휘두르는 일만 남았다.

"흐음... 그냥 혼내는건  밋밋하니까 내가 혼내는 동안 내 발 핥아. 발가락 사이사이 깨끗이. 그러다 내가 채찍으로 때려주면 개처럼 낑낑거리면 돼. 이해했지?"

"... 네!"

"그러면서 네가 뭔지 확실히 마음에 새겨. 넌 지금 정혜지가 아니라 밍밍이야.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라고."

그녀에게 사죄의 방식을 알려준 현우는 방금의 가르침을 바로 테스트했다.

짜악 - 짜악 -

온힘을 다해 그녀의 하얀 등에 채찍을 내리쳤다. 상처가 생기든 멍이 들든... 이제 그녀의 고통을 눈여겨 봐줄 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끄흡! 으... 낑... 흐읏... 낑낑..."

등줄기를 훑는 채찍에 몸부림치며 방금 배운대로 낑낑거리는 혜지.

똥마려운 개처럼 신음소리를 내며 필사적으로 주인의 발을 핥았다.

고작 두 대만에 등이 불에 댄듯 뜨거워졌지만 아프다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짜악 - 짜악 -

"정신 차리라고 혼내는거야! 아파도 참아!"

조금이라도 혀를 멈추었다간 현우의 불호령이 떨어졌으니까.

그녀는 등을 채찍질에 내어주며 작은 몸을 더 웅크렸다.

"낑... 흑, 끼잉끼잉..."

어쩌다 이렇게  것인지는 오늘도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팠다.

오빠가 제대로 한다고 했으니까...  잘못도 했으니까...

그래, 무엇보다도 지금은 밍밍이니까.

다정했던 오빠가 주인님이  것처럼, 지금은 여자친구가 아닌 오빠의 강아지가 되어주기로 했으니까.

그녀는 연거푸 떨어지는 채찍을 받아내며 끝을 모를 이해심을 발휘했다.

"더 낑낑대봐. 밥도 잘 먹여놨는데  이렇게 맥아리가 없어."

현우는 혜지가 고개를 들지 못하게 목 근처의 사슬을 발로 콱 밟아 고정했다.

그녀에게 지금의 광기 어린 미소를 내비칠 수는 없었다.

"켁!"

"그리고 발 핥으라고 발만 핥냐? 꼬리도 흔들고, 응?"

짜악 - 짜악 -

"낑낑거리다가 앞으로 어떻게 똑바로 할건지 다짐도 좀 말해보고, 응?"

짜악 - 짜악 -

"그래야 할  아니야. 정신 차리려면 아직 멀었다, 멀었어."

현우는 낑낑거리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채찍을 휘두르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그녀가 이또한 사랑이라 믿는 사이 작정하고 그녀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 속셈이었다.

폭력은  인간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었으니 말이다.

그녀의 하얀 등에는 금세 보라색 멍자국이 생겼다. 워낙 연약하고 보드라운 피부라 그런지 SM용 채찍도 견디지 못하는 듯 보였다.

당연히 그녀의 낑낑 소리에도 울음기가 녹아들었다.

"흑... 끼잉... 밍밍이가 멍청해서 흐윽... 잘못 했어요. 앞으로는 주인님 하자는 대로 다 할게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멍이 들 때까지 채찍질 당하면서도 발을 핥으며 용서를 구하는 여자라니.

그녀의 반응은 언제 보아도 신기할 따름이다.

아무리 사랑이라 믿게 하고 취향으로 속여넘겼다 해도 정도라는게 있었는데, 그녀는 그 정도를 한참이나 벗어나있었다.

이또한 그녀에게는 이해의 대상중 하나에 불과한 것일까.

현우는 발로 그녀의 턱을 세게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복종자세."

"흐읍."

혜지는 얼른 자세를 고쳐잡고 바닥에 등을 가져다댔지만 짓눌린 등이 고통스러운지 신음을 흘렸다.

"정신 좀 들어? 일부러  때까지 혼낸건데."

방금의 끔찍한 행위에 때렸다는 말대신 혼냈다는 말을 가져다붙이며 폭력을 합당한 체벌이라 각인시키는 현우.

"흐윽... 네. 감사합니다. 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혜지는 그런 현우에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휘몰아치던 채찍 세례가 그친 것만으로도 절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그래. 이제 눈물은  그치고."

현우는 채찍 끝으로 그녀의 턱밑부터 쇄골을 지나 배꼽까지 훑다가 그녀의 보지둔덕을 채찍으로 두드렸다.

"언제든, 어디서든 구멍을 벌리겠습니다."

방금의 가혹한 폭력으로 바짝 얼어붙은 모양인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외웠던 말을 내뱉는다.

그 꼴이 우스워 허벅지도 두드렸다.

"잘못을 하면... 흐윽... 어디든 몇 대든 맞겠습니다."

아마 그녀에게는 이 여섯 문장들이 평생 지워지지 않을 주홍 글씨로 남은 것이 아닐까.

비록 그 과정이 고생스럽긴 했어도 이 정도면 충분히 보람이 있었다.

"후... 방금까지는 혼낸거였고 지금부터는 살살 때릴 테니까 애교 한 번 부려봐. 배운거 기억나지?"

현우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녀의 젖가슴을 채찍으로 찰싹 때렸다.

"흑... 헥헥... 멍멍!"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던 혜지는 현우의 말 한 마디에 혀를 내밀고 웃는다.

여전히 아픔이 가시지 않았음에도 어떻게든 주인을 기쁘게  애교를 부린다.

"옳지. 우리 밍밍이 예쁘다."

현우는 그런 그녀를 정말 개를 다루듯 칭찬하며 다시 채찍을 놀렸다.

짜악 -

"헥! 멍! 멍멍!"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더 크게 짖어대는 혜지.

시력과 양손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여섯 문장만을 외우고 되뇌이던 그때, 그녀는 뇌리 깊숙이 절대적인 복종을 학습해버렸다.

괜한 저항이 불러일으킬 마찰과 불안감보다 확실한 복종이 가져다줄 안정과 안도감이 그녀에게는 더 소중했다.

오빠가 애교를 부리라 했으니 눈물을 거두고 애교를 부린다. 지금의 애교가 평온을 되찾아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좋아, 지금처럼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거야. 알아들었으면 내가 던지는 매직 물어와."

현우는 그녀의 추태를 적당히 구경하다가 매직을 거실 너머로 던졌다.

그녀가 개처럼 엉덩이를 씰룩이며 기어가더니 매직을 물고 다시 돌아왔다. 눈물자국이 번진 뺨 위로 떠오른 미소가 기묘했다.

"헥헥...! 멍...!"

"내 다리 사이에 기어 들어와서 고개 들어."

매직의 뚜껑을 열고는 그녀에게 명령하는 현우.

[성욕처리용
애완동물]

[밍밍이(♀, 21살)
정액주세요♡]

젖가슴부터 허벅지까지 적힌 낙서로도 모자라 기어이 그녀의  뺨에도 낙서가 들어찼다.

"푸흣... 좋네. 이래야 내 강아지지. 얼마나 좋아. 얼굴에까지 낙서한 사람은 커뮤니티에도 드물걸?"

"아... 감사합니다."

"특별하고 좋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좋아. 완전 내꺼 같아서 사랑스러워."

현우는 그녀의 꼴사나운 몰골에 창찬을 아끼지 않았다.

크게 웃으며 기뻐한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그녀를 칭찬한다.

통제할 수 없는 긴장과 공포로 몸부림 치는 그녀에게 이보다 좋은 특효약은 없었다.

"예뻐. 귀여워. 머리띠도 귀엽고, 목줄도 귀엽고. 당연히 꼬리도 귀엽고. 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귀여워."

좀전까지의 폭력이 거짓말이라는  따스한 애정을 담아 그녀에게 속삭였다.

냉탕 뒤에 온탕을 오가며 그녀를 마모시키는 일은 이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습관에 가까웠다.

"내가 조금 거칠게 굴긴 했지만... 그래도 아까는 다  위했던 거야. 우리를 위한 거였고. 이해하지?"

그리고는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투명한 유리알 같은 눈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현우의 눈빛은 그녀의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 네, 이해해요."

혜지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억누르며 천천히 대답했다.

불안, 공포, 고통, 슬픔, 그리고... 오빠에 대한 믿음과 사랑.

격렬한 소용돌이가 휩쓸고 지나간 폐허에는 결국  이해만이 남았다.

무엇에 대한 이해인지도 모를 맹목적인 이해만이.

이제 고작 첫 날이지만.

그녀는 분명 가축으로 길들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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